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호선은 여행 옵션에도 없었는데  학님과 이야기끝에 상강유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곳에도 장예모감독이 연출해서 친구에게 선물한 '천문호선'이란 안보면 평생

후회하게 될 뮤지컬이 있다고 하여서 같이간 일행 14명이 상의한 결과 계곡대탐험 대신에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후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천문산이 보이는

산 밑에 이렇게 큰 야외 극장이 마련 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 들고 있었다. 출연진이 600여명이며 관람객은 3000명이 본다고 한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내 디카는 밤에 찍는 사진은 도무지 신통치를 않다. 오른쪽 위로 바위에 연두색 글자 같은 것이 보이는데 사회자가 토가족 어여쁜 아가씨 두명이 멋진 산수화를 펼쳐들고

서 있는데 그 옆에서 오늘 밤 뮤지컬 스토리를 중국어로 이야기 하고 있고 연두색 글자는 한글로 그 스토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극이 시작 되면 오른쪽으로는 영어 자막으로 설명이 나온다.

 

불빛에 비치는 천문산의 야경

 

처음  뮤지컬이 설명될 동안의 무대이다. 멀리 희미하게 바위 뒤로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뮤지컬이 시작되면 먼저 여우나라의 여우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여우왕도 산 위쪽에서 나오고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과

더불어 탄성이 나올 정도의 광범위한 무대가 연출 된다.

 

 

 

무대 왼쪽편으로 합창단석이 마련 되어 있으며 극중 남주인공 유해는 실제 본 무대에서 행동을 하는 유해와 합창단과 같이 노래하는 유해가 있다.

 

 

 

 

 

 

 

 

 

 

 

 

 

 

 

 

 

 

 

 

 

 

 

 

 

 

 

 

 

 

 

다리가 점점 길어 지면서....

 

 

 

 

둘은 하나가 되고 산 실루엣이 나타난다

 

조명을 받아서 나타나는 웅장한 천문산의 정경

 

 

 

 

해피엔드의 무대이다 유해와 백호가 어느새 아기를 낳고....인사를 한다...

 

 

 

 

 

 

 

 

 

 

 

 

 

 

 

 

 

 

 

 이번 장가계 여행에서 옵션일정에 포함 되지 않은 천문호선을 학님이 적극 추천하여 $40을 주고 보러 갔다.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고 있었다. 매일 밤 3000 명이 비가와도 눈이 와도 공연을 본다고 하여 놀랍기만 하다.

한국판 ‘나무꾼과 과 선녀’ 같은 토가족 전설 이야기였는데, 여우 백호와 나무꾼 유해의 사랑 이야기이다.

 

천문산을 뒷 배경으로 거대한 야외무대와 중국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600여명의 출연진, 과연 장예모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기에 천문산이 있기에 만들어 질 수 있는 뮤지컬인지도 모르겠다. 천문동에서 내려 올 때 산 중간 중간 조명 시설이 보이더니 다 이 뮤지컬을 위해서 장치를 해놓았다고 하는데 그 비용이 일억 팔천 위안이 들었다고 한다.

 

휘황찬란한 조명아래 원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우들의 춤, 실제 보름달처럼 두둥실 높이 뜬 달빛을 받아 춤추는 백호의 아름다운 모습...주인공 백호는 여우지만 백 년 동안 기도하여 도술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여우이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수시로 모습이 바뀐다. 여우왕의 간택을 받았지만 인간 세상의 정겹고 평온한 일상을 엿보다 가난하지만 착한 유해를 보게 되고,  어쩌다 사냥꾼에게 쫓기게 되지만 유해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 단란한 가정을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신세 한탄하는 유해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도와주고...그러다 정이 들고...그 사실을 알고 여우왕은 유해와 백호를 두 세상에서 다 버림받도록 하고...

 

사람들에게 쫓기고 여우나라에서도 버림받고... 그렇게 서로를 그리다 천년 또 천년 세월이 흐르고....무대가 산을 깎아지른 산 이여서 주인공이 뛰어 다닐 수 없어 8명 정도의 주인공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가 자기 순서에 맞춰 자기 포지션에서 일어나서 공연을 한다했다. 무엇보다 장관 인 것은 여우와 나무꾼 유해가 100여 미터가 떨어진 산꼭대기 정상 양끝에서 만날 때...양쪽에서 비치는 라이트위에 흰옷을 입은 두 주인공을 만나게 하는 장면이다.

 

긴긴 세월 지난 후에 하늘마저 감응하여 떨어져서 애태우는 두 사람을 위해서 골짜기를 이어주는 다리가 점점 더 길어지면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그토록 그리워한 두사람은 하나가 되고... 모두 숨 죽이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천문산의 고고한 실루엣이 은은히 모습을 들어낸다. 모두들 환호하며 이 웅장한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 박수를 보낸다. 한마디로 이렇게 큰 무대를 세계 어디에서 또 만나겠는가싶다.

 

모두들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날 밤 나는 돌아 와서도 천문산과 천문동, 통천문, 천문호선의 감동으로

잠이 오지 않아서 한동안 뒤척였었다.

디카의 한계점인지 내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밤에 찍은 사진들이 전부 떨리고 엉망인 것이 유감이지만

그래도 그중에 몇 점은 괜찮다고 자위 하면서 그날의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올려본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내일은 천자산편을 준비 하면서....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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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곡잔도는 장가계 천문산 해발 1400미터 높이의 절벽에 장장 1600미터의 길이로 좁게 난 길로 최근 각광받는 관광명소이다. 기홍관에서 시작해 소천문에서 끝나는 이 길은 스릴만점으로 내려다보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귀신들이나 다니는 길이라는데 ...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뭔가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분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명소라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다.

그런데 일행중 한분은 멀미처럼 어지럽다고 한다...

 

 

 천문산 케이블카는 시내에서 타고 올라가게되어있다. 학님 말로는 바로 산밑에서 타면 세계 제일로 긴 케이블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길이 7.47KM 로 프랑스 토마사에서 2006년말에 완공 했으며 2007년 5월 부터 관광을 시작 했다고 한다.

케이블카 안에서 찍은 사진

 

 

 

 

멀리 천문동이 보여서 한장...

우리가 내려갈 길이다. 처음에는 아찔한 풍경들이 무서웠지만 조금 타고 올라가니 여유가 생겨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케이블카 안에서 일행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마지막 정말 숨가쁜 코스를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하여  귀곡잔도를 걸어가서 천문산사로 간다

 

 

 

 

 

 

 

 

 

 

 

 

 

 

 

 

 

 

 귀곡잔도에서...

 

정말 멋진 절경이 펼쳐 지는데 카메라로 한번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안타깝기만하다

 

 

겨울 풍경이라 담아 보았다. 한겨울 몇달은 케이블카가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이 아래를 유리로 하여서 사진을 찍도록 해 놓았는데 아찔하게 무섭기도 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중국인들끼리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할려고

고함을 지르며 다투어서 우리는 접근하지도 못했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천문산사로 향하는데 그 다리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위험하다고 한사람씩 건너라고 하지만 말을 안듣고....

 출렁 다리에서 보이는 정말 말이 필요없는 절경들......

이 높은 곳에 이렇게 웅대한 절이 있다니...

