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잉크하트: 어둠의 부활 (Inkheart, 2008)

 

 

 

 

쉿! 소리 내어 읽지 말 것! 잠들어 있던 어둠이 깨어난다!
소리 내어 읽으면 책 속의 인물을 현실 세계로 불러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실버통 모.
그는 9년 전, 우연히 [잉크하트]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어둠의 제왕 카프리콘과 불을 다스리는 마법사 더스트핑거를 현실로 불러내고 만다.
하지만 반대로 모의 아내 리사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잉크하트]를 가지고 사라진 카프리콘 군단. 모는 딸 메기와 함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잉크하트]를 찾던 중,

 ***다음의 바다에 소개된 잉크하트 영화평의 요약이다***

 

 

 자신이 신비한 능력이 있는지도 몰랐던 실버통 모는 어린딸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는데... 동화속에 등장하는 모든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잉크하트"란 책속 어둠의 악인 카프리콘과 그 일당들 그리고 불을 다스리는 마법사가 현실 세계로 나왔는데 ...자신의 아내가 대신 책속에 갇히게 되고... 불을 다스리는 마법사는 자기가 나온 책 속으로 다시 돌아 가고 싶어 하고....카프리콘 악당들은 실버통 모를 찾아 내어

 

그의 신비한 능력으로 황금의 비를 오게하고....어둠의 세력을 넓혀 가려하는데....현실과 동화속 이야기가 때론 신비하게, 때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어우러져 애틋한 가족애와 실제 책 저자가 등장하여, 자신이 쓴 책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놀라기도 하고...재미와 모험, 현실과 동화가 어우러져  잃어버린 꿈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고나 할까....

 

오랫만에 정겨운 벗들을 만나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부근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는데, 다들 본 영화도 있고 또 가족과 같이 가려고

약속한 영화도 있고, 이것 저것 고르다 그냥 시간이, 다른 영화는 맞지를 않아서 같이 보는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이 영화를 선택 했다.

아마도 영화관에 온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제일 연장자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이랑  같이 와서 보면 아주 좋을것같다. 여러 동화책 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현실에 나타나니간 말이다.

날개달린 하얀말,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토토강아지, 열려라 참깨....다 나열할 수 없는 동화속 주인공 동물들...그리고 아슬 아슬 위험한

모든 일들을 겪은후에는, 늘 그렇듯이 악당들은 다 죽게되고 어둠의 세상도 사라지고....주인공들은 어떤 극한 상황속에서도 살아 남게된다.

총알도 피해가고 그 어떤 폭풍우에도 다치지 않고....우여곡절 끝에 주인공들은 해피엔드로 끝나게 된다.

 

모든책이나 동화속 이야기는 반드시 권선징악을 보여준다.복잡하고 혼란스런 현실을 피하고 싶어서, 자신의 세계로 돌아 가려했던 괴팍한

이모도 막판에는 정의의 사자가 되어 가족을 구출하는데 한 몫을 하게되고...

백번 잔소리 하는것 보다는 한편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더 깊은 감동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착하게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것을....

그래서 보고 나면 잠시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암울하고 무서웠던  동화속 세상은 통쾌하게 끝이나고  후련한 행복감에 젖게 된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나서 마주 보고 웃었다. 정말 우리 나이가 제일 많은것 같다고 ㅎㅎㅎ 잠시 동심에 젖어서 어린날로 돌아간듯한 기분이 들었다. 월요일에 정말 좋은 워낭소리란 영화를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져 오는데...에효 어제가 금요일인지 알았더니 목요일이란다 ㅎㅎㅎ

아니 이럴수가... 금요일이라고 블로그에 내가 좋아 하는 시를 올리구 주말 어쩌구 했는데 ...연식이 오래되니 세월 가는줄 모른다고 변명해 보면서...아침에 벗님들 만난다고 너무 들떳었나보다.

오늘은 주말 금요일 맞고요 ㅎㅎㅎ맑고 향기로운 고운 주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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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혼

 

                                                                   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간 산위에서

나는 그대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살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산채로 이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가족사항

조부는 공주 김씨의 金相疇이고, 부친은 金性燾, 모친은 張景淑이다. 仁姐라는 여동생이 있고,洪明熙의 딸 洪實丹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슬하에 장녀 龜生, 차녀 龜媛, 장남 俊鎬, 차남 殷鎬, 삼남 正鎬, 사남 洛鎬 등

4남 2녀를 두었지요.

 

 

소월의 연대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02년

본명은 廷湜이고 필명/아호는 素月이다.
고향(본적)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서동(일명 남산동) 569번지이다. 평안북도 구성군 구성면 왕인동 외가에서 9월 7일(음력으로 8월 6일) 태어나다.

북한ㆍ연변 자료에 의하면, 소월의 출생년도는 1903년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착오이다. 최근의 북한자료(리동수 지음 김재남 해제, 《북한의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 연구》, 살림터, 1992, 240면)는 이를 바로잡고 있다.

 

1904년

부친이 정주ㆍ곽산간 철도를 가설하던 목도꾼들에게 몰매를 당했고, 이로 인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죽을 때까지 폐인생활을 하였다. 북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인 부랑자들에게 구타를 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한때 광산업에 종사하여 재산을 모으기도 했던 조부 김상도의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라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조국이 식민지화의 길로 치닫게 되다.

이 때를 즈음하여, 유학과 한문에 소양이 높은 할아버지의 훈도 밑에서 구학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수많은 민담ㆍ민화 등을 들려주었던 숙모 桂熙永이 숙부 應悅에게 시집옴으로써 소월은 그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다.

 

1909년

남산보통학교(일설에 의하면 사립학교)가 설립되자 머리를 깎고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다.

아버지의 정신병으로 인하여 집안은 더욱 쪼들리게 되었으나 할아버지의 훈도와 할머니ㆍ어머니의 지성어린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하다.

 

1914년

연변ㆍ북한 쪽 자료에 의하면, 이 시기에 <긴 숙시(熟視)>를 썼고 이것을 후에 《근대사조》(1호,1916)에 발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15년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다. 5월 오산중학교에 입학하여 안서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다.

이 때 소월시의 원천(源泉)이 된 한시ㆍ민요ㆍ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6년

세살 많은 홍실단(일명 丹實) 여사와 결혼하다.

