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께서 남원콘도에서 슈퍼를 운영하시면서도 잠시도 쉬지않고 부지런하게 산자락을 계간하시어 여러농산물들을

경작하시어 해마다 이것저것 얻어먹고 있는데,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 다 그만 두었지만 농사만은 계속 짓고 계셨다.

올해는 이모부께서 위암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즈음 농작물에 씨를 뿌리고 할 시기인지라 같이 농사를 도와주고

 

갈라먹는 분께서 수고해주신 덕분에 씨는 뿌렸는데...몇 달 만에 내려갔더니 잘 돌보지 않아도 땅은 고맙게도 사람을 배신하지 않고 이렇게 선물을 주셨다면서 그리 크지는 않아도 그래도 우리농산물이고 비료도 많이 하지 않았으니 기침으로 겨울 만 되면 고생하는 조카를 위해서 무우 많이 먹으라고 하시며 보내오신 귀한 선물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늘 엄마처럼 나를 걱정해주시고 챙겨주심에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이모부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드나들면서 밑반찬 몇 번 챙겨드린 것 밖에 없는데....

언제나 어렸을 때부터 내편이셨고 남들 앞에서 나를 자랑스레 이야기해주시면서 무조건적으로 나를 추켜 세워주시던,... 완전 영원한 나의 팬이신 이모님 그 어떤 형용사로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아마도 이모님과 나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지중한 인연 이였으리란 생각이 된다.

천주교신자이신 이모님은 늘 나를 위한 기도를 하신다고 하는데...나 역시도 아침마다 이모님과 이모부를 위한 기도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만다라를 위해서...일체중생을 위해서...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세계 평화와 인류의 복지구족을 위해서....

 

요즘 활안 대선사의 책을 보고 있는데 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대승적인 기도를 하라는 그 말씀은 오래전에 항상 스승님들께서 말씀 하시는 것과 같다.

내종교만 최고다 나만 옳다 다른 종교는 안된다....

그런 소아적인 접시만한 좁아터진 생각에서 벗어나서 세상 모든 만다라가 다 복되기를 서원하는 대승적인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서도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세계등축제가 G20정상회의에 맞춰서 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다고 하여

절에 갔다가 조금 일찍 시청역 4번 출구에서 내려서  축제장소로 가는데

무슨 난리가 난 것처럼 시청역 화장실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임시 화장실을 만들어서 시민들 불편을 덜어주어야 하는 배려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경들이 길에 좍 깔려 있어서 어디서 데모가 난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외국인들이 보았다면 약간 공포분위기를 느꼈을 것도 같다.

사람들 또한 어찌나 많은지 청계천 물 가까운 길은 아예 가지 못하고 멀리

위쪽에서 사진 몇 장 바쁘게 찍고 돌아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돌아올 시간에 더 많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중국, 일본 등이 보였고 다른 나라는 한두 점 참여한 것 같았다.

십장생과 고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어릴 때 동심을 생각나게 하는 여러 놀이등과 동물들...

나름 다양하게 준비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등이라면 초파일 등축제가 떠오르는데

종교를 떠나서 찬란한 불교문화를 좀 더 접목해서 더 다양한 등 축제에 어우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오는 지하철 속에서 경주 묘사에 갔다가 돌아 온 아들을 전화통화 하다가 극적으로 만나서 신기한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우리는 인연이 깊은가보다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그럼요 그러니까 아들하고 엄마지요 해서

새삼 인연의 지중함과 귀함을 알게 되었다.

 

 

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고마운 인사를 전하면서...