 

 

 

 

 

 

 

 

 

 

 

 

 

 

 

 

 

 

 

 

 

 

 

 

 

 

 

 

리프트를 타고 저위에 보이는 건물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 지점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천문동으로 향한다

 

 

 

 

 

 

 

 

 

하늘로 통하는 문 ; 통천문; 제일 아래 사진에 보면 전투기4대가 저 문으로 통과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잘 타는 거미인간(알랭 로베르)가  와서 통천문을 기어 올랐다고...1억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무릉원(武陵源)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1334m이고, 풍경구의 면적이 264㎢에 달하며

크게 장가계시의 국가 삼림공원(張家界森林公園), 츠리현의 삭계곡(索溪谷)풍경구, 쌍즈현의 천자산(天子山)풍경구 등 세 개의 풍경구로 나뉜다.

 

약 3억 8천만 년 전 이곳은 망망한 바다였으나 후에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해저가 육지로 솟아올랐다. 억만년의 침수와 자연붕괴 등의 자연적 영향으로 오늘의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물 맑은 계곡의 자연 절경이 이루어졌다. 연평균 기온은 16℃정도이며, 연강수량은 1200-1600㎜ 정도이다. 장가계가 일반인들에게 이름을 떨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는데, 1982년 9월 25일에 국가로부터 "장가계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 그 후 1988년에는 국무원에서 국가급중점풍경명승구로서 지정하였고, 1992년에는 세계자연유산에 가입되었으며 1995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 되었다고 한다.

 

장가계는 석영사암으로 눈물 흘리는 바위라고도 할 정도로 비가 오면 물을 흡수했다가 맑은 날은 다시 배출 하여 바위에 나무들이 살 수 있고, 그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하는 것은 영양분이 작기 때문이며, 이곳의 기후는 아열대 습윤성 기후로 바위 속에 광물질이 많아 석영유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시계유리의 원자재가 된다고 한다. 오늘 볼 천문산은 석회암 성분이 많아서 남성적 산 이고, 내일 볼 원가계의 천자산은 석영사암의 섬세한 여성적인 산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지진이 한 번도 없었으며 바람이 적고 비가 많이 와서 나무가 바위를 보호하고 있어서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으며, 언젠가는 지각운동이 한번은 일어나지 않겠는가 생각은 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지금도 풍화가 계속되고 있는 노년에 들어선 산이라고 하는데 황산은 할아버지 산이고 장가계는 아버지 산이라고 한다.

 

연간 1800만 명의 관광객이 장가계를 찾고 있으며 하루에 5~6천명이 이곳에 들어온다고 하니 과히 그 숫자가 놀랍기만 하다. 서양인이나 일본인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이곳의 경치에 많이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우리 나라에서 장가계를 찾은 관광객이 36만명이라고 한다. 장가계 주민의 90%가 관광업에 종사 하고 있으며 어린애나 연로한 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종사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장가계의 웅대하면서도 아름답고 기이한 산세에 넋을 잃으며 자연의 신비함과 인간의 무한한 도전 앞에 새삼 중국인의 큰 그릇을 느끼게 된다고 할까...

천문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곳에 케이블카를 놓고, 길을 닦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생각을 했다는 것과 그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소화해내고 있는 저력에 놀랍기만 하다.

 

점심 식사 후에 시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천문산에 올라 귀곡잔도를 걸어서 출렁다리를 건너고 천문산사에 가서 조금 자유 시간을 가진 뒤에 리프트를 타고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 역에 내려서 천문동 가는 버스를 타고 그곳에 도착하여 999계단을 올라서 통천문을 보고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와서 산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우리는 끝까지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 뒤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무언가를남겨 놓고 싶은 마음에...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는 한 가닥 그리움을 남겨둔다는 의미로...

 

이곳의 기후는 1년에 200일 이상 비가 내린다고 한다. 예전에 간 뉴질랜드 남 섬의 기후와 비슷한 것 같았다. 비가 그리 많이는 오지 않아도 ...

비가 오지 않는 날 이곳의 경치를 보려고 7번째 와서야 보았다는 그런 관광객도 실제로 있었다고 하면서...

우리 팀은 정말 복 많은 사람들이라고 ....날씨 좋은 날 모든 스케줄을 다 소화 할 생각인지 학님이 저녁에 '천문호선' 뮤지컬까지 볼 계획인지라 하루 만에

엄청 가슴 벅찬 감동으로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천문호선은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여기서 그만 ....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너무 무리를 했는지 입술에 물집이 생겼다...

계속 늦게 호텔에 돌아 와서 잠 잘 시간을 놓치기도 했고,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 앞에  마음의 벅찬 감동으로 잠이 안와서...

 

수요일 한국에 돌아와서 그날 밤 사진 작업을 한다고 자정이 넘도록 ...또 잠 잘 시간을 놓쳐서 잠이 잘 안 오더니 드디어 몸이 반란을 하는지...

딸이 필리핀 가서 생긴 증세와 비슷하다고 병원에 빨리 가라고 하여 오늘 피부과에 다녀왔더니 단순포진이라고... 너무 피곤해서....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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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봉호 밑에 있는 폭포인데 인공으로 만든 것 같기도 ...장관이다

 

 

 

 보봉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내려 오는 길

 

 

 

 

 

 배 타는 장소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이곳에 아기울음 소리를 내며 밤에 운다는 애기고기가 살고 있는데 화석같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악어 비슷하게 생겼는데

딱딱한 껍데기는 아니고 매끈해보이는 큰 물고기였다.

 

 

 

 

 토가정풍정원 입구

 풍정원 입구에 양쪽에서 나팔을 불고 있는 할아버지 두분이 계신다. 이곳에 온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나팔을 분다고 한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예쁜 아가씨들이 환영의 인사를 하고 아주 작은 술잔으로 술을 한잔씩 돌린다. 그 술을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의 안내자가 우리를 안내한다.

 

 이곳은 토가족 왕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자연으로 생긴 나무 가지가 한문 목숨 壽 자라고 한다. 

 

 

 

 

 

 

 

 

 

 

 

 

 

 

 

신호등에 초록불에는 초록으로 빨강불에는 빨강으로 초가 표시되어 있어서 참 편리하게 보였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면 무리하게 건너가지 않을 것 같은데...이곳은 노랑불이 없는 듯..

 

 

 호텔에서 아침식사 시간에  늦게 가면 뷔페 음식들이 동이 나고 없다고 하여서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가서 잘 먹었는데, 늦게 나온 팀은 몇 가지 음식이 떨어 졌는데 보충이 안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 이미 중국 사람들이 일층을 다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는 2층 자리로 가서 먹었다. 계란 프라이를 해주는 곳에서는 새치기가 심했다. 식사 후 여행사 차를 타고 보봉호로 향했다. 보봉호는 반 자연 반인공의 산물이라고 한다. 깊이가 72m인데 제일 깊은 곳은119.2m라고 한다.

 

산 밑 동네에 홍수가 심해서 둑을 쌓아 가다가 올라와보니 경관이 좋아서 80년 전에  댐을 만들었다고 하며 처음에는 어장을 만들었는데, 깊이가 점점 깊어가서 관광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8년에 화교가 투자를 하여 30년 사용하기로 했다가 1997년 장가계시에서 인수를 했다고 한다. 폭포를 보면서 산을 올라가면 유람선을 타게 된다.

