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 큰 스님은 1864년 전북 장수군에서 태어나 16세 때 1879년 합천 해인사 극락암의 화월화상을 은사로 혜조율사를 계사로 출가 하셨다. 스님은 그 후 3차례에 걸쳐 깨달음을 얻었으며 중국의 큰 사찰을 순례 하면서 우리 불교의 정신을 널리 펴 보여 조선 불교의 자존심을  새웠다.

 

1911년 48세에 종로구 봉익동에  대각사를 건립하였고, 다시 1913년 뜻 있는 선지식과 힘을 합하여 안국동에 선학원을 세웠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 앞장서 활동 했으며 이로 인하여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일본제국주의 침략, 서구 종교의 유입, 왜색 불교의 폐해에 맞섰던 스님은 1922년 59세때 만주 강도성에 대각교를 세운 다음 독립운동을 하는 한편 , 산중에만 있던 불교를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선(禪)포교를 위시하여 많은 경전을 번역 간행 하였다.

 

 

나 떠난 후에 조선은 반드시 독립할 것인즉

그때 세간사람들에게 용성스님이 당부하는 세간오계를

반드시 지켜 주도록 부탁 하노라

첫째,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하시오

둘째, 목슴을 바쳐 부모에 효도하시오

셋째, 목숨을 바쳐 스승을 공경하시오

넷째, 목숨을 바쳐 친구를 믿고 사귀시오

다섯째, 목숨을 바쳐 전쟁에는 지혜롭게 이기시오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이런 유훈을 남겼을 것인가, 선사님의 절절한 나라사랑은 이 유혼을 통해 후학들의 마음속에 길이 길이 전해져온다. 

스님은 불교 중흥을 위하여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염원하였으니 , 그 빛을 보지 못한 채 1940년 음력 2월 24일 세수 77세 법랍 61세로 입적 하셨다.

  

 책을 다 잃고 나니 눈물이 핑 돈다. 평생 불교 중흥을 위해서 고생만 하시다가

끝내 일본 앞잡이의 배신에 맘 아파하시며 맘에 병이 깊어서 앓으시다 돌아가시고 말았으니...왜색 불교에 이 나라 불교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침략자의 온갖 박해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 내시어 오늘날 이 땅에 참 불교의 맥이 이어지도록 힘쓰신 큰 스님의 일생은 많은 감동을 준다.

 

불교계의 거목으로 이름을 날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셨다. 동산스님과 고암스님은 종정으로 지내셨으며 성철스님도 동산 스님의 제자라고 한다. 이름을 다 나열할 수 없는 많은 제자 분들이 계심에 용성큰스님의 그 위대한 힘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기회가 닿으면 한번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오늘도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되시고, 비가 오는 곳이 많다고 하죠?

이곳은 아주 맑은 날씨인데 오늘도 또 무척 더울것 같네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진각국사 혜심 큰 스님은 1178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 났다.부친의 유언대로 24세이던 1201년 사마시에 합격 하였으나 모친이 위독하여 귀향한 뒤 그 후 모친이 돌아 가시자 1203년 송관산 수선사 (지금의 송광사)에서 지눌선사의 문하로 입산 출가 하였다.

 

 

 

 

절에서 동 서 남 북으로 절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글이다.

 

 

 

 

 

 

 

 

 

 

 

 

이렇게 사라져 가나니

앞으로 남은 세월 얼마나 되겠는고?

그런데도 함부로 지내어

탐욕과 분조...

질투와 교만 방종으로

명예와 이익을 탐하여

헛되이 세월을 보내면서

쓸데없는 말로 세상일에 참견한다

계행의 덕도 없으면서

신도의 보시를 받아 드리고...

 

이렇게 절에 스님들이 정진하지 않고 헛되이 보냄을 나무라시었다.

성긴 발을 걷고 앉아

맑음에 취하니

예쁜새 날아와

고운 노래 보르네

 

푸른 눈으로

푸른 산을 대하노니

티끌 하나 그 사이에

낄 수 없어라,

맑음이 저절로

뻐에 사무치거니

그 어찌 열반을

다시 찾으리.

 

 

 

망망한 물안개

허공에 출렁이고

하늘, 물 , 한데 어울려

한빛이 되었거니

그 끝이 어드메던가

가을달 갈대꽃이

함께 희구나. 

 

 

 

 

 

 

 진각국사 혜심(慧諶)큰스님은 살아 있는 부처님 같은 분이셨다.24세에 그 어려운 사마시 시험에 합격 하였으나 고향에 아프신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서 벼슬자리를 접고 낙향하여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윗분의 배려로 말미를 주어 다시 벼슬길로 돌아오라고 재차 기별이 왔으나 모친 열반 후 그 제를 올려 드리기 위해서 그 당시 큰 스님 지눌 스님을 찾아 갔다가 큰 그릇임을 알아보신 지눌스님의

깊은 설법에 마음을 돌리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고, 그 후 잠을 안자고 사시사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깊은 산속 큰 바위에 앉아서 깨치는 공부를 하여 산부처님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시다.

 

지눌선사님이 돌아가실 즈음 그의 공부를 점검하시고 그 당시로는 엄청나게 큰 절인 수선사의사석을 계승 시키려 하자 그것을 물리치고 다시 홀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스승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달려 왔는데 모든 대중들이 사석에 앉아 줄 것을 권했으나 듣지 아니하여 임금님께 청원하여 어명으로 절 사석에 하는 수 없이 맡게 되었으며, 그 어떤 권좌의 사람들이 한양으로 와 줄 것을 간곡히 청해도 듣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함에 그의 고매한 인격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넘쳐 났다고 한다.

