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여행(13)  송네 피요르드 관광

 

피요르드는 100만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약 100만년 전 북유럽은 두께가 1000m가 넘는 빙하로 덮여 있었는데

그 빙하가 조금씩 녹아 흘러 내리면서 그 무게로 강바닥을 깍아 자른듯 깊은 U자계곡을 만들었으며

외해 근처의 피요르드에는 그 깊이가 1000m가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늘 오후에는 피요르드의 한 자락인 구드방겐까지 버스로 가서 배로 피요르드 관광을 하는 일정이다.

 

차로 달리면서 보는 피요르드 해변

 

 

 

 

 

다시 페리를 타고 피요르드를 건너고

 

 

 

 

 

 

 

 

 

 

 

 

 

 

 

 

 

 

 

노르웨이는 터널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 중에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레르달 터널을 우리는 통과해야 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그 길이가 자그만치 24.5km나 된다.

시속 80킬로로 나와 있지만 평균 60km로 달리면 20분 이상 캄캄한 터널을 달려야 한다.

노르웨이를 관광하면서 통과한 터널이 100개 넘는것 같다고 했다.

그 안에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수많은 Fan이 달려있어 터널안의 자동차 배기 개스를 바깥으로 뽑아낸다.

 

 

 

드디어 우리가 오늘 밤 유숙을 할 구드방겐에 도착을 하였다.

 

이름 모를 꽃이 우리는 반겨준다.

 

여기도 작은 빙하?

 

노르웨이에서 3가지 묻지 말라는 이름 중 하나인 폭포가 수없이 보이기 시작을 했다.

 

이곳은 우리가 오늘 머물 구드방겐에 있는 식당 겸 선물가개이다.

 

 

아래 뒤로 보이는 건물은 8각으로 된 우리가 머물 숙소이다. 여기도 지붕위에 풀이 나 있다.

지붕위에 흙을 얹고 잔디를 심어 놓으면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다고 한다.

그러다 풀이 너무 길면 양이나 염소를 올려 놓으면 풀을 뜯어 먹어 구태어 잔디를 까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제 송네 피요르드를 관광하기 위하여 배에 오른다.

 

 

 

 

 

 

 

 

 

 

 

호수 같은데 바다라고 한다. 물속에 있는 물 풀을 보면 바다 풀이라고 한다.

 

달리면서 보는 산자락의 작은 마을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런데 배가 달리자 비둘기가 날아오기 시작을 한다.  관광객이 주는 과자 부스러기에 익숙해진 비둘기들.

 

 

 

배위에 앉기도 하고 과자를 들고 손을 내밀면 손이 아플정도로 쪼아서 먹는다.

 

 

 

 

 

이 비둘기들이 하루 종일 버스에 시달렸던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셀수 없이 많이 나오는 폭포의 누가 이름을 다 붙일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본격적인 피오르드 경관이 시작이 된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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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북유럽을 다녀 온듯한 기분이 듭니다

정말 멋진 사진 즐감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북유럽여행(12) 뵈이야 빙하 (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여행에서 보는 세상은 일상에서 보는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곳을 여행하지만 보고 느끼는 것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과 사물을 보는 관찰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도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른 사진이 나온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찍는 사진을 피해왔고 다만 자연 경치를 찍는 사진을 찍어 왔다.

왜냐하면 사진찍는 솜씨가 서툴기도 하려니와

사진속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관찰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번에도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서 북유럽 관광상품 모집을 하여 떠난 여행 일정에

우리 부부는 현지에서 합류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유는 저렴한 가격때문에.

 

코펜하겐 공항에 미리 도착한 우리 부부는 몇 시간을 기다려 한국에서 오는 일행을 만났다.

 

  미국인들 같으면 만나자 마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십년지기 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행인데로 불구하고 1-2일은 대화는 커녕 인사도 안한다.

3일째가 되어서야 겨우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시작 된다.

 

그런데 여행가이드는 풍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어 고마웠다.

하지만 모든 여행객에게 자기 말에만 집중시키고

도무지 함께 한 동행인들과 교제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오즉하면 매끼 먹는 식당에서 조차 자유롭게 대화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진열대의 상품처럼 번호표를 붙여서 자기 번호표가 붙은 곳에만 앉게 한다.