 

 배를 타고 조금 가면 박수를 치라고 한다. 위 사진에 토가 족 아가씨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준다. 배를 타고 조금 가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쪽 다른 배에서 박수 소리에 따라서 총각이 나오기도 하고 아저씨가 나와서 노래를 하기도 한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저씨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짧은 시간 배를 타고 내려서 조금 올라오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고 학님이 사진을 찍어준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 온 길과 다른 길로 내려오는데, 가파른 계단 길은 약간은 어지럼증이 나지만 새로 닦여진 길이라 그리 위험하진 않고 예전 길은 많이 위험해 보였다.

 

다음에는 토가정풍정원에 갔다. 문 입구에서 약간 연세가 드신 두 분이 양쪽에서 나팔을 불고 있는데 환영의 뜻이라고 한다.

먼저 들어가면 작은 술잔에 술을 한잔씩 주고 그 곳에는 학님은 못 들어가고 그곳의 안내자가 대신 설명을 해주는데 좀 무뚝뚝한 편이지만 묻는 말에 대답은 잘 해준다.

 

옛날 용 나라 왕궁이라고 하는데 웅장해 보인다. 위로 올라가면 토가 족 사람들의 농기구나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칼 창 등을

진열해 놓았고 농기구는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해 보인다. 내려오면 소가 유채 기름을 짜는 방아를 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민속촌 같은 곳 이였다.

손으로 수를 놓은 부채를 팔고 있는데 \2.000인데 보봉호에서 파는 천 원짜리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여서 모두 선물용으로 많이 샀다. 아주 작은 산 능금 같은 돌배도 팔고 있는데 맛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군성사석화를 보러 갔는데 미술계에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화가라고 하며 그림을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색의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데 사진보다 더 멋지게 사실적으로 보이며 입체감까지 살아 있어서 장가계 풍경이나 이곳의 멋진 경치들을 너무나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 놓아서 한 점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데 4층에서는 소품도 팔고 있었다.

대작들이 많고 값도 비싼 편이였다. 새로운 장르의 그림을 감상 하면서 감탄이 나왔다. 1층 한쪽에는 기이한 암석이나 여러 가지 사진에 보이는 돌 조각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찍어온 사진들이 너무 많아서 천문산편은 다음날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그만....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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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행 최고의 하이라이트 통천문

 

 

 

 

 

 

 

 

 

 

 

 

 

 

 

 

 

 

 

 작년에 남편과 같이 장가계 여행을 갈려고 여행사에 돈까지 다 내어놓고 갑작스런 사고로 가지 못했지만 남편이 꼭 가보고 싶다고 하여서 올해 여름휴가를 내어 다녀왔다. 장가계에 대하여는 다음 검색을 하면 너무나 자세히 다녀오신 많은 분들의 글이 있지만

차로 이동하는 중에 가이더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올려 볼까 한다. 가이더님의 이름을 따서 앞으로는 학님으로 칭하겠다.

 

9일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시아나항공에 문제가 있어서 40여분 늦게 출발해서 3시간 반 정도의 비행 끝에 장사공항에

도착하여 약간 늦은 점심을 '서호루' 라는 엄청 큰 식당에서 위에 사진에 보이는 메뉴로 식사를 했다.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실내에 에어 콘은 나오지 않았고 그 후로도 그 어떤 식당에 가도 에어 콘은 가동 되지 않았으며 찬 물도 없었고 뜨거운 차를 내어왔다. 음식은 향이 진했지만 그런 데로 먹을 만했다.

 

학님이 오후 2시에는 점심 영업이 끝나는 시간이라 우리 비행기가 늦어져서 식당이 시원하지 않다고 했지만... 본관이 아니어서 그런지...한국 여행객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이동 중에 학님이 말하기를 여러분이 어디에 왔느냐고? 차이나라고 대답하자 그렇다고...바로 한국과 차이가 난다고 차이~~나~~란다. ㅎㅎ그 차이는 여러 곳에서 많이 났다. 우리나라 60~~70년대 문화 수준이라고 해야 할지...

 

가는 곳마다 화장실은 위생상태가 엉망 이였고 지독한 냄새는 눈이 아플 정도였으며 인구가 많다는 것이 실감 날 정도로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북새통 이였고, 새치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유유하게 행해지는...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글들을 많이 읽고는 갔지만.... 그랬지만 장가계의 위대한 대 자연의 풍광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장가계는 꼭 한번 봐야 할 곳 이라고....자연과 인간의 위대한 합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100살을 살아도 장가계를 보지 않고는 살았다고 말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할 정도로... 전설 속 무릉도원이 이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곳에는 복숭아가 나지 않아서 무릉원으로 부른다고 한다.

장가계를 가기 위해서는 먼저 장사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가야 하는데 가는 중에 학님이 장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다. 중국은 지도상에서 보면 그 형상이 닭의 모양인데 배꼽에 해당되며 2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인구가 780만이며 21km평방제곱미터이며 서울의 33배 면적의 중국 15번째 큰 도시이고, 지금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는데 2도시를 한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으며 그 공사가 완성되면 7번째 큰 도시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호남 성의 성도로 전국 24개 역사문화유명도시 중의 하나이며 우수한 관광도시로 호남 성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비즈니스와 여행 중심지이고 비행기와 포크레인 등이 생산되고 있으며, 학님이 도로 명을 잘 보라고 한다.

한자 밑에 한글 표기가 되어 있다. LG상사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길을 잘 못 찾아 사고가 잦아서 그네들을 위해서라고...곳곳에 큰 건물들의 공사로 장사는 지금 한창 개발 중인 역동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몇 년 전에 가본 베트남의 호치민시 같은 그런 활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모택동, 유소기,  호유방..등 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 열사공원과 장사 임시 정부 청사를 보고 장가계로 출발 했다. 열사 공원은 중국인민 해방 사업에 헌신한 열사들의 뜻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인데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 성격인데 그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 곳 이였다. 그 더운 날씨에도 중국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관광객도 많았지만 ...날씨가 덥기도 하고 열사 공원은 잠간 보고 내려 왔다.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이 장사 임시정부청사 인데  항일 운동 당시 백범 김구 선생님의 자취가 보존되어 있는 김구 기념관 이였다.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곧 개발에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빈민가를 지나 골목골목을 돌아 찾아 간 그곳은 몇몇 중국여학생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고 안내를 해주었다. 작은 방에서 디브이디로 김구선생님과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보여 주었고 옆방으로 안내되어 회의실과 소박한 부엌을 지나서 그곳을 찾아 온 독립군들이 잠을 잔 초라한 나무 침대 2개가 놓여있는 방도 보여 주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우파와 좌파가 생기고, 러시아에서 온 이운한이 총을 난사해 김구 선생님은 치명상을 입고 현익철 선생은 사망한 남목철 사건이 발생하여 8개월 동안 이곳에 계셨다고 한다. 그때 장개석정부에서 위로금을 보내주고 따뜻하게 잘 대해 주었다고... 이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푸른 꿈과 뜨거운 열정으로 애국심을 불태웠을 위대한 선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울컥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순간 마음속으로 순국선열과 애국열사에 대한 기도가 나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는 편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부디 이고득락 왕생 성불 하시옵소서....

