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보고 있는 법의 향기에 실린 글이다. 기름장사가 살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번창하다가 2-3년 전후하여 기름도 팔리지 않고 손님도 끊어지고 기름을 넣어 두었던 큰 독 3 개도 어떻게 구멍이 났는지 기름도 다 새고 말았는데 근처에 있는 형님의 쌀가게가 있는데 2-3년 사이에 손님이 넘치고 창고도 늘어났는데 형님하고는 쌍둥이로 태어나서 똑 같은 일을 하고 똑 같은 생활을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형님은 번창하고 자신은 망하는지 부처님 앞에서 하소연을 하였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아주 어린 5살 때 아버지와 같이 수레를 타고 시장에 갔는데

아버지는 수레를 세워 놓고 물건을 사러 가고, 너희 형제는 수레 위에서 시장을 살펴보았는데

그때 수레를 힘겹게 끄는 늙은 말을 본 것이다. 짐은 산더미처럼 실렸고 늙은 말은 헐떡거리면서

괴로워하는데 마부는 사정없이 말을 때리며 욕을 하고 또 막대기로 후려치니 말 등에서 피가 나는 비참한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두 형제는 고통스러운 말의 힘든 장면을 똑 같이 보았지만 두 형제의 마음은 똑 같지 않았다. 형은 말의 괴로운 광경을 보고 그 말을 위해서 마부가 매를 그쳐 주기를 마음으로 빌었고 그 말의 괴로운 모습을 생각하며 밥맛도 없었는데 너는 그 말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재미있다고 박수를 쳤으며 쓰러질 때 이제 저 말은 쓸모없는 것이라 비웃었고 매질을 당하여 피를 흘릴 때는 고소하다고 생각했고 집으로 돌아 와서도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똑같이 재산을 상속 하였다. 서로 마주볼 수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쌀가게와 기름가게를 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과거에

마음속으로 지은 업이 달랐기 때문에 형은 생명 있는 것의 고통을 보고 가엾고 슬픈 생각에 용서해 주었으면 하는 착한 마음의 씨 세 가지 좋은 과보를 가져온 것이고 , 너는 가엾은 말을 보고 오히려 재미있어 하여 웃고, 기분 좋게 생각했던 세 가지의 사특한 마음이 종자가 되어 세 개의 기름통에 구멍이 나고 손님이 줄어들어 가난하게 된 것 이다 하였다.

 

우리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죄업이 얼마나 큰지는 잘 알고 있지만 과거 전세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 한 생각으로 지은 죄업이 이리 큰지는 또한 모르고 살게 마련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죄업까지도 참회 하여야 함을 깨닫게 된다. 하물며 기억하는 죄업이야 얼마나 크겠는가....

헷세는 지은 죄 위에 새 죄를 쌓아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지은 죄업이야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지금 부터라도 더 이상 죄 짓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람 한다.

 

지은 죄업은 선업으로 감해 갈 수 있다고도 한다. 착한 생각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도 선업임을 깨닫게 된다. 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서는 언젠가 제 글에서 무상의 7보시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꼭 돈을 들여서 보시를 하지 않아도 우리가 매일 지을 수 있는 선업이 많다는 것을 명심 하시고 늘 맑고 향기로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시기를 바람하면서....

새로운 한 주 힘차게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웃음으로 시작 하시기를 서원 드리면서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지인의 추천으로 00은행에 입사하여 2년 반 동안을 아주 재미있게 직장 생활을 했다. 결혼한 후에 놀다가 다시 여대생들과 생활을 하니 너무 재미있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후에 은행 측에서 모든 서류를 다 컴퓨터에 입력하는 시스템을 마치게 되어서 그만 둘 때 까지 딸애랑 6개월 동안 같은 직장에 다녔었다.

 

그만 둔 후에 정부보조금으로 재취업을 위해서 무언가 새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요리학원에 6개월간 다녀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내가 다니던 절 유치원에서 조리사직을 6개월 쯤 했다. 나름 재미있고 아이들이 내가 만들어준 음식이 맛있다고 조리실에 와서까지 인사를 할 때는 흐뭇하니 기분이 좋았다.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와서 그만두기 까지는 이 병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2006년 정확히 10월말 쯤 이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일을 하려니 너무 목이 아파서 추석을 지난 후에 그만 두고 대구에 내려가서 친구들을 만나서 쉬면서 한의에 가서 침이나 좀 맞아야 되겠다고 했더니 중학교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그냥 침을 맞지 말고 자세한 사진을 찍어 보고 침을 맞던지 하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올라 와서 동네 서울대 출신 의사가 하는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희귀난치성 질환인 후종 인대 골화증 이란 병 같다고 하면서 당장 서울대 병원에 전화 접수해서 자기 은사인 교수님을 찾아 가라고 했다. 서울대는 한두달은 기다려야 하니 자기가 동문접수로 전화로 미리 접수를 해 주겠다고 하신다.

