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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벗들이랑 6개월전 경주 모임에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약속을 해 놓고, 막상 약속한 그날에는 다 잊고는 집안 제사에 신경 쓴다고 정신이 없을때 친구가 문자가 온것이다. 이제 슬슬  출발할 준빈 다 되어 있냐고...앗 이럴수가...요즘 경제도 어려운데....아무리 그동안 틈틈이 모아온 회비로 간다지만, 약간 주변에 보기에 염체도 없는데...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우여곡절끝에 처음 약속된 날보다 조금 늦게 우리들 40년만의 수학여행을 다시 떠나게 되었다.

 

17일 아침내 밥이랑 국이랑 다림질이랑 바쁘게 끝내고 공항에 가니 대구서 출발해온 친구들이 곧 도착한단다언제봐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고, 수속을 마치고 7시 5분발 비행기로 곤명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되었는데 그곳 시간이 우리나라 시간보다 한시간이 늦어니 우리시간으로는 밤 12시가 다 되어갈 시간이다

마중나온 김학림가이드의 안내로 일행 우리6명과 노부부두분과 밀양에서 오신 아저씨 그렇게 9명이 우리 일행이다

 

다음날 호텔에서 6시반에 모닝콜을 해주어 7시반부터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8시반 출발하여 곤명에서 가장 오래된 원통사 절에 갔는데, 가이드님은 자기를 김총각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김총각으로 부르겠다. 김총각은 이동하는 내내 쉬지않고 중국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가 가는곳의 여러이야기들을 풀어 내고 있는데,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가이드로 직업을 바꾸었다고 한다

 

아주 착한 3년차 가이드로서 순수한 면도 보이는 잘생긴 김총각은, 약간은 우리나라 말에 어눌하기도 하지만 차만 타면 잠시도 쉬지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곤명은 6천평방키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600만이 사는 운남성에 속한 도시인데 그곳 발음으로 쿤밍이라고 한다.

 

 

원통사절은 규모가 아주 크고  당나라때 고대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호수와 절이 어우러진 정말 아름다운 사찰이였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전에 잠시 엎드려 절을 올렸다.일정에 쫓기어 그 멋진곳에 오래 있지 못했음이 아쉽기만하다.

 

다음 코스로 가는 도중 김총각은 또 열심히 마이크를 잡는다.명나라때 중국의  4대 명기에 들어가는 진원원에게 오삼계장군이 사랑의 선물로 주었다는 취호 공원에 갔다. 호수는 정말 넓었고 그곳에는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고, 음식을 팔기도 하고, 호수에 배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이렇게 멋진 공원에서  아침마다 요가인듯 춤인듯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무척 자유스럽게 보였다.

 

진원원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 찾아 보니 가이드의 설명과는 좀 틀린졈이 있지만, 만나는 남자들의 혼을 빼 놓을만큼 절세가인이였다고 한다. 오삼계(吳三桂)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장수이다. 그는 청나라 가 건국되면서 산해관 (山海关, 山海關)을 지키는 일을 맡았는데 농민반란군으로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 (李自成)이 북경 (北京)을 물리치고 나서 청나라 청 태종에게 투항하였다.

 

청나라 군대는 오삼계를 길잡이로 관내로 들어왔다. 후에 평서왕(平西王:藩王)으로 봉했고, 운남(云南)을 관리하도록 허가했다고 하는데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설 즈음의 오삼계와 이자성과 진원원이란 명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찾아 본다고 본의 아니게 중국역사를 좀 알게 되었다.

 

중국에는 소수민족이 56족이나 되고 운남성에는 26소수민족이 산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이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흑이족과 백이족으로 나누어 지는데 흑이족은 귀족이고 백이족은 노예신분이라고 한다 우리네 양반 머슴처럼, 노예와 노예주로 김총각은 칭하고 있다.

다음편에 흑이족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취호 공원에서 금명산(봉황이 운다) 금부전으로 갔다. 금부전은 그 당시 금보다 더 비싼 동( 구리 )로 지은 절이라고한다.금부전에는 오삼계와 진원의 러브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려서 병풍으로 만들어 놓고 전시하는 유물관도 눈에 띄었다. 오삼계가 차고 다녔던 큰 칼도 보이고...중국의 귀한 보물들은 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가져갔다고 했다.흔히 운남성을 과일왕국, 동물왕국, 목재왕국, 광물왕국이라고 한다는데 그 광물인 동이 많이 난다고 한다.

 

김총각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다 옮길수 없어서 아쉽고 사돈화장실 씨리즈란 유머도 웃겼는데

지식=학문을 닦습니다

화장실=항문을 닦습니다 

두 문장이 소리나는데로 읽으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화장실 다녀 온다는 말을 학교 다녀 오겠다는 말로 하자고 약속을 하고는 이동하는 장소마다 빨리 학교 다녀 오시라고... ㅎㅎㅎ

 

단발머리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우리의 우정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신맛이 강하건 혹은 너무 달거나 너무 쓰거나 그 어떤 맛이건간에 세상이 우리를 하늘과 땅으로 갈라 놓을때까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아름다운 순간들은, 우리가 잠시 슬프거나 고독할 시간조차도 허락지 않고 우리들 가슴으로 파고 들어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일깨워 줄것이며, 고운 추억은 명주실처럼 늘 우리 가슴을 춥지 않게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을것이다

  

 

그동안 제가 글을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올리지 못했음에도 꾸준히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많은 님들게

고마운 마음 전하면서 계속해서,오늘은 여기서 접고 계속해서  중국 여행기 동영상을 올려 드릴게요 

오늘 비가 온다지요 날씨는 흐려도, 우리네 맘속 깊은 곳에는, 늘 생각해주고,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운 정으로 충만한,환한 태양이 빛나고 있음에 감사 하면서 고운 하루 보내시기를~~~  

 

 

 

 

 

 

 

 

 

심수관 도요지를 보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초밥과 참치회 튀김 우동등이 나왔는데, 흔히들 일식은 눈으로 먼저 먹어야 된다고 할 정도로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차려진 밥상이였다.점심식사후에 가고시마 항으로 이동하여 훼리편으로 사쿠라지마 활화산에 갔는데,배타는 시간은 15분 정도 걸렸다. 차에 탄 채로 승선하고, 배에 타서는 하차하여, 눈앞에 보이는 사쿠라지마 활화산을 사진에 담았다.