앞으로 이곳이 재개발에 들어가면 이 역사적인 곳이 없어 질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정부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곳을 나와 장가계로 버스를 타고 4시간 동안 이동했다. 장가계의 옛 이름은 대용 이였는데 그 빼어난 경치에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 지지 않자 강택림이 그곳을 방문하여 지명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장량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여 장가계란 이름이 좋겠다고 이름을 바꾸고 나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장량은 한나라를 통일한 유방 밑에 모사꾼으로 한신과 서로 세력을 다투자 토사구팽이란 말을 남기고 스승 황석공을 찾아뵙고 살 곳을 찾는데 말이 이곳에서 움직이지를 않아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장 씨 들이 사는 마을, 장가계라고 했으며 토가족의 30%가 장 씨 성이라고 한다.

 

장가계에는 토가 족과 묘족이 주로 사는데, 토가 족은 은을 선호하고 화려한 녹색 빨강색을 좋아 하며, 묘족은 흰색을 좋아하고 피부가 희고 좋은데 그 숫자는 적다고 한다. 토가 족은 모계중심 사회로 여아가 태어나면 잘 돌보고 남아는 대충 키운다고... 여아가 8세가 되면 잘 우는 공부를 시킨다고 ...잘 울어야 목청이 좋고 잘 울어야 복이 많다고 한다고...이해가 안 되지만 잘 울면 신이 생각하기를 불쌍하게 생각해서라는....

 

음력 3월 3일이 되면 연인전이 열리는데 적령기 여자가 노래를 3곡을 부르고 남자가 3곡을 답가를 불러 대답하면 남자의 발뒤꿈치를 밟아 주면 너는 내거다 라는 표시가 되는데 상대 남자가 거절을 하게 되면 황소 1마리 값을 배상해야 한다고 한다.

거절 받은 여자는 연인 전에 1년 동안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혼사 때는 남자가 지참금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신혼 첫날밤에는 사투를 벌리듯 먼저 뛰어가서 침대에 앉아야 가장이 된다고...토가족 여자들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좋아하지 않고

안경 낀 남자는 좋아 한다고 한다. 지적으로 보이고 공부를 많이 한 똑똑한 남자로 생각한다고... ㅎㅎ

 

묘족은 결혼 적령기에 여자를 집 앞에 텐트를 치고 그 곳에 살도록 하는데 남자가 들어가서 자고 간다고...여러 남자가 들어가서 잘 수도 있는데....첫 애기는 엄마 성을 따고 두 번 째 아기부터는 아빠 성을 따르는데, 이런 풍습은 1963년 문화대혁명때 폐지되었다고 한다.

음식은 김치와 깍두기, 장아찌, 청국장을 만들어 먹는데 청국장을 기름에 볶아 먹는다고 한다. 모든 고기를 다 훈제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훈제는 고기를 익힌 후에 소금을 발라 햇빛에 말리는데 향기가 많은 나무 가지 연기를 내어 그 위에서 말린다고... 그런 고기는 유효기간이 없으며 두고두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저장 방법 같은데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짜고 냄새가 괴상하다고...

음식은 짜고 맵게 먹는다고 하며 맵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오늘은 이만 줄이고 내일 이 여행의 백미 장가계 천문산편을 기대하시기를...

한국에서 출발하는 아침에 비가 내렸는데 그곳에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학님이 정말 복이 많은 분들이라고...

밤늦게 호텔에 도착하여 아침에 식사하러 가면서 보니 바로 눈앞에 장가계의 그 특이한 산세가 보여서 깜짝 놀라서 환호했다.

 

 

제가 없는 동안에도 늘 제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신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이곳에 돌아오니 또 비가 내리네요...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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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많아서 동영상이 잘 올라 갈려는지 모르겠네요....여기 저기 사진들을 추려서....

 

주로 경관이 좋은 곳과 명소들로만....3일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어제 서울 쪽으로 올 해 들어서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눈이 온 것 같습니다.

 

부부모임 갔다가 늦게 오는데 얼마나 춥고 길이 얼어붙어서 미끄러운지....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야 .... 영하10도라고 하니 온 길들이 다 꽁꽁 입니다

 

 

 

딸도 못 태워 준다고 좀 일찍 깨우긴 했는데... 오늘 아침 교통대란이 될 것 같네요...

 

휴일동안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더 많이 찾아 주신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이제 며칠 남지 않은 올 해 마무리 아름답게 하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빌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 하시기를~*^^*~~~

 

 

 박물관 안에서 찍은 사진인데 얼굴이 너무 이상하게 나와서...

동화씨가 보내온 사진이 엄청 크서 줄인다고 힘들었음 ㅎㅎㅎ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후라쉬금지에다 어두운 곳에서는 좀....동화씨 카메라는 정말 좋아 보였는데...

 

 

 

 산악열차 안에서...

 

 쥬리엩의 집에서 싫다는  딸애에게 억지로 가슴을 만지라고 ㅎㅎㅎ사랑이 이루어진다기에....

같이 여행 온 사람들을 모두 사진을 찍어주는 동화씨에게 우리 모두 가슴에 손 얹고 사진을 찍어라고 했더니...얼굴을 붉히면서 못 한다네요ㅎㅎㅎ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총각인지라 ㅎㅎㅎ

동화씨 고마워욤~~*^^*~~~

 

 

  기다리고 기다린 사진이 생각보다 너무 적게 도착되어서....ㅠㅠㅠ

작품 사진 같은 것이 있으면 더 보내달라고 요청은 했지만....

예현 엄마도 생각보다 사진들이 잘 안 나왔다고 한다. 다 떨리고....

정말이지 평소보다 더 사진이 형편없이 나와서... 메모리 때문에 사진을 맘껏 찍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이번 여행 가서는 사진 때문에 많이 아쉽다...또 다시 가기도 쉽지 않은데...

에효 통재라...ㅠㅠㅠㅠ

 

그래서 카메라에 대해서 좀 더 배우고, 알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올림프스 회사를 찾아 들어가서 아카데미교실에 5천원을 주고 신청하여 그 추운 밤에 이틀이나 쫓아갔는데...첫날은 찾다 찾다 못 찾아서 헛걸음을 했고...다음날 다시 담당자와 전화까지 해서 가다가 묻고 하여 기어이 찾긴 찾았는데...디카 교육이 아니라서 조리개나 망원렌즈이야기라....좀 듣다가 너무 늦게 마치면 집에 오기만 힘들 것 같아서 그냥 돌아 왔다. 담당자님께 다음 디카 교육 때 불러 달라고 부탁 하고....

 

1호선에서 7호선으로 7호선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그 추운 날 저녁 7시부터 강의시작이라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나가는 나를 식구들은 충성이라고 하지만 ....이틀이나 맹추위속에 나가면서 생각해도 나도 참 누가 억지로 가라고 하면 화를 내면서 이 추운데 어떻게 가라고 하느냐고 따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가 좋아서 가니 ㅎㅎㅎ 이 무슨 용맹심인지 ......

그 추운 저녁에 가서 배운 것 몇 가지를 적어 보면...

 

<얕은 심도를 얻기 위한 필수 4가지>

1.조리개를 개방 한다--> 숫자를 작게 유지

2. 망원렌즈를 사용한다. 14미리에서 42미리

3. 최대한 모델에 근접 촬영 한다 (상반신만 나오도록)

4. 모델의 뒤 배경을 가급적 멀리 설정 한다 (아웃 포커스 생긴다)

 

* 인물 사진 특히 여자들 얼굴을 잘 찍기 위해서는 A ; -2 . G ; 0

*바다 나무 숲  A ; 0.  G ; +3

여기서 A 는 엠버 값 G는 그린을 뜻한다고....

