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일찍 절에 갈려고 버스 정거장에 가니, 전날 내린 눈으로 응달 길은 얼어붙어서 몹시 미끄럽고, 올 해 들어서 제일 춥다는

영하 11도의 칼바람에 할머니 한분이 정류장 유리창 뒤쪽에서 웅크리고 앉아 계셔서 친정 엄마 생각이 나서 ‘할머니 이렇게 추운데 머리에 모자라도 쓰시던지 추워서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가발 때문에 모자를 못 쓴다고 하셔서자세히 보니 가발이 거의 벗겨 지려고하여 

가발머리를 좀 손질해드리고, '이런 날은 그래도 마스크라도 하고 다니셔야지' 했더니, 안경에 김이 서려서 마스크도 안 된다고 하시면서

목에 두른 목도리를 머리에 둘러쓰려고 하셔서 뒤로 잘 돌려 드리고 나서 입고 계신 외투에 쟈크를 올려드리고 단추도 채워 드렸더니

고맙다고 하신다. 이렇게 일찍 어디에 가시느냐고 했더니 서울 복지 회관에 가신다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 사시냐고 했더니 그냥 일반 주택에 사신다고 하셔서 이렇게 춥고 미끄러운 날은 복지회관을 쉬시지 미끄러운 길 다니시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집에 있으면 더 춥다고 하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버스를 같이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서울에 사시다가 재개발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은 집을 팔고 이사를 갔지만 자신은 아들만 하나인데 그 아들을 줄려고 집을 팔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지금 아들네 집이 3층집인데 지하방에 혼자 사시고 아들은 2층에 사는데 식사는 혼자 해 드신다고 한다. 며느리가 밑반찬은 만들어주고 밥과 국은 본인이 하신다고...3층에 방은 있지만 다리가 아파서 3층 가기 싫다고...

 

연세는 80이신데 우리 동네복지관에 다니시지 왜 서울까지 가시느냐고 했더니 자신이 배우는 과목이 이곳에는 없다고... 무엇을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수화를 배운다고 하시면서 참 재미있다고 하신다. 젊어서는 복지관에서 영어, 일어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계속해서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고 좋다고 하신다. 컴퓨터도 배운다고 하셨다. 그동안 같이 배우는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서 매일 서울로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출근길에 역까지 바래다준다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그냥 버스타고 지하철로 가신다고.... 그 연세에 건강하셔서 매일 서울까지 가신다고 하니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에 하루만 본인 돈으로 사먹고 다른날은 모두 무료로 드신다고 한다.

 

대구에 계신 내년이면 84살이 되시는 친정엄마는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서 어디 다니시지를 못하니 참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오늘 아침에 만난 그 할머님은 그렇게 건강하게 매일 지하철을 타고 연신내까지 가신다고 하시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연세에 끝없이 배우시는 그 열정에 정말이지 큰 박수를 보낸다. 죽는 순간까지도 열심히 배우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 몸의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굳어진다고 한다. 그렇듯이 우리 뇌도 마찬가지로 머리를 쓰지 않으면 어쩌면 더 빨리 굳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끝난 천일의 약속이란 연속극에서 젊은 여주인공이 치매를 앓는 기막힌 스토리였는데 어떤 병으로 오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퇴행으로 오는 우리 몸과 머리의 노화는 열심히 섭생하고 노력하는데 따라서 조금은 그 퇴화를 무디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사 피할 수 없는 생노병사의 길이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비우고, 내려놓고, 소탐, 소욕, 소식으로 몸도 마음도 맑혀가야 하리라고 다짐하면서 ...

 

그동안 블로그에 50여일 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변함없이 찾아주신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11년 올 한해 잘 마무리 하시고

추운 날씨에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신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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