딸과 보낸 여름 휴가 (필리핀 세부)
밤 늦게 막탄 공항에 도착했는데 케니 가이드님이 마중 나와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일행은 나와 딸 그리고 아주 예쁜 5아가씨들이랑 같이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아침에 청아한 새소리에 잠에서 깨었다.딸은 속이 쓰리다고 가져간 약을 먹고도 밤새 뒤척이더니 새벽녁에 잠이 든 모양이다.일찍 바닷가에 나가 보고 싶었지만 딸이 깰까봐 참을 수 밖에 없었다.행여 문 소리에 잠이 깰까봐...
찌르르르 콕콕... 무슨 새인지 계속 한참을 뒷 창문께에서 우짖다가 날아 간후에 모닝콜이 와서 딸을 깨워 아침을 먹고 바다에 나갔다.
오늘은 좀 느슨하게 일정이 잡혀 있어서 다들 느긋하게 준비하여 약속된 시간에 케니씨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여
잠수를 할 사람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은 구경하고...그러는중에 비가 갑자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여 늦은 점심을 먹고 발마사지하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케니가이드님의 배려로 전신까지 받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 세찬 비를 맞고 유유히 걸어 가는 어린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든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들 내리는 비를 피한다기 보다는 즐긴다고나 할가 그런 표정으로 느긋하게 걸어 가고 있었다. 케니씨 말로는 자연 목욕을 하는셈이라고 한다.다들 카톨릭을 믿어서 피임도 하지 않고 산아 제한도 하지 않아서 한집에 가족구성이 보통 열식구 정도라고 하는데, 다들 가난해서
그중 아주 똑똑한 한 자식을 밀어 주어, 학교 공부도 시키고 외국 유학도 보내고 그 애가 성공하여 고국으로 송금을 보내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나라를 이끌 기둥이 된다고 하는데, 마르코스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의 극에 달한 사치와 군부 쿠데타등으로 지금도 군사세력이 득세하고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지성인들이 일년에 몇백명씩 죽어 간다고 하니, 그 옛날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듯한 그네들의 가난한 삶과,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는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체구와, 새카맣게 별처럼 반짝이는 그네들의 쌍겹진 눈과, 검은 생머리의 소녀들 모습은 아름답고 다들 닮아 보였다.
눈만 마주치면 " 예쁘다"를 연발하며 하얀이를 들어 내고 웃는 남자들의 모습은 1달러를 얻기 위해서만 그토록 친절하게 부드럽게 웃지만은 않을것이다고 생각되지만....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몸에 밴 습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국민들 천성이 바쁠것도 없고
잘 웃고 친절한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머무는 비치리조트는 정경은 그럴 수 없이 아름다웠는데 바다와 접해 있고 실내 수영장이나 울창한 숲 늘씬한 야자수들...
그런데 처음 배정받은 방에서는 샤워기가 움직이질 않아서 좀 불편하여 다음날 방을 옮겼는데 옮긴 방은 또 문이 문제라 케니씨가 가고나서 원주민 아가씨와 방 문제로 전화 대화를 해야 하는데,,,휴 생생영어에서 배운걸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이방은 또 문이 문제인데 문을 고쳐 달라고 해야 하는말이 도무지 생각이 ...도어체인지만 연발 하고 말았지만 용케도 대화뜻은 알아 차렸나보다 ....
고치는 아저씨 두분이 오셔서 먼저방 도어를 풀어서 이방으로 옮겨서 해 주었다.그런데 저녁에 잘려고 누었는데 게속 몸이 스멀 스멀 간지럽기 시작이다. 딸은 긴바지 긴팔로 갈아 입고 가져간 전자파 모기향을 피워도 소용이 없다.
아무턴 뭔가 2% 부족한 기분이다.깨끗하게 청결한 맛이 없다고나 할가...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을 여행할때는 그들 나름대로눈 잘 하고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흡족치 못한 부분이 많아서 다음날 시트 교환하러 온남자 직원에게 더티하다고 말했더니 필리핀 스타일이란다.
