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재(죽현=竹峴)의 이른아침

 

 

                                                                    2012년 8월 18일

 

 

 

 

 

 

 

아침 0330시, 삼척 정라항 명풍식당에서 아침상을 받았다.
새치탕에 회 한 접시가 나왔다.
반주를 한잔하고, 부둣가에서 소금에 절인 생선을 짊어진 짐꾼을 상상하면서 댓재로 향했다.

 

조선시대, 영동은 북쪽 강릉에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남쪽 삼척에 부사(府使)를 둔 관제(官制)였다.
영서(嶺西)로 오가는 고개 중에서도 북쪽의 대관령과 남쪽의 죽현이 단연 유명했다.
그러나 신작로가 뚫리면서 죽현은 사람들 관심에서 살아졌다.

 

사진 동호인들과 등산가들 사이에 죽현의 일출이 회자(膾炙)되면서 지방에서는 옛길을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죽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도경 역을 지나면서 도로표지판에 정선 76km 이정표가 보인다.
고개 정상은 810m,  200리 길을 이 무더운 여름날 소금에 절인 생선을 짊어지고 가는 나그네의 길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난다.

 

 

 

 

 


삼거리 저수지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두타산 천은사(天恩寺)가 나온다.
이승휴(李承休 1224~1300)가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집필한 곳이다.
이승휴는 종조모(從祖母)의 보살핌을 받다가 과거에 급제한 후 외가(外家)인 삼척 편모(偏母)곁으로 돌아왔다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길이 막히자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단다.

 

정상에 도착 전 왼쪽으로 영경묘 표지판이 보인다.
조선태조 오대조(五代祖)인 양무장군(陽茂將軍) 부인의 묘다.
“금관백우(金冠百牛)” 조선 개국의 전설이 전해오는 양무장군 준경묘(濬慶墓)는 바로 이웃에 자리 잡고 있다.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 댓재는 이처럼 주위에 많은 명당을 거느리고 있었다.

 

0450시 댓재의 일출 명소에 도착했다.
정라 항에서 샛별이 총총하던 하늘이 갑자기 고개위에서는 찌푸둥 해졌다.
자리를 잡고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았다.

 

날이 밝으면서 삼척항의 아름다운 모습이 금빛 물결위로 드러났다.
운무(雲霧)가 내려앉으면 더욱 좋으련만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나 백두대간 댓재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장엄했다.


탁 트인 바다가 도심의 일상에 찌든 가슴을 활짝 열어주었고, 더위를 식혀준 바람이 그랬다.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이었을까?
삼각대 위의 카메라가 흔들릴 만큼 바람이 거셌다.

 

해가 중천에 올라서야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늘 그랬듯이 작품 활동이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그 순간도 이미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지우고 남은 추억이 인생이라는데, 아름다운 추억이 덤으로 쌓인 이른 아침의 댓재 모습은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권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댓재에 얽힌 역사와 선인들의 상세한 이야기를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박학다식한 귀한 글을 자주 접하게 되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시어 대 장관 죽현의 일출을 이렇게 보게 해주시어 감동이 큽니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도 큰 선물이 되겠지요

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 같은 요즘은 계절을 모르겠습니다

바람 끝에는 가을이 이미 깊은 것 같기도 하고...밤에는 추웠지요...

 

고운 걸음 주시는 많은 님들 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24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