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갔다.

오랫동안 맘에는 있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서 같이 사진도 찍고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던지...그리고 중국에 같이 다녀온 친구 내외도 만나서 많이 반가웠다.

 

주례사나 축가를 들어 볼때 새신랑 신부는 7년반을 사귀어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나보다.

대학때 만나서 둘이서 고운 사랑을 잘 키워와서 이렇게 여러사람들의 축복속에 결혼을 하게 된것이다

얼마나 대견하고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른다.

 

친구 아들도 정말 키도 훤출하니 미남이였지만 그 며느리감은 너무 부러운 착하고 이쁜 아가씨였다

결혼 할 아들이 있는 나로서는 정말 그 두사람이 너무 흐뭇하고 장하게만 보였다

남편을 사별한 친구가 혼자서 두 아들을 정말 훌륭하게 잘 키워서 이렇게 결혼을 시키는것도 고맙고.

 

없는 가정 형편에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부모님들 힘 빌리지 않고 둘이서 알콩달콩 저축하여

신혼부부로 태어나기 까지 오랜 기간동안 서로 맘 맞추어 변하지 않고, 이 험난하고 유혹이 많은 세상에 고운사랑 잘 가꾸어 결실을 맺었다는거에 박수쳐서 축하해주고 싶다.

 

싱글 벙글 웃는 친구 아들이나 환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를 않는 신부의 고운 모습은 보는이들을 저절로 미소짓도록 만든다. 식사하는데 인사하러 와서도, 그저 우리 둘이 닮았죠 하면서 너스레를 뜨는 친구 아들은 아들만 둘을 둔 친구에게 꼭 딸같은 아들이라고 한다. 얼마나 상냥하고 엄마에게 살뜰한지 모른다고 한다

 

정말 기분좋은 결혼식이였다.새로 탄생한 신혼 부부는 정말 착하고 아름다운 고운 심성의 사람들 답게 얼굴이 어찌나 그리 맑고도 밝은지. 부모님께 효도하고 또한 같은 종교이니 가정이나 사회에 귀감이 되리란 생각이든다.

 

유명한 지휘자이신 금난새씨가 티비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처음 신혼때 정말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가지씩 살림살이가 늘어 갈때 마다 느끼는 그 희열이랄까 뿌듯함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 아니 젊은이들 보다 그 부모들이 왜 그리 자식들의 그런 가슴뛰는 행복을 뺏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나 부터도 단칸 셋방에서 출발하여 이런 저런 일들 다 겪으면서도 지금 그래도 아파트 하나 건져서 살고 있고 애들 대학공부도 다 시켰는데 말이다.

 

요즘은 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고 아무리 집값이 올라가고 살기가 힘든다 할지라도 다 살아가기 마련인데...  과잉보호가 지나쳐서 자식들의 다양한 인생경험이랄까 그 성취감과 희열감 마저도 뺏으려 한다는거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상대자가 가진것이 많지 않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그런 속물 근성적인 부모가 되어서는 안될것이다

결혼이, 사랑이 아닌 돈의 측도로 행해진다면 그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지금 돈이 없다고 평생 없는것도 아닐것이고. 옛사람들 말에 이런말이 있다.

 

"바리 바리 사가지고 시집을 와도 지 복이 없으면 그게 다 없어지고 처음엔 그냥 그냥 시집을 와도 지가 받을 복이 많으면 떡 벌어지게 잘 산다" 고 하는 경상도 말인데 혹여 해석이 안되신다면 " 아무리 많이 혼수를 많이 해 가지고 와도 복이 없으면 그게 다 없어져 못살고 많이 해오지 않아도 받지 않아도 색씨가 복이 많으면 나중에 잘 산다는 것이다" 

 

성인이된 자식들의 결혼에 그 부모가 너무 참견하고 과도한 혼수를 바라고  부담은 주는 결혼풍조는 좀 바뀌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내가 물론 잘 살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랫동안 고운 사랑 잘 가꾸어 이제 성인이 되어 한집에서 서로 맘 맞추어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여, 하나 둘 그 꿈의 완성으로 성취감과 기쁨을 서로 나누며, 진정한 행복을 알아 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 주는것 까지만 하면 좋을듯하다.

 

가을이 되니 여기 저기 결혼 소식들이 많이 들려 온다. 티비연속극에서 보는 그런 불행한 결혼을 둘러싼 꼴볼견은 일어 나지 않는, 오늘 결혼식같은 정말 검소하면서도 실제적인 두사람의 사랑이 그득한 그런 결혼식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음식이나 여러 불필요한 것을 많이 생략했다고 한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참 사랑으로 충만한, 행복한 결혼식이 많이 치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깊어 가는 가을날 늘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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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레미 드 구루몽>

 

시몬

나무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돌과 이끼와 조롱길을 덮고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욱 소리가

석양의 낙엽빛 모습이 쓸쓸하다

바람이 불리울쩍마다 낙엽은 상냥스러이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욱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바람이 몸에 스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욱 소리가. 

 

 

구르몽 (프랑스 작가·철학자)  [Gourmont, Remy de]
출처: 브리태니커
 

1858. 4. 4 프랑스 바조슈 앙울므~1915. 9. 27 파리.
프랑스의 소설가·시인·극작가·철학자.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기의 매우 지성적인 비평가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 대부분이 영어로 번역되어 상징주의 미학의 원리를 널리 퍼뜨렸다.