 

희귀난치성질환이란 말만 듣고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주 몹쓸 병에 걸린 거라고....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그 어떤 약도 없고 원인도 모르고....병이 진행되면 사지 마비가 온다는 무서운 사실과 사지 마비가 되면 유일하게 수술을 해야 된다는 것 정도만 나와 있었다.

 

그날로 밥도 먹히지 않고 나오는 건 눈물뿐이고 밤에 잠도 안 오고...곧 오늘 내일 죽을 것처럼 .....

온 집이 초상집 분위기이다. 아들은 아는 교수님한테 물어 보고....한뭉치 복사를 해왔다 그 병 원인과 증상에 대해서....우리나라에는 흔치 않고 일본에서는 많이 걸리는 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알려진 자료도 많지 않고 말 그대로 희귀난치성질환이라는 글만....

 

서울대병원에 예약하고 간 날에 조수선생님께 엑스레이를 보여주고 추천서도 보여 주고 순서를 기다리다 주치의를 만났는데 청진기도 갖다 대지도 않고 그냥 양 손을 폈다가 오무렸다 가를 빨리 해 보라고 하신다. 그러더니 그게 빨리 안 될 때 그때 다시 와서 수술을 받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볼 때는 후종인대골화증이 틀림없는데 MRI촬영 한번 해보지 뭐 그러면서 스케줄보고 촬영 날짜를 받으라고 하고는 다른 말씀도 없이 진료는 끝났다.

 

몇 날 며칠 불안하고 초조하게 울면서 보냈는데...후련한 이야기도 없고 그렇게 진료는 끝나고 한달을 기다려 MRI사진을  찍었다.  숨을 들이쉬라 내쉬라 참어라 침을 삼키지 말라....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또 한 달을 기다려 후종인대골화증이 확실하고 좀 많이 진행이 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동네 병원에 가서 처음 그 의사에게 들어 보라고 한다.

 

마침 남원 이모님이 서울에 오셔서 그때 척추수술을 하셨는데 내 진료 날짜와 같아서 병원에 갈려고 했는데 갈 수가 없어서 이모님께 대충 이야기를 하고 엄마한테는 아무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모님께서 엄마한테 내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엄마가 전화 와서는 나보다 더 애통 절통 울고불고 난리셨다. 왜 나이 많은 내가 그런 병에 걸리지 앞길이 구만리 같은 네가 그런 병에 걸렸냐고....여동생까지도 전화오고... 친가 쪽으로도 남편이 대충 이야기를 해서 모두 걱정을 하고 ....나 자신부터도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매일 아무리 참아도 눈물만 흘러내리고...먹지도 잠자지도 못하고...그렇게 긴 시간들이 지나갔다.

 

엄마는 매일 전화 와서는 병이 있음 약이 있지 왜 약이 없느냐고....한의에 가서 알아보라고....매일 그냥 있지 말고 다른 큰 병원에 가서 새로 진찰 받아 보라고...오진일 수도 있다고...한 병원에만 가면 안 된다고....매일 성화인지라 정말 경희대한방병원에도 가보고....우리나라에서 좀 크다는 병원은 몇군데 더 가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같고 어떤 병원은 이런 병 자체를 처음 들어 본다는 곳도...

 

그러던 중에 동네 아는 동생이 언니 그 병이 티브이에 나왔다고 하면서 인터넷에 그 병을 앓는 사람들 카페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후종인대골화증이라고 치니 정말 카페가 있는게 아닌가? 너무 반가워서 그날로 회원 가입을 하고 그곳에 들어가서 글을 보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그 병에 전문의가 어느 분인지도...

 

세미나도 열고 훌륭하신 회장님을 만나 뵙고 많은 상식과 병에 대한 불안감에서 조금은 벗어 날 수 있었다고나 할까....당장 죽는 병도 아니거니와 최악의 경우에 사지마비가 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되기 전까지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는 것도....단지 수술 받은 후에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분도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언제 사지마비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어떤 내가 아는 분은 출근길에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때 다쳐서 여기저기 검사를 하던 중에 후종인대골화증이란 병이 자기가 걸렸다는 것을 알았고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에도 목이 불편하고 항상 팔다리가 아플 뿐 아니라 걸음도 그리 경쾌하게 걷지 못하신다.

 

세미나에 가면 정말 멀쩡하게 수술 받고 직장에 잘 다니는 분도 계시고, 또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분도 계신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의 바람은 그냥 수술 받지 않고 살기를 희망하지만...의사 성생님 말씀이 나이가 들은 환자 중에는 질환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중단 되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실제 그런 분이 2분이 계신다는 것이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람 하지만... 내가 이병에 걸린 후 착한 딸의 효도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른다. 화주경락이라고 한번 받는데 꽤 비싼 그 경락을 한번 받아 보자고 하여 받아보니 좋다고 했더니 목돈을 들여서 열번을 받아 보도록 했고, 한번 받아서 안 되니 두 번 세 번 열번씩 더 받으라고 하여 절대로 안 받겠다고 했더니 울면서 천만 원이 들어도 수술 안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그냥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안 받는다고 했더니, 이번엔 서울 모 화장품 회사에서 일 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 등 쪽 경락 포함해서 얼굴 마사지까지 받는 vip회원권을 큰 돈을 드려서 일 년간 받도록 해 주었다. 돈 모아서 시집가야 할 딸이 남자 친구도 없이 매일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다니면서 모운 돈으로 엄마를 위해서 그렇게 다 내어 놓고 있으니....