 

장시간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좋은 여행 정보는 좋았으나

주식 이야기라던가  여행과 관계없는 지루한 이야기도 들어줘야 했다. 

 여행객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각본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면 이번 팀이 좋은 팀이라고 평가를 한다.

 

여행은 각기 다른 지역, 다른 환경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자기의 보고 들은 세계.

경험담을 나눔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이드가 모두 차단한 셈이다.

 

이것은 다양성의 조화를 차단하고 획일적이고 단일화하는 것이

질서라고 생각하는 사고에서 나온 곳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나는 운전기사에게도 말을 걸고, 관광하면서 만난 사람들과도 짧은 시간에 간단한 말이라도 건네면서

 이야기꺼리, 웃음꺼리, 흥미꺼리,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대화를 거는데

가이드는 말을 거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같은 질문을 여러번 하는 것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텐데

전에 팀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번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흉을 봄으로서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는 것 조차 부담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옥의 티라고 아쉬웠던 점을 말했을 뿐 그는 분명 훌륭한 가이드였고

함께한 일행은 참으로 좋은 분들이었다.

 

하루종일 달리는 버스가 좀 지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것과 같은 이치다.

 

다음 여행에는 일행이 함께 웃고 즐기며 많은 정보를 서로 나누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자 이제 빙하 박물관을  보기 전에 먼저 실제 빙하를 먼저 보자.

빙하는 약간의 푸른색을 띄고 있다.

 

카나다 록키 마운틴의 아이스필드 대형 빙하를 여러번 본 나로서는 큰 감동은 없지만

노르웨이의 빙하를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멀리서 보면 별건 아닌것 같아도 엄청난 두께의 눈얼음이다.

 

 

 

 

 

 

 

 

 

 

 

 

 

 

 

 

 

 

 

 

 

 

 

 

여기가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이다. 이제 그 안으로 들어가보자

 

 

 

 

 

 

 

빙하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니 빙하의 생성과정과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아이맥스로 제작된 파노라마 영화를 보여주는데 중간 중간 사진을 찍었으나 여기에는 올리지 않는다.

 

아래사진 왼쪽에 보면 눈이 내린다. 그 눈이 얼면서 덩어리가 되는 과정과

그 위에 또 눈이 쌓이고 얼고 하면서 빙하가 된다.

박물관 안에는 빙하속에서 발견된 5천년 전의 인간과 동물들 그리고 화산으로 일어나는 홍수 등을 전시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몇백년전 빙하를 탐험하다가 죽은 사람이 눈 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 대기 오염으로 인하여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자

빙하가 녹으면서 탐험대에 의하여 발견된 시체인데

시신은 연구용으로 어느 대학 연구실에 냉동 보관하고 있고 이것은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이다.

 

 

 

 

 

 

 

아래는 얼음(빙하조각)을 전시해 놓고 사람들이 만져볼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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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시기를~~*^^*~~

 

북유럽여행(11) 오슬로-만할러까지

간밤에 오슬러 근교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여 늦게 배달해온 도시락을 먹고 취침한 후

다음날 아침 빙하지역을 관광하기 위하여 달리시 시작했다.

 

아래 사진들은 헴세달에서 점심을 먹고 포드네스로 이동 후 빙하 박물관을 향하여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후반부는 송네 피요르드를 페리로 건너는 장면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앞 좌석에 앉을 수 있어서 버스안에서 달리면서 많은 사진을 찍을수 있었다.

 

 

이제부터 노르웨이의 경관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 내기 시작을 했다. 

 

북유럽은 서유럽과는 달리 역사적인 문화 보다는 자연 경치를 주로 보는 관광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노르웨이는 넓은 땅에 인구가 많지 않아 길이 한산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이렇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빙하를 보기 위하여 뵈이야로 가는 도중에 펼쳐진 파노라마 전경이다.

 

 

 

 

 

 

 

 

 

 

 

노르웨이 지방에서는 지붕위에 풀이 자라게 한 집들이 많이 있는데 구드방겐에 가서 다시 설명을 하겠다.