 

캉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1881년에 국립도서관에 일자리를 얻어 폭넓은 교양과 학식을 쌓았다. 그러나 1891년에 〈메르퀴르 드 프랑스 Mercure de France〉라는 잡지에 비애국적인 기사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가 남긴 50권의 저서는 주로 수필집인데 그 내용은 18세기의 회의주의 철학자들과 비교될 만큼 광범위하고 논조도 비슷하다. 그의 저서는 ① 당시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시사해설인 〈에필로그 Epilogues〉(1903~13), ② 문학과 철학에 대한 수필인 〈문학산책 Promenades littéraires〉(1904~27)과 〈철학산책 Promenades philosophiques〉(1905~09), ③ 문체·언어·미학에 대한 연구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구르몽은 모든 진실은 상대성을 갖는다고 생각했으며 평론가로서의 장점은 순전히 미학적인 기준에 따라 문학평론을 쓴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20세기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식스틴:정신적 삶의 이야기 Sixtine:Roman de la vie cérébrale〉(1890)와 〈디오메데스의 말들 Les Chevaux de Dioméde〉(1897)·〈한 여인의 꿈 Le Songe d’une femme〉(1899)·〈순결한 마음 Un Coeur virginal〉(1907)을 비롯한 소설들은 등장인물들을 실제 인간보다 지나치게 지성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생인 장 드 구르몽(1877~1928)도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기고했으며, 몇 편의 시와 〈황금양털 La Toison d’or〉(1908)이라는 소설 1편을 남겼다.

 

***구루몽의 일생에  대해서 궁금해서 다음의 바다를 한참 헤엄치다 건진 내용이다.

가을이 오고 낙엽이 떨어지면 그 누군가 한번쯤은 읊조렸을 이 시는 정말 유명한 시이지만 이 시를 쓴 구루몽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아서 옮겨 보았다.

 

 비오는 주말 아침이다. 이제는 주 5일째로 금요일이 주말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혜택이랄가 적용되는 사업장에 근무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것이다.비오는 가을날,웬지 서글퍼 지는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오랜 가뭄끝이라 비가 반갑기만하다.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안으로 침잠되게 하고  지난날들을 뒤돌아 보게한다.

 

떠나 보낸다는것은 슬픈일이니까.....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립다고 말하지 않아도, 소리내어 통곡하지 않아도,그 눈빛만으로, 아니 그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는, 그런 사람 단 한사람이라도 옆에 있다면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고 위로 받을것이다.

 

진정 내 곁엔 그런 사람 과연 있는지....이런 날 우리 뜨거운 차한잔 마실까 전화해 주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가 어제 전화가 왔다.중학교때 친구들인데 다들 대구에 있고 나만 멀리 있는데 내가 대구에 내려 가야지만 모이는 친구들이다.

 

오랫동안 그 친구들이랑 만나지 못했다. 정말 맘 속엔 항상 그윽한 벗들인데 말이다 . 전화 번호가 바뀌었다고

전화를 하면서 너가 내려와야지 만나지 한다.그래서 큰 맘 먹고 다음달 초순에 보자고, 친구들이랑 날 잡아서 연락하라고 했다. 2년쯤 못 본것같다. 전엔 친정에 제사나 엄마 생신때면 자주 갔는데 이제 엄마가 올라 오시니...

 

언제나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친구들인데...너무 오랫동안 소원했던것같다...

비오는 가을날, 멀리, 아니 맘 가까이, 아주 가까이, 늘 생각하는 그리운분들께, 오늘 안부 전화라도 하심은 어떨런지요....사랑은 표현하는 거라죠....잘 지내시는냐고, 보고프다고, 그립다고.............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세월 참 빠르죠 .... 그 노래 오늘 많이 듣겠지요 ...

깊어가는 가을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고운주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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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한달에 한번 만나는 벗님들과 북한산에 갔다.

멀리서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빛나는 그 자태 늠름한 그 모습에 가슴은 콩닥인다.

서울에 이렇게 멋진 산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평일인데도 등산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오랫만에 보는 정겨운 벗님들도 반갑지만, 그리움을 앓고 있는듯 벌서 단풍은 바래져 땅위에 구르고 있다.

가을이 깊었음을 새삼 느낀다. 유독 하늘은 너무 맑고 청명하다. 아직 마지막 단풍을 간직하고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착한 나무가 있음에 고맙다.

 

저기 좀 봐라고 아직 단풍이 너무 곱다고 소리치는 벗님은, 아직도 그 마음 순수한 소녀를 닮았구나

머리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도 마음만은 아직도 아니 영원히 소녀이고 싶은 그대 쉰세대 소녀들이여...

지는 낙엽이 아름다운건 어쩌면 마지막의 의미를 몸으로 보여주는 거룩한 포퍼먼스가 아닐가싶다.

 

소리쳐 부르지 않고, 흐느껴 울지도 않고, 조용히 마저남은 불씨인양 온 열정을 사루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다 어쩌면 내년 봄에 다시 올 수 있기에 여유로운 인사를 건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마지막 온 열정을 사루어, 뜨거운 불씨 다시 피워 낼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또 한번 타 오를 수 있다면....  

