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만 헷세를 사랑하시나요

 

 

 

< 고독한 혼 >

 

행복도 불행도 모조리 맛보고 외적인 운명과 더불어 내적인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마저도

정복할 각오로 생에 도전하는것이 인간 생활의 가치라고 한다면

나의 생애는 결코 빈약하거나 무가치 했던것은 아니다

외적인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신이 내려주는 모든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몸을 휩쓸어 갔다 해도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나 자신의 형성에 의한 것이고

그 감미로움과 고통스러움도 나의 것이며 그 책임 또한 나 혼자만이 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헷세님의 시다.**

 

 

 

누구나 그렇듯이 문학을 사랑 하는 사람이라면 문학소녀를 꿈 꾸는 사람이라면 헷세와 전혜린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나 역시도 아주 어린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문학책을 읽기 시작해서 일찌기 헷세에 빠져서 한땐 헷세를 만나러 독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유일한 내 삶의 목표이기도 했었다

 

그의 집시같은 방랑과 그 어느곳에도 묶이지 않는 영원한 자유가  그렇게 멋지고 부러울 수 없었다

이성적인 데미안보다 싱클레어 쪽에 가까운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그 밖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같이 꿈꾸고 열망하고 집시처럼 헤메고 방황하며 향수에 젖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고뇌와 쾌락의 바다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헷세의 일생은 다 아는바와 같이 대충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헷세님은 시인이면서도 화가셨다 1877년 7월 2일 독일남부 슈바벤 지방의 소도시 칼프에서 태어 났으며

1962년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20세기 중반까지 85세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아버지는 러시아 태생의 선교사로서 젊었을 때 인도에서 선교에 종사한 적이 있는 금욕적인 구도자였다.

어머니는 동양학자요, 목사인 헤르만 군데르트(Hermann Gundert)의 딸로서 인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헷세의 글에는 동양적인 신비감이 묻어 난다

 

그는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한후 이듬해 신학교에 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까지 하려하다 결국은 자퇴를 한후 서점에 점원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위인들의 책을 접하다 1902년<시모음>이란  시집을 출간한후 1905년 <수레바퀴 밑에서> 1911년 화가 한스 쉬틀제네와

함께 인도를 여행한후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발표하고 1939년 2차세계대전 발발로 나치의탄압이 시작되고 

 

 

작품들이 몰수되고 출판이 금지된다 1957년 <헷세전집>을 발표 1962년 사망하게 되지만 지금까지도 수많은 세계인의 가슴에 그의 고독과 사색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의 의미와 자기성찰과 깊은 자기반성으로 삶의 여정에 많은 공감과 꿈을 제시해주고 가르쳐 주는것 같다.

멀리 떠나고 또 떠나며 그리워하고 지치도록 그리다 그 그리움속에서 꿈꾸는 영원한 노스탈쟈...

 

고독의 바다에서 건진 그분의 안식은 자연의 품에 안기면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속으로 침잠하는 것이었을까
때론 구도자와 같은 냉철한 이성과 불기둥같은 열정으로 고독한 수도자로 방락객으로 구름같이 바람같이 이 시대를 풍류하고 맘껏 지와 애를 극에서 극으로 치닫고 간 그분의 조용하면서도 쉼없는 바람같은 영혼을 감히 본 받고 싶다고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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