 

강종때 최고 실력자인 최충헌과 그의 아들 최우 까지도 혜심 스님의 고매한 인격을 흠모하여 가까이 모시려 하였으나 수선사를 떠나지 않으려 함에 최우는 그 두 아들을 보내어 스님의 제자가 되라고 머리까지 깎도록 했다고 한다. 후에 그들은 여러 사고를 쳐서 다시 올라갔다고 하지만, 얼마나 그 인품에 반하였으면 자식까지 그 스님 밑으로 보냈겠는 가 그것도 조종 최고의 실력자가 말이다.

 

스님은 조정에서 하사한 많은 논밭과 귀한 하사품들에는 조금도 관심도 욕심도 없었으며  가난한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 세전을 받을 때에도 7;3으로 하여 농부에게 7을 주고 절에서는 3을 받도록 말씀 하시어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해 주시기도 하셨으며, 자신은 한 끼는 굵고 한 끼는 죽으로 드시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공부하시고 수행 정진하시어 자신의 스승인 지눌 선사 못지않은 그 스승에 그 제자란

 

선풍을 심어 주신 것이다 교법과 선종의 다툼으로 불교가 항상 분쟁이 그치지 않음을 안타까이 여기시어 ‘선문 염송집’을 집필하시어 참선 수행의 나침반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유명한 ‘선문 염송집’은 동국역정원이 한글판 다섯 권으로 펴낸바 있어서 오늘의 우리도 이 선문 염송집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고승 열전을 보면서 느끼는데 고매하시고 청정하신 대선사님들은 맑고 향기로움이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 비치지 않는 고요함, 그 자체였으며 그 어떤 욕심도 유혹에도 흔들리지 아니 하시고, 자신을 위해서는 티끌만큼도 욕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중생교화와 불쌍한 백성을 위해서 살아오신 것이다. 훗날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모두 책으로 남겨 주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탐진치 삼독에 빠져 개인의 욕심에 눈이 어두운 우리는 정말 많이 반성하고 짚어 보아야 할 문제점이 많음을 다시금 느끼면서, 성불하신 고승 대덕님의 높은 가르침을 만분의 일이라도 배우고 본받으려 노력 하면서, 하루하루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야 함음 새기면서...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도 욕심 보따리는 비우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도록 힘쓰는 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제가 주 5일째를 한다고 해바라기님의 불평이 너무나 심하셔서 ㅎㅎㅎ어느 책에 보니 일을 하는데 쉬지 않고 종일 일하는 사람보다는 한 시간 일하고 10분씩 쉬면서 일하는 사람이 더 작업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능률도 오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고로 휴식은 일보다 더 필요한 관리라는 것을 감히 이 연사 한 말씀 드리는바 입니당당당 ㅎㅎㅎ

 

사실은 집안에 경사가 있을 예정이라 여러가지 바쁜일들이 자꾸 생기네요. 글은 안올려도

댓글이나 방명록은 보고 감사함을 표해야 하는데, 어젠 종일 컴을 열지를 못했습니다.

오늘도 오전에 컴퓨터공부하러 학교에 갈 예정인지라 자리를 또 비우게 되네요 제가 자리 없어도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 님들께 머리숙여서 감사 드립니다 꾸뻑~~~~^____^~~~~~~

 

비님이 오시네요 장마철이 시작 되었지요. 건강 잘 챙기시고, 새로운 한주 멋지게 열어 가시고,

가내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배추벌레 도사가 지렁이에게 물었다

아래 대답이다...

 개구리에게 물었더니 개구리는 그 배추벌레 도사를 한입에 널름 짭짭 해 버린것이다. 선문답의 본말은 무엇인지...

 사명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선지자는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걸음 한발자욱도 조심해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신듯...

 노인이 바지 자락을 허벅지까지  걷어 붙이고

간밤에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갔다.

건너편에서 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계곡물을 건너온 노인에게 "물이 얼마나 깊습니까" 하고 물었다.

 

 

 

 

 현자賢者는 몸을 공 空으로 여기는데

우자愚者는 몸을 보배로 여겨

죽음이 뺏으러 올 때까지

닦고 다듬기를 멈추질 않네

버젓이 아름다움에 눈 멀었으니

번뇌와 불안과 방황이 날마다 벗하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 지는것

일체가 물위에 거품임을

꽃과 새와 나무와 바람이

날마다 곁에서 가르쳐줘도

도무지 모르네.

 

 

생사란 바다의 파도와 같다

끝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었다 스러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생사를 반복한다

그러나 바다 자체는 늘어나고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만물 자체는 바다와 같이 한없이 넓고 끝없이

상주불멸 불생불멸이다.

따라서 생과 사는 하나이지 둘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성철 지음 원택스님 엮음

 식사 공양 하기전에 읊는 경이라고 합니다...

 정말 멋진 글입니다~~~~

 

 

 

 

 

 

바다에 닿으려면 강을 버리고

너에게 닿으려면 나를 버리고

 

 

 

  이기와님이 쓴 '비구니 산사 가는 길' 이란 책은 작가의 남다른 감성과 섬세함으로 한 단어 한 단어 선택이 신선함과 풋풋함을 풍겨준다. 참 글을 맛갈나게 잘 쓴다는 마음이 들었다.

불우했던 자신의 가정사 보따리를 풀어 보이기도 하고, 비구니 스님들이 왜 출가를 했는지에 대한 의문점에 시원한 답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애정 행각의 비련에서 오는 최종 은신처내지 막다른 골목에서의 도피처로 생각한 적이 혹시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잘 못 알려진 생각이고 그렇게 안일하게 비구니 스님이 되려고 생각한다면 절집에서 호락하게 받아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기성찰과 인격완성 내지 열심히 공부하여서 종국에는 하와중생과 상구보리의 불타는 열정과 그 어떤 시련과

고생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할 생의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기완성의 목적이 살아 있어야 만이 공부 할 기회가 주어진다고나 할까... 몇 년 간에 걸쳐서 혹독한 몸공부를 치른 후에야 비로소 마음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운문사나 석남사 ....비구니 스님들이 많이 계시는 절을 작가가 직접 발로 걸어가서 그 수려한 산세와 경내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그곳에서 생활 하시는 비구니스님들의 일화나 생활상등도 살짝 보여 주기도 하면서, 고승들의 고매한, 품격 높은 선문답 같은 시들도 많이 보여 주는데 다 옮길 수 없어서 안타깝다.