 

나는 사진 찍는다고 왓다 갔다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3개 사서 2층으로 갔더니, 뱃머리에 앉은 엄마는 옆에 일본 할머니랑 일본말로 대화를 하시며 웃고 계셔서 아이스크림을 전해 드렸더니 어찌나 사양을 하시는지...엄마가 일어로 맏딸하고 사위라고 말하시며 두분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인양 잠시지만 정겹게 대화를 하셔서 보기에 흐뭇했다.

 

나이가 주는 공감대가 빨리 형성 되나보다.지금도 학생들이 학교에 갈때 헬맷을 쓰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화산재가 뿜어져 나온다고 하는데 그 할머니는 산 중턱 자기 밭에서 양파랑 고추등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셨단다.너무 짧은 시간, 같이 하셨지만 헤어질땐 서로 건강하시라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분화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쿠라지마의 형성과정과 활동, 사쿠라지마에 서식하는동식물들을 관찰 소개하는 '비지터센터,아리무라전망대'로 이동해서 잠시 기록영화를 본후 전망대로 향했다.

 

사쿠라지마활화산의 둘레는 52키로미터 80입방제곱미터라고 하며 북악 1,170 미터 중악 1,060미터, 남악 1,040미터라고 한다

남악은 1708년 최초 폭발후 지금까지 700회나 폭발했다고 하며 하얀색 연기가 피어 오르면 수증기가 많은것이고 잿빛일때는 화산재가

많다고 하는데 용암이 분출될때 화산석들이 동물 사자나 코끼리등 재밋는 형상들이 많아서 신비로운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리시마지역 특산물인 흑식초 생산지로 갔는데 누룩과 찐살 지하수와 기리시마의 햇살과 항아리에서 자연발효시킨 옛날

방식의 식초는 4-5일 지나면서 항아리속에서 부글 부글 소리가 나는데 하나 하나 사람의 귀로 그 소리를 듣고 술에서 식초로 완성되어

가는것을 냄새 향기 소리로 확인하며 3년간 숙성시켜 만든다는데 45000여개의 식초 항아리가 장관이였다

 

식초와꿀로 만든 음료수를 한잔 하고 선물용으로 몇병 사왔다.식초가 들어간 사탕을 한봉지씩 선물로 주기도 했다.

애도시대때 1800년경 부터 사찌항아리식초가 만들어져 내려 오는데 "사카모토 흑초"로 불려진다고 한다

식초공장에 들렀다가 기리시마로 이동하여 이와사키호텔에 도착하였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듯한 호텔이 가까워오자 유항냄새가 진동하였고 계곡에선 유황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조금 휴식한후 비가 한두방울 내리는데 '하야시다온센' 이라는 계곡 온천으로 향했다.

길이 좁아서 인지 차로 4-5명이 한조가 되어서 노천욕을 할때 입을 옷으로 갈아 입고 갔는데, 어두운 밤이라 흐미한 불빛속으로

뿌연 연기가 피어 오르고 그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여 놓았더니 놀랍게도 계곡을 흘러 가는 물이 모두 뜨겁다.

 

황과 명반 황산 식염등이 주성분인데 위장병, 신경통, 상처, 피부병, 류마티즘, 당뇨병, 동백경화증에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병을 고칠려면 오래 이곳에 묵어야 할것 같은데, 다른 민박은 보이지 않는다.우리가 묵은 기리시마 이와사키호텔은 지금 천왕의 아버지가 찾았을 정도로 물의 품격을 알아 주는 곳이라고 하고, 아주 유명한 일본 해군사관학교를 창설한분이 신혼여행을 왓다고도 한다.

 

호텔내 지하1층에 있는 대 온천장의 노천 온천도 그 크기도 크거니와 여러탕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계단식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고

저녁이나 아침엔 거의 사람들이 없어서 엄마와 둘이서 그 큰 노천 온천장을 전세낸듯한 기분이 들었다

딸이나 좋은 사람들과 다시 찾고싶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곳이다.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하고픈 사람들에겐 좋은 휴양지같다.

 

눈돌리는곳마다 삼나무숲이 울창하고 일차선 도로엔 차들도 많이 보이지 않는데 다들 앞지르기를 하지도 않고 느긋이 달리고 있다

한적한 시골길같은데 보이는 집들의 기와 지붕색갈도 다 똑 같다.비가 자주 와서 그냥 지붕에 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팔순 엄마를 모시고 여행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코스면 더 나이가 드셔도 가능할거 같다.

 

8팀의 가족 20명이 같은 일행이였는데 모두 만족해 하신다. 오는길엔 노팁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게 너무 많은 일본의 역사와 이야기들로

차로 이동하는 동안 잠시라도 쉬지 않고 우리를 즐겁게 해준 가이드님께 약간의 성의를 전했는데 극구 사양하셨지만...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상냥하고 친철한 그들에게서 배울건 많이 배우고 또 지켜내야 할건 지켜 내면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관계를 유지해야 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최남쪽 지방인 가고시마 이브스키 기리시마여행기를 마칠가 합니다.

두달에 걸친(7월에 가서 8월에 왔어니간 옆지의 표현) 짧고도 긴 여행기간동안 엄마와 함께한  행복한 추억은, 살아 가면서 춥거나 바람

부는날   따뜻한 보약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우리라  생각 하면서 엄마가 늘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만수무강 하시길 빕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더운 여름날 건강 잘 챙기시고 나날이  고운날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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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보낸 여름휴가 2부(치란 사무라이마을 심수관도요지)

 

 

호텔에 와서 잠시 휴식후, 이른 저녁을 먹고 이번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검은모래 찜질을 하기 위해서 지하4층으로 내려가서

찜질용 옷으로 갈아 입고 다시 지하5층으로 내려갔다.그곳이 바다랑 통해져 있나보다 밤 8시쯤이라 흐려서 바다는 보이지 않고

이미 아저씨들이 대충 파 둔 구덩이에 차례대로 누웠더니 아저씨들이 검은 모래를 끼얹어준다.

 

바닥이 뜨끈 뜨끈 구들목같은데, 해안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되어 올라오는 온천열에 의해 뜨거워진 모래 속에 들어가 땀을 빼는 천연

모래찜질온천이라고 한다 그 효능은 어깨걸림이나 관절통 천식 전신 미용에 좋으며 위를 보고 누워있으므로 혈액순환이 활발해지고

모래의 압력이 가해져 온몸에 혈액순환이 잘되어 심박출량이 증가하여 노폐물을 바깥으로 빠지게 한다고 한다

 

15분이 지나니 더이상 못참을것 같아서 상반신은 일어나고 발을 중점으로 5분정도 더 하다가 일어서고 말았다.