연변ㆍ북한 자료에 의하면, 남산학교를 졸업한 후집에서 쉬다가 이 시기에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여 시를 짓기 시작했고, <먼후일>을 썼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부 연변ㆍ북한 자료에 오산학교 입학 시기를 1917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소월이 15세(공식적인 나이로는 14세)에 해당되는 년도는 1916년이다

 

1919년

북한 자료에 의하면, 동급생을 선동하여 이들과 함께 3ㆍ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잡혀가던 도중에 요행히도 몸을 피하였다고 한다.

4월에 <춘조>를 탈고하다.

 

1920년

이 시기에 <그리워>(창조 5호, 1920. 3) 등과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동으로>(학생계 창간호, 1920.7)를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다.
<춘조>를 《학생계》(3호, 10)를 발표하다.

 

1922년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하다. 동급생에 나도향이 있었고 한 반 아래에 박팔양이 있었으나 특별한 교우관계를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ㆍ1운동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함박눈>(개벽 28호, 10)을 발표하다.

 

1923년

배재고보(7회)를 우수한 성적으로(총 44명중 4등) 졸업하다. 고향에 돌아와 평북 정주군 림포면 사립학교 교원이 되다. 아동교육에 종사하면서 시창작에 정진하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서정시를 창작하고, 그것들을 《개벽》 등에 발표하다. <장별리>도 이 때 지은 작품이다.

사립학교 교원생활이 창작이나 집안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 시기에 집안이 더욱 피폐해져 가다.
처가의 도움으로 일본 동경에 건너가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하다. 학자금이 제대로 조달되지도 않았고 상과에 취미도 없어 괴로운 학창생활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10월경 귀국하다.

이즈음에 서울생활을 하게 되고 나도향 등과 어울렸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의 서울생활의 느낌을 시로 읊은 것이 <서울밤>과 <不稱錘秤> 등이 아닐까 추측된다.

 

1924년

김동인 김찬영 주요한 김억 전영택 김유방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가담하여 서울에 체류하였으나, 곧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방현)에서 사망할 때까지 동아일보 지국일을 맡아보며 소일하다.

그러나 《東亞日報社史 1》의 기록에 의하면 소월이 동아일보지국장 일을 맡기 시작한 것은 1926년 8월부터이고, 그만둔 시기는 927년 3월이다.

 

1925년

유일한 시론 <詩魂>(《개벽》 59호, 5)을 발표하고, 이해 말에 《진달내》(12)을 매문사에서 상재하다. 1934년6월 사남 낙호가 출생하다.

12월 23일(일설에 의하면 24일)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 자택에서 사망/자살하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마약 중독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일보》(12.30)에 민요시인 소월 김정식씨의 돌연사망 기사가 났고, 《동아일보》(12.30)에 소월의 사망을 알리는 기사와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찍은 흐릿한 소월 사진이 소개되다.

소월은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터진고개에 묻히다.

 

1935년

김기림 김동인 김동환 김억 이광수 이은상 유도순 박종화 박팔양 정지용 등 문인 백여명이 서울 종로에 있는 백합원에서 소월을 추모하는 모임을 가지다.

안서가 《조선중앙일보》(1.22-26)에 <요절한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을 쓰고, 이어 《신동아》(2)에 소월을 추모하는 <弔詩>를 발표하다. 김억이 쓴 <요절한 박행시인 김소월에 대한 추억(3)>(《조선중앙일보》 1.23) 본문에 소월의 친필이 소개되다.

 

1939년

《여성》에 소월의 <박넝쿨타령> <성색> <세모감> <술과 밥> <절제> 등 유고 시편이 발굴되어 발표되다.
김억이 박문서관에서 《소월시초》를 펴내다.

소월의 묘를 서산면 왕릉산으로 이장하다. 

 

 ***다음 신지식에서 맘매김님의 글을 옮겨온것이다.다음의 바다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중학교에 입학하여 수업 첫날 국어 시간에, 임시 담임으로 우리교실에 들어 오신 교감선생님께서 절절히 읊어주시던 이 초혼시를

들었을때, 온몸에 소름이 돋듯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삼 느껴진다.

그 나이에 사랑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초등학교 4학년때 안네의 일생을 읽고부터 세계명작을 봣던 터이라 나는 참 무척 조숙했는지도 모르겠지만,일찌기 어린날부터 그리움에 대한 남다른 감성은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월의 일생을 보면 알겠지만, 일제의 침략 아래서 가정의 몰락과 아버지의 정신병 등으로 감수성 많은 소월의 그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것도 같지만, 그렇게 자살로 세상을 마감하기 까지의 그의 고뇌와 절망, 고독과 아픔을 어이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만의 남다른 섬세함과 상처받은 영혼은 그 누구도 다 이해하지는 못할것이다.

 

우리곁을 너무 빨리 떠나간 천재시인의 가슴 서늘한 울림과, 절절한 한과, 피맺힌 절규만을, 우리는 조금 헤아릴뿐.... 

그래서 그의 시는 언제나 우리 가슴에 애절한 사무침을 안겨 주는것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앞에서 피 토하듯 써내려간 초혼의 절절함에 잠시 가슴 떨어본다.

 

초혼 시는 슬퍼도 오늘이 벌서 주말이다. 구정 연휴로 한주가 정말 빨리 지나가는듯하다.

흐린 날씨가 영하 1도라지만  싸늘하다.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구정에 눈까지 내려서, 다들 정신없이 보내고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한다고 바쁜틈에, 아침 뉴스를 보는데 울화통이 날 지경이다. 군포 여대생 납치 살인 사건이 보도 되었다. 사건 발생 37일 만이라고 한다. 어제 현장 검증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왜 살인범의 얼굴을 모자를 푹 덮어 씌워서 그렇게 가려주는지... 만천하에 공개하여야 마땅한데...

 

전과 9범이나 되는 그런 인간을,사람의 생명을, 남의 귀한 생명을, 사람으로 생각지 못하는, 그런 인간도 아닌,  자신의 지문이 묻었을지도 모른다고 현장 검증을 하면서 새끼 손가락을 태연히 자르며 재연했다는데,그런 인간의 얼굴을, 그렇게  인격적으로 가려줄 그런 필요가 아직도 남았단 말인지....진즉 범죄자들의 얼굴을 공개 했더라면 좀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범죄라던지 살인범이라던지 구형이 확정된 인간들은 얼굴을  마땅히 공개하여 다음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만천하에 공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뉴스를 보는중에 정말 살이 떨릴 지경이다, 이혼한 첫번째 부인도 실종되었으며,2005년도에 전처와 장모가 화재로 죽었다는데 보험을 4억3천만원이나 들었다고 하는 뉴스를 들어 보니 모든것이 냄새가 나는듯하고... 도대체 그 인간은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을지....