 

마음의 양식이 고갈되어 괜시리 불안하고, 고요함으로 재충전 하고 싶다면, 비타민제를 복용하듯, 차 한 잔 앞에 놓고, 한번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을 반납할 시간에 쫓기어 더 많은 선시들을 다 소개치 못하여 아쉽다. 책을 사진 찍었더니 촛점도 안 맞고...

오늘도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함을 전하면서,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 보내시고,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서원 드립니다~~~~

 

 

 

 

 

   역시 원효는 그릇이 큰 인물 이였다. 그 당시의 신라의 스님들은 당나라에 다녀오지 않으면 요즘말로 쳐주지도 않고 그 어떤 모임이나 자리에도 참석 하지도 못하고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 이였는데, 또한 당나라에 가서 고승 대덕 밑에서 공부를 하고 와야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음에도 당나라로 의상과 같이 공부하러 길 떠났다가 처음엔 의상이 아파서 돌아 왔었고, 그다음에도 요석 공주가  당나라 사신의 배로 편히 갈 수 있는 배편까지 다 주선해 주었음에도,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학철 대오하시어 돌아오고 말았음이다.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한 지식하고 돌아 온 의상마저도 원효스님의 그 화쟁과, 일심, 무애사상의 반전주의자인 원효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 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승원 작가님이 처음에 말했듯이  역사적 고증과  원효연구서등에 밑바탕 한 많은 책을 읽고, 뛰어난 상상력과 박학다식한  깊이 있는 내용전개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너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하면서 흥미를 더해준다.

 

원효와 의상의 심오한 선문답 대화들을 다 옮길 수 없지만 유학승들이 판치는 황룡사 절에서 백고좌법회를 강설하고 <금강삼매경>을

백성을 위해서 쉽게 풀이해서 죽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지옥에서 만난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준 설법은  법민 임금부터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으니 그 자리 참석한 잘난 척하던 모든 스님들도 그에게 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승원 작가의 상상인지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바위 안에 부처님이 계셔서  그 부처님이 걸어 나오시도록, 밖으로 들어내고 있다는 돌보 원효의 이야기나, 중국에 그 많은 고승을 다 마다하고 신라까지 찾아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중국에서 온 동손스님 이야기나, 그는 원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옆에서 상좌노릇을 했었다 .의상과 선묘와 부석사에 얽힌 이야기, 만파식적 이야기 등...수많은 일화들과 그의 법담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무한히 크고 넓고 깊은 태산같은 넉넉함을 느끼게 해 준다.

 

요석공주가 지어주는 그 어떤 사찰도, 부귀도, 영화도,  다 거절하고 '혈사' 그냥 구명이라고 명명한 작은 곳에서 복성거사라 자칭하며 험한 옷을 뒤집어 입고 성찬도 거절하고 오로지 헐벗고 배우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서  쉽게 풀이한 수많은 경전들의 집필에 혼신의 힘을 다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몸을 들개에게 내어준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들개를 잡아서 모두 같이 나누어 먹은 그 과보를 참회 하면서, 빚을 갚아야 한다고....

 

큰 인물 원효를 한평생 사모한 요석공주는 운향스님이 되어 평생을 그의 곁에서 그가 집필하고 공부하도록 그림자처럼 내조를 한 훌륭한 여성이었다. 소설 원효는 요즘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미실이 이야기라 던지 그 시대의 생활 풍습, 권력을 잡기 위해서  정략결혼으로 엮어져 있는 왕실의 복잡한 애정관계와 스님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여주기도 하고, 마지막에 ‘원효와의 인터뷰’란 장이 있는데 원효가 지금 우리 앞에 살아서 작가가 궁금해 하는 많은 질문에 보충 설명을 해 주고 있어서 흥미롭게 그를 다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원효를 좋아 하신다면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1,2,3,권으로 되어 있어서 좀 많고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토지’나 ‘태백산맥’ ‘혼 불’ 등에 비하면 정말 많은 권수는 아니라고 본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아주 흥미롭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면서,  그저 저 잘났다고 목소리 높이면서 다투기만  하기 보다는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화쟁으로 해결하려 했던 원효님의 큰 마음을 본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하면서...

언제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벌서 주말이네요.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멋진 주말 보내시기를~~~~~ 

 

 

 

 

 

우주처럼 드 넓고 바람처럼 걸림 없어라

14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우리 곁으로 온 인간 원효의 삶과 사상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이 삼국통일 전쟁을 주도하며 고구려의 연개소문, 백제의 의자왕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절체 절명의 시기, 원효는 왕실과 권력층을 향해 전쟁 반대를 선언한다. 전쟁으로 일그러진 민중의 삶을 쓰다듬고 삼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불국토를 건설 해야 한다고  역설한 원효는 위험 인물로 낙인찍혀 요석궁에 연금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을

 

부처로 받든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후일 이두사적을 만들어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성현 설총을 낳는다. 민중교화와 더불어 초인적인 저술활동을 펼친 원효는 <금강 삼매경>등 200여권의 책을 집필한 세계적인

사상가로도 유명하다. 일심一心, 화쟁和諍,무애 無碍,로 요약되는 그의 학문과 사상은 중국, 일본, 인도에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에서는 그를 부처와 동격인 명신 明神으로 추앙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세계주의자이자 위대한 사상가인 원효가 실천했던 반전, 화쟁, 무애행은 14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주며 되살아난다.