 

신은 우리에게 윤회를 약속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윤회의 길목에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런지....

아무것도 모른다...보장이 없다...지는 낙엽은 내년 봄이면 다시 또 새로운 잎으로 환원할텐데...그래서 그들은 예약된 미래를 보고 다시 살아 날 수 있다고 믿기에 저렇게 마지막 여유로운 화려한 인사를 건네는지도 모르겠다...내려 오는길 문수사 대웅전 앞에서 잠시 망상에 젖어 봤다. 

 

바위길이라 자칫 잘못 발을 딛으면 다리를 다칠것도 같은 조금은 난해한 길이라고나 할까...

내려 오면서 보니 아직 젊은 사람들 일행중 한명이 다쳐서 앉아 있고, 다들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마침 벗님들께 허브향을 맡게 해 줄려고 가져간 허브액을 좀 많이 뿌려 주고 발라 주었다.

갑자기 쥐가 난것 같은데 좀 심한듯하다 다리 장딴지 부터 전체가 뻣뻣해서 잘 주물러주지도 못하고 있는것같다.

 

산에서는 언제나 겸손함을 잊으면 안될것이다. 내려 오는 길이라도 항상 조심해야 할것이다.내가 젊다고 내가 산을 잘 탄다고 아니면 자주 다닌 산이라고 방심하거나 산에 무례하면 안될것이다.

항상 조심하고 내려 오는 길일수록 더 성급하지 않게 내 몸을 낮추어야 하리라.... 

 

심하면 119 불러라고 말하고 오는데 너무 고맙다고 주소라도 가르켜 달란다. 내려 오는데 또 다른 사람이 자기들도 환자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로 걸어 오고 계셔서 ...친구들도 우리도 좀 허브액 발라 달라고 ..ㅎㅎㅎ

어제는 허브액으로 인심 많이 쓴것같다 .나도 선물 받은 것인데....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날씨가 가물어서 계곡엔 물이 말라 있었는데, 조금 고인 물속에는 버들치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잠시 산의 품에 더 안기고 싶어서 마지막 벤취에 한참을 앉아서 우리는 맘껏 하늘을 안고 뒹구는 낙엽도 밟으며 멀리 오르지 못한 백운대를 한참을 바라 보았다. 

 

삶이란 늘상 그렇듯이 예기치못한 함정같은 일들이 우리앞에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늘 고운 인연으로 좋은 일들만 만나기를 바램하면서 ...진정 마음으로 원하면 이루어 진다는 믿음으로...

깊어 가는 가을처럼 풍성하고 멋진 하루 보내 시기를~~~

 

애들 데려다 주고 와서 급하게 글을 쓰다보니 두서가 없는듯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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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보던 책을 요즘 보고 있는데 포리스트 카터가 지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란 책인데

요즘 계절에 정말 딱 맞는 글이 있어서 이곳에 소개할까 합니다

 

그해 가을은 그 어느 때 보다 빨리 찾아 왔다.

가을을 처음으로 알려주는 것은 하늘을 등지고 서 있는 높은 산 등성이들을 따라 빨갛고 노란 단풍들이 시원스레 불어대는

바람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그곳에는 벌서 서리가 내렸을것이다.이제 호박색으로 변해가는 골짜기 숲 사이로 비스듬한 �빛을 내리 쬐었다.

 

서리는 아침마다 조금씩 더 산 아래쪽으로 내려왔다.그것은 한번에 모든것을 죽이는 본격적인 서리가 아니라,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더 이상 여름을 붙잡고 있을 수 없으며, 죽음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엷디엷은 서리였다.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

 

 

한 인디언 혼혈소년의 이 이야기는 인디언들이 삶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경건한 깨달음을 말이 아니라 느낌과 감동으로 전해 준다고 하는데, 이 책을 보는동안 잔잔한 감동과 체로키인디언족들이 그들의 땅에 쳐 들어온 미국개척자들에 의하여 그들의 땅을 잃어가고 쫓겨 다니는 중에 부모를 잃은  손자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산 속 생활을 그린 이 책 저자의 실화같은 이야기다. 전미 서적상 연합회가 제정한 제 1회 ' 에비상' 수상작 '작은 나무'의 성장소설로도 읽히는 이 소설은 진정한 삶의 지혜와 백인 문명의 가식과 숨은 잔혹사를 말해준다.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이책을 맛있는 과자를 아껴 먹듯이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데,거의 다 읽어 가고 있다. 책장을 넘길때 마다 가슴이 저려오고 교육을 핑개되며 손자와 할아버지 할머니 혈육과 이별하는 곳에 이르면 저절로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그리고 산속 이들이 살고 있는곳까지 한번씩 다녀 가는 등짐장수 와인씨가 작은나무에게 코트를 선물하는 장면에선 감동으로 가슴이 저려온다.그냥 코트를 입으라고 주는게 아닌....

지혜롭게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먹을 만큼만,쓸 만큼만, 가장 작게 조금만 취하고 살아 가는,

체로키족의 지족과 겸손을 배우게 된다.  유희나 재미를 위해서 결코 살생하지 않으며 자연과 호흡하고

동물들과 공유하며 나누는 따뜻한 심성을 깨닫게 된다. 

