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환상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울렁이는 가슴의 물결을 잠재울 줄 알아야 하는 나이이건만

바닥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은 생활의 아련한 아픔이 되어 충만에서 오는 권태를

벗어나게 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나만큼 세월을 앓는 멋진 친구의 재충전을 핑개로 가을 여행에 초대되어 경주로 갔다

봄에 그토록 눈부셨던 불국사 벚꽃 동산은 단풍꽃을 피워놓고 또 한번 우리를 경탄케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야외 찰영하는 신부는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다.

 

보문호 설레이는 물결에 머리를 헹구고 저물녁 힐튼호텔 커피숍에서 바라본 숨이 멎을듯한

황홀한 단풍 터널! 11월의 태양과 만추의 포옹이 빚어놓은 빛의 향연!

감미로운 음악 소리에 젖어 잠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 저 환상의 숲길을 걸어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우수에 찬 눈동자로, 사색과 우울과 고뇌를

어깨에 걸치고, 세상의 믿지 못할, 감정의 유희를 초월한, 진실만으로 남은 세월을 채우고도 족할

반백의 머리 휘날리며, 가슴 떨리는 열정 숨긴, 고혹한 미소로, 이 가을 한사람만으로 칠하고 싶은

 

내 여백의 기다림속으로, 꿈결인듯 바람인듯 걸어 오시는 로체스터씨여!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지 못하고,  청자빛 가을 속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신 화랑의 후예이신가

늠름한 유신의 환영이신가 ...호명보살님의 전신이신가...

 

어둠이 지워가는 내 가을 추상화 속으로, 칵테일 향기 짙은, 흔들리는 가을 환상은

영영 다시 못 올 우주 속으로 추락해 간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 하나 묻어 놓고...

 

그래 아무런 의식없이 이 찬란한 계절을 떠나 보낼 순 없는 거라고, 새처럼 여린 가슴을 지닌 친구여!

우리 둘이서 가는 세월을 배웅한 것이라고 가슴 뿌듯해하며, 벌서 어두워진 거리를, 유신보다 더 큰

꿈을 키우는 아들이 돌아왔을 집으로 서둘러 왔다.

 

본연의 자리 망각지 않은 조용한 흔들림은 정체된 무관심으로 멀어져가는 우리네 가슴에

작은 파문의 신선한 바람으로 내일을 위한 생활의 경쾌한 활력이 될 거라고 늦은 귀가를

변명하며, 깊고 고독한, 충만한 가을의 성숙한 기를, 맘껏 선물 받은  넉넉한 가슴으로

일상의 목마름도 구김살도 뜨겁게 껴안아야지 진정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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