지금 곁에 계신 고운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마시고 넘치는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따뜻한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열어 가시기를~~~~*^^*~~~

 

 

 

 

 

 

 

 

 

 

 

 어제 아침 KBS아침마당에서 G20정상회의 개최를 맞아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나라가 G20정상회의에

개최국일 뿐 아니라 의장국이 된다는 것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알기 쉽게 잘 풀어서 이야기해주시는 오종남교수의 이야기를 메모 해 놓지 못했음이 안타깝지만

88올림픽이나 2002월드컵 개최 그 이상의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방국들의 원조로 배고픔을 이길 수 있었고 외국자본을 차관하여 들어와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우리 부모님 세대의 노고로 이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선진국과 후진국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의 중간지점에서

잘 조율하여 그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바탕 삼아서 배고픈 사람에게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우리나라가 되었기에 우리가 G20을 개최할 수 있으며 의전국으로서 새로운 의제를 진행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8월 15일 나라를 세웠는데

1950년 6월 25일 전쟁발발

나라를 세운지 2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고 우리가 책에서 배운 파병국은 16개 나라였지만 군인을 파병하지 않았지만 의료진이나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나라들이 65개국이나 된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당당히 G20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G20정상회의의 개요를 알아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할 것이 아니라 선진국 대열에 까지는 아직 멀었겠지만 그래도 마음가짐은 선진대열의 그 어느 부국강병에도 뒤처지지 않도록 세계를 우리 가슴에 안고 같은 이웃이라는 생각으로...

나라의 잔치에 기꺼이 협조하고 응원하는 애국심으로 평소엔 잘 못하더라도 손님을 초대해놓고 추태는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애국심을 너나할 것 없이 가져야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G20 정상회의의 개요 

G20의 G는 영어 (Group)의 약자로 모임이란 뜻이다.

주요 20개국 모임으로 번역되는 G20은 기존의 선진국중심 G7에다 신흥국12개국 EU를 포함하여 1999년 만들어졌다고 한다.

1974년 석유파동 오일쇼크로 전세계경제가 휘청거리자 선진 6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 정상들이

1975년 프랑스 랑부예에 모여 대책 논의를 했고  1976년  캐나다가 합류하여 G7체제로 정착되어 경제문제뿐 아니라

항공기 납치 인질 문제와 난민문제, 구 러시아침공 등 정치적 논의를 했다.

1997년 러시아가 가입하여 G8이 되었다.

 

1997년 아시아외한위기G20재무장관회의를 시작으로 선진 국가와 신흥 국간의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G8+ 브라질, 인도, 중국, 한국을 참석시킴(이때 우리나라도 IMF금융위기가 왔음.

2008년 미국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또 한번의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

미국이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국가 정상들을 워싱턴으로 초대했으며 이것이 제1차 G20정상회의다.

 

2차  2009년 4월 영국 런던개최

3차  2009년 9월 미국 피츠버그 G20정례화합의

4차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

5차 2010년 11월 11일 한국 서울 

 

***의제 

 

*기초의제;

국제통화기금(IMF)기술적 지원을 받아 G20차원의 정책대안마련의 거시경제 정책공조 핵심의제이며 기금의 지분을 많이 내어 놓아야 나중에 통화기금의 돈을 쓸 때 그 이율이 싸다는 것이고 할증 이율을 적게 낸다는 것인데 선진국들이 거의 다 움켜지고 내어 놓지를 않는데 이번에 EU쪽에서 6%정도를 내어 놓는다고 한다. 미리 개최된 재무장관 회의에서 결정 했다고 한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게 조금씩 혜택이 돌아가고 우리나라도 조금이나마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것은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면 나오니 참조 하시기를...

 

**새로운 의제;

우리나라가 의제를 정하여 우리 대통령이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국으로서 

G20에 참가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 강조하여 그동안 원조 수혜국이였던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였으며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민소득 20000불 시대까지 갔다가 다시 IMF위기를 맞아서 

온 국민이 단결하여 금 모우기 등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한 우리의 경험을 저성장국가를 위하여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함...

 

지금도 굶고 사는 나라들이 너무나 많고 당장 북한이 그렇다는  것이고 오늘 아침 뉴스보도에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로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하루빨리 마음을 열고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 같이 잘 사는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람하면서 G20정상회의가 무사히 보람되고 알차게 잘 치뤃어 지기를 서원하면서....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G20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그날만은 자가용운전을 삼가 하는 그런 작은 애국심을 가지시리라 생각하면서 큰 잔치를 위해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거창한 애국은 아닐지라도 그저 마음만으로도 응원하면서....