옷입은채로 모래를 털어내고 샤워후 옷을 갈아입고 지하 1층에 있는 이브스키온천에서 또 온천을 했다.

나트륨 염하수로 지하의 해수와는 성분이 다르다고 한다.

 

나트륨이온이 많아서 신경통이나 베인상처 화상 만성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15만평의 광대한 정원과 해변이 호텔앞에 펼쳐져 있다는 선전 문구처럼 정말 휴양하기엔 조용하고 좋은 호텔이라고 생각된다

다음날은 치란 사무라이 마을로 갔는데, 우리나라 안동과 같은 관광지로서 애도시대 무사들의 가옥이 남아 있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문패도 달려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 부터 너무 잘 손질된 느낌이 들었다.잠시 돌아보고 심수관 도요지를 관람했다

임진왜란때 전라도 남원지방에서 도공 70여명이 끌려 와서 오늘날에 이른것이라고 한다 1대의 이름은 심당길이였고 12대 심수관이후부터 계속 심수관으로 내려 가는데 지금은 14대 심수관이며 그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8대 심수관과 12대 심수관님의 작품들이 많았는데 사진에 담아 오지 못했고 정말 섬세한 빼어난 수작품을 마음에 담아 올 수 밖에 없어서

안타깝고 관음보살상과 보현보살 선재동자등 불교적인 작품도 많았다.

 

일본은 가업을 백년 이백년 이어가는데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끝없는 연구로 하찮은 일일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사용하도록

섬세하게 만들고 있으며 가격표만 보아도 600엔 이렇게 끝이 나는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597엔 이런식이다

백조 문열왕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그때 우리나라의 문물이 많이 일본으로 건너간듯하다

 

가이더님이 끝없이 많이 들려 주었는데 백제계 귀족인 소가씨와 일본 전통 귀족인 오노로베씨가 싸우다가 소가씨가 쫓기게 되어

지금 이 곤경에서 구해 주면 이땅에 절을 짓겠다고 말하자 큰 나무가 갈라지면서 그안에 숨겨주어 살아 났다는 것이다

그후에 사천왕사 절을 지어 일본에 불교가 융성하게 되었다는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 콩고구미 금광조라는 1400년된 기업이 있는데 그곳에서 공사한 절은 7도 지진에도 견딘다고 한다.

 

얼마전 큰 지진이 났을때도 콩고구미 금광조가 공사한 절은 끄떡없이 버?다고 한다 그래서 콩고구미 금광조가 지은 절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여러가지 일본인들을 지방색으로 빗댄 말중에서 오사까 사람들은 먹다 망하고 교또 사람들은 입다가 망하고

동경 사람들은 명풍 허영심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교또 사람들은 겉다르고 속다르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음식중에 오차즈께라는게 있는데, 녹차에다 깨소금을 넣어서 만든 아주

간소한  음식이 있는데 손님이 왔을때 오차즈께라도 먹을래요 하면 그건 손님보고 가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먹겠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고, 그네들은 안된다 싫다라고 딱 잘라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 생각해 볼께"라고 말하면 아니라는 뜻이라는것이다 처음 가이더가 그것때문에 많이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류열풍은 대단해서 통역하는 사람들 명함에 보면 거의 다 "전 배용준 통역관"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일본천왕이 신이면서도 죽는 이유는 태양신의 아들이 다까찌호이네산에 내려 왔을때, 고노화라란 꽃의 여자와 이화라는 바위 여자를 보내 주었는데,  절대로 죽지 않는 불멸하는 바위 여자인 이화를 택하지 않고 꽃의 여자 고노화라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동하는 중에 쉬지않고 가이더님은 자기가 알고 있는 역사이야기와 상식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는데, 아사이맥주는 쌉싸름해서 남자들이

즐겨 찾고 기린아찌방맥주는 약간 단맛이 있어서 여자들이 즐겨 찾는다고 해서, 저녁에 슈퍼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콘부제리랑 맥주를

살려고 했는데, 맥주는 찾았으나 콘부제리는 보이지 않아서 진열대를 정리하는 종업원에게 콘부제리가 있냐고 했더니 친절하게도 나를

 

지배인한테까지 데리고 가서 그분은 또 전화로 물어 보고, 그러고 나더니 없다는 것이였다.정말 너무 친절한 그들이 상술에 우리도 그들의 그런 친절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되었다.그네들은 절에 가서는 10원짜리 동전을 던지고 박수를 두번 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신이 안다고...그래서 한국에 와서도 그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한다.다음은 쿠르즈로 사쿠라지마화산섬을 보고 기리시마 계곡온천편으로...

오늘은 여기 까지만...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고운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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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출발이라 엄마가 대구에서 전날  우여곡절 끝에 올라 오시고,그 이유는 생략 합니다 ...^^ 

서울에 남동생이 역으로 마중을 나가서 모시고, 올케까지 태워서 우리집에 오신 시간은 약간 늦은 저녁시간이였다.

다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내가 주문해서  가져온 맛있는 두텁떡도 맛보고, 동생이랑 남편은 술이 거나해져서 11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올케가 좀 도와주긴 해도 어디 갈려니 밑반찬이랑 해야할 일들이 또 어찌나 많은지...

 

동생내외가 엔화로 엄마 용돈을 또 바꿔와서 드리고 갔다.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여행 잘 하고 오시라고...착한 동생 내외를 보내고 12시쯤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새벽5시에 일어나서 머리 감고 식구들 깨워서 아침을 준비할려니 다들 밥을 못먹겠다고 해서, 수박 포도 떡 옥수수 삶은것 두텁떡을 준비하고, 아들 딸을 깨워놓고 6시경에 공항행 버스를 타고 한시간 걸려 공항에 도착했다.

 

엄마는 아기처럼 좋아 하신다.약간 귀가 잘 안 들리시고 숨도 차고 고혈압이긴 하셔도 겉으로 보기엔 아직도 60대 후반으로 보이신다.

화장도 곱게 하시고... 공항에 도착하니 휴가철이라 한마디로 북새통인데 우리 가이드님은 아직 안나타 나셔서 우리는 한켠에 앉아서

준비해간 음식들을 먹었다.우리가 좀 일찍간 샘이다.어디 갈려면 항상 일찍 가 있어야 하는 내 성격이기에...