 

왜 그런 인간이 사회에 나와서 전과가 9번이나 되는데도,아무런 불편함 없이  그렇게 대로를 활주하며 비싼차를 타고 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그런 헛점이 많은 틈새가 벌어진 세상이 우리  사회인가 싶은 분노가 일어 날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그 악랄한 돈으로 맘껏 허랑방탕하게 보내다가 또 다른 범죄를 구성하고... 그런 악독한 인간은 현장검증따윈 필요치 않고 바로 사형을 시켜야 함이 마땅할듯한데...무슨 얼굴을 가려주고 하는지...

 

만천하에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cctv가 더 어두운곳을 밝혀주는, 경찰을 대신하여 시민들을 지켜 주는 든든한 등불의 역활을 해주기를 바라면서,영국 런던은 cctv가 거물망처럼 촘촘히 박혀 있어서 그 어떤 범죄자도 빠져 나갈 수 없는 철통 경비를 하고 있다고 들은것 같은데, 첨단 it산업이 발전한 우리 나라도 더욱더 선량한 국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아녀자들의 이런 비극적인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 흉악범들의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cctv를 더

 

많이 설치하여 그 어떤 범죄자도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완전 범죄란 결코 있을 수 없고,죄를 지은자는 반드시 그 저지른 댓가의 열배 백배 죄값을 치루어야 하며, 남의 목숨을 헤친자는 이런 얼굴의 이런 인간이라고 천하에 공개하여 다시는 그런 유사 범죄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기막힌 인연으로 금생에 저런 흉악범이 되어 여러 목숨을 헤치는지 모르겠지만,...

무서운 세상이다. 피를 토할 노릇을 당한 그 여대생들의 부모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그 흉악범은 여대생 한사람을 죽인것이 아니다.

그 가족들 모두를 죽인것이나 다름없다.앞으로 그 부모들의 마음은 살아도 살은것이 아닐것이다.

 

맛난 음식을 먹은들, 좋은것을 한들, 그 무엇하나 느낄 수 있겠는가, 그 애통 비통하게 죽은 딸의 환영이 밟혀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닐것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깊은 슬픔에 잠겼을 그 부모님께 정말 그 어떤말로 위로의 말을 전하겠는가... 부디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왕생성불 하기를 두손모아 기도 드립니다............. 

 

구정 연휴도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와야 하는데, 아침내 우울한 뉴스가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시는 이런 흉악범이 발 붙일 수 없는 정말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구정은 잘 보내셨는지요....맑고 향기로운 고운 한주 열어가시기를 ~~~~

 

 

 

 

어제 결혼 기념일이라고 아들이 사 온 케잌입니다 같이 드실래요 ~~  몇주년인지 궁금 하시죠? ㅎㅎㅎ 31주년이네요

 

 

 

일곱 번의 질책

 

                                     <칼릴 지브란> 

 

 

나는 나의 영혼을 일곱 번 질책하였다

첫번째는 약한 자를 착취하여

나를 강하게 만들려고 했을 때였다

두번째는 불구자 앞에서

절름발이인 척했을 때였다

세번째는 기회가 왔지만 어려운 일보다

쉬운 일을 선택했을 때였다

네번째는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남들도

잘못을 저지른다고 자위했을 때였다

다섯번째는 두려움 때문에 유순해졌다가

끈기있게 강하다고 주장했을 때였다

여섯번째는 삶의 진탕을 피하기 위해

내 옷을 걷어올렸을 때였다

일곱번째는 신을 찬양하면서

덕을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출생
1883년 12월 6일
사망
1931년 4월 10일
출신지
레바논
직업
작가
데뷔
1923년 시집 '예언자'
경력
보스턴 북디자이너
파리, 뉴욕, 보스턴 개인전
대표작
예언자, 모래 물거품

 

***제2의 성서라고 불리는 예언자로 세계인의 영혼을 일깨운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이자 화가 

 

 

 

위의 시는 "너는 이 세가지를 명심하여라"라는 책을 쓴 신달자시인이 생의 방향을 잃고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시를 읽고 몸이 달아 오르며 모든것을 포기하려던 바로 그때 이 시가 다시 한번 생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잘못을 시인하고 쉬운 길을 택하려고  도망 치려는 자신을 붙잡고 고통스러운 그 자리에 다시 앉히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며, 삶의 

진창을 피하기 위해 옷을 걷어올리려던 마음을 지브란은 꼬집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기꺼이 조소를 날리며 자신의 몸에

 

진흙을 묻히며 생의 현실을 받아 드리며 오히려 의욕적인 삶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파편에 찔리고 독소도 마시며 삶에 살결이 황폐해져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운명과 맞서게 되었다고 한다

지브란이 제일 좋아 하는 단어를 연인인 바버라에게 적어 보냈다는데 '너' '나''우리''사랑''신 (여기서는 하느님)' 아름다움' 그리고

'대지' 라고 한다. 나는 또 추가로 더 들어가야할 단어들이 많다 '그리움' '바다' '산' '자연''바람''여행' '설레임'.....

 

 위의 시는 우리마음속 깊이 감춘 부끄러움을 지브란이 대신 질책하는것 같다.

조금 알면서 많이 아는척했던 마음과,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늘상 도도한척 했던 마음과, 비운다 하면서도 더 채우려고만 했던 마음과,

다 나열할 수 없는 오욕칠정의 부끄러운 마음을 이아침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도 한번 나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헹구어 내는 마음을 가져 보심은 어떨런지요...

정말 추운 아침입니다 영하 9도 가깝다는데 체감 온도는 영하15도라고 하니 명절 연휴를 앞두고 우리맘을 더 위축되게 합니다.