 

원효에 대한 책은 몇권 본듯한데 이번에 작가 한승원이 접근한 방식은 수많은 책과 고서 문헌등을 다시 공부하여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효편을 일연스님이 잘못 해석한것이라고 못 박고 있으며, 많은 공부를 하고 다 나열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책을 보고 참고하여 아주 재밋게 소설 형식으로 풀어 나가고 있어서 예전에 본 지루함이나 딱딱함이 없이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원효의 본래 이름은 새벽이였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원효는 항상 새로이 시작되는 우리들의 새벽이고, 영원히 풍화되지 않는 불가사이의 계율이

오늘의 한복판에서 싹터나고 있는 우주 씨앗의 눈(胚芽)이다.

그런데 원효는 굴절되어 있다.

 

 

 "태어나자 그림자가 있었느니라, 그 그림자를 줄곧 밟고 다녔는데, 그것은 그때마다 내 몸짓을 흉내 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언제

부터인지 그림자의 흉내를 내며 살아 왔다. 이제 나도 그림자도 사라져간다."

 

" 인연이란 것은 없다.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애시당초 없던 것이다. 인연은 마치 마사토에 심어 놓은 꽃나무하고 같아서, 수시로

물을 주고 북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어야 시들어지지 않고 자라서 꽃을 피운다. 끊임없이 관리하지 않으면 시들어지고 말라져 썩어

부스러지게 된다. 결국 흙으로 변한 다음에는 인연의 그림자와 바람만 남아 떠돈다. 덧없고 또 덧없다."

 

"슬퍼하지 마라. 만남이 헤어짐이고 헤어짐이 만남이다.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위한 축복이고, 헤어짐은 다시 만남을 위한 상차림이다. 모든 것은 헤어져 떠나가는 듯 싶지만, 천만 갈래의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듯이 그들은 자기들의 몸이 시작된 원래의 희디흰 시공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미련을 가지지 마라. 인연은 원래 없는 것이다. 저 연못으로 달려온 바람 한줄기가 물결 한두 자락 일으켜놓고 사라지듯이, 이 수증기 저 수증기 모여서 된 구름장이 어느 한순간에 비 한줄기를 뿌리고 사라져가듯이, 모든 인연은 순간에 사라진다. 환혹과 행복을 가져다준 인연이든지, 질투와 증오와 복수와 살생을 가져다준 악연이든지..............."

 

그가 운명하기전 남긴 말들이다. 그가 남긴 숱한 일화나 저술들은 다 나열 할 수도 없지만, 1권은 그의 출생부터 가정사 그리고 왜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들이고,2권은 요석공주와의 운명적 만남과,그의 고민,삼국통일의 야심으로 혈안이된 김춘추와 김유신 신라의 문제와 그 당시 큰 스승이신 대안스님과 그를 이끌어준 낭지 선사와의 만남과 그를 필요로 하는 시대적 부름과 그의 고뇌와 사색과 이복누이 달이와의 떨칠 수 없는 인연등이 그려져 있다, 그동안 원효님을 많이 그리며 살았는데 그의 향기를 흠뻑 맡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1권은 너무 재밋게 읽었는데 2권은 책 반납할 날자에 쫒기는데다 감기약에 취해서 몽롱하니 원효꿈을 꾸는지 비몽 사몽 읽어 나갔지만

3권이 기다려지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적극 추천한다.

오늘도 제 블로그를 잊지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로서 10만명이 넘어 섰네요. 지난주부터는 하루에 1300분에서 1500분까지 찾아 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꾸뻑 ^___^ ㅎㅎㅎ

마음의 찰떡에 그리움의 콩고물을 묻혀서 고운님들께 돌립니다 ~~~~ ㅎㅎㅎ 

쉽게 써 내려간 그리움이나 사랑시에 많이 공감 하시는듯해서 기쁩니다 

싱그러운 6월을 맞아서 고운님들 더 많은 건강과 행복이 가내 가득 하시기를 빕니다~~~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보내시기를~~~ 

 

 

 

 

 

 

  신라 화랑도의 실천 덕목인 세속오계(世俗五戒)로 유명한 원광법사는 신라 중기의 진골 출신 스님으로 스물다섯에 출가, 경주 삼기산에 들어가 수도하다가 꿈속 스승의 명에 따라 중국 진나라로 건너갔다. 금릉(지금의 남경)에 있는 장엄사 승만대사 밑에서 <성실론>

<열반경>등을 공부한 뒤 소주 땅 호구사에 들어가 <구사론>을 비릇한 여러 경전을 연구하고 불경을 강의하여 명성을 떨쳤다.

 

또 장안에 가서 달천대사의 <섭대승론>강의를 듣고, 혜원, 영유대사 등에게<열반경> <반야경>을 비릇한 여러 경전을 배운 후 고국 신라의 간청으로 귀국, <여래장경사기><대방등여래장경소>등을 지어 불교의 새로운 지식을 신라에 도입했다. 또한 가실사에 있을 때

귀산과 취항이 찾아와 교훈을 청하므로 세속에서 그들이 지켜야 할 다섯가지 계명, 즉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라, 효로써 부모를 섬기라,

 

믿음으로 벗을 사귀라, 싸움터에서 물러나지 말라, 가려서 살생하라, 등을 지어 주었다. 이후 이 세속오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고구려 백제의 침입에 맞서 왕명으로 결사표를 지어 수나라에 출병을 요청했고, 수나라 사신이 왔을 때 황룡사이 백고좌법회에서 설법했던 스님은 세수 99세 법랍75세로 황룡사에서 입적하셨다고 한다.