 

그뿐인가 매년 휴가 때 마다 엄마와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내심 엄마가 목 수술을 하기 전에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딸을 매일 빨리 하지 않는다고 나무람만 하는 엄마지만 딸의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며칠 전 무리해서 딸 방을 옮겨 준 것도 혹여나 내가 갑자기 수술을 받게라도 되면 누가 그렇게 해 줄까 싶어서....수술 받기 전에 내가 해야 할 큰일들을 마무리 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그 병으로 확정 받고 나서 아들 딸 보고 빨리 장가가고 시집가라고 했었다. 이제 딸만 결혼 시키면 내가 해야 할 큰일들은 다 한 것 같은 안도감이 들겠는데....딸은 남자 친구도 없고.....

조금만 무리해서 일하면 목이 너무 아프다. 내가 이병을 알고 나서 좋은 점도 하나 생겼다.

정말 마음을 비우고 욕심 없이 착하게 살고 있다고나 할까...건강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나 자신도 지금의 이 상태로도 (목 뒤에 작은 벽돌 하나가 달려 있는 듯 한 무거운 기분과 항상 목이 당기는 듯 아픔) 수술 하지 않고 살 수 만 있다면 하는 바람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정말 착하게 살아 갈 수 있는데.....이따금씩 손발에 쥐가 나고 마비가 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병을 알고 3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지금까지 건재함도 다 부처님의 공덕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장황하게 긴 글을 써는 이유는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건강한 몸으로 살고 계심을 정말 고맙게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늘 착하게 베풀면서 웃으면서 사시기를 바람하기 때문이다.  정말 살다가 언제 자신도 원치 않을 병이 찾아 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몸이 안 좋으니 부녀회에서 하던 봉사 활동도 못하고 그 어떤 일도 못하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모든 활동을 접었다. 겉은 멀쩡한데 어디 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으려니 맘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한번씩 목을 뒤로 젖혀 주어야 조금 시원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자주 목을 뒤로 젖혀 보지만 그리 시원하진 않다. 요즘은 조금 더 진행이 되었는지 누워도 그리 편치를 않다.

 

그리고 건강할 때 봉사 활동도 많이 하시고....그렇게 좋아 하던 산에도 가지 말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 하셨다. 만약에 넘어지면 정말 큰 일 이라고 하시니....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서 내 병을 잊고 살려고 하지만 .... 그래서 학교 운동장을 도는 정도의 운동만 ....지난날의 반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로 일상을 채우려 하고 있다. 지금의 내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 정도만 하면서....

 

고운님들께 매일 올리던 글도 요즘 들어서 자주 올리지 못함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면서.....

그래도 저는 아주 명랑하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아직은 건강한 몸을 감사한 마음으로 귀히 생각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 하지 마시기를....그리고 정말 건강은 건강 할 때 지키시고, 소식하시고, 술, 담배 끊으시고, 건강에 힘 써시며 봉사도 많이 하시는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긴 글 읽어 주시어 감사 합니다. 늘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내게는 이상한 병이 있다. 한번씩 집을 바꾸는 일이다. 주로 거실의 쇼파를 옮긴다던지 거실장의 위치를 바꾸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식구들은 모두 깜짝 놀라면서 혼자서 어떻게 옮겼냐고 허리 다친다고 하지 말라고 아들이나 딸은 걱정하는데 남편은 눈하나 깜짝 안하고 예전부터 장군인데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놀라지도 않는다.

 

매번 물건들을 혼자서 끙끙대며 옮길 때마다 다시는 내가 이 짓을 안 한다고 맹서를 하곤 하면서도 또 그 병이 도지곤 하는데, 아들이 결혼하여 나가고 나니 딸 방 보다는 아들 방이 더 넓기도 하고 딸 방보다 더 따뜻하기도 하여서 딸애를 아들 방으로 옮겨 줄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름에 꼭대기 층에서 비가 샌다고 수리를 했는데, 요즘 들어 딸애가 방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여서 아무래도 책장 뒤를 한번 봐야 할 것 같아서 갑자기 혼자서 딸애 방 짐을 아들 방으로 다 옮겼다.

 

두터운 방석과 카페트로 받치고, 밀고, 당기고, 하면서 딸애 옷들과 책들을 옮긴다고 아침부터 오후까지 종일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저녁에 퇴근해 온 딸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혼자서 옮길 생각을 하셨냐고 기분은 너무 좋은데 엄마가 너무 무리했다고 다시는 혼자서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정말 이제 다시는 혼자서 이런 골병 들 일을 벌이지 않을 거라고 또 맹서를 했다.