세상사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투정하기 보다는 위의 시를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생을 향하여 더 힘찬  도전의 발걸음 멈추지 말아야 겠지요. 힘내시고 화이팅!!~~~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되시기를~~~ 

 

 

 

 

법정 (박재철)
출생
1932년 10월 8일
직업
승려,수필가
학력
해인사대교과
경력
1997년 대한불교조계종 길상사 스님
1994년 1월~2003년 11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회주
수상
2004년 제2회 대원상 대상
팬카페
법정스님글사랑
위키백과
법정(法頂 1932년 ~ )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 수필가이다. 강원도 산골에 거주하고 있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려왔다..1954년 ... 더보기

저서 전체(73건)

 

한번씩 남편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와서 읽고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보고픈 책을 대충 몇권 챙겨다 주고있다. 수필집이나 종교서적을 몇권씩 가져와서 읽게 된다. 이번엔 신달자교수의 "너는 이 3가지를 명심하여라"와 법정 스님의 인연이란 책인데,아주 오래전에 스승님으로부터 구수하게 들은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다 있어서 새삼 반갑기도 하고, 일찌기 이 책을 보시고 스승님께서 이야기를 해 주신것도 같아서 1991년도에 나온 책을 이제사 보다니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고단한 삶을 살아 가는 현대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 만져 주시는 스님의 저서는, 어려운 경전을 우리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처럼 전개해 나가신다. 이 책은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으로 구성이 주로 이야기로 되어 있다.권선징악과 인연과보가 실려 있는데, 그 이야기를 읽고 우리가 깨쳐야 할 방향을 법정 스님께서 다시한번 설명을 해 주시어, 착하게 바르게 살아 가도록 이끌어 주신다.

 

법정스님은 수필집과 경전을 쉽게 해석한것등 73권의 책으로 나와 있다고 한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제일 유명한 " 무소유"와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스님의 글은  늘 목마른 이에게 시원한 샘물이 되어주고, 산사의 청량한 바람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고고한 학처럼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진정한 참스승의 모습은, 그 일상에서도  늘 우리에게 그윽한 난향을 풍겨 주신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남을 속이고 무시한 악독한 죄업을 저지른 일화를 한편 소개하여 탐욕심 많은 우리네 마음에 경종을 울릴가한다. 

 

 

 

 ***   입안의 도끼로 자신을 찍는다   ***

 

 

옛날 어떤 나그네가 왕사성에서 걸식을 하다가 성문에서 새끼를 낳은 암소에게 떠받쳐 목숨을 잃었다. 소 임자는 겁이나 그날로 소를 팔아 넘겼다.소를 싼 사람은 물을 먹이기 위해 물가로 소를 끌고 가다가 뒤에서 소가 떠받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말았다.

 

소를 샀다가 재난을 당한 그집 아들은 화가 나서 그 소를 때려 잡았다.자기 아버지를 죽인 소의 고기를 입에 댈 수 없어 장에 내다 팔기로 했다.어떤 시골 사람이 그 소머리를 사서 메고 가다가 자기 집에서 십리쯤 떨어진 한 나무 밑에 앉아서 쉬게 되었다. 새끼에 매단 소머리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는데, 그만 새끼가 끊어지는 바람에 소 머리가 떨어 지면서 나무 아래 쉬고 있던 사람은 뿔에 찔려 죽었다. 이와같이 그 소는 한꺼번에 세 사람을 죽인 것이다.

 

라자가하(왕사성)의   빔비사라왕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괴이한 일이다 싶어 신하들을 데리고 부처님을 뵈러 갔다.

"세존이시여, 실로 괴이한 일이 있습니다. 한 마리 암소가 세 사람을 죽였습니다. 무슨 변고인지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죄의 갚음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으니 그것은 지금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그 옛날 세 사람의 상인이 이웃 나라로 장사하러 가서 한 외로운 노파 집에 머물게 되었소.그들은 넉넉하게 값을 치르겠다고 한 당초의 말과는 달리 며칠동안 편히 숙식을 했으면서도 떠나올 때는 노파를 만만하게 보고 값도 치르지 않은 채 빠져 나오고 말았소, 노파가 밖에서 돌아와 장사치들이 보이지 않자 이웃사람에게  물으니,그들은 벌서 떠나 갔다고 했소. 노파는 그럴 수 있는가 싶어 수십리 길을 걸어 그들의 뒤를 쫓아 갔소 그들을 겨우

 

만나 숙박료를 요구하니 장사치들은 도리어 화를 내면서 오늘 아침 벌서 치렀는데 또 달라느냐고 하면서 잡아떼는  것이었소 노파는 외로운 처지라 어떻게 더 해볼 도리가 없었소. 그러나 분이 치밀어 올라 그들을 저주하였소.

 

"내가 지금은 곤궁해서 너희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이 다음 생에는 너희들을 만나 이 원한을 풀 것이다.축생이 되어서라도

너희들을 한꺼번에 죽이고 말 것이다." 이렇게 그 노파는 이를 갈면서 저주했던 것이오"

 

부처님은 다시 말씀 하셨다. 

" 그때 그 노파가 바로 오늘의 저 암소요. 소한테 떠받쳐 죽은 세 사람은 숙식비를 떼먹고 달아난 그때의 장사치들이고요"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셨다.

 

나쁜말과 꾸짖는 말로

잘난 체 뽐내면서

함부로 남을 업신여기면

미움과 원한이 움을 튼다

 

공손한 말과 부드러운 말씨로

남을 높이고 공경하며

맺힘을 풀고 욕됨을 참으며

미움과 원한은 저절로 사라지리

 

무릇 사람이 이 세상에 날 때

그 입안에 도끼가 생겨

그로써 제 몸을 찍나니

그것은 악한 말 때문이니라   

 

    <법구 비유경 언어품>

 

 

이런 일이 과연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어김없는 인과 관계의 진실성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그리고 원한에서

내린 저주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 한다는 것도 거듭 되돌아볼 일이다.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그 원한,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는 것도 구업(口業)의 인과관계를 가리킨 것이다고 스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짓는 업의 결과 인과응보는 누가 시키거나 어떤 주제자가 있어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한다.자업자득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스님께선 순현보는 현재 지은 업을 현세에 받는 것이고, 순생보는 이 다음 생에 가서

받는 것이고, 순후보는 내생이 아니더라도 그 자신이 뿌린것을 언젠가는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일은 거저 되거나 우연히 되는것은 하나도 없고 좋은 일이거나 궂은 일이거나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한다.

개인이나 집합체인 공동체의 인과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하며 공업이라고 한다고 하신다.

이 시대를 같이 살아 가는 우리는 동업중생인지도 모른다. 모두 이타자리하면서 착한 인연으로 착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인연이란 책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는 늘 좋은 인연으로 만나야할 것이다.

만약 내가 알게 모르게 깨치지 못한 다생다겁 지어온 업보가 있다면 금일  참회 합니다~~~

내 전생에 빚진 그리움 많았던가....그리운 별밭에 매일 씨 하나 뿌리며 시작하고 있음은....