* 멋진 야경에 가로등 불빛이 별처럼 퍼져 보이게 찍은 사진 찍는 법도 말 해 주었는데...

그렇게 찍기 위해서는 30초이상 기다리면서 연속 촬영하면서 힘들게 찍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별빛의 퍼짐이 많을수록 정말 좋은 카메라로 찍은 것이라는 ...ㅎㅎㅎ

 

모든 것을 다 잘 할수는 없지만 블로그에 멋진 사진을 올리고 싶은 욕심이 이번 여행 후에 더 간절하기 때문이지만 ...무엇이던지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그냥 찍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실내에서 후래쉬를 터뜨리지 않게 찍어야 하고.... 실내나 밤에 찍을 일이 많으니...

평소 카메라 안내서라도 좀 꼼꼼히 읽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늦은 후회지만 지금 부터라도 다시 사용법 소책자라도 열심히 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좀 더 철저히 사용설명서를 몇 번이라도 보았어야 했는데...이 늦은 후회를....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고 하지 않았는가 생각 하면서...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서도 무엇이던지 새로운 것에 도전 할 때는 안내서나 사용 설명서를 먼저 열심히 읽고 임하심이 좋으리라고 ....휴일날 더 많이 찾아 주시어 늘 고맙습니다....

몸도 마음도 바빠지는 12월도 깊어 갑니다.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열어 가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가이드님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한 조각상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이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도 그네들은 참 검소하고 조용하며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 하고 질서와 공중도덕을 잘 지킨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은 적어도 미래 천년을 생각하면서 집을 짓고 교회를 짓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그들의 후손은 조상들이 몇 백 년씩 걸려서 지은 그 건축물을 하루아침에 현실에 편리하게 고치지 않고 그 어떤 불편도 감수 하면서 조상들이 만든 그 길을 지금도 그대로 더 넓히지도 않고 대리석벽돌을 박아서 만든 그 옛날 마차 길을 그대로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로마에서 벤츠 투어를 할 때 아스팔트길이 아닌 우둘투둘한 그 옛날의 마차 길을 그대로 그길 위로 벤츠가 달린다는 것....우리라면 당장에 아스팔트 포장을 했다 뜯었다 해마다 했을지도 모르는데....프랑스 파리에서도 그곳에서는 알아주는 식당이라는데 실내는 그리 넓지 않고 밖에서 보았을 때도 간판도 화려하지도 않고 그래서 속으로는 내심 식당이 좀 초라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실내도 의자나 테이블이 다 작게만 느껴졌는데 그 덩치 큰 서양인들도 다 그곳에서 아무 불평 없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음에 놀랐다.

 

  그냥 그렇게 옛날부터 그곳에 식당이 있었고 다들 아무 불만 없이 당연한 듯이 그 식당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게 그냥 일상이 되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옛 조상이 해온, 만들어놓은 그런 건물이나, 길이나, 식당까지도, 그냥 새로 부수어 다시 멋지게 만들지 않고 그냥 그대로 전통을 이어서 그 장소 그 자리에서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것을 귀하게 긍지 있게 받아 드린다는 것....어쩌면 흥망성쇠에 가려져 폐허가 되었을 그 자리를 보존하고 관광 자원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이 참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최신식 건물로 정말 넓고 편리하게 잘 지은 호텔방 보다도,  옛날에 어느 왕이나 수상,  유명배우가 묵고 간 호텔 방이 더 비싸며,  그런 호텔방에 투숙 할려면 몇 달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일본에 갔을 때도 호텔이 크고 좋은 그런 것 보다는 그 호텔에 온천수가 얼마나 좋으며 천황의 부친이 다녀 갔다는 사진을 비치해놓고  흔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무궁화가 몇 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물급을 따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나 당장의 편리함 보다는 오래되고 낡았지만 품격을 중요시하며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며 그 안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아파트 하나를 지어도 백년을 내다보면서 20년도 안되어 재개발 운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크다. 그뿐인가 해마다 도로 아스팔트를 뜯고는 하수구를 새로 하고, 가스 배관을 새로 하고...연중행사처럼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네들은 몇 백 년 전에 이미 도시의 하수구 뚜껑을 만들고... 공중목욕탕도 만들고...그렇게 문화생활을 해 오지 않았는가....

 

대리석으로 만든 집들은 몇 백 년이 흘러도 여전히 그 모양을 갖추고 있고, 그 건축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관광 자원이 되어서 부국으로 올려놓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내부 보수공사나 수리는 하고 지내고 있겠지만.... 우리도 지금 부터라도 천년을 내다보면서

 아니 천년까지는 아니라도 백년은 견디도록 튼튼하게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년 뜯고 고치고 하지 말고....수없이 바뀌는 간판이 아닌 대를 이어서 그 자리에서 가업으로 내려가면서 할 수 있는 식당이나 사업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철저한 위생으로 깨끗하고 청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신종플로 걱정 같은 것은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한사람도 없었다. 모든 화장실은 유료요금이다. 식당이나 백화점은 제외지만 거의 모든 공중 화장실은 돈을 넣어야 입장이 되고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도 고속도로나 지하철 화장실은 세계 그 어느 곳 보다 깨끗하다고 생각 된다. 그 점은 너무 잘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마실 물은 당연히 사먹어야 하고 물가도 비싸고...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들끓고 있음은 우리가 책에서나 보아 왔던 유명한 대가들의 작품과 몇 백 년을 이어온 그들의 건축물들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스위스처럼 천혜의 멋진 자연경관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도 세느강 보다 더 멋진 한강이 있고 알프스보다는 못해도 설악과 제주, 한라와 태백산맥이 있는데...더 많이 적극적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우리나라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문화와 미를 개발하고, 미래 천년을 내다보는 정부 관계자의 각성과 내 뱃속만 채우려는 알량한 행정에서 벗어나서 진정 먼 훗날 민족의 이익이 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는 도시계획과 새로운 건축물 구조 하나에도 긴 안목으로 몇 백 년이 지난 후에 내 자손들이 진정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선조의 입장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이 사무친다고나 할까...

 

그리고 재벌들은 지금 내 가족의 부만 축적할 것이 아니라 이태리의 메디치 가문처럼 예술가를 키우고 먼 훗날을 위해서 나라의 보물을 지키며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로 찬란한 예술가와 예술품에 투자하는 그런 멋진 기업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하면 정말 장대한 세월이 흐른 후에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그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장 몇 초 선전에만 투자 할 것이 아니라...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지 않는가...

 

그리고 그 좁은 도시 안에서 주차 할 곳이 없어서 생각해낸 그들만의 차 2인승 승용차는 우리 승용차의 2분의 1 길이를 차지하는데 벤츠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태리 시내에서는 정말 많이 주차 되어 있고 달리고 있었다. 괜찮은 차 종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공중에 거미줄같이 엉켜져 있는 전깃줄이나 산만한 간판들이 보이지 않아서 도시가 더한층 깨끗하고 정리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간판을 어떻게 좀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느 도시를 가던지 간접 조명으로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은은한 건물 실루엣으로 고풍스럽고 고요하면서도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들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듯이 느껴졌다. 확 들어낸, 금방 모든 것이 탄로 날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어딘지 무언가 은밀한 보물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부드럽고 우아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그런 분위기가 나는 간접조명의 매력이랄까.....

 조금 답답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그래도 우리나라에 오니 그 은은한 조명이 그립기도 하다.