 

정말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너무 힘들었다. 컴퓨터를 다시 조립할 줄도 모르거니와 사람을 부르기도 그래서, 그 복잡한 선을 건드리지 않고 책장과 책상을 옮겨 놓고,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를 옮긴다고 정말 힘들었다. 걸상위에 모니터를 싣고 책상과 연결해서 본체와 옮긴다고....이해가 잘 안되시겠지만.... 딸은 방을 옮기면 컴퓨터가 안 될 줄 알았는데 컴이 된다니까 와아 정말 우리엄마 대단 하시다면서 너무 좋아라한다.

 

이제는 정말 엄마 사전에 방 옮기는 건 없다고 다시 또 한번 큰 소리 쳤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정말 이 병도 이제는 고쳐야 할 가 보다. 행여 저 같은 병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너무 무리 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딸을 보니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흐뭇하다. 누가 시켜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한다고 펄펄 뛸 일을 내가 하고 싶어서 하고 나니 아파도 누구 탓도 못하고....

 

짐을 다 옮겨 놓고 대 청소를 하고 걸레질까지 하고 나니 오후 7시가 다 되었다. 책장 뒤 벽지도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있는데다 장판을 들치니 곰팡이가 피어 있다. 그러니까 딸 방에만 들어가면 곰팡이냄새가 날 수 밖에... 며칠 말리고 새로 그 부분만 포인트 벽지라도 사서 발라야 할 가 보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늘 감사하는 마음과,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신종 플로도 물리치시기를 빌면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이모님께서 직접 밭에서 재배한 고구마와 손수 만드신 사과식초 큰 병 한통과 종류가 틀리는 식초 작은 병 하나를 보내 오셨다. 잠시도 가만히 놀고 있지 않는 부지런한 외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이모라고 예외도 아니시다. 어쩌면 외갓집 딸들 중에서도 제일 부지런한 남원 이모님은 내가 엄마만큼 좋아 하는 분이시다.

 

 

 

 

이모님과의 따뜻한 추억은 정말 너무나 많다. 해병대에 계시다 제대하신 이모부와 이모님이 처음 사귀고 있었을 그 때가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때 난생 처음 진해로 혼자 여행을 해서 이모부를 상봉 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모부님은 나의 팬이 되었다. 그때 대구에서 진해로 기차를 타고 가려면 삼량진에서 한번 갈아타야 했고 또 마산에서 또 기차를 바꾸어 타야 했다.

 

 

 

 

 

난생처음 혼자서 그렇게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진해까지 찾아 갔다는 점을 이모부께서는 너무 대견해 하셨고, 태어나서 바다를 처음 본다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정말 좋은 곳 다 구경시켜 주었다. 약간 소강상태에 있던 두 분의 사이가 나의 활약으로 다시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그 후 이모부가 월남전에 참전 하셨을 때 나의 위문편지가 이모 대신에 숱하게 전 해 졌고 이모부께서는 귀국 하시는 날 내게 정말 예쁜 방개 모양의 멋진 보라색 시계 목걸이와 다른 선물 한 보따리를 안겨 주었다.

 

 

 

 

그 후 두 분은 결혼 하셔서 아들 둘 낳고 딸 하나 낳아서 잘 사시는데 큰 아들은 박사학위까지 따서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 그동안 그 뒷바라지하신 두 분의 수고도 대단하시지만 그 천성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시는 이모님은 남원 콘도에서 대형 마트를 운영 하시면서도 거의 버려진 돌과 자갈투성이 땅을 개간하셔서 그곳에 농작물을 키운다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우려 지금은 멋진 밭이 되어서 그곳에서 수확한 고구마나 옥수수 콩 깨 ...등 수확을 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온정을 나누어 갈라 주고 있다.

 

 

 

 

 

그런데 올해 이후로는 그 귀한 보약 같은 농작물을 못 얻어먹게 되었다. 그 땽 주인이 자기네 땅에 농사는 짓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심어놓은 고추밭을 뒤집어엎어 버렸다고 한다. 황폐한 땅을 옥토로 만든다고 기우린 그 정성이 십년 가까이 되는데....한약 찌꺼기나 황토를 갖다 붓고 땅에 기우린 피와 땀을 나 몰라라 하고 그동안 공짜로 지어먹은 농산물 값을 내어 놓아 라고 한다니....정말 인면수심이 아닐 수 없다.

 

 

 

 

건물을 새로 지어서 처음엔 전세를 싸게 주다가 그곳이 장사가 잘 되면 엄청 비싸게 올려서 세 든 사람을 내쫓는 그런 있는 자의 횡포를 많이 들어 왔다. 그거나 무어가 틀리는가 싶다. 그렇게 다른 한 편을 가슴 아프게 피눈물 나게 하면서 얼마나 잘 살려고 그러는지.... 세상은 늘 불공평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다.

 

 

 

 

이모님의 땀과 수고로움 덕으로 우리는 맛있는 고구마를 잘 먹고 있지만 척추 수술까지 하시고도 그래도 이젠 제발 그만 좀 쉬라고 하셔도 그렇게 일만 하시는데 한편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땅이 없으면 농사도 그만 짓고 서울로 오셔서 편히 살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슈퍼도 하지 않으시니...70이 넘으신 노인인데도 그래도 그 근면성은 늙지도 않는 것 같다.

