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모님
이모님은 올해 연세가 69세토끼띠이시다
내가 이모님을 처음 만난것은 태어나서 5살 되던해인거 같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만남 영상이니간 외가는 밀양밑에 이영도 시인이 태어나신 유천이였는데 마을안으로 내가 흐르는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시골이였다 부뚜막에 불을 때는 이모옆에 아주 작은 여자아이가 어렴풋이 보이는 오래된 기억속의 필름이
내가 이모님을 기억하는 첫 영상인것이다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고 외가 재산을 가져와서 실패하고 그 여파로 이모가 가정을 일으켜세운다고 처녀몸으로 사업을 하러 내려간곳이
진해였는데 그곳으로 초등학교 5학년 되던해 대구에서 진해로 기차를 삼량진에서 갈아 타고 창원인가에서 또 갈아 타고 혼자 찾아간
나를 아고 어린것이 우째이리 똑똑하노하면서 반겨 주시던 이모님 그때 이모님과 이모부님은 이모부친구의 부인 소개로 사귀던 중이셧는데 마침 냉전중이였고 그때 내가 내려가서 이모부님은 옳다구니 하고 나를 데리고 여기 저기 구경도 시켜 주시고 난생처음 바다를 보는 아주 촌뜨기 대구꼬맹이에게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해 주신 것이고 나는 그런 이모부가 무작정 좋아서 이모부몰래 이모친구들이랑 제도란섬에 놀러 가는 정보를 제공해서 이모부가 엄청 많은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배가 떠날려는 찰라에 오셔서 삐친 이모가 놀라워 하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후로 이모부님과 이모님은 결혼을 하셨고 포항오천에 사셨는데 처녀때 나는 시간만 나면 이모집에 놀러 갔었다.
이모부님은 해병대출신으로 파월 군인이셨지만 이모부님의 아버님은 해군 장성이셨다
시집간 이모집에 놀러가서 그 시아버님께 나는 장기두는것도 배우고 이모님의 시동생아저씨랑 재밋게 놀은 기억이 있다
총포사를 하셨는데 배를 타고 바다사냥을 가신다고 한 기억이 남아 있다
이모부님은 누님이 사법대학에 가서 선생님이 되어서 동생들 학자금을 대기로 한 약속을 깨고 학교에 들어가서 연애를 하여 학교도 마치기전에 결혼을 하는바람에 대학에 못가신 한이 남으신것 같다
해병대에 지원하여 나라에서 미국유학을 보내주는 시험에 합격하여 미국에서 공부를 하신 아주 명석하신 분으로 파월하셔서도 참모부에서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통역을 담당하셨다고 들었고 돌아 오실때는 보랏빛 물방개 모양의 등에 까만 점이 박힌 멋진 목걸이 시계를 선물로 가져 오셔서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하면서 멋진 이모부를 두었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이모님의 성격은 잠시도 가만히 놀지를 않는 분이셨고 인정 또한 어찌나 많은지 잠시 잠간도 우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아침먹고 나면 금방 간식을 무어라도 해서 주고 금방 또 과일도 주고 하여간에 그저 더 주고싶어서 안달이신 분이셨다
커 오면서 이모부가 부대를 제대하고 남원에서 콘도를 하는 친척일을 도와 콘도를 짓고 지하에 슈퍼를 분양받아서 처음 차렸을때
나는 아들딸을 데리고 내려가서 장부도 해 드리고 슈퍼일을 봐 주면서 20일동안 지내다 온적이 있다
이모님과 나는 그동안 오고 가고 집안에 일이 있어면 서로 자주 만나고 조카들 결혼때나 명절때나 한번씩 뵙고는 했는데
얼마전에 이모님께서 수술을 하시고 이모부도 편찮으시고 해서 엄마랑 같이 가 보기도 했지만 이번 명절에 마침 집도 수리하고 해서
우리집에 초대를 했다 차례 모신후 친정 남동생집에 가서 친정 엄마를 모시고 남동생이 모시고온 이모와 이모부님 그리고 동생네식구들 모두 우리집에 오셔서 집들이 아닌 집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모님은 슈퍼를 하는 그 바쁜 와중에 밭을 이루시어 여러가지 채소랑 참깨 호박 고구마등을 심어서 우리도 나눠 주시고 한해께는 몸이 아픈 조카딸에게 김장도 해서 보내 주시고 했는데 이번에도 몸도 아프시면서도 농사지은 손수 짠 참깨로
많이 볶으면 몸에도 안좋다고 살짝 볶아서 그야말로 건강에 좋은 오리지날 우리나라 순수 참깨로 세상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모님표 사랑의 참기름을 짜서 가져 오신 것이다 엄마도 드리고 올케네와 나까지 챙겨서....
잠시 잠간이라도 몸이 쉬면 무슨 죄라도 되는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만 하시는 이모님께 제발 좀 편히 사시라고 해도
말을 아니 들으신다 두아들은 박사학위받아 미국서 교수도 하고 대학 졸업하고 미국가서 사업도 하구 다 잘 되어 있는데도...
외가댁의 딸들 우리 엄마를 비릇하여 다 부지런하고 착하고 영특하시고 장씨네 딸들이 다 비범하다고 놀리기도 하지만....정말 엄마도 그렇지만 이모님은 엄마가 나도 저리는 못한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정도로 몸을 사리지 아니하고 억척같이 일하시는 분이시다
이젠 척추도 안좋아 수술을 해야 되는 지경인데도 또 일만 하시니... 이모부도 젊을때 그렇게 술을 좋아 하시더니 풍이 잠간 스쳐 간 이후론 건강이 예전같지 않으시고 ...제발 이젠 좀 편히 사시라고 농사도 그만 짓고 몸 생각하시라고 목이 아프도록 말해도 안들을게 뻔하다
일이 아니고 그게 내 유일한 소일거리고 낙이다라고 하시는 이모님의 평생을 지켜본 나로서는 이제 정말 아프지 말고 편히 여생을 쉬면서 성공한 아들들 보러 미국도 가시고 여행이나 다니시면서 지냇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이모님이 늘 마음의 평온으로 병마에서 헤어나 그동안 슈퍼를 하시면서 힘들고 마지막엔 사기까지 당하셔서
심적으로 여러가지 괴로우시지만 그래도 사실만 하니간 이젠 모든 번거러움에서 벗어나 정말 몸도 마음도 편해지시기만 빌고 싶다
오랫만에 명절같이 보냈다고 즐거워 하시면서 돌아 가신후에 어느새 안방 침대속에다 한봉투를 두고가신 못말리는 이모님의 그 따스한 마음의 정...이모님에게 많은것을 배웁니다 항상 착하고 부지런하고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시며 돈을 떼인집에 그 아들을 돈까지 들여서 다시 취직을 시켜주는 그런 태평양같이 넓고 포용하고 늘 주위에 베풀면서 사시는 넉넉한 그 마음씀씀이.....
허리가 아파서 키가 줄어 든듯이 보이고 너무 쇠약 하셔서 바람이 불면 날아 갈것같은 이모님 이젠 모든것 다 훌훌 벗고 내려놓고
좀 쉬면서 오로지 본인의 건강만 챙기면서 남은 여생 편히 사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이모님 이모부님 오래 오래 건강 하게 우리 곁에 늘 있어 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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