 

 먼 지구 다른 곳에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음을 잘 보고 느끼고 왔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은 것 같다. 몇 년 전 뉴질랜드와 호주를 다녀왔을 때도 한동안 눈앞에 푸른 초원의 양떼들이 어른 거렸는데...이제 또 한동안 내 눈 앞에는 순간순간 융푸라우의 설원이 보이고, 최후의 심판이 보이고, 대리석으로 빚은 완벽한 조각들이 숨을 쉬며 춤추고 있을 것 같다.... 우리도 그네들처럼 우리 것을 아끼며 잘 보존하여 후대에 잘 전하고, 고치고 더 보완해야 할 것은 앞으로 더 잘 해나가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의 자제분들을 일찍 해외여행을 많이 보내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안목을 키워와서, 그들이 훗날 나라의 동량이 되었을 때 더 좋은 쪽으로 나라가 발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 글 서유럽 여행기를 하루에 1500~2000여명 읽고 계시는데 그중에 20대와 30대 분도 많이 계시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이번 여행에서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 한반 친구인 예현이와 상우가 엄마와 동반하여 여행을 왔었는데,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 두 분의 엄마들은 어찌나 열심히 가는 곳 마다 설명해주고 다시 되물어 보고, 잘 가르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벤츠투어를 할 때 애들과 걸어서 로마시내를 보고 다녔는데, 애들에게 편하게 여행하는 것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깊은 뜻으로 그랬다고 한다. 정말 심지가 깊은 젊은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옛날 말에 자식이 귀하면 여행을 보내라고 했던가? 고교생도 2명 가족 모두 같이 오셨는데 비싼 과외 보다 여행을 하는 것이 좋다는 개인적 생각이...가이드는 이런 말을 했다. 젊어서는 먼 곳으로 여행을 다니고 나이 들어서는 가까운 곳으로 다녀야 한다고... 정말 나이가 많이 들면 온천욕이나 마사지 중심 여행을 하게 되겠지만... 열심히 젊어서 저축하고 지구 반대쪽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그 궁금증을 찾아서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금전적인 문제가 제일 크겠지만 목표를 세워서....평소 청바지와 있는 옷으로 버티면서 여행자금을 모은다는 그런 작은 계획부터 세운다면...

 

여행을 다녀오면 한동안은 그 벅찬 감동과 이국의 풍광에 마음이 구름위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행복감에 젖게 되는 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된다. 지구 저편에 내 발자국을 찍고 왔다는 것.... 많이 배우고 깨치면서 주어진 현실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여 헛되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 하면서...여행만큼 큰 공부도 없다고 생각된다....그리고 성급한 내 성격도 조금은 그들의 여유로움을 닮아 보자고....

 

 

이제 12월도 깊어 갑니다. 더 많은 사랑과 나눔, 감사와 기도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 하시기를 바람 하면서....

새로운 한 주 힘차게 열어 가시고....나날이 고운 날 보내시기를~~*^^*~~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조각; 공사를 담당하던 감독관의 쌍둥이 아들들이 아버지를 보러 왔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후에 일 할 의지를 잃고 아버지는 앓고 있었는데 쌍둥이 아들들이 천사가 되어서 꿈에 나타나서 꽃다발을 아버지에게 걸어 주고 갔다고 ...그 후에 물론 공사를 잘 마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 쌍둥이 아들들을 그리며 ....

 

 

 

 

 

 

 

 

 

 

괴테 하우스

 

 

 

 

 

 

 

 

 

 

 

 

 

 

 

 

 

 

 

 

 

 

 

 

 

 

 괴테가 살아 있을 때 부터 지금까지 가고 있는 시계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에 1시간 30분 걸려서 넥카 강변의 대학 도시인 하이델베르크로 이동했다. 이동 중 새로 합류한 현지 가이드는 그곳의 학교이야기와 맥주 이야기,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일 년에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100일 남짓한 그곳에서 포도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와 주로 강 경사진 쪽에 포도밭이 있는데 그 이유는 강에 해가 비치는 복사열로 포도밭이 다른 곳 보다는 더 따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 옆쪽 포도밭에서 나오는 포도주가 단맛이 강하고 맛이 좋다는 것과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데 위도50도의 지역에서만 생산이 된다는 것과 일교차가 심한 곳에서 서리 맞은 포도로 겉쪽은 걷어 내고 중간 부분의 속살로만 만드는 그 화이트 와인이 비싸고 맛나다고 하는 이야기와, 아우토반 이야기, 통행세가 없다고 한다. 감자를 많이 먹는 다는 것, 아스파라가스가 많이 생산 된다는 이야기등...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차에만 타면 모두 졸고 있는 상태에서도 가이드는 끝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들려준다. 어느 호텔에 불이 났는데 불이 심하게 번지어 구하러 갈 길도 막히고 2층 창문 한 곳으로 뛰어 내려야만 살 수 있을 때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렸는데 아무리 뛰어 내리라고 해도 못 뛰어 내린다고 하고 있자 노련한 지배인이 자기에게 맡기라고 하고는 하는 말이....

 

 

 

 

 

 

 

영국 사람에게는 ' 당신이 마지막 남은 영국의 신사입니다 '

 

 

프랑스 " ' 대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서'

 

 

미국 " ' 보험 가입 했으니 안심하고 '

 

 

일본 " ' 아까 다른 사람들 다 뛰어 내리던데..'

 

 

독일 " ' 당신 차례 입니다' 하면 '예' 하고 뛰어 내린다고.....

 

 

 

 

 

 

 

국민성이 잘 나타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독일 사람들이 그만큼 규율이나 규칙을 잘 지킨다는 말 같이 들리기도 하다. 중세 마을 하이델베르크는 인구 14만이 거주하며 최초의 대학이 1386년에 생겼다고 한다. 그곳은 집값이 너무 비싸서 학생들은 거의 인근 도시에서 통학을 하는데 역에 세워놓은 자전거수가 정말 많다. 기차로 와서 역에서 자전거로 학교까지 통학 한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80km, 넥카 강과 라인 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대학의 도시로 불리며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독일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의 무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드링~ 드링~'하면서 술잔을 높이 들고 합창하던 영화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한듯하다. 정말 오래전 본 영화인데...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지금까지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도시는 고즈넉한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채 촉촉이 내리는 비속에서 조용히 우리를 반기는 듯 하다.

 

 

넥카 강을 중심으로 구 도시 신도시로 구분되어 진다고 하는데 강 건너 사색의 길도 보인다.

 

 

하이델베르크성은 13세기에 최초 건축된 이래 400여 년 동안 증개축을 반복하면서 바로크 르네상스 등의 다양한 양식으로 복합되어 있고 지하에는 22만 리터의 큰 와인 통이 있는데 그 크기가 정말 어마 어마하게 크다.