 

 

 

 

 

 

 

 

 

 

 

 

 

 

 

 

 

우리는 뵈이야 빙하를 가는 도중 송네 피요르드를 건너는 페리를 탑승했다.  

 

피요르드란 약 100만년전에 형성된 빙하가 침식하여 산 아래로 밀려 내려가

U자 와 V자의 깊은 골을 만들고 이 위에 바닷물이 차 올라 형성된 만을 이르는 말이다.

 

송내 피요르드는 세계에서 가장 깊고 긴 피요르드로

서해안에서 동쪽 방향으로 204킬로 뻗어 있고 수심이 1308미터나 된다.

13회에 송네 피요르드 관광을 하면서 찍은 사진을 올리려고 한다. (지금을 대충)

 

 

 

 

 

 

 

 

 

 

 

 

 

우리가 타고온 버스가 배 맨 뒤에 실렸다. 페리가 떠나기 직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 덕에 시간을 벌수 있었다.

 

 

 

 

 

 

 

호수 같이 보이지만 바닷물이다. 노르웨이의 명물 송네 피요르드

 

 

 

 

 

 

 

 

 

 

 

 

 

 

 

배에서 내려 빙하를 향하여 또 달리면서 산자락에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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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북유럽여행(10) 코펜하겐(덴마크)에서 오슬로(노르웨이)까지

 

 

북유럽의 관광은 노르웨이가 중심이다.

우리는 지금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향하여 달리고 있다.

 

위의 지도에 화살표가 이번 내가 여행한 코스이다. 

씨애틀-암스텔담-코페하겐-오슬로-베그겐-오슬로-스톡홀름-헬싱키-암스텔담-씨애틀

 

본격적인 노르웨이를 관광하기 전에 우선 노르웨이에 대하여 간단한 정보를 알 필요가 있다.

 

노르웨이는 이름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North Way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노르웨이는 한국 남북한의 2.5배나 되는 땅에 인구는 45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인 오슬로에 50만 인구가 거주하며 GNP (8만9천불) 세계 1위의 부국이다.

그런데 물가는 얼마나 비싼지 미국의 약 3배나 된다.

 

162명의 국회의원중 42%가 여성일 정도로 여권이 신장된 나라이기도 하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북해선 원유는 하루 생산량이 400만 배럴이나 된다.

100% 의료보험에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다.

 

노르웨이에서 3가지 묻지 말라는 말이 있다.

폭포이름, 빙하이름, 터널이름이다.

폭포와 빙하와 터널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셀수없는 폭포와 빙하와 터널을 보기 위해 하루 종일 버스로 달리면서 찍은 사진들

 

 

 

 

 

 

 

 

 

 

 

 

 

버스로 달리는 시간은 길고 지루하지만 물속에 반영된 (Reflection) 자연은 환상적이었다.

먼 길을 시간에 맞추어 가야 하기 때문에 도중에 세워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은 아무래도 움직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아래는  도중에 쉬는 휴계소 식당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유리창이 반영이 되어 재미있는 사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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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래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아침내 스크랩을 했는데 제 바탕화면까지 바꾸어서

그런데 애석하게 제 글들이 보이지를 않아서 다시 원상 복구를하고

처음부터 다시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즐감하시고 고운 하루 보내시기를~~*^^*~~~

북유럽여행(8) 안델센 동상과 시청사

 

안델센의 동상은 코펜하겐 시청사 건물 바로 옆에 있다.

 

 

안데르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고 어머니는 세탁부였으며 집안 형편은 늘 어려웠다.

 

외아들 한스 크리스티안은 밖에서 뛰어놀기 보다는

혼자 인형 놀이를 즐기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가 11세 때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가족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진다.

일찌감치 노래와 연기에 재능을 보인 소년 안델센은 

 오덴세의 유력자 가문을 찾아 다니며 재주를 선보여 명물이 되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몇 년 뒤에는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위해 혼자 무작정 상경한다.

