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시/문정희




시간이란 한낱 미문(美文)

그 부끄러움 위에

떠돌게 하소서




달빛 꾀어내는 풀피리에도

몸이 달아

냄새와 능멸로 살아나는

배암이게 하소서














































천하고 무식한 신명 들려

햇빛이 직선으로 쏟아지는

거친 돌밭에

입으로는 말고

몸으로만 몸으로만 소리치게 하소서




생각이란 생각은 죄다 벗고

무서운 비밀을 본 자(者)처럼

두 눈도 없이

시간의 황홀한 강가에 내내

비늘로 떠돌게 하소서




*photo by 은향

 

 

 

   

 

 

 

 

 

 

 

출처 : 은은한 향기
글쓴이 : 은향 원글보기
메모 : 고운 시 즐감하시기를~~

 

 

 

 

 

고독

 

 

                            문정희

 

 

 

 

 

그대 아는가 모르겠다

혼자 흘러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처럼

 

온 몸이 깨어져도

흔적 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 붙는

얼음번개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은향님의 블로그에서 이 시를 읽고 너무 좋아서 베껴 왔다.

문 정희님의 시는 남다른 감성으로 일찍이 '찔레' 라는 시가 이 코너에 있다.

그님의 감성 코드와 좀 통하는지도...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일인지를

온 몸이 깨어지도록 아파도 울 수도 없는...

요즘은 총 맞은 것처럼 아프다고 했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마음은 비에 젖어서

그 비가 겨울비처럼 온 몸을 얼어붙게 하는

그 뼈아픔보다 더 아픔이라는 것을...

그대는 참으로 알란가 모르겠다는....

 

누군가 절절한 그리움으로 고독한 이는 어쩌면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했었다는 그 아름다운 슬픔을 맛 본 자이기에...

아무리 아파도 사랑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눈부신 7월의 태양아래 우리 삶의 사랑도 더 한층 원숙해지고 익어가기를 바램하면서...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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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 속에 들어가도

물에는 흔적 없네

 

 

 

 고승열전을 읽다가 오래전에 메모해둔 글을 며칠 전 발견했다.

고매한 옛 사람의 향기가 풍기는 글이다.

얼마나 깊은 인격을 갖추어야 저런 글이 나오는 걸까...

간결함에 깃든 심오함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넉넉한 인품, 고고한 시향에 취해 보시기를...

 

 

요즘 탄 허 스님의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한자도 많고 책도 워낙이 두꺼워서

진도는 잘 나가지 않지만,

겨자씨 하나에 삼천 대천 세계가 들어있다는....

그런 마음의 통함을 보는 것 같다.

 

 

어제는 6ㆍ25전쟁 전사자 고(故) 이 천우 이등중사(병장)의 유해 안장식을 보면서 전쟁이 끝난 지가 5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아픔은 지워지지 않음에 숙연해졌습니다.

두 아들을 잃고 평생 가슴앓이를 하다 돌아가신 그 엄마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일요일은 절에 다녀왔었고, 토요일은  착한 딸이 쇼핑을 하자면서 소위 메이커라고 하는 비싼 내 운동화와 샌들,

남편의 운동화, 모자, 티셔츠 등을 사주어서 많이 행복 했습니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열어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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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조 지훈>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 버린다, 못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살면서 지독한 외로움에 안으로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게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면서도 확 들어내어 누구 때문인지 왜인지도 모를 까닭모를 외로움이라니...

감성이 남달랐던 조지훈님의 그 깊은 외로움의 끝에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지만...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죽는 순간 까지도 가슴에 안고 갈 것 같은데...

 

길가에 흔하게 피어있는 민들레꽃마저도 절절하게 그리워지는, 그리움의 끝에 서 있을 때

이런 시가 나오나보다. 너무 그리워 말도 못하고 그 그리움 때문에 병들어 죽는 순간에

민들레꽃 한 송이가 위로가 되는지도....

 

자신이 그리다 죽은 후에 사랑하는 그 사람 맑은 눈으로 자신을 한번 돌아봐 줄 것이라는...

그렇게 그리워하면서 왜 달려가서 그립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그리운 이를 평생 마음에 품고만 있다가  죽는 순간까지도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은 도대체 어떤 그리움일까....

그런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는 기억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그런 그리움을 알았다는 아픔마저도 행복이라면...

 

 

누군가 그리워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움 때문에 병이 된다 할지라도...