 

제주도랑 국내 여행은 많이 해 보신 엄마지만 해외 여행은 처음이신데다 공항에 모인 사람들이랑 크기에 놀라셨나보다.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내까지 해외를 가니 하시지만 기분은 좋으시다. 사위랑 딸따라 가서 아프면 안된다고 미리 미리 약도 드시고 영양제도

챙겨 오셨다.나도 따로 종합 비타민이랑 글로코사민등을 챙기고 비상약도 다 챙기긴했다.

 

한시간 반 정도 걸려서 가고시마공항에 도착 했는데 하늘에서 보니 삼나무가 울창한 그 지역의 산세는 정말 아름다웠다.

너무 박식한 롯데관광의 강경희 가이드님은 차로 이동하면서 이번 여행일정표를 나누어 주었는데 몸이 안좋은 분들이 온천을 하는 방법과, 일본 여행시 주의사항, 호텔에서의 주의사항, 전화거는 요령, 간단한 일본말 등등 너무나 꼼꼼하게 잘 기록되어 있었고, 이동중에도

끝없이 많은 그곳지방과 관계된 역사 이야기들을 해 주어서 적긴 많이 적었는데....

 

 

공항에서 한시간 반 거리의 이브스키 이와사키호텔로 이동 하는 중에 이케다 호수의 괴물 뱀장어를 구경하고 갔는데, 천연 기념물로

정해진 징그럽게 큰 괴물 뱀장어들이 여러마리 수족관에 누워 있었는데, 꼼짝을 하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다. 야행성이라 낮엔 활동하지

않는다고 한다.그곳의 기후는 우리나라 대구 날씨랑 똑 같다는 어머님 말씀이시다.정말 더운 날씨 였지만 걷는 시간이 많지않아서 여행하는데 크게 불편하거나 더위를 느끼진 않았다.

 

이브스키 이와사키란 호텔은 정말 그 크기가 대단했다.그곳 사람들의 휴양지라고 한다.호텔내 골프장 수영장 각종 놀이시설들과

너무나도 유명한 검은 모래 찜질과 호텔내 정경이 마치 깊은 숲속에 들어 온듯 폭포물이 떨어지고 그 소리 또한 우람했다.

수영복은 준비하지 않았지만 멋지다는 수영장이 보고싶어서 가이더를 따라 한참을 이동한 그곳은 정말 탄성이 나올만치 그 경관이

 

좋았고 바로 바다와 접해 있어서 너무 멋�다. 엄마를 주인공으로 해서 영화 한편 올리겠다고 하니까, 엄마는 80노인네를 팔아서

어쩔려는냐고 해서 나랑 옆지는 한참을 웃었다 팔순인데 얼굴 좀 팔면 어떠냐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편 기대 하세요

고운 하루 보내시고 제가 며칠 없어도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여러님들 고맙습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길.....*^^*~~

 

 

 

 

 

 

 

 

 

딸과 보낸 여름 휴가 (필리핀 세부)

 

 

밤 늦게 막탄 공항에 도착했는데 케니 가이드님이 마중 나와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일행은 나와 딸 그리고 아주 예쁜 5아가씨들이랑 같이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아침에 청아한 새소리에 잠에서 깨었다.딸은 속이 쓰리다고 가져간 약을 먹고도 밤새 뒤척이더니 새벽녁에 잠이 든 모양이다.일찍 바닷가에 나가 보고 싶었지만 딸이 깰까봐 참을 수 밖에 없었다.행여 문 소리에 잠이 깰까봐...

 

찌르르르 콕콕... 무슨 새인지 계속 한참을 뒷 창문께에서 우짖다가 날아 간후에 모닝콜이 와서 딸을 깨워 아침을 먹고 바다에 나갔다.

오늘은 좀 느슨하게 일정이 잡혀 있어서 다들 느긋하게 준비하여 약속된 시간에 케니씨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여

잠수를 할 사람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은 구경하고...그러는중에 비가 갑자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여 늦은 점심을 먹고 발마사지하는

곳으로 이동했는데 ...케니가이드님의 배려로 전신까지 받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 세찬  비를 맞고 유유히 걸어 가는 어린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든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다들 내리는 비를 피한다기 보다는 즐긴다고나 할가 그런 표정으로 느긋하게 걸어 가고 있었다. 케니씨 말로는 자연 목욕을 하는셈이라고 한다.다들 카톨릭을 믿어서 피임도 하지 않고 산아 제한도 하지 않아서 한집에 가족구성이 보통 열식구 정도라고 하는데, 다들 가난해서

그중 아주 똑똑한 한 자식을 밀어 주어, 학교 공부도 시키고 외국 유학도 보내고 그 애가 성공하여 고국으로 송금을 보내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나라를 이끌 기둥이 된다고 하는데, 마르코스대통령의 부인 이멜다의 극에 달한 사치와 군부 쿠데타등으로 지금도 군사세력이 득세하고 있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지성인들이 일년에 몇백명씩 죽어 간다고 하니, 그 옛날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듯한 그네들의 가난한 삶과,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는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체구와, 새카맣게 별처럼 반짝이는 그네들의 쌍겹진 눈과, 검은 생머리의 소녀들 모습은 아름답고 다들 닮아 보였다.

눈만 마주치면 " 예쁘다"를 연발하며 하얀이를 들어 내고 웃는 남자들의 모습은 1달러를 얻기 위해서만 그토록 친절하게 부드럽게 웃지만은 않을것이다고 생각되지만....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몸에 밴 습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국민들 천성이 바쁠것도 없고

잘 웃고 친절한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머무는 비치리조트는 정경은 그럴 수 없이 아름다웠는데 바다와 접해 있고 실내 수영장이나 울창한 숲 늘씬한 야자수들...

그런데 처음 배정받은 방에서는 샤워기가 움직이질 않아서 좀 불편하여 다음날 방을 옮겼는데 옮긴 방은 또 문이 문제라 케니씨가 가고나서 원주민 아가씨와 방 문제로 전화 대화를 해야 하는데,,,휴 생생영어에서 배운걸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이방은 또 문이 문제인데 문을 고쳐 달라고 해야 하는말이 도무지 생각이 ...도어체인지만 연발 하고 말았지만 용케도 대화뜻은 알아 차렸나보다 ....

 

고치는 아저씨 두분이 오셔서 먼저방 도어를 풀어서 이방으로 옮겨서 해 주었다.그런데 저녁에 잘려고 누었는데 게속 몸이 스멀 스멀 간지럽기 시작이다. 딸은 긴바지 긴팔로 갈아 입고 가져간 전자파 모기향을 피워도 소용이 없다.