 

 이모님!!! 이제 제발 편히 건강만 힘쓰시면서 여생을 여유롭게 여행도 다니시고 미국도 한번 다녀오시고 그렇게 유유자적 지내시기를 빕니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바쁜 가운데 여유를 가지시고 너무 내 욕심만 차리지 않는 고운 심성으로 지금은 조금 내가 손해 본다 싶어도 긴 세월 지난 후에 아 그때 내가 정말 그렇게 잘 했다 싶은 ...

 

그런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날씨가 비가 올 것 같은데 우산도 잘 챙기시고,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ps;  어제는 종일 고구마를 3번이나 쪄서 엄마표 고구마젤리를 만들려고 말리고 있다 ^^ 

 

 

 

 

 

 

 

   대구 친정 엄마는 신종플루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갔다가 11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생병이 났다는 것이다. 80넘은 노인네 3명이서 택시를 타고 아침 일찍 새벽밥을 해 먹고 보건소로 갔다는데도 사람들 줄이 무슨 난리 난 것 처럼 많이 늘어서서 앉을 곳도 없고 그냥 노인네들이 기다리다가 도려 감기가 걸렸다고 하시니.....

 

어제부터 뉴스에 20대 여성이 뇌로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죽었다는 보도가 아침에도 또 나온다.

정말이지 매일같이 뉴스를 들으니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의료 사업도 발달되고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도 여름부터 신종플루이야기가 나왔음에도 날씨가 추워지니 금방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좀 더 일찍 정부 차원에서 비상대비책이 마련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더 빠르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라도 예방약 보급과 연세 드신 분들을 우선적으로 예방 주사를 놓아 주는 그런 방침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추운 아침에 11시간이나 기다려서 예방 주사 맞고 와서 며칠을 끙끙 앓아눕는 일이 없어야 되겠다.

 

요즘 병원에 가려면 사실 마음이 좀 그렇다. 어지간하면 조용히 집에서 지내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손 씻는 물 소독제도 하나 사 왔다. 비누로 씻는 것 보다는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기도 하다. 대구 큰 고모님은 요즘 다시 학교에 나가시는데 학교가 비상이라고 한다.

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난리라고 한다. 학부모 연락해서 병원으로 보내고...아침마다 학생들 체온 조사하고...

 

추워지면 더 극성을 부린다는 신종플로도 철저한 예방과 깨끗히 손 씻고 든든히 영양을 취하고

무엇보다도 뜨거운 사랑의 엔돌핀으로 무장하고 있는 곳에는 발붙이지 못 할 것 같기도 하다.

풍요로운 가을 날 우리네 맘 속 식지 않는 뜨거운 사랑과 고운 정도 넉넉히 베풀고 다독이면서

신종플로를 물리쳤으면 싶다.

 

늘 잊지 않고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서도 열심히 손 씻고 충분한 영양도 취하시고

스트레스 없는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 보내시면서 신종플로를 이겨 내시기 바람하면서.........

어제보다 더 많이 행복한 오늘이 되시기를~~~*^^*~~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조금 친하게 지내던 블로거들이 며칠 소식이 뜸하더니 생각나서 찾아 가면 비공개가 되어 있으니.... 저작권 침해 문제로 그런 일들이 많아 졌는데...집안에 큰 일 때문에 얼마 동안 블로그를 챙기지 못한 사이에 그렇게 선배님 하면서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던 해바라기님의 블로그가 생각나서 가보니 비공개로 되어 있다.

 

시험공부 한다는 소식 이후로는 영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전화번호는 알고 있지만 굳이 전화해서 무슨 까닭인지 묻기도 그래서 참고 있는데, 머잖아 좋은 소식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

블로그도 서로 안부와 인사를 자주 나누어야 하는데... 그리하지 못하니...

 

살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억지로 안 되는 것이 또한 인생이고 삶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되어 간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 또한 하늘의 뜻이라고 ....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다 신의 뜻이라고나 할까...요즘 보고 있는 책에서는 신의 뜻이란 것 자체가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은 다 내 맘 움직임 따라서 인과 연이 기다리다 어느 시점에 닿아서 행함이 이루어 진다 고나 할까....떠나면 떠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만남 또한 만나야 할 인연이 닿은 것이고....

모든 것에 너무 얽어 메이지도 집착 하지도 말고, 담담히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게 맑게 비우면서 살고 싶다고 바람 해 본다.

 

그리 사무치게 그리울 것도, 내 것이라고 움켜잡을 욕심내고 싶은 그 무엇도, 이제는 별로 없는 것도 같다. 뭐 그리 목숨 걸고 사랑 할 것도, 죽도록 미워 할 것도 만들지 말고, 출렁이지 않는 마음의 고요를 귀히 여기며 그저 지족하면서, 착하게, 맑고, 향기롭게 살고 싶은 욕심뿐.....

 

금모래님의 글처럼 지나온 잘못한 발자국들 지워 가고 싶을 뿐 이라고....