 

저는 작년에 좀 일찍 김장을 했더니 괴산 절임배추 주문한 곳에서 10일 이후가 너무 바쁘니 사정을 좀 봐달라고 미리 일찍 좀 하시라고 하여 오늘 김장을 합니다... 배추가 오후쯤 도착 될 것 같아서 이것저것 김장 준비로 바빠서 늦게 글을 올립니다.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 주말  보내시기를~~*^^*~~ 

 

 

 

                            

 

 

 

 

단 풍

 

 

 

 

울어

울어

충혈된 눈빛인가

 

지친 기다림에

병든 객혈인가

피빛 단풍잎 하나

 

내장산 꼭대기

내 마음의

넋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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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큰스님은  책표지 뒷면에 잘 소개되어 있듯이 진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까지 하신 후에 어느 날 서장대에 올랐다가 목이 말라서 호국사 절에서 갈증을

식히다가 노스님한분과 만나서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마음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이 무엇인지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결국은 출가할 결심까지 하게 되었으나 만나는 스님들마다 열심히 일해서 한 가정 잘 다스리라고 출가 허락을 안 해주시어 일본으로 유학 간 친구에게 일본 절에서 출가할 결심을 굳히었다.

 

모친과 식구를 속이고 일본으로 가서 6개월 동안 머리 깎고 출가하여 온갖 잔심부름과 부엌일까지 빨래까지도 추운 겨울에 맨손으로 다 빨아대면서 오로지 주인공 마음을 찾으려 열심히 발심 수행하였으나 일본절의 스님은 결혼도 하거니와 심지어

육소 간에 가서 고기를 사오라는 심부름에 분개하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 와서 4번 만에 천년고찰 옥천사에서 남경봉 스님에 의해 삭발 출가하여 순호란 법명을 얻었으며 그때부터 본격적인 마음공부를 시작 할 수 있었다.

 

순호 스님의 그릇을 알아본 옥천사주지스님은 더 큰 스승님 밑에서 공부하라고 순호스님의 공부할 길을 열어 주셔서 서울 개운사대원암에 와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밑에서 불교경전을 모조리 섭렵하고 대교과를 졸업하신 해가 1930년대였다.

운허스님과 함께 주동이 되어 불교계를 바로 잡을 결심으로 학인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수월선사 밑에서 열심히 정진 하던 중 고향에서 법문을 해달라는 간청이 와서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 다니러 갔다가 모친을 만나게 되었다.

 

죽어서 조상 볼 면목이 없다고 하시며 마지막 소원이라고 대가 끓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면서 너 혼자 득도 하려고 하느냐고 대성통곡하는 모친 때문에 결국에는 그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지옥엔들 못 가랴는 심정으로 자신도 없는 고향집에서 딸과 늙은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부인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어 파계를 하고 말았다.

 

그 후 부터 스님은 끝없는 맨발의 참회고행을 하시었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설악산 봉정암으로 , 봉정암에서 묘향산 설령대로 홑옷에 맨발차림으로 아무리 세찬 칼바람이 불어와도 그렇게 지내시니 노 보살님이 안타까워서 새 옷을 해 드려도 다시 걸인한테 갖다 드리고 걸인 옷과 바꾸어 입고 오셨다고 한다. 참선삼매에 들었다가 잠이 오면 도끼를 들고 개울물 얼음을 깨고 아무리 추운 한겨울에도 물속에 들어가시어 졸음을 쫓았다고 하시니 과히 얼마나  용맹정진을 하셧는지 ...

후대에 사람들은 인욕제일 청담스님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묘향산 설령대에서 3주야 용맹정진 끝에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신다.