아무턴 뭔가 2% 부족한 기분이다.깨끗하게 청결한 맛이 없다고나 할가...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을 여행할때는 그들 나름대로눈 잘 하고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흡족치 못한 부분이 많아서 다음날 시트 교환하러 온남자 직원에게 더티하다고 말했더니 필리핀 스타일이란다.

 

필리핀에는 오랜 식민지 생활로 아무래도 여러민족의 혈통이 섞여서 그런지 잘생긴 사람들은 아주 멋진편인데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면 잘생긴 얼굴에 미소 가득 띄며 모두다 "필리핀 스타일"이란 그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우리들 말을 다 알아 듣긴 하는데....그들의 친절은 정말 사양해도 다 들어 주고 방을 옮길때도 끝까지 다 옮겨 주어서 1달러와 가져간 과자들을 주었더니 다음날 작은 타올이 필요 하다고 했더니 어디서 구해다 놓았다 ㅎㅎㅎ

 

저녁 식사때는 4인조 그룹이 키타 연주를 하며 귀에 익숙한 호텔 캘리포니아등을 들려 주었는데 나름대로 낭만은 있었지만, 다들 또 1달러를 요구 할거 같아서 인지 자리를 뜨고 말았다.리조트에 머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날은 호핑투어 일정으로 스노쿨링 바다낚시 멋진 해물부페를 먹고 저녁에는 다들 야경을 구경하고 나이트를 간다고 하는데 속도 안좋고 술도 못 먹는 딸이랑 나는 나이트를 안가고 리조트에서  피앰피에 저장된 멋진 영화를 한편 보았다. 이곳의 나이트 문화는 가족단위로 술은 무한정 리필이 된다고 모두 좋아라하고 갔는데, 새벽 3시께야 돌아 와서 어찌나 떠드는지 잠이 깨고 말았다

 

저녁 삼겹살구이를 거의 못먹고 게속 속이 쓰린 딸을 위해서 케니씨가 특별히 죽을 주문해 주어서 맛있게 먹고 잘 잤다.

다음날은 마젤란이 필리핀에 상륙하여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마젤란 십자가, 스페인의 초대 총독 레가피스에 의해 세워진 성 어거스틴 교회, 이슬람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건설한 산패드로 요새등을 구경하고 잠간 쇼핑을 하고 저녁은 맛있는 샤부샤부를 먹고 시간이 남아서 마트에 잠시 들렀다가 샹그릴라호텔에 잠시 들러서 사진만 찍고 어메이징쑈를 관람하고 공항으로 가는게 전 일정인데 우리는 어메이징쑈를 관람하지 않고 그 건너편 까페에서 리사랑 한시간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게이들이 나와서 술은 무한정 리필된다는 어메이징쑈도 술도 못먹고 해서 그냥 까페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야외에서 하는 어메이징쑈의 노래는 다 들렸다.우리는 대나무로 엮은 까폐 이층에서 일하는 18살에, 낮엔 대학에 다니고 저녁에 알바를 한다는 리사와 콩글리쉬와 단어들만 나열하면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그녀는 정말 예쁘고 상냥스런 우리말을 다 이해하는듯한 눈빛이 맑은 소녀였다.

가족은 10명인데 남동생 여동생 시집간 언니도 있고 엄마는 나보다 10년이 적은데 애를 8명이나 나았다고 한다.

 

리사와 영어만 좀 통하면 국제적인 친구가 될 수 도 있을것 같은데 하며 아쉬워 하는 딸에게 이번 기회에 영어를 좀 배우라고 충고하고

공항에서 우리는 2시간을 기다리며 세부에서 보낸 3박5일간의 휴가를 회상해 보았다. 젊은 아가씨들은 나름대로 나이트도 즐기고 끝없이

사진찍고 " 예쁘다" 하는 원주민 발음으로 우리를 웃겨주며 가이드와의 마지막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다.

딸과 나는 좀 열외이긴 해도 이쁜이들이 다 인간성도 좋고 서글한 성격탓에 같이 낑겨서 사진도 찍고 즉석에서 나온 사진을 보면서 즐거운 마지막 여행길을 보냈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고 했던가, 조금은 아쉽고 아직 하고픈, 남은게 많은것 같은데...아쉬움 담은체 다음을 기약하며...

여행지에서의 불편함이 있었기에 더 가정의 소중함이, 우리나라의 좋은점을 뼛속깊이 느끼면서, 아무래도 경제적인 성장이 늦은 그네들이기에 좀더 상업적이지 못한..조금 투자하여 더 멋지게 거듭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 부족함을 가이드들의 정성과 인간미로, 넘치는 그네들의 필리핀 스타일 친절로,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자위하면서  이번 여행지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망고를 실컷 먹었다는 것이다.두리안의 그 맛은 정말 지독했지만...

 

그리고 우리들에게 정성을 쏟아준 모두 투어의 케니가이드님께 고마움을 표하며, 공항까지 나와서 물론 사진을 팔기 위해서긴 해도 우리를 마중해준 미스터봉의 순수한 미소도 기억에 남을것같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멋진 코리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지금 우리 집이 얼마나 멋진 샹그릴라호텔 수준인지 느끼면서 나날을 휴가처럼 멋지고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민주주의 우리나라, 살기좋은 우리나라가 있어서, 나날이 촛불집회로 시끄럽긴 해도 그래도  제일 살기좋은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돌아온 셈이다.

아이 러브 코리아 그마음 잊지 말고 늘 감사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 가야 한다고 다짐 하면서.....

 

 

 

 

 

 

 

 

 

 

 

 

 

가면 갈수록 더 가고파 지는것

 

 

여행의 의미는 가면 갈수록 더 가고파 지는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아는 어느분은 지구의 반은 가보셨을것 같은,정말 여행을 좋아 하시는

분이신데, 평소엔 사회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적극적인 인생을 사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중에서 "부자란 소리를 듣고 죽을 것이냐 아니면 부자로 살다가 죽을것이냐" 인생은 그 두가지 중에 하나라는것이다.

 

아끼고 아껴서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주고 죽으면 부자로 죽는 것이다고, 자신을 위해서 정말 메이크 옷하나 안 사입고 안쓰고

죽으라 일만 하면서 허리가 휘어 지도록 그렇게 힘겹게 재산을 모아서 자식들에게 물려 주면, 그 자식들이 과연 그 재산을 눈물겹게

고마워 하면서 정말 유용하게 쓸것이냐고... 쉽게 생긴 재물은 자식들에게 도려 악영향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결혼할때 단칸 셋방에서 시작해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나마 겨우 아파트 집한칸 마련하고 자식들 공부 시킨게 다긴해도,어디 돈 빌리러 간적은 없고 겨우 살고는 있으니, 인생이란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만 한다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살려고만 한다면

힘겹긴해도 그냥 그냥 살 수는 있는 세상이긴하다.