 

 

1819년, 14세의 나이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한 안데르센은

여러 극단을 찾아가 입단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연기에 재능이 있긴 하지만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다행히 안데르센은 당시 정계의 실력자이며 예술 애호가인 요나스 콜린의 눈에 들게 된다.

일단 기본 학력이 있어야만 훗날 뜻을 펼치는 데에도 유리하리라는 조언과 함께,

콜린은 안데르센에게 왕실 후원금을 얻어주며

우선 수도를 떠나 중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돌아오도록 독려했다.

 

 1822년에 안데르센은 코펜하겐에서 멀리 떨어진 슬라겔세로 갔고,

동급생들보다 대여섯 살이나 더 많은 17세의 나이로 다시 학교에 입학한다.

 

 

재학 중에 <죽어가는 아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해 의외로 호평을 받은 안데르센은

연기자에서 작가의 길로 선회한다.

 

1828년, 23세의 늦깎이 학생 안데르센은 6년간의 공부 끝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이듬해에는 첫 저서인 <도보 여행기>를 발표한다.

 

1833~4년에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인 요소가 깃든 장편소설 <즉흥시인>을 발표해 격찬을 받는다.

 

그리고 1835년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동화집을 펴낸다.

그의 동화를 읽은 어느 지인은 “<즉흥시인>이 자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면,

이 동화는 자네를 불멸의 작가로 만들 것”이라고 격찬했다.

 

 

이후 안데르센은 <엄지 공주> <꿋꿋한 양철 병정>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눈의 여왕> <전나무> <나이팅게일> 같은 대표작을 비롯해 200여 편의 동화를 꾸준히 발표한다

 

 

1843년에 나온 새로운 동화집에는 그의 최고 걸작인 <미운 오리 새끼>가 수록되어 있었고,

이 작품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안데르센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해진다.

 

1846년에는 덴마크 국민으로선 최고의 영예인 단네브로 훈장을 받았고,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 인사들과 교제하는 명사가 되었다.

 

고국인 덴마크에서는 종종 혹평을 받아 가뜩이나 예민한 마음이 크게 상했던 안데르센이었지만,

오히려 독일이나 영국 같은 외국에서는 더 일찍부터 명성을 얻은 바 있었다.

가령 영국의 경우에만 해도,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특히

안데르센의 열성 팬이 되어서 여러 번에 걸쳐 만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을 정도였다.

 

 

 

 

코펜하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시청 앞 광장이다.

붉은 벽돌로 된 건물로 1905년에 건립되었다.

 

건물 입구에는 코펜하겐의 창시자인 압살롬(Absalom) 주교의 상이 있고

내부에는 제작기간만 27년이나 걸린 천체시계가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보지 못했다.

 

청사 내부에는 100년에 1천분의 1초밖에 오차가 생기지 않는다는 옌슨 올센의 천문시계가 있으며

시청사 옆으로 코펜하겐의 연인 안데르센 동상이 있다.

 

시청사의 지붕위에는 106m 나 되는 시계탑이 있는데 따로 요금을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야 한다고 한다.

시청사 앞 광장은 각종 행사 집회장소로 시민생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시청사 앞 광장 우측에는 엄청나게 큰 호텔이 있다.

 

 

 

 

 

 

 

 

 

 

 

시청사 좌측 건너편에는 온도계 건물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날씨가 맑으면 자전거 타는 남자가 나오고

날씨가 흐리면 우산쓴 여인이 나온다고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자전거탄 남자도 나와 있고 우산 쓴 여인도 나와 있는 걸 보니

날씨가 흐렸다 개였다 하는 건지 가이드가 말한대로 고장인지 모르겠다.

 

 

시청사 옆에는 티보리 공원이 있다. 안델센 동상과 티볼리 공원 사이로 나 있는 길이 H.C. Andersens Boulvard 길이 나 있다.

 

 

 

 

 

 

 

 

 

시청사 광장 한 좌측 마즌편 코너에는 용트림을 하는 분수가 있다.

 

 

 

 

 

 

 

 

이곳은 가이드가 덴마크에서 나는 좋은 약제가 있다고 사라고 내려 놓은 곳이다.