 

옛부터 부처와 조사는 어리석고 미련해서

어찌 이쪽 일을 알 수 있으랴

누가 나에게 한 소식  한 바를 묻는다면

길옆에 서있는 고탑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하리라...

 

깨달음에 만족하지 않고 덕숭산 정혜사로 만공선사를 찾아가서 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에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뤃고 죽음직전까지 갔으며 전부인의 지극정성으로 치유되신 후에 모친을 출가 시키시고,

둘째딸도 출가 시켰으며, 6.25사변이 날 것을 미리 예견하시어 절에 먹을 양식을 보리 피 나마 모아두게 하시어 전쟁통에 그곳으로 모여든 성철스님과 많은 스님들이 보리죽을 먹으며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이 땅에서 왜색불교를 몰아내고 수 천 년 내려오는 참 불교를 다시 세우기위해서 열심히 한목숨 바치신 위대한 스님이셨다.

 

좋은 절마다 대처승이 차지하고 청정스님들이 들어가서 참선 수도할 빈 절이 없는 그런 열악한 때에 오로지 불교정화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신 청담스님 일대기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어린 날의 그 시대의 일들이라 새삼 많은 안타까움이 남는다.

육영수여사님이 스님을 찾아가서 불공을 올린 이야기들과 그 일화들은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려운 시절인연을 만나서 청담 스님 같은 위대한 분이 계심으로 하여 이 땅에 청정불교가 바로 서지 않았나하는 마음이 든다.

그 스님의 제자들이 도선사와 여러 절에서 종단의 기둥이 되어 열심히 스승님의 뒤를 이어서 청정국토와 국태민안을 위해서 열심히 정진하고 계실 것 같아서 든든한 생각이 든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올 해 들어서 제일 추운아침 이라하니 따뜻하게 잘 챙겨 입고 출근하시기를....

늘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마니산 입구

 

 

 산 밑에서 보이는 마니산 정상

 372계단 중간부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컷

  처음 보이는 1004계단보다는 조금 쉽다는 두번째 계단 372계단

 

 

 위에 3장은 기상이 좋은 날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

 참성단 정상은 창살로 문이 잠겨져 있어서 조금 옆으로 정상이 보이는 헬기장으로 모두 모여 들었다

 

 정수사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멀리 보여서 한 컷

 

  참성단에서 선녀들이 춤추고 채화하는 사진

 

 

 

  그 옛날 마니산 아래동네에 사는 나무꾼이 산에서 신선들을 만나서 술을 얻어마시고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자기 동네로 내려 왔더니

30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설화...

 

 

 

 

 

 

 

 

 

 

 

  남편이 시간이 되어서 오랜만에 마니산 등반을 했다.

광릉에서도 만나지 못한 올해 제일 아름다운 단풍을 마니산 초입에서 발견하여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숲에 단풍들은 거의 다 떨어지고 이미 갈색으로 퇴색되어 나목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였다.

 

정상 참성단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많은 소위 1004계단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372계단 쪽으로 올라 가는 비교적

순탄하다는 길이 있는데 오랜만에 가는지라 쉬운 코스를 택했지만 중간 지점에서 갑자기 어지러운 것 같아서

어떻게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하다가 김밥을 한 줄 먹고 힘을 내어 끝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 가서 보니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 오고,  한켠으로는 산들이 보여서 바다와 산을 정상에서 다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산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니산은 사진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기가 제일 많이 흐른다고 한다.

한번 읽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

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전국 제일의 생기처라고 소개되어 있다.

좋은 기를 받아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도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를 않다. ㅎㅎㅎ

 

시간이 나시면 꼭 한번 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추천하는 바이다.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오신 분들도 많고 평일인데도 참성단 정상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통편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안내를 받아서 갔는데 인천 부평역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사이 버스정류소에서 90번을 타고

한시간 가서 강화시외버스 터미널에서 42번 버스를 타면 마니산 정문앞에 주차하는데 갈때는 잘 갔는데...