 

물론 유산을 많이 자식들에게 남겨주고 ,우리가 살아온 힘든길을 좀 편안히 살게 하면 좋을것도 같지만, 형편이 그리 안되니 또한 어이

하겠는가...일찌기 아들 딸도 부모의 능력을 알고,그에 대처하는 삶을 살아 가리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리 믿고 있음에 내가 천하태평인지

모르겠지만...아무턴 나는 딸을 잘 둔 덕분에 여름 휴가는 딸이랑 잘 보내게 된것이다.

 

낯선곳을 향한 강렬한 손짓을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랄까...피할 수 없는 갈망이 커서라고나 할가...지금도 누가 어디로 가자고 하면

가슴이 뛰니... ㅎㅎㅎ못말리는 이 역마살이라니 ....

가방을 싸고 준비하는 이 과정의 흥분....여행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인터넷을 검색하고 그곳에 대해서 공부하고 찾아보고....

 

여행을 한다는건 어쩌면 이 짜릿한 전율로 무덤덤한 삶에 생기와 활력을 주는 윤활유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이 허락 하는한 나는 짐을 챙기고, 몇날 며칠 전부터 이런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무한질주의 쾌감에 빠져서, 허우적이는 행복을, 결코 포기 할 수도 놓칠수도 없다고, 내 삶의 살아 가는 의미이기도 한, 이 무한한 낯선

곳을 향한 노스탈쟈의 깃발을 높이 들리라고 다짐해본다.

 

나는 오늘 여행을 떠난다....그래서 꿈꾼다....결코 유토피아를 찾는것도 아니고 영화속 어떤 로멘스를 찾는것도 아니다....

단지 그 설레는 과정 이 잔잔한 떨림이 좋다 그냥 좋다 ....

돌아 오면 화려한 환상도 달콤한 꿈도 행복한 손짓도 모두가 다 허망함이였음을 알게 되겠지만,  솜처럼 젖어 땅으로 스며들것처럼

피로에 지칠지도 모르겠지만...그래도 나는 떠나고 또 떠날 것이다  

 

나의 이 말릴 수 없는 역마살이 딸에게 대물림 한것인지 여름 휴가를 위해서 일년동안 열심히 일하고 모았다는 딸 덕분에 정말 자주 여행할 기회를 얻었다고나 할가....필리핀은 일찌기 다녀 왓지만....이번 여행은 그냥 푹 쉰다는 의미를 만끽하러 떠나는것이다

돌아 와서 다시 뵈올때까지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날들 보내시기를~~~*^^*~~

 

 

 

어젯밤 순자와 통화를 했다

내가 없을때 전화가 왓다고 하여

했더니 기어히 끊어라고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래도 내 고집이 더 쌔니간 ㅎㅎㅎ

 

작년 6월에 보고 왔는데

그동안 한두번 통화는 했었지만...

내가 가고 난뒤 많이 아팟단다....

갑상선암 수술을 했지만 건강엔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아버지처럼 의지했던 큰 형부가 돌아 가셨다고 했다

어렸을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 가시고 큰언니가 엄마같이...

그래서 언니따라 이민도 갔었어니...

그 형부는 배를 타시는 일등 항해사 였었고

세계를 다니시다가 호주가 제일 살기가 좋다고

 

백호주의를 부르짖는 그 호주에 이민을 가셨어니간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이 된다 똑똑하시구...

순자에겐 아버지와 같은 존재 셧을것이다

게속 아파서 직장도 그만두고....내가 너무 놀라서 무순 병이냐고 캐 물어니

 

우울증 비슷한거라고 한다...

세상에...그동안 내가 자주 전화 하지 못한 죄책감이 든다

친구의 슬픔과 고독을 헤아려 주지 못하고

나는 바빠서 아플 시간도 없이 지낸다는거만 자랑했어니...

 

요즘 많이 좋아 져서 요가를 다닌다고 했다

그래 친구야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으랴...

기계도 50년을 넘게 쓰면 다 고장이 나고 다시 보링을 해야 할텐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 스트레스 주면서 우리몸을 함부로 방치 했던가...

 

그동안 내 몸 귀하고 소중한지 모르고

너무나 혹사한 것 우리 모두 반성 하자구나....

배가 부르면서도 맛있는거 보면 또 과식하구

목이 부엇다고 신호를 보내왓는데도

편두선쯤 무시하면서 그저 기분 좋으면 노래방에서 고함 지르구...

 

잠자야 할 시간에 조금 재밋는 영화나 게임이나 컴에 빠져서

제대로 안자구 얼마나 많이 내 몸 속 장기들에 스트레스를 �을까

깊이 반성하고 또 반성 해야 해....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살게 하는 내 몸속 부지런한 장기들이여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동안 한번도 스트라이크 일어키지 않고 늘 내 편이 되어 주어서.....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별들을 겪어야 할가...

죽음으로 헤어지는 그 슬픔을 어이 견딜가...언젠가는 모두 다 돌아 가야 할 것이지만...

 

나도 시숙님들과의 안타까운 이별을 벌서 겪었지 않은가...

살면서 살아 갈 수 록 그 빈자리는 더 크게만 느껴지는데....

타국에서 그 이별은 맘 여린 친구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나보다...

순자야 너는 종교가 잇어니간 천국에서 만나게 될거야...언젠가는

그러니간 너무 안타까워 말고 언니와 잘 지내다 보면 애틋한 맘도

조금은 가실거 같구나...

 

이제 우리가 살아온 세월만큼 남은 시간들이 길진 않을거 같구나

언제나 건강 잘 챙기고 한국에 한번 다녀 가렴...

정말 좋은 너같은 친구가 있어서 나 무척 행복하거던....

그러니간 오래 오래 아프지 말고 우리 같이 이세상 소풍 끝나는 날까지

기쁨도 슬픔도 함게 나누며 지금처럼 고민도 털어 놓고

그렇게 잘 살아내자 친구야 사랑해 아프지 마~~~~~~~

 

ps;희진이가 좋은 사람이 생겻다니간 축하해 너무 엄마의 욕심을 부리지마라 사랑은 억지로 안되는거잖아...이뿐 희진이 누구한테나 다 사랑받을거 같아 축하한다고 전해 줘라~~~*^^*~~~

 

 

 

 

 

순자와 보낸 시드니의 밤

 

 

억쑤같이 퍼붓는 빗속을 달려온 순자와 그 딸

호텔을 찾는다고 그 캄캄한 밤거리를 헤메면서

멀리 한국서 온 친구를 본다고 가슴 설레며...