오늘 아침은 푸근한 편이다. 저녁부터는 추워 진다고 하니 잘 준비하시고 출근 하셔야 할듯...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  하루 보내시기를~~~

 

 

 

최정화
출생
1955년 10월 16일
직업
통역사,대학교수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경력
대통령 정삼회담 통역, 국제회의 통역
프랑스 외무성 한국어 수석통역
수상
2003년 프랑스정부최고훈장 레지옹도네르수훈
2000년 통역계학술업적공로상 다니카셀레스코비치상(아시아최초)
위키백과

최정화(1955년 10월 16일 ~)는 대한민국의 통역사이자 교수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과를 졸합하고 파리 제3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81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회의 통역사가 된다.

 

 


 

아침에 티비를 잘 안보는편인데 오늘 아침 우연히 아침마당을 보게 되었다. 방학 특집편으로 최정화 통역사이자 교수가 나와서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위에 경력들을 보면 알겠지만, 역대 대통령의 정상회담때마다 통역을 하면서의 고충이랄까 경험담과 대통령 마다의 특징을 조금씩 이야기 했는데,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만큼 장점만 조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나가기까지 자신에게도 3번의 고비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그 첫번째 고비가 고교때 공부를 잘했는데 서울대에 떨어져서 외국어대에 가게 되었고 그래서 그기서 좋은 교수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오늘의 자기가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두번째 고비는 어렵게 기회를 얻어서 프랑스 파리에 유학을 가려고 했을때, 어머님이 결혼적령기의 처녀가 사치와 허영의 퇴페적

 

도시 파리로 혼자 유학 보낼 수 없다고, 겨우 마련한 비행기표를 찢는다고 할 정도의 심한 반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철학을 전공하신 아버지의 후원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비행장에서까지 아버님의 친구들이 딸을 유학보낸다고 만류했을 정도였다고 한다.그런 상황에서 파리로 유학을 가서 시험을 쳤는데, 반에서 20점 만점의 성적에 보통 17~~18점 정도의 성적이 나왔는데 자신은 2점을 받았다는 것이다.당연히 꼴찌였는데 그 앞사람과 성적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꼴찌였다고 한다.

 

그때 틀린곳을 체크한 빨간팬이 두번째 고비였다고 한다. 교수님이 그 성적을 보고 수업후 남아라고 하시고는, 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는데, 어떻게 온 유학인데 절대로 포기 할 수 없다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더니, 교수님께서 신문사설을 보고 공부를 해서 제출 하면 잘못된 부분을 고쳐 주시겠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피나는 노력을 했단다.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를 너무나 열심히 해서 어느날 졸도를 해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 간호사가 옆에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 간호사는 불어로 어떻게 부르냐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 하냐고...그런데 머리속은 온통 청진기는 불어로 무언지...눈에 보이는게 다 불어로 무언지 물어 보았더니, 남자 간호사가 그냥 밖으로 나가 버리더라고 ....자기가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공부에 미쳐 있었던것 같다고 한다.

 

그밖에 40살에 프랑스 남자와 어렵게 결혼한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대학실패와 빨간팬 그리고 결혼이 자신의 지금까지 살아 온 3대 고비라고 하는데.이력이 말해 주듯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자기가 만난 훌륭하신 분들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님 이야기를 했는데, 추기경님은 몇개국어를 하시냐고 물었더니 말씀 하시기를

 

한국사람이니 한국어를 하고 일제시대를 살았으니 일본어를 하게 되었고 또 영어를 하게 되고 자신이 독일에서 공부를 했으니 독어를 하게 되고  신학공부를 하여 라틴어를 하게 되고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어를 하게 되고 그 사이에 낀 프랑스어도 하게되고 또거짓말도 하게되고 참말도 하게 된다고 하셨다고 하셔서 모두를 잠시 웃게 해 주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종교를 초월하여 요즘 건강이 안좋으시다고 하시니 어서 쾌차 하시기를 빌면서, 또한 반기문 사무총장님 이야기며, 미테랑 대통령과 독대한 이야기며, 그간 쌓아온 화려한 경력의 이야기들은 끝이 없었는데, 이금희 아나운서가 어떻게 하면 외국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냐고 질문하니 "외국어에 왕도는 없다. 하면된다.매일 30분에서 2시간을 시간을 내어  6개월을 메달리면 귀가 뚫어진다.11살 이전의 아이는 자연습득이 되지만. 먼저 한국어 실력을 키워야 하고, 의사 소통용 말을 익혀야 되며, 부지런히 따라하기와 외국인에 대한 낯가림을 버리고 부딛혀서 소통해야 한다"고 한다.

 

자기는 아이가 없는데 대신에 24권의 책을 썻다고 한다. 이해심 많은 남편 이야기도 조금 들려 주었다. 학교가 생긴이래 제일 높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고 사회자가 이야기 한다.실패없는 성공은 없다고 한다.하루 15시간을 앉아서 공부만 했더니 체중이 8키로나 불어서 한국에서 가져간 옷들을 입을 수 없을지경이였고, 파리에 살아도 에펠탑을 아버지 친구분이 그곳에 다니러 오셔서 구경을 시켜 주었다고 하니 정말 얼마나 지독하게 공부만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꿈도 음성다중으로 꾼다고 해서 모두 웃었지만, 한시간 동시 통역을 하기 위해서 그 준비하는 시간은 열시간이 넘을 수 도 있으며, 더구나 두나라 정상회담을 통역할려면  두나라의 역사와  대통령의 가족사와 관심사, 주변 국가문제, 좋아하는 영화나 연극 취미까지, 몇날 며칠  준비하고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한다.

 

세상에 피땀 흘려 노력하지 않은 성공이 어디 있으랴,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고 했는데 그말의 산 증인인듯하다. 작으마한 한국의 여인네가 먼먼 프랑스땅에 가서 그곳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지금은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많은 문화행사를 유치하고 치뤃는 주역으로 활동하고 계시는것같다.

 

정말 장한 최정화교수님이 치열하게 잠시도 쉬지않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살아 온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편하게 안일하게만 살아온듯한 자신이 많이 부끄럽다. 무언가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 여러분~~~헛되이 시간을 죽이지 말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살아야 함을 느끼지 않으신지...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빠르다는 말이 있는데, 2009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여 한가지라도 외국어 공부에 도전해 보심은  어떨런지요? 저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지인이 한 말이 생각 나네요 앞으로 30년을 더 살지도 모르니 매일 단어 한가지라도 외면서 세계 여행을 꿈꾸어 본다고 합니다.