 

삼기산에서 홀로 수행하던 원광스님은 꿈에 스승이 나타나서 중국에 가서 공부하라는 말씀에,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가게 되고 중국사신이 타고 온 배를 죽기를 각오하고 타고, 그 사신의 도움으로 장엄사 승만대사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다 전생으로 부터의 불법 인연과 스승님의 은혜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 절에서는 공부를 어찌나 지독하게 시키는지 수시로 공부를 점검하고 대답을 잘 못하면 쫓아내는 게 다반사 인지라 혹독하게 공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앞에서 원광 스님은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를 하셨고 스승님의 시험도 다 통과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 당시 중국의 고승대덕 자리에 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다. 스승님의 시험 문제 중에 몇 가지를 옮겨 볼가 한다, 

 

 

문; 부처님께서는 대체 무엇 무엇을 일러 사무량심이라 하셨던고?

답; 예, 크게 사랑함이 대자요. 크게 불쌍히 여김이 대비요, 크게 기뻐함이 대희요. 크게 버림이 대사이니 대자대비 대희대사가 곧 네 가지 무량심이라 이르셨사옵니다

 

 

 

문;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무엇을 끊게 된다고 이르셨던고?

답;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게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문; 그러면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게 되면 무엇을 끊게 된다 이르셨는고?

답;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는 사람은 성내고 화내는 일을 끊게 된다 이르셨사옵니다

 

문; 기쁜 마음을 닦게 되면 어찌 된다 하셨던고?

딥; 기쁜 마음을 닦게 되는 사람은 괴로움을 끊게 된다 이르셨사옵니다

문; 허면 크게 버리는 마음을 닦게 되면 무엇을 또 끊게 된다 이르셨던고?

답; 예, 크게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과 차별을 두는 마음을 끊게 된다 하였사옵니다

 

 

 

대자대비 대희 대파는 한량없는 네 가지 마음은 곧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또한 스님께서는 호구사에 계실때에 어려운 법문을 쉽게 풀이하여 잘 설법해 주시었는데 보시에 대한 이야기도 옮겨 볼가 한다.

보시란 말 그대로 베풀어 나누어 주는 것이니.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도 보시요,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보시요, 병들어 신음 하는 사람에게 약을 나누어 주는 것도 보시요,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 나누어 주는 것도 보시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누어 줄 것이 없는 사람이나  보시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도 재물이 아닌 법보시나 무외보시를 할 수 있다고 설법하시면서, 법보시란 말 그대로 법을 가르쳐주어 옳은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니,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주어 옭고 바르고 착하게 살도록 인도하면 그것이 곧 법보시가 될 것이요, 길을 묻는 사람에게 바른 길을 친절하게 잘 알려주어 옳게 가도록 도와주면 그것도 법보시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 하셨다.

 

그러면 무외보시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재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서움을 없애주는 것이니 사람이나 짐승을 해치지 아니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없게 해주는 것을 무외보시라고 한다고 하셨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편안하게 보살펴주고 감싸주고 지켜주고 아껴주는 마음 그것이 다 무외보시라고 한다고 쉽게 말씀해 주시었는데, 우리도 살아가면서 잘 할 수 있는 보시일 것도 같다.

 

궁궐에서 나오는 좋은 비단이부자리도 물리치시고 얇은 홋 이불 하나와 풍족한 식량도 마다하고 아침에는 죽으로 저녁은 굶으시며 평생을 공부하신 스님은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먹어라'고 대중들에게 말씀 하셨다. 우리는 지금 넘치는 영양분 섭취로 살이 너무 쪄서 온갖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난리를 치고 살지 않는가? 정말 고승대덕님의 생활은 모두 다 한결같이 하루 한 끼는 굶으시고

아침은 죽으로 드시고 계심을 알 수 있으니,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을 많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 도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쉬임없이 타고 있거늘

그대들 어둠속에 놓여 있건만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고

보라. 이 부서지기 쉬운  병 투성이

이 몸을 의지해 편타 하는가

욕망도 많고 병들기 쉬워

거기엔 변치 않는 실체가 없네.

목숨이 다해 정신 떠나면

가을철에 버려진 표주박처럼

살은 썩고 앙상한 백골만 뒹굴 것을

무엇을 사랑하고 즐길 것인고!

아아 이몸은 오래지 않아

다시 흙으로 돌아가리라

다시 흙으로 돌아가리라"

 

 

열반송을 남기시며 사람의 한평생은 알고 보면 한 토막 꿈과 같은 것 그 꿈속에서 부자가 된들 무슨 소용이며 벼슬을 한들 무슨 소용이며 천하를 호령한들 무슨 소용이랴 깨고 보면 모두가 다 꿈인 것을, 착한 일, 좋은 일  하는 데 게으르지 말라 , 착한 일, 좋은 일 하기에도

인생은 짧다고 하시며 열반에 드시었다.

 

헷세는 산다는 것은 묵은 죄 위에 새 죄를 쌓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말 같기도 하여 내가 즐겨 인용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는 맘 밑자락에 착하게 살아야 함을 항상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눈부신 봄 날 꽃들도 착하게 피었다,

비록 삶이 묵은 죄 위에 새 죄를 쌓을지라도 오늘보다 내일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비님이 오시네요. 맘에 묵은때 헹구어 내면서... 늘 맑고 향기롭게, 착하게 지내시기를~~

 

 

 

 

 

고승 열전 2권인 " 버리고 사는 마음 그 마음이 부처일세" 라는 책을 보았다. 겸익 스님은 백제 문화의 전성기인 25대

무녕왕, 26대 성왕 때의 스님이다. 무녕왕 22년에 중국 상인의 배를 간신히 얻어 타고 부처님 나라인 천축국(인도)에 들어간 

스님은 부처님께서 이르신 계율인 오부 율장(사분률, 십송률, 오분률, 해탈률, 마하승기률)을 가지고 떠난 지 5년 만인 성왕

4년에 백제 흥륜사로 돌아온다. 이때 스님은 정, 율, 론에 통달한 천축국 배달타 스님을 모시고 와 28명의 학식 높은 승려들로

 

하여금 천축의 글과 말을 배우게 한 뒤, 오부 율장을 한문으로 옮기는 방대한 작업을 하셨는데,  이는 백성  모두가 부처님의 정법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이다.