 

살아 가면서 혹여 나는 내 몫이 아닌것에  더 많이 가질려고 더 많이 취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 할 기회도

갖게 된다. 정말 작게 조금만 취하면서 살아 가는 그들에게서 모든것을 다 뺏고야 마는 침략자들의 비정함과

순수한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아 가는 약소민족에게서 개척을 핑개로 쫓아내고 원치 않는 곳으로 몰아넣고...

역사란 언제나 침략자의 손에 의하여 움직여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그 뒤에 체로키인디언처럼 수많은 원주민들의 눈물과 죽음을 딛고 일어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몇장을 남겨 두고 있지만, 주인공 작은 나무는 핏줄과 떨어져 교육받고 성장하여

아련한 향수에 젖어 마지막 체로키의 발자욱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혀간 소수민족의 설움이 느껴지는것도 같다.이번에 중국에 가서도 느꼇듯이 소수민족들은 더 강한 민족에게 지배당하고 침략당하며 종국에는 사라져갈 것이다.

약자의 슬픔은 동물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세계에도 계속 되고 있지 않는가....

 

21세기를 살아 가는 우리는 먼 훗날 우리의 자손들이 아름다운 지구에 살아 남기 위해서, 자연을 보호하고 녹색 지구를 가꾸며 인간성 파괴같은 묻지마살인의 공포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 이타자리(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것이란 부처님말씀)하는 고운 심성으로   자연보호와 환경보호에 힘쓰며 기꺼이 맑고 향기로운 날들을 보내야 하리라....

 

깊어 가는 가을날, 그리운 보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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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트를 타고 운남제일풍경명산 서산용문에 갔는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풍경이, 고산지대의 일본에서 본 삼나무인듯한 나무들과 초원, 산정상에 정자, 멀리 강인지 알았더니 호수라고 하는데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내려 보이고 능선이 원만한산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밑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서산용문에 도착하여 산을 올라 가는데 중국사람들이 역시 많이 찾아 와서 무척 복잡했다

돌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돌문사이를 빠져 나갈때는 복잡해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사진찍는다고 김총각말을 많이 놓쳤지만 중국사람들이 하고 있는 모양을 보고 따라할 수 밖에....만지는것 만지고...

 

 

인간의 욕망이나 욕심은 나라와 민족이 틀려도 다 같은가보다. 그저 부자로 아프지 않고, 복많고, 무병장수하기를 빌고 있으니 말이다. 지옥과 천당을 다스리는 신의 모습도 보이고...생노병사 오욕칠정을 담아 놓고

속세에 찌든 인간의 욕심을 자제하고 착하게 살면 무병장수 복을 준다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듯하다

 

산을 올라갈때는 측천무후 이야기를 해 주고 내려 올때는 서태후 이야기를 김총각이 해주었는데 두여자는 중국 역사에 이름이 남겨진 여걸이랄까 악녀랄까...남자들 중심 시대에서 그 이름을 남긴 여제이긴 하나 두여자 다 심성이 악하고 나쁜짓도 많이 했지만 측천무후는 그래도 후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고 한다

 

측천무후이야기를 옮기자면 당태종이세민은 고구려와 싸워서 한쪽눈을 잃고 기가 죽어 왕후가 60살의 왕에게 16살의 무측천을시중들게 했는데 왕은 무측천에게 빠져서 헤어날 줄 몰랐는데 어느날 무측천에게 자기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하겠는냐고 떠 보았더니 무측천이 자기는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절에가서 도를 닦으며 돌아가신 왕을 위해 열심히 불공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왕이 죽으면 궁녀들도 같이 데리고 갔고 다른비들은 냉궁에 가두어 살아도 살아 있는것이 아니고 갇혀서 살다 이윽고는 죽게 되는데 당태종의 4째 아들이 미리 알려주어 그렇게 대답을 한것이라고 한다

후에 착한 왕비의 팔다리를 끊고 알콜물에 넣어두고 죽지도 못하게 고통을 주는 극악한 일을 저질럿지만

 

왕이 죽고 12살아들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들까지 독술로 죽이고 여제가 되어 정치를 했는데 그 당시 중국을 많이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녀의 비석에는 글씨가 없다고 한다

일명 무자비라고 하는데 후세사람이 자기를 평가하라고 아무글씨도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하니 역시 여제답다고 생각된다.

 

운남민속촌으로 이동 하는중 모서족과 이족들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그들은 죽으면 조장을 지낸다고 한다 라마교 스님이 시체를 잘라서 산에 버려두면 새들이 와서 먹는다고 한다

착한 사람이 죽으면 새들이 많이 날라 온다고 하는데 새는 하늘과 가깝고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 간다고

믿는 까닭에 그렇게 한다고 하고 옛부터 중국은 백성들이 강이 범람에 시달렸기 때문에 물을 잘 다스려야 

 

황제가 된다고 했다고 한다.전해져 내려오는 3황은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이 계신다고 하는데 아주 어릴때

친정엄마와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5제가 있는데 염제와 황제와 신농제와 복희제라고 하며 한사람은 모르겠다고 ...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때 화폐를 통일하고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 한자를 통일했다고 하며 중국은 땅이 넓음에도 시간이 통일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쪽과 서쪽의 차이가 심하게 일어 난다고 한다

김총각의 이야기에 귀 기우리다 보니 운남소수민속촌에 왓는데, 거대한 나무들을 보니 앙코르와트의 나무가 생각이 났고 그 물위에 비친 풍경들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나 틀리는 분위기 였다.