필리핀에는 오랜 식민지 생활로 아무래도 여러민족의 혈통이 섞여서 그런지 잘생긴 사람들은 아주 멋진편인데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면 잘생긴 얼굴에 미소 가득 띄며 모두다 "필리핀 스타일"이란 그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우리들 말을 다 알아 듣긴 하는데....그들의 친절은 정말 사양해도 다 들어 주고 방을 옮길때도 끝까지 다 옮겨 주어서 1달러와 가져간 과자들을 주었더니 다음날 작은 타올이 필요 하다고 했더니 어디서 구해다 놓았다 ㅎㅎㅎ
저녁 식사때는 4인조 그룹이 키타 연주를 하며 귀에 익숙한 호텔 캘리포니아등을 들려 주었는데 나름대로 낭만은 있었지만, 다들 또 1달러를 요구 할거 같아서 인지 자리를 뜨고 말았다.리조트에 머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날은 호핑투어 일정으로 스노쿨링 바다낚시 멋진 해물부페를 먹고 저녁에는 다들 야경을 구경하고 나이트를 간다고 하는데 속도 안좋고 술도 못 먹는 딸이랑 나는 나이트를 안가고 리조트에서 피앰피에 저장된 멋진 영화를 한편 보았다. 이곳의 나이트 문화는 가족단위로 술은 무한정 리필이 된다고 모두 좋아라하고 갔는데, 새벽 3시께야 돌아 와서 어찌나 떠드는지 잠이 깨고 말았다
저녁 삼겹살구이를 거의 못먹고 게속 속이 쓰린 딸을 위해서 케니씨가 특별히 죽을 주문해 주어서 맛있게 먹고 잘 잤다.
다음날은 마젤란이 필리핀에 상륙하여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마젤란 십자가, 스페인의 초대 총독 레가피스에 의해 세워진 성 어거스틴 교회, 이슬람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건설한 산패드로 요새등을 구경하고 잠간 쇼핑을 하고 저녁은 맛있는 샤부샤부를 먹고 시간이 남아서 마트에 잠시 들렀다가 샹그릴라호텔에 잠시 들러서 사진만 찍고 어메이징쑈를 관람하고 공항으로 가는게 전 일정인데 우리는 어메이징쑈를 관람하지 않고 그 건너편 까페에서 리사랑 한시간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게이들이 나와서 술은 무한정 리필된다는 어메이징쑈도 술도 못먹고 해서 그냥 까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야외에서 하는 어메이징쑈의 노래는 다 들렸다.우리는 대나무로 엮은 까폐 이층에서 일하는 18살에, 낮엔 대학에 다니고 저녁에 알바를 한다는 리사와 콩글리쉬와 단어들만 나열하면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그녀는 정말 예쁘고 상냥스런 우리말을 다 이해하는듯한 눈빛이 맑은 소녀였다.
가족은 10명인데 남동생 여동생 시집간 언니도 있고 엄마는 나보다 10년이 적은데 애를 8명이나 나았다고 한다.
리사와 영어만 좀 통하면 국제적인 친구가 될 수 도 있을것 같은데 하며 아쉬워 하는 딸에게 이번 기회에 영어를 좀 배우라고 충고하고
공항에서 우리는 2시간을 기다리며 세부에서 보낸 3박5일간의 휴가를 회상해 보았다. 젊은 아가씨들은 나름대로 나이트도 즐기고 끝없이
사진찍고 " 예쁘다" 하는 원주민 발음으로 우리를 웃겨주며 가이드와의 마지막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다.
딸과 나는 좀 열외이긴 해도 이쁜이들이 다 인간성도 좋고 서글한 성격탓에 같이 낑겨서 사진도 찍고 즉석에서 나온 사진을 보면서 즐거운 마지막 여행길을 보냈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고 했던가, 조금은 아쉽고 아직 하고픈, 남은게 많은것 같은데...아쉬움 담은체 다음을 기약하며...
여행지에서의 불편함이 있었기에 더 가정의 소중함이, 우리나라의 좋은점을 뼛속깊이 느끼면서, 아무래도 경제적인 성장이 늦은 그네들이기에 좀더 상업적이지 못한..조금 투자하여 더 멋지게 거듭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 부족함을 가이드들의 정성과 인간미로, 넘치는 그네들의 필리핀 스타일 친절로,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자위하면서 이번 여행지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망고를 실컷 먹었다는 것이다.두리안의 그 맛은 정말 지독했지만...
그리고 우리들에게 정성을 쏟아준 모두 투어의 케니가이드님께 고마움을 표하며, 공항까지 나와서 물론 사진을 팔기 위해서긴 해도 우리를 마중해준 미스터봉의 순수한 미소도 기억에 남을것같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멋진 코리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지금 우리 집이 얼마나 멋진 샹그릴라호텔 수준인지 느끼면서 나날을 휴가처럼 멋지고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민주주의 우리나라, 살기좋은 우리나라가 있어서, 나날이 촛불집회로 시끄럽긴 해도 그래도 제일 살기좋은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돌아온 셈이다.
아이 러브 코리아 그마음 잊지 말고 늘 감사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 가야 한다고 다짐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