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원효는 그릇이 큰 인물 이였다. 그 당시의 신라의 스님들은 당나라에 다녀오지 않으면 요즘말로 쳐주지도 않고 그 어떤 모임이나 자리에도 참석 하지도 못하고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 이였는데, 또한 당나라에 가서 고승 대덕 밑에서 공부를 하고 와야 한자리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음에도 당나라로 의상과 같이 공부하러 길 떠났다가 처음엔 의상이 아파서 돌아 왔었고, 그다음에도 요석 공주가  당나라 사신의 배로 편히 갈 수 있는 배편까지 다 주선해 주었음에도,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학철 대오하시어 돌아오고 말았음이다.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한 지식하고 돌아 온 의상마저도 원효스님의 그 화쟁과, 일심, 무애사상의 반전주의자인 원효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 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승원 작가님이 처음에 말했듯이  역사적 고증과  원효연구서등에 밑바탕 한 많은 책을 읽고, 뛰어난 상상력과 박학다식한  깊이 있는 내용전개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너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하면서 흥미를 더해준다.

 

원효와 의상의 심오한 선문답 대화들을 다 옮길 수 없지만 유학승들이 판치는 황룡사 절에서 백고좌법회를 강설하고 <금강삼매경>을

백성을 위해서 쉽게 풀이해서 죽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지옥에서 만난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준 설법은  법민 임금부터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으니 그 자리 참석한 잘난 척하던 모든 스님들도 그에게 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승원 작가의 상상인지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바위 안에 부처님이 계셔서  그 부처님이 걸어 나오시도록, 밖으로 들어내고 있다는 돌보 원효의 이야기나, 중국에 그 많은 고승을 다 마다하고 신라까지 찾아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중국에서 온 동손스님 이야기나, 그는 원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옆에서 상좌노릇을 했었다 .의상과 선묘와 부석사에 얽힌 이야기, 만파식적 이야기 등...수많은 일화들과 그의 법담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무한히 크고 넓고 깊은 태산같은 넉넉함을 느끼게 해 준다.

 

요석공주가 지어주는 그 어떤 사찰도, 부귀도, 영화도,  다 거절하고 '혈사' 그냥 구명이라고 명명한 작은 곳에서 복성거사라 자칭하며 험한 옷을 뒤집어 입고 성찬도 거절하고 오로지 헐벗고 배우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서  쉽게 풀이한 수많은 경전들의 집필에 혼신의 힘을 다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몸을 들개에게 내어준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들개를 잡아서 모두 같이 나누어 먹은 그 과보를 참회 하면서, 빚을 갚아야 한다고....

 

큰 인물 원효를 한평생 사모한 요석공주는 운향스님이 되어 평생을 그의 곁에서 그가 집필하고 공부하도록 그림자처럼 내조를 한 훌륭한 여성이었다. 소설 원효는 요즘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미실이 이야기라 던지 그 시대의 생활 풍습, 권력을 잡기 위해서  정략결혼으로 엮어져 있는 왕실의 복잡한 애정관계와 스님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여주기도 하고, 마지막에 ‘원효와의 인터뷰’란 장이 있는데 원효가 지금 우리 앞에 살아서 작가가 궁금해 하는 많은 질문에 보충 설명을 해 주고 있어서 흥미롭게 그를 다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원효를 좋아 하신다면 한번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1,2,3,권으로 되어 있어서 좀 많고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토지’나 ‘태백산맥’ ‘혼 불’ 등에 비하면 정말 많은 권수는 아니라고 본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아주 흥미롭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면서,  그저 저 잘났다고 목소리 높이면서 다투기만  하기 보다는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화쟁으로 해결하려 했던 원효님의 큰 마음을 본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 하면서...

언제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벌서 주말이네요.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멋진 주말 보내시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