 

여러 소수민족들의 특성을 들으면서 여기 저기 정신 없이 다니다 보니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물을 잘 다스리는 민족,모계중심의 민족은, 딸은 창문이 있는 방을 주고 아들은 방이 없다고 한다

딸이 밤에 창문을 열어 두면 동네 총각이 그 문으로 들어와서 자고 간다는데, 이미 다른 남자가 있으면 창가에 꽃바구니를 걸어 둔다고 한다.

 

만약에 임신을 하게되면 그 할머니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정해 준다고 하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웃고 말았는데,좋기도 하겠지만 속 시끄러울것도 같다고 ...ㅎㅎㅎ

진정한 사랑의 느낌없이 시대 배경상 그런 형태가 종족 보존에 필요해서 이루어 졌겠지만  가히 좋은 형태는 아니였기에 지금까지 내려 오지는 않을것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우리에게 그 넓은 중국의 역사를 많이 들려 주었는데 다 늘어놓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그만 접을까 합니다. 마지막날 저녁은 정말 근사한 아주 멋진 식당에 갔는데 유명한 분들이 많이 다녀 가셨다고 사진들이 많이 걸려져 있었고 음식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99881234를 외치며 건배를 들었지요.이번 여행에서 함께 하여 기쁨이 배가된 정겨운 벗들과 멋지게 사시는 노부부님 두분과 밀양에서 오신 키다리아저씨와 서로 좋은 일행이였다고 감사와 고마움을 나누며 멋진 곤명여행기를 마칠가 합니다.

 

여행은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새로운 에너지가 되는것 같습니다.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여행에서 마이너스 된것 이상으로 알뜰히 가계를 꾸려갈 각오도 넘치게 준비 되어 있을것입니다.

한동안은 벅찬 여행의 감동으로 엔돌핀 충만한 날들이 될것이라 믿으며, 제 블로그의 동영상이 추억을 되삭임 하는데 일조 할 수 있기를~~~  오늘도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멋진 하루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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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림을 보고 호텔로 돌아 와서 잠시 휴식후 저녁을 먹고, 영화관에 가서 그곳 이족출신의 장예랑이란 시의원인 그 여인이 국립무용단에 들어 갔다가 자신의 출신때문에 차별화에 분개하여 뛰쳐 나와서 혼자 연구하고 만들었다는데, 운남성 출신으로 시골에서 농사짓는 서민들 중에서 뽑아서 열심히 가르치고 갈고 닦은 솜씨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로 치면 전국예술인대회 같은데서 1등을 하여서 그 후로 아주 유명해 졌다고 한다.

 

김총각이 아주 높이 평가 하기도 하고 일행이 적게 온터라 김총각의 옵션을 뿌리치기도 그래서 다 같이 보기로 했다.많이 연습하고 훈련한듯 소수민족의 생성에서 부터 자연과 함께한 풍습이랄까 생활이 베어 나오는듯

장례의식도 가미된... 스토리 전개 같았는데.... 달 속에서 실루엣으로 보여주는 여자의 곡선은 가히 환상적이였다고나 할까....나중에는 약간 졸립기도 했는데 다들 낮에 많이 걸은 탓인지 다 졸렸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엔 운남제일풍경명산 서산 용문을 갔다가 오후에 박물관에 갔는데 서산용문은 따로 동영상을 올리기로 하고, 먼저 박물관편을 올리기로 한다.

박물관은 김총각 말로는 좋은것은 장개석이 다 대만으로 갖고 갔다는 것이고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만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큰 보물급은 보이지 않았다

 

2층에 자리한 텅빈 공간에는 공룡씨리즈로 채워져 있었고, 상점에 그곳의 특산품인 여러가지 보석류와

그림, 다기류 ,집에 두면 복이 들어 온다는 작은 조각품등 만물상처럼 없는것 없이 관광객을 위해서 열쇠고리라던지 향기주머니등 아기 자기한 것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기서 약간의 쇼핑을 했다.

 

김총각은 이동중 끝없이 중국의 역사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다 옮기지 못해서 안타깝다.

이족들의 장례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이족중에 노예주인 흑이족이 죽으면 멋진 관에 작은 구명을 뚫어서

물에 담가 둔다는 것이다. 밧줄로 묶어서...그러면 그 작은 구멍으로 물고기새끼들이 들어가서 시체를 먹고

3개월후 살이 쪄서는 다시 그 구멍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 있는데, 그때 관문을 열고 그 고기를 후손이

먹는다는 것이다.

 

조상들의 혼이 자기들 몸 속에 흐른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노예주인 흑이족은 영원히 이어져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를 물어보지 못했다.너무 끔찍한 생각에 ...ㅠㅠㅠ

이야기만 들어도 속이 울렁일 지경이다.

 

오늘은 여기 까지만....

