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아시아나 항공 11시 비행기를 타고 남편, 딸과 같이 대만여행길에 올랐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시차는 우리나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빠른 편이다. 그곳의 밤 열시는 우리나라의 밤 열한시...
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 19명은 멋진 대만관광버스를 타고 (관광 자를 위해서 다른 차들이 옆에 있어도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2층으로 만들어져 있는, 일층엔 짐칸과 화장실, 사용은 하지 않는, 그리고 기사석이 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대만에 오시는 분들이 이곳저곳 다 가보고 가족들이 안 가 본 곳으로 선택하여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면서 생각보다 대만이 볼거리도 많고, 나라가 중국 때문에 정식으로 등록은 안 되었지만
고궁 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에 해당된다고 하고, 태노각, 야류해상공원은 세계 자연 유산에 등재되고도 남을
아주 멋진 곳이 많다고 말문을 열면서 첫날은 대만의 오늘을 있게 만든 장개석총통의 모든 자료들을 모셔놓은 민주 기념관(구 중정 기념당)에 갔다.
대만이 산지인 흰 대리석으로 웅장하고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었고 내부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사진과 우리에게도
낯익은 박대통령의 사진도 보이고 멋진 맥아더장군님도 보이고 똑똑하고 현명한 장총통의 부인이자 비서인 송미령 여사의
모습도 보이고 장 총통이 타고 다녔던 자동차도 볼 수 있었다. 그 차의 특징은 외부에서 보면 차의 기름을 넣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앞 번호판 뒤에 가려져 있어서 기름을 넣을 때는 번호판을 떼어 내어야 한다고...물론 완전 방탄차라고 한다.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유 학 은 가이드님은(앞으로는 유 부장으로 호칭을 하겠음. 본인이 그렇게 불러 달라고...ㅎ )
쉴 새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다 옮길 수 없음이 조금 안타깝지만, 기념관의 풍수지리적인 설명과 문이
3곳에 있지만 뒤에는 문이 없다는 것,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고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그리고 기념관에 서 있는
장 총통님의 얼굴은 모두 서쪽 중국 본토를 보고 있다는 것,,,등등
그밖에 대만과 우리나라, 일본과의 역사적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일본과는 많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도,,,
청나라 때 전쟁에 져서 대만을 일본에 주었는데 일본이 무혈로 대만을 차지했다가 모든 현대적 시설
(상하수도와 철도를 놓고 5대항구중에 3대 항구를 만들어 놓고)이차대전에 져서 물러갔다는...
그래서 일본에 지진이 났을 때도 대만 사람들이 자진하여 제일 많은 엄청난 자선 금을 전달했다고,,,
황금색의 큰 전당에서는 음악회 등 국가적 중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 같은 ,,,,
다음에는 국립 고궁 박물관에 갔는데 이동 중에 유부장님의 열강이 있었다, 유물수량은 68만점이나 있는데
3개월에서 6개월에 한번 교체하여 전시를 하고 있으며 그렇게 한다면 한번에 2천점 정도를 전시 한다고 해도
55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그 누가 그 엄청난 유물들을 다 볼 수 있겠는가 싶다.
6800년 전에 곡식문화가 시작되었다고 짐작되는 유물, 도기와 자기를 보고 알 수 있다고 ...
신석기시대에서 하, 상, 주, 한, 당, 북송, 남송, 원, 명, 진, 청, 현대로 이어지면서 주나라 때 3600년 전에 청동기를
사용했으며 2500년 전 한나라 때 옥으로 만든 비사(악귀를 막아주는 해태모양 조각품)과, 송나라 때 문화의 꽃을 피웠는데 여요라고 하는 작품이 세계적으로 75점이 있는데 타이페이에 45개가 있다고 한다. 투체라는 닭 그림 문양을 넣은 도자기 컵을 예로 들면서 7번 도자기를 구워서 만든다고 하는데, 30년 전 세트 한 개가 홍콩 경매에서 대만 돈 3천 만원(우리 돈 일억 이천)을 주고 샀는데 지금 대만 돈 일억 이천으로 올랐다고...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48억이라는...