 

 

 

 

 

 

 

 

 

아래는 이번 여행에서 아이 둘을 대리고 온 분이 있었는데 버스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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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시기를~~*^^*~~

북유럽여행(7) 키에르케고르  동상

 

덴마크가 낳은 유명한 인물중에 안델센과 키에르케고르 두 사람이 있는데

안델센은 동화작가로서,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동시대에 코펜하겐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를 꼽으라면 키에르케고르와 사르트르를 꼽을 수 있는데

키에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이고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국회의사당 마즌편으로 들어가니 키에르케고르  동상이 나온다.

내가 어렸을때 부터 부친의 서재에 꼽혀 있던 키에르케고르가 쓴 "죽음에 이르는 병" 은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너무나 친근감이 있는 철학자여서 그 앞에서 기념 사진을 한장 찰칵 했다.

 

 

 

 

 

키에르케고르의 명언

 

결혼해도 후회하게 될 것이고, 결혼하지 않아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순간은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안에는 시간과 영원성이 서로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신에게 감사한다. 그 어떤 생물도 내게 자기 존재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진리를 찾아내고, 내가 생사를 걸고 싶은 이념을 발견해내는 것은 중요하다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


최초의 실존주의 철학가 &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

대표작 = Entweder – Oder I/II (1843) (E-Text) 이거냐 저거냐

            Der Begriff Angst (1844) 두려움이라는 개념

            Die Krankheit zum Tode (1849)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1813년 5월 5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1841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다.

 

1849년 간행. 책의 제목은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말에서 유래하며,

따라서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인 영원한 생명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이며, 절망이란 자기상실이다.

또한 그것은 자기를 있게 한 신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며, 절망은 죄에 불과하다.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人)이 아닌 한, 절망을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고 있지 않든,

실은 절망하고 있는 것이며, 오히려 절망의식의 심화가 참[眞] 자기에 이르는 길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무한성과 유한성, 시간성과 영원성, 자유와 필연의 종합체로 보았다.

 

인간은 무한한 유한함이며 유한하면서도 유한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한정되어 있는 듯하면서 한정되지 않는 것이어서

인간은 금수가 될 수도 없고 신에 가까이 갈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자유이고, 또 각 사람은 자기 자신에 어떻게 연관되는가

또는 자기의 존재를 무엇이라고 인식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자신에 연관되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신과 연관되는 관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 자신에 연관되는 관계'가 분열하고 부서져 버리면 절망이 시작된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바로 이 절망이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키에르케고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이다.

그 까닭은 인간은 원래 자기 자신이 될 사명을 가진 자기로서 창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의식(自己意識)이 증가하면 할수록 절망도 강해진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2차적으로 보았다.

틀림없이 절망은 병이며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이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동물 이상이기 때문에 절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병으로부터 치유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이 병에 걸려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불행한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적 실존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깊이 배어 있는 책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년)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인생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묘사한다.

하나는 의식하는 쾌락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윤리적인 의무와 책임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책에 나타나는 견해는 깔끔하게 요약되는 체계적인 논리가 아니라,

익명 저자가 살아가면서 체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책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중요한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물었던 질문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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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여행(6) 크리스티안스보르 성( Christiansborg Slot)

 

크리스티안스보르 성은 12세기 압살론 대 주교에 의해 건설된 이래 5번이나 파괴되었고,

현재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20세기 초에 건설된 것이다.

 

성 앞엔 크리스틴안 9세의 기마상이 있다.

크리스티안 9세는 Europe's 'Father-In Low로 불리는 인물인데

6명의 자식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유럽의 여러 왕가 사람들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성의 일부는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성의 옆으로 들어가면 국회의사당 정면이 나온다.

 

정문 상단에 “네 가지 통증” 을 호소하는 사람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1.귀가 아픈 사람,  2.머리가 아픈 사람, 3.배가 아픈 사람, 4.이가 아픈사람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국회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덴마크의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검소한지 국회의사당 앞 마당에는

국회의원들이 타고 와서 일렬로 세워놓은 수많은 자전거를 볼 수 있다.

 

 

크리스티안스보르 성은  앞 광장에는 아래와 같이 가늘고 높은 장대위에 조각을 해 놓은 것이 있다.

