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방송의 아침마당이 방송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다고 요즘 연일 특집으로 방송 하고 있어서 열심히 잘 보고 있는데,
화요 초대석에 어제 아침 3선 국회의원이신 이 병석님과 그 스승님 김 남숙 선생님이 나오셔서 스승과 제자에 얽힌
가슴 찡한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든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이 병석 의원님도 우리 나이대인 것 같았다. 동질의 아픔의 시간을 지나오신 것 같아서 더 한층 가슴에 와 닿았다.
의원님처럼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 그처럼 내게 잘 해 주신 담임선생님이 계셨기에 선생님 생각으로 한참을 울었다.
의원님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너무나 가난하여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여 교실 밖에 창문 밑 양지쪽에서 햇볕을 쬐며
있다가 선생님께서 버리신 물을 맞게 되고 초임으로 담임을 맡으신 김 남숙 선생님께서는 그 후로 매일 도시락을 두개 사 오셔서
한 개를 챙겨 주시고, 학교 운동회 때 검은 팬티와 흰 런닝 샤스도 챙겨 주시고.... 소풍을 가지 못하는 형편을 아시고는 소풍 길에
집이 있었다는데, 집에 들러서 같이 소풍을 데려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 후로 먼 훗날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의원님은 선생님께 한복을 챙겨 갔는데 선생님께서는 이불을 선물로 가져 오셨다고 한다.
너무나 가난해서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이불에 오줌을 싸고, 미안하고 집도 복잡하여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잣는데,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늦잠을 자게 되어 그 것을 여학생이 보고 선생님께 일러 바쳤는데...선생님께서는 그 때는 초임이고 자신도 너무 어려서 늘 마음에 이병석이란 학생이 담아져 있었고, 장래 희망적인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 주었지만, 물질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몰랐다고..그래서 자신도 전근을 가게 되고 이 병석 의원님은 가출을 하여 서울로 왔다고 한다.
그 후의 일은 생략 되었지만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게 살아 왔을지는 짐작이 된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자세한 의원님의 연력이 나온다. 그 후 자수성가하여 고려대 석 박사학위까지 받고 3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늘 마음에 담아둔 제자가 궁금하시어
그렇게 똑똑한 제자가 공부를 계속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해마다 신문에서 사법고시 합격생을 찾으셨다고...
그런데 늘 추운 교실에서 잠을 잔 그 제자가 마음에 걸려서 따뜻한 이불로 폭 감사 주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고...
그래서 이불을 선물로 가져 왔다는...
이병석의원님이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가운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선생님이 누구신지 모두들 궁금해 할 때 진행자가 선생님을 한번 불러 보라고...선생님~~~하고 부르자 그 선생님께서 그 자리에 나타나신 것이다.
이 병석의원님과 열 살 나이차이가 난다고 하시는데 아직은 고우신 김 남숙 선생님이 나타나자 방청석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모두 훌륭하신 선생님께 박수를 보냈다. 집에서 보는 나도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도 눈물은 그치질 않는다.
내게도 그토록 잘 해 주신, 지금은 돌아가신 한 분 선생님이 계셨다. 고 최 천석 선생님께서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는데,
매일 도시락을 사 오셔서 나를 주시고 선생님께서는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 드시고...집에 갈 때는 동생들 갖다 주라면서
큰 옥수수 빵을 그때 급식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꼭 챙겨서 2~3개를 따로 주셨다. 일제고사 성적이 좋은데 가정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다고 하자 우리 집에 가정 방문을 오셔서 우리 집 쌀독을 보시고는 쌀이 떨어 졌다는 것을 아시고 쌀도 채워 주시고...
그 후로 선생님께서 힘 써 주시어 신문사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서 신문에도 났었고, 장학생으로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서점을 운영하신 선생님께서는 전과, 수련장등 모든 책도 챙겨 주시고 중학교 교과서까지 다 챙겨 주셨고...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사를 가시어 소식이 두절 되어 그 후로 선생님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다가 긴 시간이 흐른 후 교직에 있는
친구를 통하여 선생님을 겨우 만날 수 있었지만...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갔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나 잊고 살았다니...
한참 지난 후에 선생님께서 이미 돌아 가셨다는 소식만 들었었다. 지리적으로 멀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으로
나는 방송이 끝나고도 선생님생각으로 한참을 울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제자를 사랑하시는 위대한 스승님이 옛날에는 참 많았던 것 같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도시락을 사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20명도 넘어서 우리는 같이 모여서 반애들이 도시락을 먹을 동안 학교 뒤쪽 구석자리에서 이 병석 의원님 말처럼
햇볕이라도 쬐면 배가 덜 고플 것 같아서 옹크리고 앉아서 햇빛으로 배를 채우던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 왔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사친회비라는 학교에 낼 돈을 못 내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선생님의 성화에 우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오는 산에서 몇 시간이고 풀을 뽑아서 그 밑에 하얀 진이 나오는 그 단물을 빨아 먹기도 했었는데...
지금의 학생들이나, 나이 어린 사람들은 무슨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인지 의아해 하겠지만 그런 시간들을 견디고
배고픔을 참으며 이 악다물고 공부하여 성공한 부모님세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잘 산다고 생각하고 조상님의
은덕을 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시절 인연을 잘 만나서 요즘은 배고파서 허덕이는 사람은 그래도 없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고,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젊은 분께서는 이 좋은 세월에 열심히 공부하여 꿈을 이루어 자신의 영달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와 민족을
넘어서서 온 인류의 행복과 건강에 이바지 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을 해 주시기를....
김 남숙 선생님께 한 말씀 해달라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의지를 키우라"고 하셨다. 이 병석 의원님의 그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그토록 배고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오늘의 성공을 이루어 내셨다고 생각된다.
조금 해 보고 그만두고, 조금만 어려우면 포기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한 번 마음먹으면 죽기 살기로 끈기 있게
될 때 까지 한다는 굳은 의지의 젊은이들이 많아 질 때 우리 나라의 미래는 밝아지고 세상은 더 살기 좋아 질 것이라고
생각 하면서...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에게 머리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맑고 향기로운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아름다운 곡을 김남숙 선생님께 바칩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꽃 나무 아래서 (다시 읽어 보는 나의 시) (0) | 2011.06.08 |
---|---|
아버님 기제일과 조카 결혼식... (0) | 2011.05.30 |
점(占)을 보러 가는 마음 (0) | 2011.05.19 |
바쁜 일상 (0) | 2011.05.17 |
위대한 탄생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좋다 (0) | 2011.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