 

2009년은 공부하는 한해를 계획해 보심은 어떨런지요. 오늘 부터 출발해 볼가요~~~오늘은 춥지 않네요....

저도 블로그에 올린 생생영어편 다시 한번 볼가 합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되시기를~~~~ 

  

 

 

 

 

 

 

 

 

지하철을 타면 물건을 파는 분들이 많은데, 정말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팔기도 하고, 어떤때는 집에 와서 해 보면 잘 안되는 것도 있기도 한데, 살기 힘든 세상이니 신제품 파스라던지 내의 대신에 입을 수 있는 레깅스같은거나 장갑등 종류도 다양하게 팔고 있다.그런데 생긴것도 멀쩡하니 살도 디룩쪄서는 정말 어디 불편한곳도 한군데도 없는 건장한 젊은이가, 앉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쇄된 종이를 한장씩 돌리고는 바닥에 꿇어 앉아서 아무말도 안하고 한참을 머리를 조아리다가 일어 나서는, 만만해 보이는 아가씨나 아줌마 할머니들 앞에서 한참을 뜸을 들이고는 약간은 위협적으로 서 있다가는 종이를 거둬가는데 여간 불쾌하지 않다.

 

앞이 안보이는 분중에도 멀쩡한 사람이 장님 흉내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정말 겉으로 보아도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환자나 불구자를 보게되는데, 아직은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음인지 어렵다고는 해도 다들 주머니를 열어서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음을 보게되면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뜨거운 울컥함이 쏫아 오른다.아직은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구나 하는....

 

며칠전에 만난 키가 자그마한 할머니 한분은 전에도 한번씩 본 분인데, 앉아 가는 모든 사람에게 일단 먼저 껌을 한통씩 죽 돌린다. 그 돌리는 껌은 아주 오래된 지금은 잘 팔지 않는 껌들을 한통씩 돌리는데, 할머니 모습이 너무 연약해 보여서 그냥 조금 도와 드리고 싶은 분위기를 풍기신다.그냥 돈 천원권을 주면 껌이 필요 없다고해도 절대로 그냥 그 돈을 넣질 않으시고 껌을 한통 주고야 마는데...

 

요즘 자일리톨껌으로 바꿔서 주신다. 돌린껌은 공짜로 주어도 요즘 사람들이 씹질 않는다는것도 알고 계실뿐 아니라, 공짜로는 절대로 천원을 받질 않으시는데, 그냥 살짝 500원 동전을 주면서 껌은 필요 없어요 하면 그냥 가신다. ㅎㅎㅎ

전에 한번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그냥 500원 동전을 살짝 드리면서 껌은 있어요 했더니 그냥 가시는데. 건너편 자리에 할머니가

같은 할머니로써 처지가 딱해 보이셨는지 천원권을 드리고 껌을 사양하는데도 기어이 쫒아 가셔서 자일리톨껌을 한통 던져주시고는

 

끄는 가방을 들고 다른칸으로 가신다. 그 뒷 모습의 고집이랄까 그래도 나는 아무 노력없이는 동정따윈 받지 않는다 하는 할머니의 생활태도가 느껴져서 웬지 고고함 같은게 풍기셔서 나름 삶의 철학이 느껴졌다. 내가 너거들 공돈은 안먹는다 하는 그런 무언의 태도가 보기싫지 않았다.

 

그렇게 허리가 꼬부라지고 몸도 바람이 불면 쓸어질것 같은 노인도 생판 공거는 안바라는데, 사지 멀쩡해서 살찐 몸짓으로 종이쪽지나

돌리고 있는 젊은이를 볼라치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종일 다니는 시간에 어디가서 정말 몸으로 떼우는 알바라도 할 각오라면 얼마나 건전한가, 땀흘려 돈을 벌 생각을 안하고 그저

편한 구걸을 택하다니 안타깝기만하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땀을 흘려서 돈을 벌어 봐야 돈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는데, 요즘은 부모 잘 만나서 그냥 어릴때부터 아무런

노력의 댓가없이 용돈을 타 쓰는게 당연한듯이 자식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많아서 걱정이다.

식구들 구두라도 닦던지, 엄마의 설겆이라도 돕던지, 아니면 집안 청소라도 하던지, 화장실 당번이라도 시켜서, 용돈을 주는 그런 정신을 심어주어야 할것이다.

 

아무리 귀한 자식일지라도 안으로 이뻐할일이다. 겉으로는 강하게 키워야 함을 신세대부모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 글을 읽어시는 분들이 20대부터 30대 40대도 계셔서 다 잘 알고 계실터이지만 노파심에서 한마디 해  보았다.

자기가 힘들여 받은 용돈이라면 정말 아껴서 보람되게 쓸 것이고, 좀 커서 알바를 한다든지,자기가 힘들게 직장에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을 받아 보면, 정말 세상의 쓴 맛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버려야 했던 자존과 세상과의 부딛침속에서 아파했던 일도 많았음을... 

 

그동안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서 자식들에게 용돈을 주는지도 알게 되리란 생각이 든다. 

다들 힘들다고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때 세상은 또한 우리에게 따뜻하게 다가 오리라고 고무적으로 생각 하면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로  용기를 주고 다독여주면서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괜찮아 질것이라고, 내가 언젠가 쓴 글처럼 이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도 멀지 않았을것이라고 뜨거운 사랑의 힘으로  고해바다를 힘껏 헤엄쳐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번뿐인 생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 내어야 할 것이다 

 

오늘 아침은 약간 푸근한 겨울 날씨다. 영화 3도라고 한다. 춥다면 춥고 또 영하10도에 비하면 정말 포근한 날씨다. 이렇듯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한다는것을 알게 된다. 밝고 착한 생각들로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시작하시고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길 빌면서~~~~

 

 

 

 

 

 

 

 

 

 

우리는 살아 가면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하고 취하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생기기마련이다.프로스트의 시처럼 언젠간 가지못한 길에 대해서 아련한 그리움을 느낄지라도 두 길을 다 갈 수 는 없는데...