깊어 가는 가을날 오늘은 주말인데 가족들이랑 가까운 근교 산에라도 가시면 좋겠지요

많이 춥다고 하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되시기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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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후 곤명에서 9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구향동굴로 향했다,표를 끊고  엘리 베이트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니 황토물이 흘러가는 계곡이 나타났다. 잠시 팍상한 폭포를 갈 때 계곡을 힘겹게 두사람이 카누에 두명을 태우고  밀면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고 다들 말한다. 우리일행 모두 같이 구명조끼를 입고 배를 타고 계곡 깊숙이 들어 갔다가 돌아 나와서 동굴로 이동했다.

 우리나라의 삼척에 있는 환선굴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더 넓고 깊고 길고 웅장하다고 할까....

 

동굴속에 폭포가 떨어지고 큰 강이 흘러 가는것같다. 계단도 오르고 다리도 건너며, 조명을 받아 더욱더 기괴해 보이는 바위들을 보면서

한시간 넘게 걸어 들어가니 거대한 소용돌이형 지형으로 기둥이 없는 학교운동장처럼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한켠에 전시관도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있다.1999년 세계 최초로 동굴 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전시관 속에는 각종 암석류와 인간이 진화되어온 모습들을 보여주는 그림과,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원시인의 모습이 실물처럼 서 있다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하여 동굴사진을 잘 못찍어서 정말 안타깝다. 미리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누구를 탓하리요....연신 카메라셔트를

눌르긴 했는데...온통 시커멓게 보이지 않는 사진이 너무나 많다.오호 통재라...ㅠㅠㅠ

동굴속이긴 해도 또 이따금씩 하늘도 보이고 원체 긴 거리를 이동하다 보니...굴을 몇군데 거쳐서 밖으로 나오니 처음 들어 왓던 곳에서

 

많이 떨어진 거리인가보다 리프트를 타고 이동했으니 말이다. 산을 올라 가는데 경치가 아름답다. 곤명이란 도시 자체가 해발 1900미터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에서 또 산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 갔다가...그래서 들어 갈 때 미리 물을 한병 주는데 뚜껑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 물병을 발명한 사람은 히트를 쳤다고 김총각이 말했다. 동굴을 돌다가 숨이 막혀 오거나 하면 꼭 물을 마셔야 한다고... 

걸어 나오는길에 과일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김총각이 석류를 사 주었는데 옥수수랑 군고구마도 팔고 다른 열대과일들도 보인다

 

돌아 오는길에 석림풍경구 옆을 슬쩍 지나 오는데 멀리서 보아도 그 대단한 바위군상들의 모습에 저절로 탄성이 나올지경인데, 김총각은 이것은 그냥 맛보기라면서 내일 이번 여행의 진수를 보여 주겠다고 한다.

호텔로 돌아 와서 호텔내 중식당에서 코스 요리를 먹고, 호텔방에서 발마사지를 받고 편하게  기분좋게 잘 잤다.

 

내일은 석림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냥 맘으로 생각만하여도 흐뭇한 친구들과의 여행이니만치 모든것이 다 좋았고, 맛있었고,  재밋었다.그리고 먹을거리도 푸짐하게 준비해가서 차로 이동하는 동안도 계속 군것질 거리를 달고 있었으니 ㅎㅎㅎ

아무래도 한국에 돌아 갈땐 모두 2킬로쯤 체중이 불어 있을것이라고 생각된다.

 

살면서 좋아 하는 친구들과 이렇게 같이 잠자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고 같이 멋진곳을 보고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사랑하는 벗이 있음으로 우리 정녕 행복한거라고, 언제나 지금처럼 고운 모습 건강하게 잘 간직하기를 ~~~ 

늘 풍성하고 향기로운 고운날 보내시기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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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벗들이랑 6개월전 경주 모임에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해 놓고, 막상 약속한 그날에는 다 잊고는 집안 제사에 신경 쓴다고 정신이 없을때 친구가 문자가 온것이다. 이제 슬슬  출발할 준빈 다 되어 있냐고...앗 이럴수가...요즘 경제도 어려운데....아무리 그동안 틈틈이 모아온 회비로 간다지만, 약간 주변에 보기에 염체도 없는데...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우여곡절끝에 처음 약속된 날보다 조금 늦게 우리들 40년만의 수학여행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17일 아침내 밥이랑 국이랑 다림질이랑 바쁘게 끝내고 공항에 가니 대구서 출발해온 친구들이 곧 도착한단다언제봐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수속을 마치고 7시 5분발 비행기로 곤명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되었는데 그곳 시간이 우리나라 시간보다 한시간이 늦어니 우리시간으로는 밤 12시가 다 되어갈 시간이다

마중나온 김학림가이드의 안내로 일행 우리6명과 노부부두분과 밀양에서 오신 아저씨 그렇게 9명이 우리 일행이다

 

다음날 호텔에서 6시반에 모닝콜을 해주어 7시반부터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8시반 출발하여 곤명에서 가장 오래된 원통사 절에 갔는데, 가이드님은 자기를 김총각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김총각으로 부르겠다. 김총각은 이동하는 내내 쉬지않고 중국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가 가는곳의 여러이야기들을 풀어 내고 있는데,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가이드로 직업을 바꾸었다고 한다

 

아주 착한 3년차 가이드로서 순수한 면도 보이는 잘생긴 김총각은, 약간은 우리나라 말에 어눌하기도 하지만 차만 타면 잠시도 쉬지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곤명은 6천평방키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600만이 사는 운남성에 속한 도시인데 그곳 발음으로 쿤밍이라고 한다.