 

순자와 헤어진지 어언 이십년이 다 되어 가나보다

이민 가기전 서류때문에 우리집에서

일주일간 딸이랑 같이 지낸적이 있었다

 

그 딸은 벌서 처녀가 되어 시드니은행에 다닌다고 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암수술을 받은 친구는 수술후 운전을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에서 돌아온 딸이 밤 늦게 그 비속을 달려 온 것이다

 

그냥 이렇게 갈 순 없다고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해서

그 밤에 폭우가 퍼붓는 빗길을 달려 친구 집에 갔다

한시간을 달려 간 친구집은 아담한 연립같은 곳이였다

 

그동안 전화도 편지도 이따금씩 하긴 했었지만

감개무량 했다 친구 남편도 물론 너무 잘 알기에 인사를 나누며...

나를 위해 만들어 둔 특별성찬을 다시 먹고

둘이서 침대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로 밤을 세웠다

 

순자와의 추억은 너무나 많다

내가 언젠가 쓴 가을에 온 편지에 잘 소개 되어 있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추억속을 헤엄치며 그렇게 밤을 세우고...

 

호텔로 돌아 갈 시간에 순자는 내게 줄 선물을 한 뭉치 내어 놓는 것이다

커피를 좋아 하는 남편과 초코�을 좋아 하는 딸애와 나를 위한 마누카꿀까지...

에고 어쩌나 사실 나도 순자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 할 생각은 많이 했는데

 

예전처럼 김이나 미역 멸치등을 가져 들어 갈 수 없다고

무조건 다 못 갖고 들어 오니간 그냥 오라는 친구말을 그대로 믿고...

친구는 예전보다 너무 야위었다고 하구 그 딸은 어떻게 성정한지 감이 안와서...

 

그곳은 6월이 겨울인지라 순자나 그 딸이 입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로 산  옷을 두툼한 등산잠바속에 입고 간 것이긴했다

빈손으로 간 내가 너무 미안해서 새로 사 입은 핑크빛티셔츠 앞에 책읽는 소녀그림이 프린트된

 

친구 표현으론 애들 옷 같은 그옷이랑 다용도로 입을 수 있는 붉은 등산 모직 조끼를 곱게 걸어 두고

친구 화장대밑 네모난 상자밑에 내가 지니고 있는 돈 전부를 몰래 숨겨 두고는

친구의 선물에 너무 행복해 하면서 다시 친구딸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 왓다

 

일행들은 모두 여행도 하구 이십년만에 친구도 만나고 선물도 받고  이번 여행 정말 잘 왓다고 부러워했다

일정대로 웅장하고 멋진 오페라 하우스 곳곳을 구경하고 그곳에서 정말 멋진 음악회에 꼭 한번 참석했음 소원이 없겠다는

소원아닌 소원을 빌어 보고 보기만해도 아찔한 하버브릿지 다리를 개미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가슴 졸이며 쳐다 보고

 

시립 미술관에 들러 바이올린 현악에 취하면서 감상 하는 호사스러움 까지 누리고

해질녁 미세스맥카리 포인트에서 다시 한번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의 환상적인 풍광에 취해서

마치 꿈 같은 시간들을 내 기억속에 모자이크 했다 

 

세계 3대 미항중에 하나라는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거 같다

다시 또 한번 이 자리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맘 먹어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호텔로 돌아 왓더니

순자한테서 전화가 왓다 왜 옷을 안가져 갔냐구... 저녁에 갖다 주러 오겠다는 것이다

 

내가 일부러 벗어 놓고 왓어니간 이번에 새로 사 입고 간건데 희진이 맞음 입히던지 아님 너가 입어라고 했더니

추운데 옷을 벗어 놓고 감 어떡하냐고 옷 많다고 갖다 주겠다는것이다 

 벌서 그곳 떠나서 다른곳으로 이동중이라고 말하고는 고맙다고만 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며칠후에 친구가 다시 전화가 왓다

화장대 밑에 돈은 무어냐고 .....너보다 내가 훨 잘살고 있는데 왜 그러냐구....

그래도 내 맘이니간 ....그냥 받아라고 ...언제 한국에 남편이랑 같이 오면 꼭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 했더니

 

그러겠다고 한다...십년에 한번 나올가 말가라면서 그래 우리 십년후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내가 들어 가던지 아님 너가 나오던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멋진 시드니라고 해도 이십년만에 만난 친구보담 더 좋을 순 없다고

살면서 좋은 친구를 가졌다는것 그것 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리요

 

사람들 사이에 강이 흐른다고 한다

이 찐한 뿌듯한 우정의 강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편안하고 푸근한 추억속의 그때로 돌아가서 

오늘도 나는  따스한 그 강에  지친발 족욕하고 있다

순자야 우리 아프지 말고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자구나..........

 

 

오래전에 여행기를 오늘 지역설정을 한다고 여행전문 블로그에 보내면서 그때는 디카도 없었고

칼라로 찍은 사진들이 희뿌옇게 변해서 스캔도 되지 않고...

블로그뷰도 없었던 때였는데...순자를 생각하면서 잘 살고 있겠지....인터넷을 하지 않고 집에 컴도 없다는 컴맹친구를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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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보낸 휴가

 

동경 닛코 하꼬네로 딸이랑 3박 4일 패키지휴가를 다녀왔다

인천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니가타공항에서 2시간을 이동하여

후쿠시마 미나와시로마찌라는 곳에 있는 미노와 호텔에 묵었는데

울창한 자연속에 파묻힌... 실내가 마치 영국의 어느성같은그런 호텔이엿다

 

겨울엔 스키캠프장이 근처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붐빌거 같았는데 여름엔 너무 조용하고 고풍스러워서 좋았고

깨끗하게 정리된 모든것들이 정갈해 보였고 온천장은 실내에서 노천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숲으로 둘러 쌓여 마치 자신이 하강한 선녀같은 기분이 잠시 들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실내에서 새벽에 딸이랑 둘이서 한 온천욕은 이번여행 최고의 기분이였다

떠나올때 우리가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친절하고 상냥한  그곳 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공작부인같이 느끼게 해 주었다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공손하고 극진하게 전 직원이 다 나와서 손흔들고 미소로 맞이하고 마중하고....