 

 

 

 

 

 

 

옛 다리가 있다. 원래는 목재다리였으나 1788년 건축가 마이너가 사암으로 다시 개축했다고 한다. 넥카 강에 놓여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며 '철학자의 길' 에서 슈랑겐 골목으로 내려오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그 다리 초입에 아코디언을 켜는 걸인(?)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가 있는데 관광객들이 동전을 던져 주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어 성에서 내려와서 벌서 크리스마스장이 열리고 있는 마을 중심이 되는 광장과 교회가 있는 곳에서 잠간의 자유 시간을 내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후끈 달아오르는 크리스마스 기분을 미리 맛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트리에 장식할 물건들을 고르며 즐거워하는 풍경은 며칠 뒤 크리스마스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끌벅적하고도 흥겨운 그곳을 떠나서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한식으로 오랜만에 맛있는 중식을 먹은 후 괴테 하우스를 갔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괴테의 어린 시절이 짐작되는 멋진 집에는 그 당시의 가구들이 정갈하게 잘 보존 되어 있었다. '젊은 베르텔의 슬픔'을 시작으로 괴테의 수많은 작품을 집필하던 책상에도 앉아 보고... 후손이 없다는 말에 애석함이...그의 수많은 로맨스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나이 80이 되었어도 염문을 뿌린 그의 열정이 부러울 뿐....새로운 대상을 만날 때 마다 그 설렘으로 멋진 글들이 나온다는....그의 변을 약간은 공감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사고라고 밖에는... 그 아무리 위대한 인물일지라도 흐르는 세월 속에 흘러가고야 만다는 사실...별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괴테도 미켈란젤로도....생멸을 피할 수 없음이랴,... 삶의 유한함에 다시 또 한번 허무를 느끼면서.....쌍둥이 칼과 주방용품으로 유명한 곳에서 잠시 쇼핑 시간을 갖고 비행장으로 갔다.

 

 

8박 10일간의 서유럽 6개국 여행을 마치면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아갔다가 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영국은 우리나라 보다 9시간이 늦다고 한다. 세계에서 2번째로 물류 량이 많고 규모가 크다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인천 공항 까지는 10시간 30분이 걸린다는데 모두 갈 때 보다는 빨리 온 기분이 든다고 한다. 갈 때는 영화를 두 편이나 보았는데 올 때는 그냥 저냥 잠간 졸다가 온 것 같다.

 

 

 

 

 

 

 

 

효녀 딸 덕분에 호강한번 잘 하고 왔다. 모두 다 내일 부터 어떻게 밥하고 빨래하고 반찬하냐고....

 

 

일상의 고민들을 풀어낸다. 그동안 한 가족같이 정든 24명 모든 분들과 가이드님께 고마움을 전하면서....또한 가는 곳 마다 현지 가이드님들이 수고해 주심도 고맙고...가내 평안 하시고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나날이 고운 날 보내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하나투어 여행사도 고맙다. 모든 은혜중생의 공덕으로 여행한번 잘 하고 온 것 같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제가 없는 동안에 더 많이 찾아 주시고, 두서없이 지루한 감도 있는 여행기를 많이 읽어 주시어 고맙습니다

 

 

동화씨로 부터 멋진 사진이 도착 하면 다시 또 사진들을 올려 드릴 것을 약속 하면서 ....

 

이번 여행의 총 후기를 준비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

 

 

 

바티칸시국들어 가는 문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그 안에서는 설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그림을 보고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입장하라고 위에 그림들이 광장에 많이 비치되어 있고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설명을 듣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피에타

 

 

 

 

 

 

 

 

 

 

 

 

 

 

 

 

 

 

 

                                                                                                                                      

 

 

 

 

 

 

 

 

 

 

 

 

 

  

 

 

 판테온 원형 천정

 

 

 바티칸 시국

 대전차 경기장

 진실의 입

 포로 로마노

 스페인광장

 

 판테온

 콜로세움

 

기념문 

 

 

 어쩌면 이번 여행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이태리 로마로 향하는 길은 부푼 가슴으로 더 한층 설레기만 한데...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사랑의 도시 '로마'는 한마디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존한 채 현대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관광객들에게 소매치기와 좀도둑 천국이라는 악명이 높지만 연간 천 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육지 수상교통의 중심지라고 한다.

 

 

 

 

이태리는 인구는 약 5800만 명 정도이고 우리나라의 1.4배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나라이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승전국과 패전국의 위치에 서기도 했지만 자동차산업과 패션 산업, 관광 등으로 부유한 북부이태리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는 가난한 남부 이태리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호텔을 출발하여 먼저 바티칸 시국으로 향했다. 우리가 일찍 갔는 것 같은데 벌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여름에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로마 안에 바티칸 시국은 면적은 0.44제곱키로 미터이며 인구는 약 1000명이라고 한다. 먼저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갔는데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베드로 무덤에 세워진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1506년 교황 바실루스 2세에 의해 개축이 시작되어 마침내 1626년 교황 우르반 8세 때 성 베드로성당으로 완공 되었다고 한다.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며 성당 내부에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있는데 사람들이 운집하여 도저히 부근에 접근하기조차 힘이 들어서 멀리서 카메라를 잡았더니 후레쉬도 터뜨리면 안 되고 엉망으로 사진이 나온 것 같다 .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란 말처럼 그 내부는 정말 웅장하고 여러 교황과 성인들의 조각상과 종교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좌우 폭이 240M로 30만 명의 군중을 수용할 수 있는데 정면으로 성 베드로 성당의 입구가 있고 그 좌우로 반원형의 회랑에 그리스 식 건축 원주 284개가 서 있다. 그리고 광장 중앙에는 서기40년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운반한 높이 25.5M 무게 320톤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매주 일요일이면 교황의 집무실 창문이 열리면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강복을 내린다고 한다.

 

 

 

 

바티칸 박물관은 14세기 아비뇽 유폐를 마치고 교황이 바티칸으로 되돌아 온 이래 교황의 거주지가 되었다. 이 궁전은 20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곳의 소장품은 역대 교황들이 모은 것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과 미술사적으로 진기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새 교황을 선출할 때 추기경들이 모여 선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최후의 심판' 그림 앞에는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정말 대단한 그림이다.

 

 

 

먼저 들어오기 전에 가이드한테 설명을 듣고 들어오긴 했지만,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의 대작 앞에서 과연 미켈란젤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과 벅찬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천정을 보니 ' 천지창조'가 찬란하게 그려져있다. 그 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목이 아프도록 천정화를 본다고 거의 바닥에 앉거나 옆 긴 의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비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겨우 한자리 차지하여 목이 휘도록 탄성과 경이로움으로 위대한 작품에 흠뻑 취하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 때문에....

 

 

 

 

최후의 심판에서 잠시 눈 돌려 천정에 그려진 천지창조, 구약과 신약을 그린 그림 역시 경탄치 않을 수 없다.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목이 아픈데 어이 혼자서 저 대작을 다 그릴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 같이만 생각된다. 미켈란젤로란 천재화가와 조각가의 대단한 열정 앞에서 그 천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샘솟는다.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

 

 

 

 

그래서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쳐 보니 1475.3.6.--1564.2.18. 을 살다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대표적 조각가이며 화가이며 건축가이며 시인이라고 한다.

 

카노사 출신의 귀족 로도비코 디 리오나르도 시모니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 사이에 태어났으며 유년시절을 피렌체에서 보내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4세 때 당시 유명한 화가 도메니코 밑에서 그림공부를 했는데 그 당시는 우리나라처럼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피렌체 실력자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이 거느리는 화가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대 로렌초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 천정 벽화는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그림을 장식할 것을 명하여 4년 동안 발판위에 누워서 작업을 하였고 이로 인해 관절염과 근육 경련을 일으켰으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안료로 눈병도 생겼으나 1512년 마침내 작품을 완성하였으며 천정벽화에는 복음서에 언급한 천지창조와 구약성서의 4가지 사건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의 감동을 안고 점심 식사 후 에는 벤츠투어를 하였다. 돈은 좀 들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그곳에서 40년 동안 가이드를 하면서 이태리관광 가이드 자격증까지 취득한 노련한 분까지 합세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진실의 입에 가서 모두 손을 집어넣으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관광객들이 모두 익살스런 표정으로 그레고리 팩을 흉내 내고 있다. 그 진실의 입 석판이 강의 신 '플라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 하며 확실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세 때 로마시대 하수구 뚜껑이였다는 추측이...