 

 

원통사절은 규모가 아주 크고  당나라때 고대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호수와 절이 어우러진 정말 아름다운 사찰이였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전에 잠시 엎드려 절을 올렸다.일정에 쫓기어 그 멋진곳에 오래 있지 못했음이 아쉽기만하다.

 

다음 코스로 가는 도중 김총각은 또 열심히 마이크를 잡는다.명나라때 중국의  4대 명기에 들어가는 진원원에게 오삼계장군이 사랑의 선물로 주었다는 취호 공원에 갔다. 호수는 정말 넓었고 그곳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고, 음식을 팔기도 하고, 호수에 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이렇게 멋진 공원에서  아침마다 요가인듯 춤인듯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척 자유스럽게 보였다.

 

진원원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 찾아 보니 가이드의 설명과는 좀 틀린졈이 있지만, 만나는 남자들의 혼을 빼 놓을만큼 절세가인이였다고 한다. 오삼계(吳三桂)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장수이다. 그는 청나라 가 건국되면서 산해관 (山海关, 山海關)을 지키는 일을 맡았는데 농민반란군으로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 (李自成)이 북경 (北京)을 물리치고 나서 청나라 청 태종에게 투항하였다.

 

청나라 군대는 오삼계를 길잡이로 관내로 들어왔다. 후에 평서왕(平西王:藩王)으로 봉했고, 운남(云南)을 관리하도록 허가했다고 하는데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설 즈음의 오삼계와 이자성과 진원원이란 명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찾아 본다고 본의 아니게 중국역사를 좀 알게 되었다.

 

중국에는 소수민족이 56족이나 되고 운남성에는 26소수민족이 산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이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흑이족과 백이족으로 나누어 지는데 흑이족은 귀족이고 백이족은 노예신분이라고 한다 우리네 양반 머슴처럼, 노예와 노예주로 김총각은 칭하고 있다.

다음편에 흑이족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취호 공원에서 금명산(봉황이 운다) 금부전으로 갔다. 금부전은 그 당시 금보다 더 비싼 동( 구리 )로 지은 절이라고한다.금부전에는 오삼계와 진원의 러브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려서 병풍으로 만들어 놓고 전시하는 유물관도 눈에 띄었다. 오삼계가 차고 다녔던 큰 칼도 보이고...중국의 귀한 보물들은 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가져갔다고 했다.흔히 운남성을 과일왕국, 동물왕국, 목재왕국, 광물왕국이라고 한다는데 그 광물인 동이 많이 난다고 한다.

 

김총각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다 옮길수 없어서 아쉽고 사돈화장실 씨리즈란 유머도 웃겼는데

지식=학문을 닦습니다

화장실=항문을 닦습니다 

두 문장이 소리나는데로 읽으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화장실 다녀 온다는 말을 학교 다녀 오겠다는 말로 하자고 약속을 하고는 이동하는 장소마다 빨리 학교 다녀 오시라고... ㅎㅎㅎ

 

단발머리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우리의 우정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신맛이 강하건 혹은 너무 달거나 너무 쓰거나 그 어떤 맛이건간에 세상이 우리를 하늘과 땅으로 갈라 놓을때까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아름다운 순간들은, 우리가 잠시 슬프거나 고독할 시간조차도 허락지 않고 우리들 가슴으로 파고 들어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일깨워 줄것이며, 고운 추억은 명주실처럼 늘 우리 가슴을 춥지 않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을것이다

  

 

그동안 제가 글을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올리지 못했음에도 꾸준히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많은 님들게

고마운 마음 전하면서 계속해서,오늘은 여기서 접고 계속해서  중국 여행기 동영상을 올려 드릴게요 

오늘 비가 온다지요 날씨는 흐려도, 우리네 맘속 깊은 곳에는, 늘 생각해주고,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운 정으로 충만한,환한 태양이 빛나고 있음에 감사 하면서 고운 하루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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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운동을 해야 하는데 생각을 하면서, 학교 운동장이라도 돌자고 맘에 맹세를 해 놓고도, 잘 실천을 못하는지라, 며칠전 불어난 체중에 너무 놀라서 학교 운동장이나마 돌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저녁 먹고 돌려니 재미붙인 연속극을 뿌리칠 수 없어서 이것 저것 다 보고나면 딸이 올 시간이고, 딸 챙겨주고 가자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남들은 밤 열두시에도 돈다지만 겁이 또한 많아서 옆지랑 같이 가지 않으면

 

도저히 밤 9시만 넘으면 혼자선 못 가겠고, 생각다 못하여 해질녁 오후5시반부터 30분이라도 돌고 오자고  

며칠전 부터 실천 하겠다고 학교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그 시간은 다들 저녁 할 시간이고 이른 저녁을 먹을 시간인지, 운동장엔 혼자서 농구를 하고 있는 학생 한명과 구부정한 허리로 어디가 편찮으신지 살살 걷고있는 할머니 한분 그리고 어제도 본듯한 개 한마리를 풀어 놓고 하염없이 보고 있는 젊은 청년 한사람만 보인다.