정말 흐뭇한 맘으로 다시 꼭 찾고 싶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것이다

 

그런데 딸이랑 둘이서 여행온 팀이 6팀이나 되었다 게중엔 80노모와 51살된 딸과 49살 두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온것이다

너무 부럽고 보기좋았다 79살된 친정 엄마가 살아 계시는데 허리가 아파서 멀리 여행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너무 죄스럽기도 하구 ....

또 우리가 나이 들어서 딸이랑 저렇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 나이까지 건강하게살 수 있을런지도....

 

여행은 스케쥴대로  일본 대표적인 관광지인 닛코국립공원으로 가서 난타이산 화산 분출로 흘러내린 용암으로 생성된

둘레 21km의 칼데라호수인 쥬젠지 호수를 보고 99m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일본에서도 절경으로 꼽히는  게곤 폭포의

물보라를 맞으며 장관에 함성을 질럿다 그곳의 학생들과 일반인들도 많이 와서 한마디로 좀 북새통을 이뤘다고나 할가 ..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사인 동조궁으로 이동했는데 상냥한 가이드는 쉴새없이 도쿠가와에 대해서

역사적인 나열을 끝없이 말햇는데 다 기억은 못하지만 15대로 내려 오면서 우리나라로  치면 정승을 한 대단한

집안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동조궁은 세계 문화 유산중에 하나라고 한다  일본신화 속에 나오는 원숭이 조각들이 외벽에 섬세하게

묘사 되어 있었고 우리나라의 며느리 시집살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눈먼 3년이란 그런 말이 원숭이가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나라는 달라도 인간의 감정변화는 같다는걸 느끼게 했다

 

저녁엔 도쿄로 돌아 와서 동경타워에 갔다 호텔에서 걸어서 이십분정도의 거리였다

파리의 에펠탑이랑 모양이 똑 같은거 같았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너무 흡사해서 야경도 비슷하게 보였다

다음날은 하코네국립공원으로 이동하여 아시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와쿠다니계곡으로 갔다 화산활동이

진행중인 그 증거가 보이는듯 유황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골짜기마다 피어 올랏다

오와쿠다니 온천물에서 찐 쿠로다마고란 검은색 계란으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그 계란을 한개를 먹어면 7년이

젊어 진다고 한다 여행사 측에서 우리 모두에게 2개씩 사 주어서 14년 젊어진 셈이다

 

집에 식구들이 생각나서 같이 젊어 져야 하니간 ㅎㅎ 사 오려고 했더니 가이드 말이 한국에 돌아 가면 시간이 흐르면

그 검은 계란이 다시 하얗게 변한다고 해서 참았다 ...

돌아 오는길에 하코네 모리노유온천에 갔다 유네상이라는 유원지에 위치해 있는 큰 온천이였다

비도 약간 뿌리는데 실내에서 노천으로 이동해가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오는길에

신주쿠에서 저녁을 먹은후 도쿄에선 화려하다는 거리산책에 나섰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압구정동 보다 덜 번화한듯 하기도 하구,,,좀 오래된 거리여서 그런지....

동경에 땅값이 비싸서 그런지 길도 우리나라처럼 12차선은 보이지 않고 거의 4차선 정도엿다

서울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없다고 다시한번 느꼇다

 

이동시간이 긴 관계로 송수정 가이드님은 끝없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이동하는 중에 후지산을 멀리 흐릿하게 볼 수 있었다 해발 3667m의 후지산은 여자라고 했다

그 여자는 도도해서 미인이 가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휴지산을 �다면 미인이 아닌것이래나 모래나 ㅎㅎㅎ

그런데 잘 생긴 남자가 가면 나타 난다나요 ㅎㅎㅎ그 만큼 후지산을 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생긴 말이겠지만...

 

옛날에 죽세공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셧는데  아기가 없었다  하루는 대나무속에서 엄지공주가 나와서

키웠는데 3개월만에 다 성장을 했는데 그 미모가 출중하여 남자들이 청혼할려고 구름같이 모여 들었는데

문제를 풀면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없는 물건을 찾아 오라는 문제 였는데...

 

자기는 달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보름이 되면 달나라에서 사람이 와서

자기를 데리러 올거라고 햇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달나라 사람에게  못데려 가도록 부탁하고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는 갈 수 밖에 없다고 그동안 키워줘서 고맙다고 불노초를 던져 주고 떠나 갔는데 엄지공주 딸이 없는 세상에

오래 살면 무었하냐고 그 노 부부는 불로초를 후지산에 던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지란 말이 일본말로 불사 (죽지 않는다)라는 말이라고 하는데 한편 신은 죽지 않는다

천황은 신이다 그래서 죽지 않는다 그런데 왜 죽는냐 불로초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다란 말이 .....

 

 

화산지대임에도 산림을 잘 가꾸어 눈 돌리는 곳마다 삼나무숲이 울창해서인지 청정한 맑은 공기가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멱 감겨 주는듯하고 먼지 낀 수정체를 맑게 씻어내 주는듯했다

다음날 황거를 보고 돌아 왔는데...왕을 천황으로 모시며 평민과 차이를 두는 그 거리만큼 멀리 안경다리 앞까지만

볼 수 있게 통제가 되어 있었다.

 

일본이라고 하면 뭔가 선입견이 우리를 침락한 나라로 받아 드리기 일쑤인데 92년도 후쿠오카지역을 볼때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부지런하고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듯한 그네들 반듯한 생활태도에서 동조궁에 갔을때

비가 내리는데도 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흐트러짐 없이 다 듣고 앉아 있었고

유람선을 탓을때 유치원생들이 배에서 자리가 없어서 한켠에 쭈그리고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는 그 태도에서

역시 그네들은 어릴쩍부터 공중도덕을 잘 가르치고 있다는걸 느꼇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좀더 우호적이고 배울건 배우고 받을건 받아 내고 줄건 주면서 동반자적인 우호관계로

국제사회에서  협력해 나가고 발전해 나갔음 하는 바램이다

딸과 함께 한 짧고도 긴 여행은 흐뭇함과 고마움으로 쭉쭉 뻗어 나간 닛코의 그 삼림숲의 청량함으로

찌든 먼지 낀 일상의 구겨짐을 오랫동안 펴 주리라 생각 된다 .

여행은  언제나 깊은 자기 반성과 행복 엔돌핀 영양제로 다시 삶의 힘찬 걸음을 재촉해 주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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