내 시의 소재는 그리움이라고 ... 늘상 그리움에 절어 살고 있다고...

그런 내가 요즘 시를 쓰지 못한다.

그리움의 문을 닫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젊은 날 그리움은 조용히 잠재우고

그리움하며 저지른 숱한 마음의 죄를 참회하면서 살겠노라는 마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제 그리움 앓으며 지난 내 잿빛 청춘의 시간들은 조용히 보내야할 싯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을 떨쳐버린 삶은 조용하고 평화롭지만 활화산처럼 치솟는 열정도 없고 서러운 분노도 없고

가슴 떨리는 희열도 없다. 그러나 잔잔하고 고요하다고... 단순하고 담백하다고...그래서 편하고 느슨한 시간들이 행복이라고...

억지 부려본다. 이제 내 건강이 그런 마음의 불꽃을 견뎌내지 못하는지도...

그리움이라는 미약한 감기에만 걸려도 회복될 수 없는 큰 병이 될지도 모른다는, 지나친 우려와 염려 때문인지도...

아파도 그리움을 떨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리움을 앓고 있는지도......

 

조지훈님을 너무나 좋아 한다는 은향님의 블로그에서 위의 시를 발견하고 내 마음이 왜 그리 서늘해지는지....

이 시를 읽으시는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의 마음도 잠시 서늘해진다면....

가슴 깊이 감춘 외로움과 그리움이 살아 있는 증거라고...그리움이 없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지도...

 

오늘 모든 그리운 것들을 향하여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는 이 순간을 기쁨으로 생각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그리움 가득한 고운 하루 보내시기를~~~*^^*~~~

 

 

ps; 미국 중서부 미주리 주에는 토네이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산 피해도 많다고 한다.

구미 약목 미군기지내에 묻어둔 고엽제가 어디로 옮겨졌는지 모른다고 하고...

여 아나운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고...

정말 딸을 키우는 부모 마음으로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없다... 그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어이 할까나...

그 부모는 어이 살라고...세상은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 같다.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모든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왕생 성불을 두 손 모아 서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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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인연이길

 

 

 

 

 

 

 

 

진심어린 맘을 주었다고 해서

작은 정을 주었다고 해서

그의 거짓 없는 맘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깊은 정을 받았다고 해서

내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깊은 사랑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를..

 

한동안 이유 없이 연락이 없다고 해서

내가 그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가 내게 사랑의 관심을 안준다고 해서

쉽게 잊어버리는, 쉽게 포기하는

그런 가볍게 여기는 인연이 아니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다 힘든 일 있어

위안을 받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살아가다 기쁜 일 있어

자랑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내게 가장 미더운 친구

내게 가장 따뜻한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가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지금의 당신과 나의 인연이

그런 인연이기를..

 

 

- 법정스님 -

 

 

 

  스님의 고운 글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귀한 인연 가지고 있는지 ...이런 귀한 인연의 고리 엮어져 있는지...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해 보니 그동안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떨치고 살아 온 것 같기도 하다.

인연생 인연멸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옷깃 한번 스침도 다 인연이 닿아야 함이리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전전생으로 부터의 지중한 인연의 고리들이 이생에 까지 엮이어져 있을지도 모르고...

 

오늘 내가 말 한 마디라도 다정하고 따뜻하게 건넨 그 누군가는 전생으로부터 고운 인연으로 스쳐 지난 사람일지도 모르고, 까닭없이 기분이 거슬리게 스쳐 지나가는 그 누군가는 전생에 안좋은 일 맺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내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얼굴을 보면서 같이 길을 가는 그 인연도 지중하다고 하겠다.

 

하물며 혈연과 지연, 벗님, 지인들과의 인연은 얼마나 귀한 인연이겠는가 싶다. 잠시 잠간 눈인사 나누고 헤어질지라도 마음 가득 아름다운 여운과 향기가 남는 그런 고운 인연이고 싶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 님들과의 인연도 귀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싶다. 어디에 사시는 어떤 분인지 몰라도 ' 다녀간 블로그'란 창을 요즘 닫아 버려서, 정말 어느분이 다녀 가셨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

 

'다녀간 블로그' 란에 얼마전 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이상요상한 블로그이름들이 계속 들어 오고 있어서  눈뜨고 그 이름들을 볼 수가 없어서 닫아 버렸다. 며칠 후 다시 시도 했지만 역시나 반나절이 안되어 그런 이름들이 계속 씨리즈로 뜨고 있어서 닫아 버렸다. 그래서 정말 궁금한 고운님들이 다녀 가셨는지를 전혀 알 길이 없으니...