건강하게 나이보다 조금은 곱게 늙어 가고 싶다고 욕심내어 본다.

마음의 열망은 책으로 달랠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 앞에서 마음마저 넉넉해져 오는듯하다. 푸르디푸른 청명한 가을 하늘을 욕심껏 껴안으며 오늘의 허락된 건강에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두 손 모아 그냥 살아 있음의 행복을 눈물겹게 고마워하면서 지족하는 마음의 여유로 모든 만다라에 고요한 눈인사를 보낸다.

 

오늘도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벌서 주말이네요 오후 늦게 부터는 비가 온다고 하니 우산 챙기시고... 

황금빛 벼가 익어가는 멋진 가을 들판이나 단풍이 손짓하는 산행이라도.....

늘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맑고 향기로운 고운 주말 보내시기를~~~~

 

 

 

  올해 들어서 몇 번이나 서울 고등 법원에 다녀 올 일이 생겼다. 재판정에 참관인으로 다녀 왔는데, 대쪽 같은 우리 스승님이 종단과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담당 판사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셨는데 늘 재판 시작하기 전에 자신도 불법과 인연이 두텁다고 조모님 이야기부터 여러 좋은 말씀을 장황히 해 주시면서, 종교인들의 반성과 화해를 촉구 하셨다.

 

 

어찌 보면 기가 찰 노릇임에 분명하다. 일반인이 아닌 종교 재판이 판사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여러 사학이나 종파를 초월하여 수많은 분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 이셨다.

특히 종교단체는 그 종단의 윗분들의 것이 아니고 정말 한푼 두푼 아껴서 보시한 종단 보살들의 재산인데 왜 위 대가리들이 그걸로 싸우고 서로 옳다고 다투느냐 한심 하다고...

 

그러면서도 당신들이 보살들 앞에서 설법을 할 수 있느냐고...늘 법 높은 스승님 보다 더 한 수 높은 설법을 해 주시는데, 이번에는 다른 법관이 신문에 쓴 글을 읽어 주셨다. 대충 기억 하자면.....

 

10명이 살고 있는 한 마을에 혼자서 농사지을 때보다 공동으로 농사를 짓자고 하여 더 많은 수확이 나와서 모두 똑 같이 10등분 하여서 나누어 가졌다. 그중 한사람 갑은 그 곡식을 다 먹지 않고 비축해 두었다. 그런데 나머지 9사람은 다 먹어 치웠다.

 

이듬해 봄에 춘궁기가 왔다. 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 갑 집에 쌀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회의를 해서 그 갑이 가진 쌀을 공평하게 10분이 1씩 나누어 갖자고 투표를 하여서 9명이 찬성하고 1명 갑만 반대했지만 통과 되어서 그렇게 나누어 가졌다.

 

또 가을에 추수를 하여 똑 같이 나누어 가졌는데 이번에는 갑은 쌀을 다 먹어 버렸고, 나머지 9명은 곡식을 남겨 두었다. 봄에 춘궁기가 닥쳐서 갑은 9명이 가진 쌀을 자기에게 좀 나누어 줄지 알았는데, 또 투표를 해서 이번에는 모두 나누지 말자는 쪽으로 9명이 찬성하고 한명 갑만 반대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다수가 찬성한다고 하여 그 판결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자신의 논문에 지금까지도 연구 과제라는 것으로 법관의 고뇌랄까 인간적 양심에 대해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그 억울한 한 명을 위해서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그런 좋은 법관이 되어야 겠다는...

 

종단이 판사님이 화해의 조건을 제시하라는 답에 대해서 지금 현직 스승님이 200명 재직자중 160여명이 반대한다는 조건 제시에 대한 우회적인 말씀 이셧다. 자신의 이해 관계나 얼키고 설킨 자녀손들의 밥줄이 떨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행해진 그 숫자를 어이 신뢰 하겠는가? 종단 측에서는 왜 전직 최고 스승님 자리에 까지 오르신 큰 스승님을 내 칠 생각만 하고 있는지...

 

우리가 파이로트를 한명 키우려면 몇 십억이 든다고 한다. 그도 그런데 하물며 종단의 최고 지도자 큰 인물을 한사람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세월이 필요하겠는가? 왜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지...한심한 생각이 든다. 정당하다면 왜 떳떳이 그 사람을 들여서 서로 토론하고 합의하여 내 생각과 틀려도 귀 기우려 주고 서로 잘잘못 시시비비를 가려서 바르게 나아갈 생각을 안 하는지...

 

우리는 흔히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고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적대 관계과 되기 쉽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내적 성숙이랄까 그런 쪽으로 마음이 돌아가고 있다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인척지간에 환영 받지 못하는 손위 형님이 계시는데 그걸 사사건건 따지려 들면 내 맘이 옹졸해 지기까지 하여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그것도 병이다 하고 생각하니 편해진다. 그게 병인걸 어쩌겠는가....자신이 결코 고치고 싶지 않은 불치병...그게 또 유전성이 깊은 것이 유감이지만...그걸 보고 자란 조카들이 그대로 행동하고 있음이 걱정이지만...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서는 나를 귀하게 생각하면서, 남도 배려하는 성숙된 인간으로  깊어 가는 가을과 더불어  넉넉한 인품으로 고운 하루 보내시고

늘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

 

 

 

 

 

 

 

 

 

고 반야지 보살님 최 경분 여사 49제 회향일을 맞으며

 

 

 

어머님!

