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며칠전 아는분의 수연잔치에서 자녀들이 절을 올리고 어머님의 노래를 불럿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흥겹고 성대한 잔치 였는데 모두 눈시울 붉히며 숙연한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나 역시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어머니란 의미는, 한없이 따스하고 포근한 마음의 고향이면서도, 한편 출렁이는 강이 되어 목이 메이게 되는것은,자나 깨나
내 몸이 으스러지도록 자식을 위해서 끝없이 희생의 삶만을 살아오신 지고 지순한 그 정 때문이리라.
올해 팔순이 되시는 나의 어머님은 연세 드신 거의 모든 어머님처럼 내 어머님께서도, 전쟁을 몇번씩 치르시고, 배고픈 보리고개를
허리가 휘도록 참아 내시며, 가부장적인 남편 밑에서 인고의 세월을 눈물과 한숨으로 힘겹게 보내셨다.
조금 허리가 필즈음, 자식들 공부 시키느라 하고 싶은것 한번 못하시고 이제 그나마 자식들 다 출가 시키고 생의 여유를 찾을 즈음,
허리를 다치셔서 가고싶은데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고, 누워 계시니 생각하면 목이 메어온다.
허리를 다치신것도 어디에 가시던지 편안히 계시지 못하는 성격탓에, 새로 큰 집을 사서 이사간 아들네 높은 유리창 모기망을 닦아
주신다고, 걸상위에서 미끄러져서 다친것이다.거기에다 예전에 묵은병과 노환까지 겹쳐서 좋다는것 이것 저것 다 해 보아도 영
완쾌되시지를 않고 다니시긴 다녀도 예전 같지는 않다.
너무 부지런하심이 큰 병이라고 자식들은 속상해 하지만 어머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언제나 운명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의 바람을 뚫고 헤쳐 나오신 분이시다. 또한 인정이 많으시고 정에 여려 그저 조그만 별찬이라도 있으면 이웃과 나누어 드신다
손자 손녀들이 외가에 가면 한여름에도 설날 강정을 어느 구석에 뭉쳐 두셨는지 내어 주시고 언제적 잡수시라고 사드린것을 자식들
모이는날 군데 군데 끼워 두었다가 다시 나오니 모두들 곰팡이 피어서 안 먹는다고 하면 먼저 잡수시며 곰팡이가 어디 있냐고 하신다.
솜씨 또한 좋으셔서 본인의 옷은 물로 블라우스 치마 바지까지 손수 만드셔서 딸네나 며느리 이모님들까지 철철이 어찌나
고운 무늬로 만들어 주시는지 외출복으로 입어도 손색이 없으니 글로써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뜨개질도 잘 하셔서 사위 겨울 조끼를 색갈별로 3개나 짜주시고...눈도 어둡고 허리도 아픈데 이제 그만 하시래도 "죽어면
썩어질 몸 살만큼 살았는데 뭐 그리 아까울게 있는냐"고 하시며 극구 말리는 우리말을 안들어신다.
엄마가 카사리 실로 짜주신 여름 가디건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름에 걸치고 나가면 어디서 삿는냐고 물어오니 그 솜씨가 가희 짐작이 되는지요...음식 솜씨 또한 좋으셔서 각종 과일주는 물론 솔잎으로 담그는 솔술맛은 양주 뺨칠 정도로 기막힌 맛이라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솜씨좋은 엄마덕분에 결혼해서 이제까지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가 본적이 없다.
남향 아파트는 여름에 햇볕이 잘 안들어 온다는 핑개도 있지만 엄마가 담가 주시는 장맛이 제일 좋다는 그 말씀에 흐뭇해 하시며
어쩌다 들릴때마다 "야들아 올해는 작년보다 장맛이 더 달다 가져 가라"하시는 그 말씀이 얼마나 힘차고 당당하신지...
몸이 불편 하심에도 신바람나서 올케나 딸네들 봉지 봉지 된장 고추장 담고 음료수병마다 몇번씩 헹구고 깨끗이 말려 두었다가 간장을
채워 주신다.우리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60여년 긴 세월 일구어낸 어머니의 노하우를 어떻게 감히 말로써 다 설명할 수 있으랴만
언제나 하시는 옛가락을 수없이 리바이벌 하시며 옛맛을 이어가는 비법을 전수하길 잊지 않으신다.수백번 들은 그 말씀에 이젠 나도
영원히 이어오는 피보다 진한 우리민족만의 젖줄같은 맛있는 장을 담가서 내 며느리 딸에게 찐한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당분간 더 얻어 먹을 생각이다.
"내가 무슨 낙이 있나, 다 너거들 이렇게 줄려고 봉지 봉지 싸고 이런게 다 살아 있다는 낙이지..."하시는 그 즐거움을 뺏기 싫어서다.
친정에서 그냥 장을 가져다 먹으면 못산다고 봉투에 장값이라고 조금 드리면 차에 까지 쫓아 오셔서 다시 던져 주시곤 하여 딸이
못살아도 좋으냐고 한사코 봉투를 던지고 집에 와서 보면 어느새 딸이나 아들 필통이나 가방속에 드린 돈 보다 더 들어 있게 마련이다.
어머님의 사랑은 이런걸까, 소리 소문 없이 언제나 우리 가슴을 찡하게 하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 텔레파시가 되어, 그 어떤 방해 전파에도 막히지 않고 뚫고 나와, 우리 가슴에 감지되는 끝없는 떨림,어머님의 사랑은 힘들고 목마른 때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로,꺼지지 않는
등불로 일으켜 세우며, 식지 않는 사랑의 추억으로 영원히 살아 계실것이다 언제 까지나....
<1994년 5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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