 

 

 

 

크리스티안스보르 성( Christiansborg Slot) 광장에서 우측을 보면 아래와 같은 건물이 나오는데

이 건물은 옛 증권거래소 건물이라고 한다. 

17세기 중반에 지어진 건물로

초기에는 해상무역을 통해 코펜하겐으로 들어오는 값비싼 무역품들이 거래되다가

후에 증권거래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꼬불 꼬불한 장식이 있는 탐은 신화에서 상업을 의미하는 용 네 마리가 꼬리를 틀어 올린 모양이란다.

 

 

 

아래 사진은 세워놓은 전용버스 정면에 건물이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 찍어 보았다.

 

아래는 아말리엔 보그성 앞에 있는 공원 입구 선물 가개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아래는 코펜하겐 시가지를 도는 동안에 주로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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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여행(5) 아말리엔보그 궁전

8각형의 광장을 둘러싸고 잇는 4채의 로코코풍 건물로 이우러져 있는 아말리엔보르 궁전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주거지로 현재 마르그레테 2세 여왕과 그 가족이 살고 있다.

 

1974년에 원래의 왕궁이었던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에 화재가 나자,

그 당시 4명의 귀족이 살고 있던 건물을 왕궁으로 이용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궁전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여왕이 근무하고 있을 때는 건물에 덴마크의 깃발을 꽂아 놓는다고 하는데 깃발이 꽂혀있다.


광장에서는 매일 정오에 위병교대식이 행해지고 있어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멋진 위병의 행진과 교대식을 볼 수 있다.

위병 들은 11:30에 로센보르 궁전의 숙소에서 행진을 시작해, 정확히 정오에 궁전 광장으로 들어온다.

 

 

 

깃발의 끝자락이 갈라져서 3자락의 3각형으로 된것은 왕실에서만 쓸수 있는 깃발이라고 한다.

 

 

마침 여왕이 집무하고 있어 깃발이 휘날린다.

 

4개의 궁전은 다음과 같다.

  • 크리스티안 7세의 궁전 : 몰케궁전이라고도 불린다.
  • 크리스티안 8세의 궁전 : 원래의 이름은 레베쫘우 궁전(Levetzau's Palace)이다.
  • 프레드릭 8세의 궁전 : 브록도르프 궁전(Brockdorff's Palace)으로 불린다.
  • 크리스티안 9세 궁전으로 스타핵 궁(Schack's Palace)이라고도 말한다. 

 

 

아래는 궁전 서쪽으로 보이는 돔은 바로크풍의 프레데릭스 교회다. 

중앙 돔에 올라가면 아말리엔보르 궁전의 전경을 볼 수 있다지만 우린 올라가지 못했다.

 

 

 

 

 

 

 

중심부 광장에는 아말리엔보르크 왕가의 선왕인 프레드릭 5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수리중이지만 한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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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여행(4) 게피온 분수(Gefion spring vandet)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의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피온 분수대

이 분수는 1908년에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의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게피온 분수의 조각상은 코펜하겐이 위치하고 있는 셀란 섬의 유래를 신화로 표현한 것이다.

게피온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스웨덴 왕과 내기를 하여 하룻밤 동안 경작한 땅을 받기로 했는데

자신의 아들 4명을 소로 변신시켜 땅을 갈았고 그 결과 얻은 땅이 코펜하겐이 있는 셀란섬이라고 한다.

더 많은 땅을 얻고자 하는 욕심으로 채찍을 들고 아들들을 향해 휘두르는 모습이 독특하다.

 

 

 

 

 

 

 

게피온 분수대는 1908년 칼스버그 재단이 코펜하겐 시에 기증한 것으로,

덴마크 예술가 안데스 분드가르드(Anders Bundgard)가 디자인했다.

 

게피온 분수대는 처음 시청사 광장에 설치하려고 했으나,

계획을 바꿔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시타델(Citadel)부근에 세워졌다.

