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휴일동안 밀려둔 일을 한다고 아침내 정신 없이 일하다가,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따로 운동을 하지 않고, 요즘은 시장까지

걸어 가는걸로 운동을 대신할 요량으로, 아침에 일찍 햇빛이 강하기전에 후딱 갔다가 온다고 부지런히 걸어갔다가, 보통 올때는

시장을 봐가지고 버스를 타고 오는데, 아침이라 내친김에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다시 걸어서 집까지 왓더니 다리가 뻐근하다.

 

세탁기 돌려서 빨래 널어 놓고, 우유랑 불가리스를 넣어서 오쿠로 요플레 만들려고 앉혀놓고...청소기 돌리고...

점심을 먹고 집안일 이것 저것 하고 나니, 나른해서 딱 한시간만 잠을 자고 일어 나야 겠다고 생각하고 좀 씻고

침대 누워서 책 좀 보다가 막 잠이 들려는데 전화가 온것이다.

오늘 영어 수업 있는데 왜 안오냐는 것이다. 아뿔사 이일을 어쩌면 좋아 어쩐지 뭔가 조금 찜찜하긴 했는데 ㅎㅎㅎ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깡그리 잊을 수 가 있단 말인가...평생 교육원에 가서 영어 공부 하는 날인데...그걸 깜빡 하다니....

참 어이가 없다...지난번에도 엄마들이 많이 빠져서 공부할 분위기가 조금 그랬는데...오늘 나까지 빠졌어니...이쁜 선생님 목소리에

놀라서 어디 볼일이 있어서 멀리 나왓다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결석 안하겠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오늘도 엄마들이 적게 나왓나요 했더니 그렇단다...정말 허둥 지둥 일어나서 뛰어가도 이미 수업은 30분 넘게 지각을 했는데...

 

아 정말 이렇게 건망증을 경험하기도 처음이다. 친구들 모임에 가면 심한 건망증 이야기에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는 일들이 많은데

그게 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것이다. 모두들 핸드폰이라던지 리모콘을 냉장고 속에 넣어 두었다는 이야기부터...

한번은 대구 친구말이 자기 친구이야기라고 하는데 아침에 결혼식 갈려고 머리 하러 갔는데, 동네 미장원에서 사람들도 없고 너무

조용해서 머리 파마를 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자기가 혼주인걸  깜빡하고는, 그래서 파마를 하다 말고 허둥지둥 난리를 피웠다는데....

정말 웃지 못할 실화라고 한다.

 

우리 나이대가 되면 모두 한두번 경험하는 건망증 이야기가 바로 내 일이 된것이다.

이런 현상들도 어쩌면 다 노화현상의 한 부분 같기도 하여 씁쓸하다. 무엇이던지 열심히 성실히 하자는 생활 자세가  헝클어진듯하여

찜찜하다. 두뇌 운동을 위하여 무얼해야 하나 망연히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남들보다는 책도 열심히 보고 글도 부지런히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

 

세월의 흐름을 어이 거스릴 수 있으랴... 나도 남들처럼 늙고 있음을 실감하면서...나이보다 젊다고 자부한 자신에 대해서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친정어머님 말씀을 떠올려 본다. 나이가 든다는것에 대해서 늙어 간다는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앞으로 어쩌면 점점 더 심해질지도 모르는 건망증에 대비하여 더 많이 정신긴장 늦추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는 방법밖에 다른 묘수가

있겠는가...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는 오후 3시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보다.

 

그러나 한편 인생에 있어서 건망증도 어쩌면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삼는다. 가슴 아픈일들이나 불쾌한 일들을 깡그리 다

기억하고 산다면 그또한 얼마나 비극이랴, 신은 정말 천재적인 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말했듯이 우리가 감당 할 수

있을만큼의 아픔을 주시고 또 한 불필요한 기억들을 깡그리 잊게 해주는 건망증도 깜짝 선물로 주시기도 하니간...

그런데 정말 소중한 기억을 빼앗아 가시진 않으시리라...신의 대자대비하신 너그러움에 어리광 피우면서 두손모아 기구합니다.

이 눈부신 봄날에 건망증으로 아주 중요한 약속을 잊지 않으셨는지 님들도 한번 되새겨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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