한마디 말은 없어도 늘 찾아 주시고 지켜봐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벌서 주말입니다. 한 주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아침은 좀 쌀쌀합니다 ㅡ7도라고 하니 잘 챙겨 입으시고

늘 귀한 인연으로 남고 싶은 아름다운 고운 나날 보내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잊어 버립시다

 

                                           <티이스. 레엠>

 

잊어 버립시다

꽃이 잊히듯이  한번 금빛으로 탓던 불이 잊혀버리듯이

언제 까지나 잊어 버립시다

때는 친절한 친구외다

언젠가는 우리를 늙게해 줍니다

만일 누가 묻거들랑

그건 벌써 옛날에 잊어 버렸다고 말해 주십시요

꽃과 같이 불과 같이 또는 아무도 모르는

눈속의 발자욱 소리같이....

  

 

 

 

못잊어

 

                        <소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데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라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데로 세월만 가라시구료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위의 두 시는 이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동서양의 심성이 나타나 있는듯하다

위의 시는 다 끝나버린 일인데, 한번 잊기로 했으면 그냥 잊어 버리자고, 잊어야 한다고 한다.

 

소월의 시는 그냥 체념하고 살다 보면 잊어지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 가서는 죽어도 못잊는다는 말이다.

정이 많아서인지, 맺고 끊고를 분명히 못해서인지, 다분히 위의 시는 능동적인것같고 밑의 시는 수동적인것 같다.

 

어쩔수 없는 사고를 당했거나, 재해나 천재지변으로 이별을 맞이 했을땐

당연히 절절한 그리움으로 남은 사람은 평생을 추억할것이다.

그러나 신뢰를 져버린 이별에 대해서는 망각조차도 사치가 아닐 수 없다.

 

살아 가면서 헛되고 헛된 지난날을 망각하기 위해서 몸부림 칠 필요는 없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삶이 어디 그런가, 때로는 예기치 않은 배신과 운명의 장난으로 망각으로 지워 가야할 일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놓쳐버린, 떠나버린 기차가 마지막 기차일거라는 기우는 버려야하리라...

 

레일 위에는 늘 새로운 기차들이 달려 오니까 말이다. 세월은 흐르고, 늘  기차는 신종 기차들이 더 멋지게 달려 온다는것을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이 기억 상실증이 아닌바에야 깡그리 다 잊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그 반추로 인하여 가슴이 아리지는

않도록, 내 인생은 내 스스로 능동적으로 고무적으로 살아 가야할 것이다.

 

멋진 주말에 이별시를 올려서 좀 그렇지만 우리는 함정처럼 도사린 우리의 내일에 늘 대비해야 할 것이다.

네가 아니면 죽을것같은 그런 상황으로 몰아 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내가 살아야, 내가 존재해야 사랑도 그 무엇도 다 존재치 않겠는가

모든것에 능동적인 사람이 모든것에 성공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주말은 기분이 좋다. 날씨는 흐렸지만 오후부터는 개인다고 한다.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자!! 힘내시고 오늘 하루 멋지게 능동적으로 살아 가시기를~~~

 

 

 

♥♡♥마음 아픈 일을 당한 이쁘고 착한 아는 여동생에게 이 글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백합꽃이 빛나는 한 정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햇빛을 쬐며 생각에 잠겨  있는 한 사람을,

그 여인은 백합꽃의 순백보다 더 깨끗하고,

그리고  아, 그 눈은 꿈을 머금은

천국의 빛입니다.

 

나는 춥고 어두우며 쓸쓸한 한 다락방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 팬으로 수고에 수고를 거듭하는 한 사람을.

용감하고 슬픈 그 눈이 피로해지면

그이는 선각자로서 창백하고 침묵에 잠겨

별을 찾습니다.

 

그런데 아 이상한 일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바다처럼 넓은 적막과 어두움이 있어도,

그이는 정원에서 그 여인의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그이와 함께 다락방에 있습니다.

 

 

 

*위의 시는 스코트 니어링이 자신 보다 21살이 어린 사랑하는 헬렌에게 로버트 서비스(R.Service)의 시를 보낸 것이라고 한다

이에 헬렌은 카운트 클린(C.Cullen)이 쓴 시로 응답했다고 한다.

 

 

 

 

그이가 말했습니다

바람처럼 사세요, 자유롭게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동안

나를 사랑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길 바라고

더 나아질 수 있다면

더 좋은 사람에게 가세요.