 

정수사로 내려오지 않고 다시 갔던길로 하산하여 그 반대편에서 다시 갔는데로 오려고 한참을 기다려도 서울에서 오는

3100번 버스는 2번을 지나 갔는데도 반대편 버스는 한 대도 안왔다.

스마트폰을 하는 젊은이도 계속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 정수사에서 나오는 41번 버스를 반대편에서 타고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90번 버스를 타고 조금 늦게 돌아 왔다.

 

 조금 아쉬운 점은 버스에 타신 친절한 할아버지 말씀이 나온 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그곳 화도버스종합 터미널이 있고

그곳에서 많은 버스들이 다닌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기다린 곳에서는 하루 5-6번 밖에 버스가 안 다닌다고 하셨다.

마니산관리소에서 그점을 명시를 해 놓고 안내를 잘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분만에 버스가 한대 다닌다고 하여 집에 차를 안가지고 갔고 그 청년도 계속 친구들이랑 전화를 하면서 차를 안가지고 왔더니

이렇게 교통편이 안 좋은지 몰랐다고 푸념이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날로 더 추워지는 날씨에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내가 다니는 절에서 나이대가 비슷한 보살님모임에서 스승님을 모시고 야외법회를 가졌다.

운악산 봉선사와 광릉수목원에 갔는데,

 눈부신 가을 햇살에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은 우리네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먼저 봉선사를 둘러보며 차와 다과를 마신 후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광릉에 갔다.

 

단풍은 이미 다 지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떨어진 낙엽마저 우리들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몇 번 광릉을 찾았지만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 올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곳 이였기에

조금은 황홀한 단풍을 기대한 마음을 섭섭하게 했지만

키톤치트 향이 풍기는 맑은 공기가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상큼함에 금방 아쉬운 마음은 사라졌다.

 

약간 늦은 시간에 입장을 하여 동물원은 3시에 이미 문을 닫았고, 학생들과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에 우리는 너무 넓어서

어디로 먼저 가야 할  지 잘 몰랐지만, 미리 몇 번 다녀 온 보살님의 안내에 따라서 삼림욕장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나무판자로 걷기에 아주 좋도록 오솔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걷다가  중간에 보니 이번 태풍에 그렇게 큰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쓰러진  나무군상들이 많이 보여서 우리들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마침 한 곳에 이르니 아직 건재한 화려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우리는 그 나무를 배경 삼아서 저마다 고운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박고,  

다과를 나누며 저물어가는 2010년의 가을을 아쉬움 속에 배웅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나무 박물관이 있다고 하여 언제 또 다시 오겠냐고 그마저 보고 문 닫을 시간이 다되어 집으로 돌아 왔다.

 

스승님을 모시고 여러 보살님들의 은혜 공덕 덕분에 정말 흐뭇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

 

박물관에서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신 분의 말씀이 5월 중순과 시월중순경(올해는 10월 20일경)이 광릉수목원을

둘러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한다.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인터넷으로 꼭 신청을 먼저 하신 후에 그 때쯤에 시간을 내셔서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고운 주말 보내시기를~~*^^*~~~ 

 

 

3회 영국편(3)

7. 대영 박물관

런던을 찾는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파리의 루브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3대 박물관 중에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한스 슬론이라는 의사 겸 박물학자가 평생 세계 각지에서 모은 유물들을 기증하면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고대 이집트, 아시아, 그리스의 유물 등 그 소장품의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의 유물도 한 부스를 차지하고 있다. 1753년 의사인 한스 스론이 8만여 점의 소장품과 로버트 코튼 경, 옥스퍼드 백작의 장서를 공개한 것이 대영박물관의 시작이다.1759년 영국 정부가 이들 자료를 구입하면서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이 탄생하였다. 1853년 그리스 양식의 건물이 완성이 되었다.