그런데 이 선택을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와는 너무나 생각이 판이하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 대화를 계속 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적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가령 티비를 보다가 주인공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그 부인이 당신은 절대 바람 피우지 않겠다고 말 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일은 앞일을 모르니 장담할 수 없다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판 부부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그거야 모든 여인들이 다 싸울것이다고 대답을 하면서, 앞일을 모를지언정 내 마음 밑바닥에 결단코 아내 이외에 그 어떤 여자와도 바람

 

을 피지 않을것이란 마음이 자리 했다면 흔쾌히 대답 할 수 있었을터인데....아닌 마음이 자리 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다고 몰아가자 말 뜻을 이해를 못한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살아 보니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못 놀더라는 말과 왜 굳이 적을 만드냐라고 한다 사업상 이야기와 어떤 남여사이의 애정 이야기는 틀리지 않는가. 흔히 요즘은 여자들이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한다고 하는데.

 

절대로 no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인이 있는냐고 물으면 애매모호하게 도려 있을것 같냐 없을것 같냐라고 되물어 본다는데.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그 어떤 여자와도 딱 끊지는 않는다고 하니...그래서 대충 뭔가 암시를 주는데 못 알아 차리면 머리 나쁜 그여자 탓이라고 한다. 참 세대차가 나는겐지...분명히 정리 정돈된 상황을 좋아 하는 나로서는 짜증내지 뭔가 너무 계산적인 뒷날의 이익을 노리는..

 

이익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또 다른 무엇을 항상  깔고 기다릴 수 있다는 그런 태도 같아서, 사람이 맑아 보이질 않다는 내 나름의 판단으로 더이상 대화 할 필요를 느낄 수 없었다.그러고 보니 내가  과거 알앗던 사람들 중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속내를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좀 많은것 같아 보인다.생존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나름대로 살아온 철칙이 있겠지만 나와는 생각이 많이 틀리는듯하다.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뭔가 훗날의 이익까지 헤아려 찬성도 반대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때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을것이다. 민주주의란 항상 투표로 분명한 찬반의 결과로 움직여 지니 말이다.

그때 처해진 상황에 따른 자신의 양심과 천지신명에 추호의 부끄러움 없이 진실하게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신선한 한표를 던져야하는데, 이것 저것 찬성하는 편과, 반대 하는편의, 먼훗날 자신의 이익과 줄 설 자리까지 살피면서 모든것을 기권으로 일관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것은 아닌것이다고 큰 소리 치면서 살아가는 사람 몇사람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든다.

 

세대차가 나는지 ...요즘 사람들 왜 글케 핏대 올리냐고 할지 모르겠다.네가 아니면 모 세상이 안돌아 가냐고, 왜 그렇게 어렵게 골치 아프게 사냐고, 할 일이 그렇게 없냐고.... 먹고 살기 힘든데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하겠지만 그래도 원칙은 지켜줘야 한다.

안좋은 일이 생기면 금방 그 얼굴에 확 나타나고야 마는 불같은 성격의 나로서는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과는 소통이 안된다

그런 상황 자체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나 지인이 없어서 다행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일찌기 나와의 인연의 고리를 연결치 않았음이다.

 

시크릿이란 책을 보면 우리가 항상 한 순간 찰라에도 좋은 생각들로 채워갈때 그 운이 복기운이 온다고 한다.번개보다 더 빠른 섬광같은 찰라의 순간에 천지신명이 감응하시어 그 좋은 기운들이 우주에서 내게로 몰려 온다고 나는 믿는다. 불교에서도 그래서 항상 좋은 말

좋은 생각을 하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늘 좋은 생각을 맘 자락 깊이 간직하고 실천하면서 살아 갈 때, 정말 바라지 않아도 로또복권같은건 아에 사지도 않지만, 그런 로또 복권에 당첨된듯한 멋진 키다리 아저씨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나는 아직도 철들지 않은 덜 성숙한 미숙아인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정말 내일을 알 수 없는 멋진 각본이 준비 되어 있다고 고무적으로 믿고 싶다.

 

모든것은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따라 간다고 한다. 좋은 인연 복된 인연으로만 만나지기를 바라고 싶다.

안좋은 생각일랑 잠시라도 일순간도 신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맘 끝자락까지 하지 말고 들키지 말고 ........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보내시기를~~~어제는 일산 화사랑 숯불가마에 남편이랑 가서 종일 잘 보내고 저녁에 그 옆 화사랑까페에 가서 유명한 묵잡채도 먹었는데, 카메라를 가져 가지 않아서, 핸드폰 밧데리도 나갈려는걸로 찍었더니 그 분위기 좋은 까페 풍경이 이상하게 나왔다.시간 나시면 몸에 좋은 숯불가마도 체험해 보시고 맛있는 묵잡채도 한번 드셔 보시기를~~~ 

 

 

 

 

 

어제 아침 뉴스시간에 언뜻 노래방 참사 소식을 듣다가 바빠서 아이들 역까지 태워다 준다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 아침은 눈이 내려서 차 운행은 안해도 되기에 뉴스를 찬찬히 듣게 되었다. 어제에 이어서 또 그 노래방 참사 뉴스보도가 나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기가 찬 뉴스보도였다.진세조선의 핵심기술 간부들이 모두 참사를 당했다는것이다.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쳐 진세조선에 들어가 보니 중소형배를 건조하는   날로 발전하고 있는 조선회사였다.

트랜스포터를 이용한 가교대 이송방법이란 신기술을 개발하여 2008년07월에 해외 특허를 진행중인 진세조선이란 우리에겐 그리 알려지지 않은 회사였지만, 새로운 획기적인 신기술로 19일날 새로운 신기술을 도입한 배의 진수식을 앞두고, 마지막 회식을 하러 갔다가 2차 노래방에 가서 그렇게 참사를 당했다는 것이다.회사의 핵심기술자인 간부들이 그렇게 참사를 당했으니...유가족들의 오열을 보는데 그 애통함에 눈물이 쏟아진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언제나 착하고 귀한 인재들이 너무나 애통절통하게 우리곁을 떠나감에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박사학위까지 받은 장래가 창창한 시숙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다.그 남겨진 가족의 슬픔이란 어이 말로 글로 다 하리요...정말 하늘은 더 오염되기전에 착하고 심성 맑은 사람들을 더 빨리 데려 가는 것인지...

 

왜 노래방들은 거의 지하에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비싼 집세때문이겠지만, 모든 노래방들이 거의 지하에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고.또한

노래방에 가면 거의가다 미로같이 좁은 복도를 죽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야한다. 어쩌다 노래 부르다 화장실이라도 다녀 올라치면 자기

방을 다시 찾아 들어 가기도 헷갈린다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것이다.