어머님 가신 극락세계에도

노란 은행잎 비단처럼 깔리고

울긋불긋 단풍은 추억을 애타게 부르는가요?

 

천지엔 가을빛이 무르익어

오곡백과 풍성한데

먼 여행을 떠나신 듯

"야들아 ! " 하시며 지금이라도

웃으시며 돌아오실 것만 같은데...

 

벌서 49제 회향 일을 맞았습니다

언제나 넉넉한 가슴으로 여유롭게 맞아 주시던

다정한 그 음성 다시 들을 길 없고

따뜻한 그 손길 다시 만질 수 없는데...

 

탐스런 빨간 사과만 보아도

어머님께서 사과를 좋아 하셨는데...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책을 읽고 계신

멋진 모습만 뵈어도

아 우리 어머님께서도 책 읽기를 좋아 하셨는데....

잘 손질된 빳빳한 이불깃을 만지면서도

어머님을 느낍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이렇게도 날이 갈수록 사무치게

삶의 길목에서

아련한 슬픔에 목이 메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님!

언제 까지나 울고만 있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님께서 저희들에게 평생으로 보여주신

잠시라도 쉬지 않고 근검절약 부지런히 살아오신

숱한 가르침

 

내 자식뿐 아니라 집안 사촌 조카들까지도

거두고 챙겨주신 다정다감하신 푸근한 인정미

그 아픈 병고 속에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열심히 정진하시던 그 모습

어느 것 하나 어이 잊을 수 있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

숱한 잘못과 응석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언제 까지나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줄만 믿고

내일로 미룬 못 다한 불효 용서 하소서

부디 이세상의 숱한 미련 다 거두시고

저희들 걱정은 이제 잊으소서

 

어머님께서 저희들 가슴에 심어주신

심인진리 잘 갈고 닦아

집안에 융기 있고 화목하게 잘 살겠나이다

자녀 손들 나라에 동량이 될 인물로

훌륭히 키우겠습니다

 

아직은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정진 하겠습니다

어머님!

부디 이고득락 왕생성불 하시옵소서!

언제나 우리는 추억 속에서

어머님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어머님은 우리들 가슴속 깊이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반야지 보살님! 최 경분 여사 우리어머님!

왕생성불 하시옵소서!

왕생성불 하시옵소서!

왕생성불 하시옵소서!

 

 

1995년 11월 5일 셋째며느리000올림

<음력 8월 25일>

 

 

 

  어제는 어머님 기제일이였다. 오래전 어머님 49제때 쓴 글을 다시 올려 보았다.

불심이 깊고 살아생전 열심히 정진하신 어머님은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시리라 생각 한다. 빗속에 멀리서 오신 애들 고모네와 대구 삼촌 모두 고맙다. 계속되는 집안 행사가 끝이 없다. 또 머잖아 대구 형님 댁 잔치도 있고...

 

블로그에 글도 매일 올리지도 못하고....며칠 전 연속극 이야기를 올렸더니 3천명이 넘게 블로그에 오신 것 같다. 다들 연예 프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만큼 그 연속극이 인기가 많았는지 미처 몰랐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자나 여자나 연속극을 많이 보게 된다고도 한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서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좋은 책과도 가까이 하시는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 보내시고, 늘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빌면서.... 너무 바빠서 답 글도 못 올리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솔약국집 아들들 연속극이 오늘 끝났다. 극중 시어머니로 나오는 옥희(윤미라)의 독백이 가슴에 남는다. " 매일 아들들을 패기나 하고 고함지르고 싸우고 욕하면서 힘들게 키웠지만, 그래도 아들들 잘 키워서 좋은 짝들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자기들 맡은 분야에서 다 잘 하고 있으니 자기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는 마지막 말에서 평범한 우리 엄마 세대나 우리 세대의 이야기 같아서 공감하는바가 크다.

 

한동네에 사는 사돈이자 친구인 유별난 부인과 그리 정이 깊지도 못한 친구가 하나 딸 자기집에 보내놓고 적막강산으로 지내고 있는 것을 본 백일섭 시아버지가  친구에게 3째아들 보내주고  고3인 막내는 군에 간 친구가 사고 쳐서 낳은 갓난쟁이  딸을 맡아서 집으로 데려오고. 큰아들은 순진하고 착하기만 해서 선을 봐도 차이기나 하고...

 

여러 가지 사건과 사연, 갈등 뒤에 큰 아들은 앞집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올케마저 죽고 오빠와 조카가 둘이나 있는 아가씨라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아들이 좋다하니... 오늘 마지막 회에 인물 좋고 학벌 좋고 의대까지 나온 제일 괜찮은 2째 아들은 실속 없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다가 다 떠나 보내고,..  