대영 박물관(大英博物館, The British Museum)은 런던 블룸즈베리에 위치해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1300만 여점의 소장품 중에서는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한 문화재도 적지 않다. 1753년에 설립되었으나 처음에는 한스 슬론 경의 개인수집품이 전시물의 대부분을 이뤘었고, 공공에 개방된 것은 1759년 1월 15일이었다. 블룸스베리의 몬태규 저택이었는데 현재 박물관 자리이다. 2세기 반에 걸친 확장으로 인해 몇 개의 부속 기관이 생겼다. 그 첫 번째는 남킹스턴 대영박물관(자연사)이 1887년 생긴 것이다. 영국의 박물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대영박물관은 특별 전람회 이외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로제타 스톤 Rosetta Stone

런던 대영 박물관 이집트 조각 전시실 (Egyptian Sculpture) 에 들어가면 로제스타 스톤이 있는데 1799년 나폴레옹 원정대가 나일 강 삼각주에서 발견한 로제타 스톤은 이집트 상형문자, 민간문자, 그리스어로 법령이 새겨진 검은 현무암.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크게 공헌한 돌덩이로 유명하다.

그 높이가 114.4cm, 너비가 72.3cm, 두께가 27.9cm에 이른다.

 

 

 

 

 

 

 

 

 

 

 

 

 

 

 

 

 

 

 

 

 

 

 

 

 

 

 

 

 

 

 

 

 

 

 

 

 

 

 

 

 

 

 

 

 

 

 

 

 

 

 

 

 

 

 

 

 

 

 

 

 

 

 

 

 

 

 

 

 

 

 

 

 

 

 

 

 

 

 

 

 

 

 

 

 

 

 

 

 

 

 

 

 

 

 

 

 

 

 

 

1753년 영국정부가 첼시에서 거주하고 있던 한스 슬론경이 소유하고 있던 화석, 주화, 메달, 사진 등 80,000점이 넘는 컬렉션을 사들였다.

소장품의 규모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박물관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 의회에서 대영 박물관 건립을 결정하였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들어온 엄청난 양과 질을 갖춘 골동품과 공예품, 유물들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런 엄청난 양의 전시품을 위한 커다란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1759년 착공에 들어갔고, 1823년부터 50년까지 약 30여년에 걸쳐서 83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4층짜리 건물로 1층과 2층에서 대영 박물관을 대표하는 주요 전시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 선사시대와 로마 시대의 영국인류 초기단계에서 영국이 로마의 식민으로부터 벗어난 5세기 사이에 발굴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세인트 메리 성당의 뜰에서 발견된 모자이크 바닥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 가장 오래된 예수의 모자이크이다.* 고대 이집트각종 조각과 미라들이 전시되어 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대가 발견한 이집트의 상형 문자와 민간문자, 그리스어가 쓰여 있다.이집트 왕들을 묘사한 각종 조각상들이 있는데 람세스 2세 조각상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색의 화강암이 절묘하게 배합이 되었다.

5000년 동안 모래 속에서 자연 건조된 지저가 전시되고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근대중세시대의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39년 발견된 투구와 장신구들, 방패 등은 이 물건의 소유자가 부와 명성을 지녔음을 짐작하게 해준다.사람 모양의 왈루스 상아 장기 알바 비잔틴 성화도 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1300경 그려진 세례 요한의 초상화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근대 20세기의 각종 예술작품까지 전시되고 있다.

* 동양 미술, 동전과 메달, 판화와 소묘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의 주요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예술품들도 북쪽 계단과 입구에 전시되고 있다.

7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슬람 세계의 소장품들이 전시되고 있고 일본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그 밖에 동양의 각종 동전과 메달, 판화, 소묘 등이 전시되고 있다.* 서아시아코르사바드와 앗시리아의 조각과 부조, 니네베, 고대 팔레스타인의 등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이곳에는 남부 이라크의 대전투를 묘사한 부조, 아슈바니팔 왕이 사자를 사냥하는 모습의 부조, 각국 통치자들이 조공을 바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

* 그리스와 로마아마존의 펜테실레이아 여왕을 아킬레스가 죽이려던 순간을 묘사한 암포라와 청동투구, 거위를 탄 우프로디테를 묘사한 술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발견된 조각품들이 전시 되고 있다.

