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일요일 30년 전에 같은 직장 동료였던 부천에 살고 있는 내외와 다른 한 팀이랑 부부동반으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해서 절에 갔다가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갔다. 아들 결혼식에서 뵌 적이 있는 부부내외가 자리했다. 한집은 잘 알고 지내고 있을 뿐 아니라 채소농사까지 지어서 번번이 잘 얻어먹는 집이라 반갑게 덕담을 나누었다. 모두 며느리를 봐서 그런지 얼굴이 좋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두 팀은 다 첫 직장에서 사내 결혼을 한 커플들이였다. 다들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서 너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기억해보니 갓 결혼해서 흘려들은 이야기들이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식을 강행한 그 팀이라고 했다. 시어머니 되시는 분이 어디 가서 물어보니 두 사람이 결혼하면 남자가 죽는다는...정말이지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면서 둘이 헤어지라고 식음을 전폐한 이야기를 전해준 그 장본인들이었다.

 

참 보고 싶었던 부부라고 거들었더니 그 남편 되는 분이 지금은 아주 성공해서 자기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재력가였다. 좋은 차에 부인도 밍크코트를 입고 나왔으니... 그분이 맺힌 것이 많았는가보다. 남편과 또 다른 한분이랑 그 부인되는 사람이랑 수원에서 같이 통근을 하던 때인데, 그때 남편은 금방 나랑 결혼해서 수원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사실 회사에서 어찌 보면 꼴통 같은, 성격이 좀 고약하다고 하나, 괴팍하다고 하나, 그런 남자와 그 순진하고 너무 착해 보이는 여동생 같은 여직원이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다 그 시어머니 될 사람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친 이야기가 온 회사에 떠돌고 있었으니...두 사람이서 그 여직원 집에 찾아가서 결혼을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나보다.

 

그래서 그 여직원의 엄마도 사위 될 사람이 결혼을 허락 해달라고 찾아 왔을 때, 같은 회사직원도 말리는 결혼을 어떻게 허락 하냐고 한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네 결혼식에 협조를 해 주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맺힌 맘을 털어 놓았었다. 남편은 그때 같이 찾아간 그분도 내가 잘 아는 분인데, " 아 지금 생각해도 반대할 일이라면서, 성격은 GR같지 학교도 대학도 안나온 잘 살지도 못하는 꼴통한테 누가 딸을 주냐고..." 하면서 다른 직원이랑 놀리고 있었다.

 

그는 정말 그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고 하면서 무용담 같은 지나온 이야기들을 나열했는데, 공무원인 장인 되시는 분이 그런 자기를 잘 보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좀 통도 크고 엉뚱한 배짱도 있어야 한다고... 그는 정말 착한 부인을 만났다고... 지금 자기네 집안에서 모두 자기부인만 같으라고 칭찬이 자자하다면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냥 어른 모시기도 힘이 든다는데 3년이나 대소변 받아 내면서 효행을 했다는 그 말에 나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른 돌아가신 후부터 자유가 생겨서 여행도 다니고 한다고... 다른 회사에 옮겨 가서 승승장구한 그동안의 일들을 들어보니 배짱 있게, 승부욕 강하게, 새 직장에서 최연소 소장이란 신화를 만들고, 사장이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나와서 개인 사업으로 성공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 잘하고 착실 하기만한 사람들은 그런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이야기였다. 얼렁뚱땅도 하면서 물론 거품도 많겠지만 어쩌면 그런 성격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공부 잘 한다고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에 백번 동감하지만, 그래도 결혼을 앞두고는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직장이 어딘지 , 그런 것을 안 따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긴 세월 흐른 후에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모든 것은 다 자신의 복 그릇 크기에 달렸다고 불경에는 말했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 결혼을 했어도 자신이 받을 복이 많다면 살림이 일어나서 잘 살 것이고, 자신이 복이 없으면 바리바리 실고 가도 그거 다 없어지고 빌어먹게 된다는 옛날 어른들 말씀이다.

 

30년 전 이야기를 다 기억하고 있는 놀라운 기억력에 모두 감탄을 했지만 우리가 다 그렇다. 내가 빌려간 돈은 잊을 수 있어도 떼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잊을 수 없듯이... 내게 섭섭했던 일들은 가슴에 응어리처럼 남아있게 마련이다. 이제는 성공한 자의 여유가 풍기고, 씀씀이도 넉넉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산다는 것은 돌고 돌아서 30년이 흐른 후에도 다시 옛날 사람들을 만나서 그때 그 일들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일 순간에 스쳐 지나는 모든 일들에 다시 한번 삼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냥 스쳐 보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지나간 세월 속에 저지른 과오나 실수들을 다 기억 할 수도 없겠지만, 행여나 알게 모르게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과할 방법도 없다. 그냥 다 용서 하시라고 .... 산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슴에 담아 두지 말고 물처럼 흘러 보내야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고 자위하면서, 불같은 내 성격 탓에 아무래도 상처 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공표와 곱표를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지 뜨뜻미지근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참지 못하는 성격을 고쳐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천성을 어이 고치겠는가 싶다. 행여나 지나온 시간 속에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들을 부처님 전에 참회 합니다....

늘 제 블로그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고운님들께 머리 숙여서 고마움을 전하면서.....

 다시 추워진 아침입니다. 가내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고운 나날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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