이로써 사찰은 물론 세속에까지 불교의 계율과 정신이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스님은 또 성왕의 도움으로 불화를 그리는 화공을 중국에서 초빙하였으니 이때부터 백제의 사찰에는 벽화와 탱화를 비릇한 백제 특유의 불교미술이 찬란하게 펼쳐지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은 1400년 전에 무녕왕 6년 5월에 괴질이 퍼져서 온 백성이 죽어가고 있을 때, 적군700명의 시체를 다시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 주라고, 그 시체들이 산과 들에 버려져서  부패하여 괴질이 되는 것이라고 죽기를 각오하고,  임금을 설득하여 괴질이 일어난 까닭을 말하고는 적군한테 까지도 자비심을 발했다가 나라에 감시까지 당했지만, 백성을 자식같이 돌보며, 우물물을 끓여서 마시도록 하였으며, 나라의 곡식 창고를 열고,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돌보아 괴질이 물러 가고 비까지 내려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백성을 자비로 다스리도록 하였다.

 

왕의 보살핌으로 배불리 먹고 잘 지낼 수 있었음에도 백성이 배고픈데 절에 대중들이 잘 먹을 수 없다고, 하루 한 끼 죽을 잡숫고 아낀 양식은, 굶고 있는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시었다.  고승열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훌륭하신 고승대덕들은 아침은 죽으로 드시고 저녁은 굶고 그렇게 정진수행 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넘치게 많이 먹고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 든다.

그 시대에 천축국까지 가셔서 불경을 구해 오신 그 정신과, 그 구해오신 경전을 책으로 만드셔서 훗날 백성들이 보도록 하신 그 깊은 마음을 감히 어이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자비심에 대해서 옮겨 볼가 한다.

 

불가에서 으뜸으로 꼽는 것이 자비심 입니다. 그렇다면 자비란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사람은 물론이요 짐승까지도 그 목숨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라 이르셨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한 마리 벌레까지도 어떻게 하면 죽일까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은 살릴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라 이르셨지요

 

저 사람을, 저 짐승을, 저 벌레를, 어떻게 하면 살려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편히 살게 해줄 수 있을까, 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비라고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재산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은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더 좀 많이 나누어 주고, 더  좀 많이 베풀어 주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이르셨지요.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대신에 용서해주고 위로해주고 감싸주려는 마음, 그것이 자비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님께선 큰 새가 잡아 준 절터 대조사에서  경전을 책으로 만드시고,  어느 날 홀연히 자신이 갈 때를 아시고는, 생아일편 부운기요 사아일편 부운멸이라, 태어남은 한 조각 뜬구름이 생겨남이며,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짐이라. 본래 뜬구름은 실체가 없는 법, 사람이 나고 죽음 또한 이와 같은 법..사미승에게 귀한 경책과 목탁을 남기고 간곳을 밝히지 않은체 떠나가시었다고 한다.

삼국사기나 중국 고승전에도 삼국유사에도 더 이상의 흔적은 살필 길이 없다고 한다

 

정처 없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셔서 하늘도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산속 편안한 곳에 마지막 누울 자리를 스스로 정하고 육신에 남아있던 기력을 다하여 나뭇잎을 긁어모아 스스로 깔고 덮고 편안한 얼굴로 누웠으리라. 우리는 스님의 아름다운 이런 열반을 천화(遷化)

라고 부른다고 한다.

 

겸익스님의 글을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서늘해 지면서 눈물마저 핑 돈다. 그 시대에 먼먼 천축국까지 가셔서 5년간 공부 하시고 그 나라의 스님까지 모시고 돌아오신 대단한 원력에 숙연히 고개 숙이게 된다. 스님은 아마도 대 해탈을 이루시어 지금도 우리나라의 국태민안을 빌고 계실 것 같다.

 

불자라면,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고승열전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절대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눈부신 계절의 여왕 5월의 향기가 더없이 우리를  축복 합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책을 가까이 함도 좋을듯합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벌서 또 주말입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그대 몸안에 있는 도둑부터 잡으시게" 라는 제목의 일연큰스님 이야기는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 중 일연의 꿈" 이란 책에서 몰랐던 다른 면을 또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아주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아서 지루한줄 모르고 단번에 읽어 나갔다.

삼국유사를 우리에게 남겨 주신 일연스님은 정말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시고 부지런하신 소걸음의 호랑이 눈을 가진 천재소년이었다.

 

삼국유사 자체가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야화를 바탕으로 쓴 글들인지라 그 수록된 내용들을 잠간 맛보여 주기도 하지만 스님이 득도 하셔서 몽고 란을 겪으면서 팔만대장경이 다 타 버려서 새로 다시 대장경 간행을 남해 섬에 분사도감을 설치한 정안이란분의 간청으로 판각의 경하나 하나를 새길 적마다 부처님께 절을 한번 올리면서 그 일을 주관하셨으며, 후에 임금의 명령으로 강화도 선원사 주지로

 

가셔서 250여 대중을 엄하게 다스림 하여 백성이 몽고족의 침략으로 임금도 강화로 피신해 있는데. 절에 스님들만 잘 먹고 살 수 없다고 아침엔 죽을 먹고 그것도 참선을 하지 않음 죽도 주지 않고, 저녁은 굶도록 하여 아낀 양식을 전쟁과 보리 고개로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그 자비하시고 맑고 향기로운 일화들은 어느 것 하나 가슴에 감동을 주지 않음이 없다. 