3대 인기 전시물은 미라(방60호), 엘진 대리석(8호), 5천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로제타 스톤(25호)이며 꼭 보아야 할 추천 전시물이고,

앗시리아 라마스 상(방 20호), 람세스 2세(25호), 파르테논 신전, 네레이트 제전(7호), 아메노피스 3세(25호), 목각의 관(25호) 등이 볼거리가 아주 많은 곳으로 꼭 방문할 것을 권한다.

☞ 입장료: 무료 ☞ 개방시간: 월-수 10am-5:30pm, 목, 금 10am-8:30pm, 토, 일 10am-5:30pm

 

 

출처 : 금모래 사진 겔러리
글쓴이 : 금모래 원글보기
메모 :

서유럽 여행 때 3대 박물관을 다 갔었지만 실내에서 후라쉬를 터뜨리지 않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디카가 시원치 않았고 기술도 부족하여

다 담아 오지 못해서 무척 안타까웠는데 금모래님 블로그에서  3대 박물관을 다 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스럽고 행복해서 스크랩 해 왔습니다

같이 즐감하시기를~~~~맑고 향기로운 넉넉한 나날 보내시기를~~*^^*~~

 

 

 

 

 

 

 

 

 

  고승열전을 읽다보면 고매한 인격과 덕높으신 인품에 훌륭하지 아니한 분이 안계시지만

고암큰스님은 책 첫 머리에 나오듯이 천진무구와 무욕청정의 자비보살이란 표현처럼 큰스님은 종정을 3번이나 했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절하나 지니지 아니하시고 쓰러져가는 빚더미의 절이나 정사를 찾아가서 정상궤도에 올려놓으시고

제자가 어렵게 새 절을 창건하여 힘들어하면 기꺼이 찾아 가셔서 보살계를 주시고 법문을 널리 펴시어 도와주시고...

차비라도 하라고 내어 놓는 그것마저 도로 내어놓고 훌훌 털고 돌아 서는... 

 

미국까지도 찾아 가서 힘이 되어주시는...한 가정의 자비로운 어머님처럼...

공부하실 때도 찾아가는 절마다 밤잠을 안주무시고 짚신을 밤새 만들어 도반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공양을 누구도 모르게 지어 놓으시고.... 종정까지도 지내신 분이 연세가 높으심에도

어디를 가시던지 본인 손수 부지런히 열심히 아침 공양을 지으시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대접을 받아 마땅한 위치에 계심에도 노구를 움직여 손수 일을 하시며 잠시도 쉬지 않는 부지런한

지극정성과  철저한 무소유의 청정한 맑은 향기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온화하게 욕심 없이 보살행을 행하신 큰스님은 부처님께서도 더 많이 좋은 일 많이 하시라고

장수하시며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키워 내신듯하다. 누구나 상좌가 되고 싶다고 하면 받아 주고 계심에 상좌스님들이

불만을 가지자  산에는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가 있듯이... 기둥이 될 나무도 있고 서까래로 쓸 나무도 있다 하시며

내가 안 받아 주면 부족한 사람을 누가 받아 주겠느냐고....

 

부처님께서도 반특 이라는 머리가 너무나 나빠서 경전 한 줄 외우지 못하는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에게 청소를 하겠다고 하여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 만 외우라고 하셨는데 그마저 못 외우자 모든 대중들을 불러 놓고 반특을 볼 때마다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고 말해주라고 하시어 나중에는 여러 대중들의 도움으로 반특이 그 말씀을 외우게 되고 

수많은 시간이 지나자 그 뜻까지 꿰뚫어 알게 되어 궁극에는 깨달음을 얻게 되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

 

고암큰스님의 덕 높으신 법문이나 90평생 살아오시면서 행하신 수많은 자비 행을 다 옮겨 놓을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탐,진.치 삼독에 빠져서 남을 위해서 살아가기 보다는 내 욕심 보따리를 움켜쥐고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한줄기 향기로운 바람같이 스님의 이타자리행은 우리들 마음을 적셔주리라 생각된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어제,오늘 오후 내 책을 보다가 학교 운동장을 돌고 왔더니 하루해가 언제 저물었는지 모르게 해가 짧아진 것 같다.