 

사연 많은 간호사 아가씨가 좋다고 매달릴 땐 밀어 내다가 떠나고 나서야 그런 여자 없음을 깨닫게 되고 찾아 헤매다 만나게 되지만 예전에 그 간호사가 아닌 병원장의 딸 이였으며 정식 의사라는 사실과 2째 대풍을 본척만척 무시하기까지...

 

그렇게 얽히고설킨 극이 재미를 더해 가다가 모든 것이 해피엔드로 마무리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하나같이 착하기만 하고 사회에 적응도 잘 못 할 것 같은 아들들이 다 그 착함을 알아보는 상대를 만나서 결혼하고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러는 중에 한 인간으로 성숙해가면서 어른이 되어 가고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가면서 갈등하는 가운데도 가족 간의 사랑과 어른을 공경하고,  불쌍하고 힘든 사람을 도우면서 이웃 간에 정을 나누는 가슴 훈훈해지는 좋은 드라마였다.

 

오빠는 아프고 조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첫 며느리를 친정에 가서 살다가 오빠가 재혼하고 조카들이 다 크게 되면 그때 들어오라고  보내면서 옥희가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내린다. 지금 내가 너를 조금 봐주는 대신에 먼 훗날 내가 너를 필요로 할 때 다른 며느리들 보다 네가 나를 진정으로 조금 더 생각해주고 챙겨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나온다.

 

내 아들이라고 끼고 살지 않고 형편 따라 마음을 넓게 사랑을 나눌 줄 아는 그런 바람직하고 심성 고운 새 시대의 시어머니 상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공익 방송으로서 사회에 귀감이 되는 훈훈하고 따뜻한 착한 심성의 사람들이 다 잘 풀리고 잘 사는 권선징악을 그린,  그런 소재의 연속극을  주말 드라마로 보여 주어서 고맙다. 끝으로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그런 멋진 다음 연속극을 기대 하면서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방문해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이제 10월도 깊어 갑니다.  오늘 새 애기와 아들이 결혼 후 처음으로 집에 왔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일주일간 칩거 후 어제 사돈댁에서 자고 오늘 우리 집에 왔는데, 다 생략하자고 했는데도 사돈이 선물을 많이 챙겨 보냈다. 집안에 행사가 계속  겹치어 피곤 하긴 해도 이런 것이 또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늘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고...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 보내시기를~~*^^*~~

 

 

 

  어제 아침밥을 먹으면서 연속극을 보는데 밑에 자막으로 남태평양 강진으로 한국 사람도 몇명 희생이 되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가슴이 철렁했다. 신혼 여행지와 가까운 것 같아서이다. 부랴 부랴 여행사에 전화를 하고 아들의 핸드폰으로 국제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는다.

 

여행사도 9시가 되어야 영업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만 나온다. 시간이 되어 전화를 해도 또 받지도 않고....인터넷으로 여행사에 접속하여 담당자 핸드폰으로 연락하여서 다시 전화를 했더니 남태평양은 뉴질랜드 사모아 쪽 이라고 하면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한다.

 

조금 후 새 애기가 전화가 와서는 날씨가 너무 좋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여 안심이 되었지만.... 여진으로 쓰나미가 밀려올지도 모르니 배타지 말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노인네가 되어 가나보다 그저 걱정이 많아지니 말이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그저 무심히 뉴스를 들을 때만 아!  안되었다...그런 기분 이였는데, 막상 나와 인연된 소중한 사람들이 그 지역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애간장타는 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생각지도 못한 강진으로 가족이 희생된 그곳 사람들의 기막힌 심정을 어이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시 한번 희생된 분들의 왕생 성불을 서원 하면서

 

정말 우리가 사는 지구 어딘가에서 태풍이 불어오고 강진이 발생하고 쓰나미가 밀려오고...

먼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재앙이 오기 전에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녹색 지구의 앞날을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작은 약속을 실천해야 할 것 같다. 자동차를 적게 타고 일회용품도 적게 쓰고 프레온 가스 배출도 줄이고...

 

어제는 정현이가 인천에 올 일이 있다고 하면서 잠시 언니 얼굴 보자고 하더니 축의금 봉투를 내민다. 그냥 두라고 했건만... 구좌번호를 안가르쳐 주었더니....석보님께서도 늦게나마 축하 드린다고... 도첩을 보내 주신다고 하여 예전에 우리집 주소를 가르쳐 드렸더니.... 정말 너무 고맙다.

생각지도 않은 분 한테서 축의금을 받고 보니 그분의 따뜻한 인간미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 두루 두루 다 빚을 많이 지는 것 같다. 

 

이제 며칠 있으면 일 년 중에서 제일 좋은 중추가절 추석이다. 올해는 태풍도 없고 모든 과일들이 달고 맛있다. 풍요로운 명절을 맞아서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 가정에 사랑과

건강,  행복까지도 풍성한 고운 명절 보내시기를 서원 합니다.

둥근 달처럼 모든 일들이 원만 성취 되시고 늘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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