 

당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나하고 같이 살면

아마도 싫증이 나겠지요.

마찬가지로 울어야 할 까닭도 없겠지요.

바람은 언제나 자유로우니까요.

 

그이가 말할 겁니다.

당신이 가고 싶을 때 가세요

그 여인의 입술에 입술을 바싹 대고서,

그것이 그 여인이 뼛속까지 만족해하면서 머물러왔고,

계속 머무르고 싶어하는 이유입니다.

 

 

 

 남편이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날이라,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책을  빌려다 주어서, 어제 신나게

읽어 나가다가 위의 시를 읽었는데, 엄격하고 교훈적이며, 옳고 그름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 붙임성있고 친절하며 위의 시처럼

낭만 스럽기까지한,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자연으로 돌아갈때 까지의 삶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랑과 존경으로 평생을 같이한 남편에 대해서 

" 누구든지 남편은 가질 수 있으나 현인을 갖기는 어려운데, 그 둘의 결합은 유익한 만큼 드물다"

내 온갖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현명한 연장자와 사는 것은 끊임없는 즐거움이였다. 그것은 학교 수업과 휴일이 하나로 합쳐진것과

같았다고, 그러면서 여러가지 내 개인의 성질과 습관을 참을섬있게 받아주고 이해하는 선생을 가졌다고 했다.

 

세상에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반려자와 같이 사는 행복을 누리는 부부란 흔치 않을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온 삶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한줄 한줄 감동의 물결이 파문처럼 몰려온다.

 

낡은 책 표지가 말해주듯 오래전(1997)에 나온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당분간 그 두 사람의 사랑에 많이 감동 받을것이다.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울지도 모르겠다. 벌서 금요일 주말이다.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건강 잘 챙기시고,

맑고 향기로운 멋진 주말 보내시기를 빌면서~~~~ 

 

 

 

 山中何所有  (산중하소유)

嶺上多白雲  (영상다백운)

只可自怡悅  (지가자이열)  

不堪持贈君     (불감지증군)

 

 *한자가 어려워서 찾는다고 힘들었답니다 ~~^^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마루에 떠도는 구름 

 

 다만 스스로 즐길 뿐

 

그대에게 보내줄 수 없네.

 

 

** 옛 은자의 시 ** 

 

 

요즘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보고 있는데, 스님께서 1997년 IMF가 터졌을때 깊은 산속 오두막에 들어가서 일기처럼 쓴 글이라

요즘시대와 너무 잘 맞는것 같아서 읽어 내려 가면서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위의 시도 책속에 나오는 시인데 몇번을 음미해보면 정말 가슴에 와 닿는다.

욕심을 떠난 담담함과 소탈한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는가...

 

늘 지족함이 부자라고 말은 하면서도 지족이 어디 그리 쉬운가....

또한 책속에 너무 좋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적어본다.

 

" 행복을 얻는 비결은 

즐거움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고

알맞게 그칠 줄 아는데에 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욕망의 끝자락까지 달려가지 않을 수 있는 담담함이라니....

부러울 따름이다. 자기 극기와, 자기 절제, 중생들은 감히 흉내내기 어려울 따름이다 . 오욕칠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는데... 삶은 늘 우리를 흔들고 있지 않는가....오늘 바람이, 봄바람이 또 우리를 심하게 흔들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비가 온다. 어제 아침은 비도 오지 않았는데 블로그에 비가 내린다고 했더니 ....

단비 내리는 주말,  메마른 모두의 가슴에 촉촉한 그리움으로  담담함을 배워 가심은 어떨런지요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되시기를~~~~~ 

 

 

 

그런길은 없다

 

                      <베드로시안>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어둡고 험난한 이 세월이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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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읽고 있는데. 책 속에 나오는 시이다.

다들 힘들다고, 어렵다고 하는 세상에, 위에 시는 많은 용기와 힘을 우리에게 줄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만이 왜 이렇게 힘들까, 신은 언제나 나의 편이 아니었고, 왜 나에게만 이렇게 늘 가혹할까, 왜 나는 주변에 진정 나를 위로해줄 그 누구도 없고, 기대어 울 사람 아무도 없는가,...자학이 시작되면 끝없이 추락하게 되는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란것이 넓기로치면 우주를 포옹하며 태평양같은 바다가 되기도 하지만,  좁기로 치면 바늘귀보다 더 좁을 수 도 있다는것이다.늘 내 마음자리를 잘 다스려, 인간은 누구나 다 고독하며 어려우며 힘들지만,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잘 추스려 자애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때 남들도 나를 귀하게 사랑한다는점을 잊지 마시기를...