 

 

 

 

다음으로 대전차 경기장에 갔다. 장방형의 길쭉한 경기장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지어 졌으며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1인승 이륜 전차 경기가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 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 곱하기 124m에 이른다고 한다. 이 건물은 로마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 중에 하나로 과거에는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으며 중간 중간 계속 증축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곳에서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고...

 

 

 

 

다음에 포로 로마노란 곳에 갔다. '포로'라는 뜻이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이곳은 상업 ,정치, 종교 등 시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관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으로 로마 중심지로서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는 로마 2500년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 되엇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곳으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광장은 137개의 스페인계단과 트리니티 디몬트 교회 (삼위일체교회)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이채롭다.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디의 아버지 페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조각배분수)라고 불리우며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는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판테온의 pan은 '전부' theon은 '신' 이란 뜻으로 로마의 모든 신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BC25~~17년에 건립한 신전이다. 잦은 외침과 오랜 풍상 속에서도 청동 문과 둥근 천장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대 로마 유적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 건축물로16개의 웅장한 정면 기둥은 코린트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고 원형 천장은 격자무늬 장식이 5열로 천정을 덮고 있으며 그 중심은 지름 9M의 둥근 원이 뻥 뚫려 있어 하늘이 그대로 보인다. 가이드 말로 비가 그곳에 내리지 않는다, 내린다, 하는데 빗물이 차서 밑에 하수구가 있으며, 6월 20일 낯 12시에 햇빛이 기둥을 비친다고 한다. 일종의 해시계 같은...

 

 

 

 

다음에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갔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며 이 분수 물은 ' 처녀의 샘' 이라고 불리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에서 분수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또한 이 분수에서 등 뒤로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다. 나는 기어이 딸에게 동전 두개를 던지라고 ㅎㅎㅎ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동전을 던지는데 동전들은 로마 시에서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사용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콜로세움에 갔다. 로마의 상징이기도 한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AD72년에 네로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인데 생사를 겨루는 검투사와 짐승의 격투가 있는 날이면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5000명이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큰 규모로 최대지름 188m, 들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라고 한다. 안에는 들어 가 볼 수 없었고 제일 마지막에 크게 보이는 얼굴이 원형 경기장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며 보이는 건물에 전체적으로 구멍이 숭숭 흉하게 뚫어져 있는데, 그곳에서 나온 철이 700톤이나 된다고 하는데 천사성의 대포알이 되었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기념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위해서 로마 시민과 원로원이 만들어 주었는데 315년 그 시대에는 예술가들이 귀해서 다른 곳에서 조각을 뜯어다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 저기 구경하기 바빠서 저녁은 시간에 쫓기어 김밥 도시락을 받고 로마 파우치오 공항을 출발하여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다음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괴테 하우스 등을 보고 한국으로 올 예정이다

 

 

 

늘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보내면서...

 

나날이 고운 날 보내시고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 하시기를~~*^^*~~~

 

 

 

  미켈란젤로 광장의 다비드상

 

 유럽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보는 피렌체의 정경

 멀리 붉은 돔 지붕이 피렌체두오모성당이다

 

 

 

 

  

 

 

 

 

 

 

 

 

 두오모 성당 맞은편에 있는 4세기경에 만든 세례당 동쪽문이 '천국의 문' 미켈란 젤로가 감탄한 문이라고 하며 새겨진 내용은 구약성경의 내용이 주제라고 한다.

 

 

 단테생가

 

 

 박카스상

 메두사의 목을 ....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조각이라고 한다. 아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고 승리한 적군 병사가 며느리를 데리고 갈려는...며느리는 가기 싫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가고파 병사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로 꼬고 있다는...

시아버지는 따라 가거라 하는 ....한 돌로 3사람의 각기 틀리는 감정을 표현한 대단한 조각품이라고...

 성당의 조각품을 만드는 석공들이 지금까지 일하는 장소

 

 

 헤라클레스의 가장 완벽한 남자의 뒷모습 이래나  모래나  ㅎㅎ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3시간 반동안 버스를 타고 르네상스가 처음 꽃 핀 피렌체로 이동했다.

 

피렌체는 이태리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14-15세기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다. 약 46만의 인구를 지닌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도시의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이태리 관광의 메카라고 불리 울 정도로 로마에 이어 역사와 문화의 장이라 할 수 있는데 11세기에서 16세기에 걸친 많은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도착 후 스파게티를 곁들인 점심 식사를 한 후에 흰색 분홍색 연록색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외부를 감상하고 단테의 생가를 지나 시뇨리아 광장에서 잠시 자유 시간을 가진 다음 잠간 가죽이 유명하다고 ...쇼핑을 하고, 일행중에 그곳에서 선물을 산 사람들이 많았다.  피렌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아름다운 피렌체를 마음에 담고 다음 도시인 로마로 4시간을 버스로 이동했다

 

 

 

 

단테의 신곡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가이드님이 보충 설명을 많이 해 주었다. 단테가 9살때 이웃에 사는 11살의 베아트리체를 사모했다고 한다. 좀 날카롭게 생긴 단테의 외모 때문인지, 연하라서 그런지 베아트리체는 마음에 두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고 단테도 결혼을 했는데 흑사병이 돌자 자신 가정의 안전보다도 더 베아트리체를 걱정하고 이윽고 베아트리체가 죽고 말자 신곡을 집필 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도 그렇지만 자신이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사람을 최후의 심판에서 뱀으로 칭칭 감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단테는 자기가 안 좋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지옥으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신곡을 읽으면서 만약 단테가 그네들 보다 먼저 태어났다면 책의 내용이 훨씬 빈약 했을 것이라는 개인적 소견이다....

 

 

 

 

모든 가이드들이 다 그렇지만 버스 이동 중에 그네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다 귀 기우리지 못하고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많은 신들의 이야기도 해 준것 같은데...로마에 간다니까... 신들 중에 제일은 제우스이고 그 부인이 헤라라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제우스는 수많은 여신들을 탐했으며  헤라는 질투를...디오니소스는 박카스 포도주의 신이라고 하는데 그 박카스가 아주 미소년 이라고 한다. 로마의 문화는 신(히브리즘) 중심에서 인간중심(헬레니즘)으로 변해 오면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고...예술도 그에 따라 화풍도 변하고 바뀌어 갔다고 한다.

 

 

 

 

로마에 도착하여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맛있는 코스 요리 이태리 해물 맛의 진수라는 '마짱꼴레' 라는 식사와 와인을 마셨는데, 먹어도먹어도 나오는 푸짐한 코스 요리에 살찌겠다고 모두 한 소리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다 대식가인가 양이 엄청 많았다.ㅎㅎㅎ그렇게 멋진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 드디어 로마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 관광을 기다리면서 꿈나라로....

 

버스로 이동중에 '로마의 휴일' 영화를 보았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이 간 그곳으로 우리도 내일 갈 것이라고 생각 하면서....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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