 

저 총각은 취업이 안되나 수심이 가득하구나 하는 생각에 그냥 앉아 있지만 말고 운동장이라도 돌면 뱃살이 빠질터인데 생각하며 시계탑 부근을 돌면서 시계를 보니 천천히 걸어면 5분, 좀 속력을 내면 4분이 걸리는듯하다.그래서 무심결에 그 옆 나무를 쳐다보니 세상에 모과가 주렁 주렁 달려 있는게 아닌가,요가를  배우러 일주일에 2번 학교에 오가고 운동장을 돈다고 학교를 들락 거린지도 꽤 오래 되었는데 학교 운동장 시계탑 옆에

 

이렇게 늘씬하고 멋진 모과나무가 서 있었는줄을 몰랐으니...이렇게 무심할수가....운동장 바닥에서 몇 계단

올라간곳에 시계탑이 있고 그 옆으로 나무들이 죽 서 있긴해도, 어떻게 그곳에 이렇게 큰 모과 나무가 있었는줄을 몰랐을까,새삼 나의 무심함이 놀랍다. 예전에 누구에겐가 들은적이 있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나를 만났다고 하는게 아닌가 내 친구의 친구였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으니...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가 싶다. 친구만 보고 그 옆 사람을 전혀 신경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그렇듯이 시계만 맨날 쳐다보고 그 옆에 서 있는 그렇게 멋지게 잘 생긴 모과 나무를 못 보다니...모과나무가 얼마나 섭섭해했겠는가...이제사 그 주렁 주렁 달린 열매를 발견하고는 놀라워 하다니...' 나무야 미안하다 내가 너를 그동안 너무 무심히 지나쳤음에, 이제부턴 매일 지켜봐 줄게,누가 눈길 주지 않아도 너는 정말 부지런히 내 도리를 

 

다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어 주었구나,  이제 어쩌다 탐심 많은 사람들의 돌팔매를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야속해 말그라 인간들의 속성이 그렇단다. 시장에 파는 모과 열매는 쳐다 보지도 않으면서 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고는 사죽을 못쓰고 흔들고 메달리고 안되면 돌 까지 던진다는것을 너는 익히 잘 알고 있을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너는 모든것을 용서하고 해마다 또 새로운 열매를 맺고 새로운 잎사귀를 만들며 우리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고 넓은 그늘 선사해주고 튼실하게 잘 자라나 우리를 이토록 기쁨으로 출렁이게 하는구나 고맙다 나무야~~~'

나름대로 나무에게 계속 내 마음의 메신저를 띄우며 몇바퀴 돌았는지 모르겠지만 다리가 아파서 그냥 돌아 왔는데 맘속에서는 내내 그동안 그렇게나 내가 그 모과 나무를 지나친 무심함에 놀라워 하면서 세상사 모든것이

 

그냥 무심히 지나치면 바로 눈앞에 코밑에 있어도 안보인다는 말이 맞는듯하다.

현대인들은 자기 살기 바빠서 매사를 그렇게 다 무심히 넘어가기 쉽상이다.늘 맘속으로 생각은 하면서도 자주 전화 못 드리는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많은 얼굴들이 생각은 나는데 또 막상 여즉 전화 한통화 없다가 전화를 할려니 망설여지기도 하고, 아들 언제 장가 보내냐고 물을것 같아서 맘으로만 그냥 잘 지내시냐고 보고싶다고 되삭이다 끝내 전화를 하지 못했다.

 

전화를 참 잘 안하는 내 성격을 이젠 고칠때도 되었는데 그게 또 잘 안된다.이제 부터라도 아니 지금 당장 안부가 궁금하면 전화를 돌릴일이다.이제부턴 모든 무심함에서 벗어나서 유정함으로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모 그리 인생이 길다고...훗날 가슴 칠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내 안에 부둥켜 안은 사람들에게만 주는 관심말고 내 이웃과, 사회, 나라를 위해서 대아적인 관심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만다라들이 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맑고 향기로운 날 되시기를.... 

 

 

 

 

 

 

 

새깃 유흥초를 아시나요

 

 

너를 본적도

만난적도 없건만

이렇듯 가슴에 사무쳐오는건

 

단한번 순간에 피었다

사라지는 애틋함에

눈길 피할 수 없음이라

 

순간에 눈멀고 찰라에 멎어버린 네 심장

뉘 가슴에 타오르는

붉은 별이 되랴

 

한줄기 하얀 꽃대는

순결한 한마음

간절한 네 소망이련가

 

순간에서 영원으로

오로지 한마음

한사람을 사랑했다고

 

저승까지도

끌어 안고 갈 ��

끝없는 그 사랑

가냘픈  새깃 유흥초 그 사랑 영원하리.

 

 

 

 

 

얼마전 내가 좋아 하는 시 코너에 새깃 유흥초란 시를 소개 하며서 처음 접한 새깃 유흥초꽃은 내게 색다른 감정을 자아내게 하였고

새깃 유흥초 꽃을 사진을 통해서 보고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서 적어둔 것을 오늘 아침 옮겨 보았다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쳐 보니 더 가냘픈 새깃 유흥초가 보여서 사진 한장 가져 왔다

연하디 연한 여려 보이는 잎새에 그 강렬한 붉은꽃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눈길 당기게 하는 그 꽃을 보고 싶다

깊어 가는 가을날 늘 맑고 향기로이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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