 

말년에는 임금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고향에서 자신을 그리는 팔순 노모의 소식을 듣고는 일선에서 물러 나와 노모를 모시고 마지막 효를 다 했으며  확고한 역사관과 나라의 맥을 이어가려는 사명감으로   젊었을 때부터 틈틈이 써놓은 삼국유사를 완성하시고 역대 왕조의 연표도 만들고 따로 판각하여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이 연표에는 중국의 전한(前漢)에서 부터 우리나라의 신라, 백제, 고구려, 가야의 왕의 이력 들이 자세히 비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중편 조동오위> <역대연표> <삼국유사> <조화도> <대장수지록> <제승법수> <조정사원> 을 펴내시고 마지막 제자 선린에게

<인천보감>이라고 명하시며 유불선을 통틀어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을 적은 것이니 반드시 이루도록 하라고 말하신 후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 " 권세와 재물은 재앙의 씨앗이며 벼슬하지 말고 권세 근처에 가지도 말고, 청빈하게 살아야한다. 청빈하게" 란 말씀을 남긴 체...

 

큰 스님 조사님들이 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당했을 때마다 국태민안 하기를 식음을 전폐하시면서, 불공과, 기도와, 방편으로, 지켜 내시고  왕들의 마음에 선지식을 심어주고, 그래서 긴 외세의 침략 앞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힘이 되는 것을, 책을 볼 때마다 많이 느끼게 된다. 스님께서 설하신 많은 말씀 중에서 강조하신 글을 소개 하면서 끝마칠 가 한다.

 

" 여기 모인 대중들은 이 법당의 부처님께 시주나 좀 하고 절이나 좀 많이 해서 남보다 복이나 좀 많이 받아 갈까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 음 아무개 보살이 얼마를 시주 했구나 ' '아무개가 절을 몇 번 했구나' 이런 것을 보고 계신 분이 아니라 부처님은 여기 모인 대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몸에 붙어 있는 도둑들을 어찌 단속하고 있나 그걸 살펴보고 계신 게야.

 

첫째 도둑이 무엇이냐? 바로 눈 도둑이지, 저 비단옷을 입고 싶다, 저 보석을 갖고 싶다 뭐든지 갖고 싶어 성화를 하네,

둘째 도둑은 귀 도둑이지, 귀 도둑은 그저 달콤한 소리, 아첨하는 소리,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니 폐가망신하기 일쑤야,

셋째 도둑은 콧구멍 도둑으로  좋은 냄새는 제가 맡고, 나쁜 냄새는 남에게 맡게 하는 도둑이지,

 

 다음 도둑은 혓바닥 도둑이지, 거짓말도 잘하고,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 중상모략도 요놈의 도둑이 하지, 그리고 입에 맛난 것만 먹고 욕심 사납지,

그 다음은 요놈의 몸뚱이 도둑이야, 도둑질, 살생, 못된 음행을 저지르니 도둑 중에 제일 큰 도둑이로다.

마지막 도둑은 무엇이더냐,

바로 생각도둑이야, 어리석게도 저놈은 싫다, 저놈은 없애야 한다, 저 혼자 화를 내고 이를 갈고 혼자 난리를 치지," 

 

 

 이 여섯 도둑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씀 하시고, 단속을 잘 하면 복을 받을 것이요. 만일 단속을 제대로 못하면 폐가망신에 지옥행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기복 불교에서 벗어나서 부처님의 자비 행을 행해야 한다고 강조 하셨다,

 

우리가 출가 승속처럼 살 수는 없어도 늘 가슴에 새기면서,  내 몸속 여섯 도둑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내 자신부터 그러하지 못함을

반성하면서, 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도 내 몸속 여섯 도둑을 잘 다스리면서 단속하신다면, 나날이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의 달 5월을 맞이하여 멋진 연휴도 지나가고, 이제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와서, 너무 기름지고 입에 향기로운 음식만 취하지 마시고 현미식 하시고 채식하시고 소식 하시여 내 가족 건강 잘 챙기시고 가내 미소와 행복이 늘 충만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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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열전 아도화상편을 읽었다. " 향은 제 몸 태워 온 세상 향기롭네"란 제목의 이 책은 고구려에서 신라로 불교를 전하신 아도화상님의 이야기가 너무 재밋게 펼쳐진다. 1470년전 태어나면서 부터 묵호자란 별명을 얻으면서 중국 위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사절단으로 온  아굴마와 고구려 궁녀인 고도령의 기구한 만남으로 태어 나서  중국에 가서 대신이 된 아버지를 만나서 그 아들로 중국 궁궐에서

 

벼슬도  하고 호강하면서 살 수 있었지만, 부처님의 광명을 온 몸에 받아 드리는 태몽을 꾸고 아도를 낳았기 때문에 너는 장차 나라 백성과 중생을 구원하는 덕 높으신  큰 스님이 되어야 한다는  어머님의 간곡한 부탁을 져 버릴 수 없기에 모든것을 뿌리치고, 아굴마대신 아버지 덕분에 그때 중국에서 최고의 고승으로 승풍을 날리는 현창화상 밑에서 공부하여 깨치고 고구려로 다시 돌아와서 신라에 불교가 전해지지 않음을 알고 목숨을 걸고 신라로 넘어 오게 된다.신라 19대 눌지왕때 였다.