벌서 겨울이 다가 온 것인지....세월이 이렇게 빠를수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책 앞장에 원감국사님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나와 있는데 옮겨 보면 법환 스님에서 개명을 하시어 沖빌 충 止 그칠 지 (충지)큰스님은 고려 후기의 스님으로 1226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17세에 마사시에 급제하고 19세에 예부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으며 29세 때 강화도 선원사에서 원오국사 천영 큰스님의 문하로 입산 출가하여 득도, 구족계를 받았으며 그 뒤 김해 감로사에 머물면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원나라에 뺐긴 수선사(지금의 송광사) 농토를 되찾기 위한 상소문이 계기가 되어 원나라 세조의 청으로 원나라에 가서 불법을 전하였으며 금란가사와 벽수장삼 ,

백불등을 선사 받기도 했고 1286년 천영 큰스님이 입적하자 뒤를 이어 조계산 수선사의 제 6대 사주가 되었다.

계, 정, 혜, 삼학을 강조하여 보조국사의 법맥을 잇던 스님은 67세 되던 1292년 음력 1월 10일 입적하였으니 법랍 39세였다.

송광사 감로암에 사리탑이 건립 되어 있으며 국사의 시호가 추증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영특하신 스님은 일찍이 급제를 하신 재원 이였으며, 내노라하는 사대부집 처녀와 정혼을 할 예정 이였는데 몽고 오랑캐들이 쳐들어와서 정혼했던 낭자가 불에 타 숨지고 말았기에 세상만사가 다 허망하게 보여 아무 일도 하기가 싫어져서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 열심히 공부 하시어  큰 스님이 되셨는데 어떤 직위도 자리도 다 사양하시고,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시기 위하여 그 어떤 직책도 다 마다하시고 티끌하나 묻지 않는 맑은 마음으로  삼학, 계율과 선정, 지혜 공부를 다 통달하셨다고 한다. 선과 교를 차별하지 않고 중시 하시어 참선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그 시대선풍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

 

당나라 제일가는 시인 백낙천이 나무 위에 둥우리를 짓고 사는 조과선사를 찾아 와서 

'불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교라 할 것인지요? ' 하고 물었더니

'제악막작 중선 봉행 이라 할 것이야'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란 말 일세

'아니 스님 그것은 세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말이 아니옵니까?'

'이 사람아 세살 먹은 어린 아이도 다 아는 말이지만 . 여든 먹은 늙은이도 행하기 어려운 법이야'

바로 이 한마디 말씀에 천하제일 백낙천이가 탄복을 하고 말았다는 ....

 

제자들을 가르칠 때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가도록 질문하고, 점검하고, 제대로 잘 들었는지 몇 번을

다시 또 물어보고... 자상한 아버지처럼...그래서 그의 밑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시자들이 많았지만 젊어서는 거두지 않다가 훗날 나이 들어서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중에 법정스님같이 맑고 향기로운 분이 아주 오래전에 살고 계셨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고매하신 큰 스님의 법 향에 책장이 어떻게 넘어 가는지...

정말 재미있게 잘 보았다. 불교에 관심이 계신 분이나

맑고 향기로운 법 향에 젖고 싶은 분이시라면 한번 읽어 보시면 마음이 맑아지면서 모든 욕심 덩어리를 내려놓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라고 생각되어 추천하는 바이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오늘 아침, 겨울 날씨처럼 춥다고 하니 단단히 감기 안 걸리게 채비 잘 하시기를...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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