이후 1999년부터 분수의 보수가 이뤄지고 있다 

 

 

 

4마리의 황소를 몰고 있는 여신의 조각상은 이곳 덴마크 동부의 섬,

수도 코펜하겐이 위치한 질랜드(Zealand) 섬의 탄생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질랜드 탄생신화에 따르면 스웨덴 왕은 밤에 이 지역을 경작할 수 있도록 여신,

게피온(Gefion)에게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여신은 그녀의 네 아들을 황소로 변하게 한 뒤,

땅을 파서 스웨덴과 덴마크 핀섬(Fyn)사이를 흐르는 바다에 던져 질랜드 섬을 만들었다.

그래서, 질랜드의 모양과 크기가

스웨덴의 베네렌(Vanern)호수 모양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분수대 옆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하나 있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치를 이룬다.

 이 교회 이름은 St.Alban.s Church 인데 수리를 하고 있었다

 

 

 

 

 

 

 

 

 

 

 

 

 

 

 

 

 

 

 

 

 

 

분수대에서 조금 내려가면 왕족들이 배를 타는 곳이 보인다.

 

 

 

 


 

출처 : 금모래 사진 겔러리
글쓴이 : 금모래 원글보기
메모 : 금모래님 정말 멋진 사진 입니다
제가 그곳에 갔어도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을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늘 고마운 마음으로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로 스크래해가서 즐감하겠습니다
늘 고운날 보내시고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북유럽여행(3) 코펜하겐 (인어공주)

 

가이드가 맨 처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이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곳이었다.

이미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세계3대 썰렁 관광지로 

1.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2.부르쉘의 오줌싸게 동상과 3.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동상이 사진이 잘 찍히지 않는다.

물론 내 사진실력 탓이긴 하지만 인터넷에 다른분들이 찍은것도 비슷한것 같다.

 

안델센의 동화 '인어공주' 에서 모티브를 얻어

1913년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 Edvard Eriksen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왕립 극장에서는 발레 <인어공주>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칼스버그 맥주회사의 2대 사장인 칼 야콥슨 Carl Jacobsen이

동상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한다.

모델은 극장의 프리마돈나로 절세 미인이었다고 하는데 후에 조각가의 부인이 되었다.

 

인어상은 전체 길이가 80cm에 불과하여 생각보다 외소하고 초라하다.

 1964년 4월 23일,24일에는 누군가에 의해 그녀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이 원래의 상태로 복구되었지만 1984년 또다시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지금의 팔은 나중에 제작하여 부착한 것이다.

 

2011년 현재 98세가 된 그녀는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 인어공주는 작년(2010년)에 중국 상해 엑스포 홍보를 위하여 가저가는 바람에

그 자리에 대신 TV로 보게 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제자리에 있어서 볼 수가 있었다.

 

 인어공주 이야기 요약

 

육지의 왕자를 사랑하다가 물거품이 되고 마는 인어공주의 슬픈이야기인데 

 영화는 인어공주가 인간이 되어 왕자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평화로운 바다왕국의 일곱째 공주인 에어리얼은 어느 날 우연히 바다 위로 올라갔다가

위험에 처한 육지의 왕자 에릭을 구해준다.

 

그 이후 에릭을 잊지 못하던 에어리얼은 사악한 마녀 어설러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저당 잡히고

꼬리 지느러미 대신 인간의 다리를 얻는다.

 

그녀는 3일 안에 에릭과 키스하지 않으면 영혼을 주겠다는 계약까지 한다.

 

육지에 오른 에어리얼은 바닷 속 친구들의 도움으로 왕자 에릭과 가까워지지만

 마녀의 부하들은 번번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키스를 못하도록 방해한다.

 

다급해진 마녀는 변장한 모습으로 왕자를 유혹하여 결혼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3일이 지나 다시 인어로 변한 에어리얼을 데리고 사라진다.

 

그러나 에어리얼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에릭은 마녀를 물리치고

에어리얼을 되찾아 모두의 축복 속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인어공주 모형을 만들어 팔기 위하여 나와 있는 차에도 인어공주가 그려져 있다.

 

 

마침 그 앞바다에 배가 지나간다

 

 

 

 

 

 

 

주변에 있는 다른 동상

 

앞 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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