 

국경을 넘어와서 지금의 경상북도 선산, 옛날의 신라 일선군 모례의 집에서 머슴 아닌 머슴살이를 하면서 가물어 논밭이 다 말라 갈때에 우물을 파게하여 그동네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그 곳간에 쌓인 곡식으로 다 죽어가는 중생을 구하고, 여러 일들을 겪은후에 중국에서 보내온 향이 그때 신라에는 어떤 물건인지를 몰라 나라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을 찾는지라 가르쳐 주었다가 나중에 궁안에 까지 들어 가게

 

되어서 이실직고 부처님이나 천신께 예불을 올릴때 쓰는 향이라고 말하게 되어 졸지에 궁에 갇히게 된다. 참수 당 할 위험에 처했을때 공주가 오랫동안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서 굿 하는 소리가 듣기자 자기가 살릴 수 있다고 말하여, 몇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고 부처님께 기도와 독경으로 으로 공주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임금은 스님과 약조한 절을 세워 주셨다.

 

목숨을 걸고 신라에 불교를 전하시고  도리사를 비릇하여 많은 절을 세우고. 불법을 전하게 되는 그런 숱한 일화들이 재밋게 흥미롭게 써져 있다. 법 높으신 스님의 일대기를 다 말 할 수 없지만 마음에 담아야 할 말들 중에서 몇가지만 여기에 전해본다.

 

 

항상 합장하는 습관을 키우라고 하셨다. 걱정되는 일을 당했을 적에 합장을 하고  놀랏을 적에도 합장을 하면 오만가지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고 , 퉁탕 거렷던 가슴이 편안해져서  근심 걱정을 해결할 방도가 차분하게 떠오를 것이라고 하셨다

남편이 속을 썩여도, 부인이 미워도, 자식이 미울 적에도 ,원수를 만났을 적에도 ...

 

합장을 하면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원망도 미움도 적개심도 억울함도 저절로 사라진다고 하셨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고 해도 얼른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라고 하신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합장을 한 채 하라고 강조 하셨다. 합장을 하라고 누누히 강조하신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일상에서

실천을 하다보면 안좋은 습관이나 행동도 고쳐 지리라고 생각된다.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늘 합장하는 습관을 키우심 좋겠지요. 종교가 달라도 그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모든일에 정성을 기우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 가자는 뜻으로 생각하신다면 좋을듯합니다.

이제 봄도 깊어 갑니다~~늘 고운날 아름다운 날 보내시기를~~ 

 

 

 

 

 제가 보는 책은 신간이 아닙니다. 도서관에서 늘  빌려 보고 있지요." 해우소에서 만난 큰스님" 책을 보았는데, 경봉, 경허, 만공, 만암, 성철 진강, 청담, 효봉 큰스님들의 숨겨진 재미있는 전설같은 일화와 선지식을 찾아가는 정진과정의 치열한 공부하시는 모습과, 종교의 구원과 삶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킨 선승들의 생활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 선의 세계를 일반인들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창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책을 썻다고 한다.

 

지루하지 않고 큰스님들의 새로운 면모와 제자를 인증하고 인증받는 선 문답등은 정말 재미있게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듯하다. 미처 이해할 수 없는 선 문답이 많지만 나름 지은이가 보충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이해하기에도 쉽다. 

책을 보는 중에 정말 재미있는 일화라던지 어떤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에서 책을 빌려간 사람이 무슨 놀부 심뽀인지 책장을 몇장씩 찢어

 

버린듯하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귀한 책을 그것도 정말 재밋는 부분에 가서 찢다니...다른 책도 아니고...이럴수가...

찢은곳이 한두군데가 아님에 정말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적어도 이런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을 정도라면 불자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공중도덕과 책을 빌려 보는 고마움도 모르고 귀한 책을 함부로 찢는 심보는 정말 안보이는 채찍으로 수없이 맞아야 하리라...

너무 좋은 법문이나 일화가 많지만 다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중에 십우도에 대해서 좋은 글이 있어서 옮겨 본다.

 

십우도(十牛圖)
십우도란 본래 도교에서 나온 팔우도(八牛圖)가 그 시작으로 12세기 무렵 중국의 곽암선사(廓庵禪師)가 도교의 소 여덟마리에 두 마리를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완성시켰습니다. 곽암선사가 보기에 도교의 팔우도는 무(無)에서 끝나므로 진정한 진리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 눈에 알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진리, 불교의 진실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소 두 마리에 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교의 팔우도를 무(無)의 결말이라면, 곽암선사의 십우도는 공(空)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십우도는 진리를 찾아가는 이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고, 진리에 임하는 자세를 간곡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①심우(尋牛):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헤매는 것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
②견적(見跡):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③견우(見牛):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④득우(得牛):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⑤목우(牧友):동자승이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으로 변화된다.
⑥기우귀가(騎牛歸家):흰소에 올라탄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⑦망우재인(忘牛在人):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⑧인우구망(人牛俱忘):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빈 원상만 그려져 있다.
⑨반본환원(返本還源):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⑩입전수수: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이나 목동이 포대화상(布袋和尙)과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육도중생의 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글은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쳐 옮겨온 것입니다 그림까지 곁드리기에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생략 했습니다 더 궁금하시면

"십우도"라고 치면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을것입니다.^^ 

 

 경허를 깨닫게 한 콧구멍 뚫을 데가 없는 소는 과연 어떤 소였는지 ...경허는 소 고삐를 매지 않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고삐를 매기 위해 소코에 구멍을 뚫지 않은 것을 견성의 순간에 보았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것을 이야기 하기에는 제 사설이 길어 질듯합니다. 대 선사님들의 일화와 선지식의 향기를 맡고 싶으시다면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보실 수 있을것 같습니다

 

천지에 꽃향기가 그윽한 봄날에 좋은 책 한권 읽어심도 좋겠지요.

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도 맑고 향기로운 고운날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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