 

누군가 그랬다. 혼자서 식사를 할때도 모든것을 다 갖추어 놓고 정말 귀한 손님이 왔을때처럼 식탁을 정갈히 차려놓고 촛불도 켜놓고

꽃도 한송이 유리컵에 꽂아 놓고 예쁜 그릇에 담아서 먹는다고....우리가 늘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혼자라고 아무렇게나 홀대하면서 살면 아니될것이다.

 

부처님께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하신 말씀도 결국은 나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남 역시도 귀하게 생각하리란 말씀이 아니겠는가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벌서 주말이네요. 날씨는 또 흐렸지만 그래도 우리는 웃는 얼굴로 멋지게 하루를 열어 가야겠죠 

힘든 세상 모두 힘내시고!!! 이타자리(남을 이롭게 하는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한다)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 고운날 되시기를~~

 

 

 

 초혼

 

                                                                   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간 산위에서

나는 그대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살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산채로 이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가족사항

조부는 공주 김씨의 金相疇이고, 부친은 金性燾, 모친은 張景淑이다. 仁姐라는 여동생이 있고,洪明熙의 딸 洪實丹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슬하에 장녀 龜生, 차녀 龜媛, 장남 俊鎬, 차남 殷鎬, 삼남 正鎬, 사남 洛鎬 등

4남 2녀를 두었지요.

 

 

소월의 연대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02년

본명은 廷湜이고 필명/아호는 素月이다.
고향(본적)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일명 남산동) 569번지이다. 평안북도 구성군 구성면 왕인동 외가에서 9월 7일(음력으로 8월 6일) 태어나다.

북한ㆍ연변 자료에 의하면, 소월의 출생년도는 1903년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착오이다. 최근의 북한자료(리동수 지음 김재남 해제, 《북한의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 연구》, 살림터, 1992, 240면)는 이를 바로잡고 있다.

 

1904년

부친이 정주ㆍ곽산간 철도를 가설하던 목도꾼들에게 몰매를 당했고, 이로 인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죽을 때까지 폐인생활을 하였다. 북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인 부랑자들에게 구타를 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한때 광산업에 종사하여 재산을 모으기도 했던 조부 김상도의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조국이 식민지화의 길로 치닫게 되다.

이 때를 즈음하여, 유학과 한문에 소양이 높은 할아버지의 훈도 밑에서 구학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수많은 민담ㆍ민화 등을 들려주었던 숙모 桂熙永이 숙부 應悅에게 시집옴으로써 소월은 그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다.

 

1909년

남산보통학교(일설에 의하면 사립학교)가 설립되자 머리를 깎고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다.

아버지의 정신병으로 인하여 집안은 더욱 쪼들리게 되었으나 할아버지의 훈도와 할머니ㆍ어머니의 지성어린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하다.

 

1914년

연변ㆍ북한 쪽 자료에 의하면, 이 시기에 <긴 숙시(熟視)>를 썼고 이것을 후에 《근대사조》(1호,1916)에 발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15년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다. 5월 오산중학교에 입학하여 안서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다.

이 때 소월시의 원천(源泉)이 된 한시ㆍ민요ㆍ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6년

세살 많은 홍실단(일명 丹實) 여사와 결혼하다.

연변ㆍ북한 자료에 의하면, 남산학교를 졸업한 후집에서 쉬다가 이 시기에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여 시를 짓기 시작했고, <먼후일>을 썼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부 연변ㆍ북한 자료에 오산학교 입학 시기를 1917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소월이 15세(공식적인 나이로는 14세)에 해당되는 년도는 1916년이다

 

1919년

북한 자료에 의하면, 동급생을 선동하여 이들과 함께 3ㆍ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잡혀가던 도중에 요행히도 몸을 피하였다고 한다.

4월에 <춘조>를 탈고하다.

 

1920년

이 시기에 <그리워>(창조 5호, 1920. 3) 등과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동으로>(학생계 창간호, 1920.7)를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다.
<춘조>를 《학생계》(3호, 10)를 발표하다.

 

1922년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하다. 동급생에 나도향이 있었고 한 반 아래에 박팔양이 있었으나 특별한 교우관계를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ㆍ1운동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함박눈>(개벽 28호, 10)을 발표하다.