 

화재 경보기는 왜 작동이 안되고, 노래방 기기에서는 노래방 가사만 나올게 아니라 위급사항이 생기면 빨리 대피하라는 경구가 나오게

그런 신기술 개발이 필요할것 같다. 우리나라의 놀이 문화도 좀 더 밝고 환한 터여진 공간에서 모든이들이 같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그런 문화 정착도 필요할것 같다.우리 아들도 남편도 흔히 회사 회식후 그렇게 늘 가고 있는 단란주점이고 노래방이다.

 

이기회에 영업소의 안전사고에 대비한 철저한 감독내지 시설이 필요할것같다.그리고 가족과 같이 진정하게 푹 쉴 수 있도록 휴가여행을 준다면, 아니 그런 풍토가 정착 되었으면,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만난 지인의 아들이 다니는 회사는 작년 한해 수고했다고 가족 여행권이 나왔다고 한다.

 

아직은 정말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르겠다.꼭 거창한 해외 여행이 아닐지라도 근교 온천이라도

다녀 오도록 가족권을 끊어 준다면...이글을 쓰는 중간에 또 보도가 나오는데 옆방 환풍기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고 종업원들은 방에 손님이 있는지 확인을 하지않고 대피했다고 하니....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신년새해 벽두부터 우리들 가슴을 정말 아프게 하는 안좋은 뉴스를 듣고 우리는 다시 한번 사고가 터질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사고들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정말 길을 가다가 재수가 없으면 맨홀에 빠져서 죽기도 하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쳐서 등산가서 죽기도 하고, 빌딩꼭대기에서 머가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순간 순간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길을 걸을때도 조심, 지하철에서도 조심, 그저 조심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

 

그런데 이런생각들이 또 얼마나 피곤한가...모든것은 다 인연으로 온다고 했다...늘 내게 좋은 인연이 오도록,  전세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장들에 다시 한번 참회하면서, 늘 참되고 착하게 아름답게 맑고 향기로이 살아야 한다고 두 손 모으면서...

부산 남하도 노래방 참사로 돌아가신 진세조선 직원들의 명복을 빕니다~~부디 이고득락 왕생성불 하시옵기를~~~

슬픔이 눈처럼 내리는  아침이다.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고운님들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불경기라고 다들 움츠려 드는데, 날씨마저 연일 영하 8~10도 사이를 넘나드니 뒷 베란다에 둔 세탁기도, 본 수도관은 얼지 않았는데

세탁기 배수구에 물이 내려 가지를 않아서, AS에 전화를 하니 나처럼 그런집들이 많았는지, 담당 아가씨가 담겨진 물을 다 퍼내고 다시

따뜻한 물을 3분의 1쯤 채워두고 3시간쯤 기다리면 된다고 하여, 찜통에 뜨거운 물을 끓여서 담겨진 물을 조금 남겨놓고 붓고는 3시간 이상 지나니 가동이 되어 죙일 절여진 빨래를 세탁기속에 넣었다 뺏다 번거롭게 하루를 보냈다.

 

인터넷도 잘 안되어 사람을 불러서 다시 선을 깔고...그 추운데 아들같은 기사가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는지 커피는 안마신다고 하여 우유를 따끈히 한잔 주고도 맘이 쓰여서, 따끈한 국물에 짬뽕이라도 한그릇 시켜 줄려고 했더니 기어이 사양하고  갔는데  남편말이 일찍 가는게 더 좋지 않겠냐고 해서 그냥 아쉬움을 달랬다. 어제같이 추운날 몇시간을 밖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너무 수고한 기사님 감사 합니다~~~

 

기사들도 그때 그때 금방  와서는 대충 손을 보고 가니, 오늘같이 근본적으로 선을 교체해주는 이런 착한 기사님을 만나서니 망정이지

맨날 임시방편으로 그 순간만 면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버리는 그런 태도는 좀 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물론 하루 건수를 얼마를 해야 하는 정해진 물량이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깔려진 선이 본시 한가닥인가 불량이였다는데....그래서 되다 안되다...그런것을 안된다고 

 

전화를 했더니 무슨 좀비피시바이러스인지 모른다고 보호나라가서 무엇을 깔고 알약을 깔고 시키는데로 한다고 법석을 떨었으니...

늦게 오는 아들만 괜시리 괴롭히고....사람들의 인간성이 임시 방편으로 그 순간만 면하려고 하는 사람과, 근본적으로 바꿔야 됨을 알고

자기만 그 순간 벗어나지 않고 처음부터 원초적으로 새로 다시 다 바꾸는 이런 착한 기사님을 보면 정말 다시 한번 보게된다.

준수한 모습만큼 바른 정신으로 정도를 살아가는 젊은기사님께 박수를 보낸다.

 

얼마전 아들이 양복속에 입고 다니는 가디건에 구멍이 뚫려서 저걸 어떻게 기워주나 코를 잡아서 다시 감쪽같이 해야 되는데, 고민아닌

고민을 하는데 같은 색갈의 실도 없고....아들이 걱정하지 말라면서 종로5가에 수선집에 가서 고쳐 오겠다고 한다.

조금 특이한 아들은 아빠의 결혼 시계를 종로를 다 누벼서 정말 아주 오래된 시계를 잘 고쳐 주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잘 고쳐서 끼고 다니는데,요즘 새로 나온 멋진 시계 마다하고 굳이 그 시계를 차고 다니니....왜 그 무거운걸 차냐고 말려도 안된다.

 

사진처럼 아주 멋진 나뭇잎 수로 감쪽같이 구명도 없어지고.... 행여 집에 구명이 난 쉐타나 가디건등이 있다면 저렇게 이용해 보시면

어떨까 싶어서 한번 올려 보았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아나바다운동을 한지도 오래 되었지만 잘 실천치않는 집들도 있는데 허리끈을 다시 동여메며 근검절약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지금부터 다시 어렸을때의 그 가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다시 새로운 각오로 살아야 할 것이다. 

 

항상 사치를 한적은 없었지만 더 절약해야할 것이 있다면 절약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다짐해 보면서, 아침에 운전을 하는데, 간밤에눈이 살짝 왓는지 길가에 눈이 약간 쌓여 있다. 처음엔 모르고 겁없이 운전을 했는데...길이 얼었다고 생각하니 몸이 움츠려 진다.ㅎㅎ왕초보도 아닌데 미끄러움에 대한 거부감이 엄청 크게 뇌리에 새겨져서...돌아 오는길은 조심 조심....조심운전하시고 건강 잘 챙기시고

따뜻한 말 한마디 고운 미소로 오늘도 행복하게 열어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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