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미술관 오원 장승업 화파전

 

 

미술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내가 오원 장승업 화파전을 보러 가게 되었다. 물론 간송 미술관도 처음으로 간곳이다

인터넷 검색에서 오원 장승업에 대한 글은 조금 읽어 보았지만, 그보다 먼저 2002년 임권택 감독님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탄

취화선이란 영화를 보았었다. 봉두난발 대취하여 지붕에 올라타서 세상이 뭐라하던 나는 장승업이라고 외치던 최민식의 열연이

눈에 선하다

 

일자무식인 그가 오원이라고 호를 정한것도 유명 화가들이 끝에 원자를 붙여서 나도 원이다 하여 오원이라고 했다고 한다

(1843-1897)까지 살다간 그의 일생은 사실 그때 돌아 가신것이 아니고 왕실에서 사라져서 행방불명이 된 시기라고도 하는데...

19세기말 고고한 문인화 위주의 조선전통 회화가 쇠잔하던 시절, 해학적인 미감과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풍으로 당대 한국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단청 감독으로 출발해 도화서 화원까지 올랐던 오원작품은 1층에 전시 되어 있고 그 제자들의 작품은 2층에 거의전시되어 있었는데

오원화풍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원 작품 40~50점외에 제자 소림 조석진(1853~1920), 심전 안중식(1861~1919), 백련 지운영(1852~1935) 등의 작품 100여점을 전시 중이다. 출품작가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도화서 폐지 후 서화유통공간이던 광통교의 육교화방에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오원을 현대 한국동양화의 시조로 지목하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19세기말 사대부층이 몰락하고 중소 상공인과 부농이 부상하면서 오히려 서툴고 허술함이 드러나는 오원의 그림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밝혔다.

‘오원 장승업 일파의 회화’를 연구한 김현권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오원화풍’의 특징을 ‘왜곡과 과장을 통한 해학적 미의 발현’이라고 요약했다. 추사화풍과 더불어 중국 청의 여러 화풍을 접했으나 문장과 서예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오원은 안중식 정학교 등과도 합작했다고 하는데 오원이 그린 산세가 우리나라의 산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의 어느 명산이라고 보기도 그래서 감상후 나와서 안내를

 

하는 미술학도인듯한 학생에게 물었더니 오원은 주로 관념도를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자 무식이 탄로난 셈이지만 그래도 유명한

오원 장승업님과 그의 훌륭한 제자들 그림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간송 미술관에 마치 경주 남산에서나 만날듯한 불상과 석상들이

몇점 눈에 띄어서 반가웠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찾아 오셔서 피카소전 마지막날의 그 혼잡함이 연상 되었다...우리나라도 이렇게 문화수준이 높아 진걸까 하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하기사 나까지 왔으니....아직 시간이 며칠 남았으니간 가족과 같이 사랑의 계절 문화 행사로 한번 가보시면 좋을것같다. 그리고 오시는 길에 최순우 옛집도 한번 둘러 보시면 어떠실런지요. 간송 미술관뜰에 야생화들과 흐드러진 모란과, 운치있는 소나무, 그리고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면서 오가는 님들을 반기기도 하니 ,시간 내시어 자유로운 영혼의 천재화가 오원 장승업님을 한번 만나 보시는 고운 하루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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