 

1923년

배재고보(7회)를 우수한 성적으로(총 44명중 4등) 졸업하다. 고향에 돌아와 평북 정주군 림포면 사립학교 교원이 되다. 아동교육에 종사하면서 시창작에 정진하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서정시를 창작하고, 그것들을 《개벽》 등에 발표하다. <장별리>도 이 때 지은 작품이다.

사립학교 교원생활이 창작이나 집안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 시기에 집안이 더욱 피폐해져 가다.
처가의 도움으로 일본 동경에 건너가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하다. 학자금이 제대로 조달되지도 않았고 상과에 취미도 없어 괴로운 학창생활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10월경 귀국하다.

이즈음에 서울생활을 하게 되고 나도향 등과 어울렸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의 서울생활의 느낌을 시로 읊은 것이 <서울밤>과 <不稱錘秤> 등이 아닐까 추측된다.

 

1924년

김동인 김찬영 주요한 김억 전영택 김유방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가담하여 서울에 체류하였으나, 곧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방현)에서 사망할 때까지 동아일보 지국일을 맡아보며 소일하다.

그러나 《東亞日報社史 1》의 기록에 의하면 소월이 동아일보지국장 일을 맡기 시작한 것은 1926년 8월부터이고, 그만둔 시기는 927년 3월이다.

 

1925년

유일한 시론 <詩魂>(《개벽》 59호, 5)을 발표하고, 이해 말에 《진달내》(12)을 매문사에서 상재하다. 1934년6월 사남 낙호가 출생하다.

12월 23일(일설에 의하면 24일)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 자택에서 사망/자살하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마약 중독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일보》(12.30)에 민요시인 소월 김정식씨의 돌연사망 기사가 났고, 《동아일보》(12.30)에 소월의 사망을 알리는 기사와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찍은 흐릿한 소월 사진이 소개되다.

소월은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고개에 묻히다.

 

1935년

김기림 김동인 김동환 김억 이광수 이은상 유도순 박종화 박팔양 정지용 등 문인 백여명이 서울 종로에 있는 백합원에서 소월을 추모하는 모임을 가지다.

안서가 《조선중앙일보》(1.22-26)에 <요절한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을 쓰고, 이어 《신동아》(2)에 소월을 추모하는 <弔詩>를 발표하다. 김억이 쓴 <요절한 박행시인 김소월에 대한 추억(3)>(《조선중앙일보》 1.23) 본문에 소월의 친필이 소개되다.

 

1939년

《여성》에 소월의 <박넝쿨타령> <성색> <세모감> <술과 밥> <절제> 등 유고 시편이 발굴되어 발표되다.
김억이 박문서관에서 《소월시초》를 펴내다.

소월의 묘를 서산면 왕릉산으로 이장하다. 

 

 ***다음 신지식에서 맘매김님의 글을 옮겨온것이다.다음의 바다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중학교에 입학하여 수업 첫날 국어 시간에, 임시 담임으로 우리교실에 들어 오신 교감선생님께서 절절히 읊어주시던 이 초혼시를

들었을때, 온몸에 소름이 돋듯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삼 느껴진다.

그 나이에 사랑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초등학교 4학년때 안네의 일생을 읽고부터 세계명작을 봣던 터이라 나는 참 무척 조숙했는지도 모르겠지만,일찌기 어린날부터 그리움에 대한 남다른 감성은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월의 일생을 보면 알겠지만, 일제의 침략 아래서 가정의 몰락과 아버지의 정신병 등으로 감수성 많은 소월의 그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것도 같지만, 그렇게 자살로 세상을 마감하기 까지의 그의 고뇌와 절망, 고독과 아픔을 어이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만의 남다른 섬세함과 상처받은 영혼은 그 누구도 다 이해하지는 못할것이다.

 

우리곁을 너무 빨리 떠나간 천재시인의 가슴 서늘한 울림과, 절절한 한과, 피맺힌 절규만을, 우리는 조금 헤아릴뿐.... 

그래서 그의 시는 언제나 우리 가슴에 애절한 사무침을 안겨 주는것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앞에서 피 토하듯 써내려간 초혼의 절절함에 잠시 가슴 떨어본다.

 

초혼 시는 슬퍼도 오늘이 벌서 주말이다. 구정 연휴로 한주가 정말 빨리 지나가는듯하다.

흐린 날씨가 영하 1도라지만  싸늘하다.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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