건융 황제에게 선물로 받친 배추위에 메뚜기와 여치가 앉은 조각품은 한 돌 속에 옥과 비취가 공존하는 그런 원석도
다시 없이 귀할 뿐 아니라 그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왕손의 번영을 비는 선물인데 실제로 건융 황제는 자손이 68명에
89세까지 장수한 왕이라고 한다. 옥 병풍을 치고 옥을 가까이한 서태후도 장수했다고 하니 옥에서 음이온이 나온
까닭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한다. 특히나 중국 사람들이 옥으로 만든 비사를 한집에 하나씩 둘 정도로 선호하는
까닭은 항문이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석이나 돈을 비사 속에 넣어두고 얼굴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 밖의
돈이나 보석이 집으로 들어온다는...그래서 비사를 살 때는 값을 깎지 않는다고....
하나하나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 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없고 다른 관광객들도 너무나 많아서 주로 중국 본토 사람들이지만. 유명한 몇 작품만 보았는데 올리브 씨앗 속에 조각을 하여 앞에 확대경을 통해서 그 조각품을 보면 그 작은 씨앗 속에 탁자가 있고 6사람이 앉아 있음에 감탄사 밖에 더 할 말을 잃게 만든다고나 할까...
어디 그뿐인가 상아로 만든 8층탑 그 안에 각 층마다 부처님이 앉아 계심에 한 개의 상아로 이음새 없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을 먼저 조각하고 밖을 조각 했다는 결론인데...도대체 어떻게 저런 조각품을 만들었을까...???
그 답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70년 걸려서 3대로 내려오면서 머리카락같이 가는 낚시 바늘 같은 구부러진 것으로 상아를 깎는다고 하니 그 옛날에 돋보기도 현미경도 없었을 터인데 보수는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밤 낯 그렇게 손톱만한 작은 것을 조각을 하다보면 눈도 멀고 온 몸이 온전하겠는가 싶다. 어떻게 저런 조각품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정말 말이 안 나온다.
그렇게 작고 작은 조각품에서부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용과 호랑이, 관세음보살님 등 수많은 조각품과 건융 황제의 장난감 이라고 하는 공이 있는데, 큰 공 속에 작은 공, 또 그 안에 작은 공, 그렇게 우리 눈에 보이는 공이 5개가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17개의 공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것으로 미루어볼 때 속에서 부터 조각을 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 정말 지독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중국 사람들의 그 엄청난 조각술에 감탄하여 마지않으면서 아쉽게 고궁 박물관을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세계에서 유명한 박물관은 거의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박물관들은
솔직히 약탈 문화가 많았는데 대만 박물관에서는 신기에 가까운 인간 능력의 한계점을 본 것 같아서 지금까지도 눈앞에
확대경을 통해서 본 그 작은 조각품 속의 노인의 미소가 언뜻 보이는 것 같은 환영이 보이는 것 같다.
맛있는 저녁요리는 각종 야채와 고기를 담아서 양념까지 자기 취향에 맞추어 철판에 볶아서 주는데 가이드의 양념
배합대로 하면 아주 맛있는 요리가 되는데 그곳에서도 중국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래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도교 사원인 용산사에 들렀는데 하루에 3000명이나 참관을 한다고 한다.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름 정성을 다한 꽃이나 선물들을 긴 탁자 같은 단위에 놓아두고 향을 꽂고 절을 하고 있었다.
관우신도 보이고 여러 많은 신들이 보이는데 특이하게 관세음보살님도 보인다. 여러 신들이 한곳에서 싸우지 않고 같이
호흡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책보는 관우신은 돈을 관장하는 장사의 신이라고 한다. 연인들을 맺어주는 신도 계시고 부의 신도 계시고...제일 아래 사진에 보면 꽃 접시 안에 한 큰 꽃이 있고 다른 꽃잎이 돌려져 있는데 큰 꽃이 접시에 담겨져 있으면 그 공양물을 한 사람이 아직 절 안에 있다는 뜻이고 그 큰 꽃이 없으면 그 사람이 자리에 없다고 한다. 놓고 간 공양물들은
주로 노숙자들이 가져간다고 ...
바로 옆에 있는 야시장에 잠깐 들러서 발마사지까지 받고 호텔로 돌아오니 시간은 좀 늦었지만
다른 나라의 발마사지와는 다른, 정성이 들어 있다. 연세 지긋하신 남자 분들이 한 곳 한 곳 짚어가면서 몸속 어디가 안
좋은지 까지도 설명해 주시며 안 좋은 곳은 더 정성을 다해서 주물러 주심에 모두다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늦은 시간에 호텔에 돌아와서 몸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중국 여행과는 다른 대만의 저력과 현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은 공부가 되었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내일은 태노각 편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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