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그날 아침 집안이 시끄러웠던 것은 청바지 때문이었습니다.

윤희는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청바지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동네 시장에서 파는 청바지보다 몇 배나 비싼 바지였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윤희는 한참 멋부리는 데 관심을 많

이 가질 나이였습니다. 사실은 그 청바지 자체보다는 브랜드가

더 좋았던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자랑하면서 그 청바지를 입

고 다니는 게 부럽기도 했지만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윤희네 반에서는 요즘 청바지에 붙은 상표를 보는 것이 유

행이었습니다. 이미 같은 반 친구들 중 절반 정도가 이름만 대

면 알 만한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윤희네 집안 형편은 어려웠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초등

학교만 간신히 졸업하셔서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드셨습

니다. 그래서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온 다음에는 산

동네에 단칸방을 하나 얻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지 못하면서도 윤희에게만

큼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고 늘 애쓰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윤희는 구김살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고등학생을 감당하기에

부모님의 부담은 너무 컸습니다.

 

 윤희는 절대 1등을 놓치지 않는 등생이었고, 학급 반장까

지 맡고 있었습니다. 얼굴도 예뻤고 정말 가난하다는 것 빼고

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소녀였습니다.

 

 아버지는 고물상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결혼을 늦게 해서

벌서 환갑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고물상에 실려온 폐지 등을

분류해 트럭에 싣는 게 아버지의 일이었습니다.

 

 윤희는 누구에게도 아버지가 고물상에서 일하신다는 얘기

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도 윤희네 집 사정을

몰랐습니다. 꿈 많은 소녀 윤희에게 가난은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습니다.

 

 청바지 문제가 처음 윤희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며칠 전이

었습니다. 윤희는 점심시간에 가장 친한 친구 신애와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윤희야, 넌 왜 청바지 안 사니? 동네 버스 정류장에 매장도

생겼더라."

 

 "응, 난 별로 예뻐보이지 않던데, 엄마가 더 비싼 청바지 사

준다고 하셨어."

 

 "야, 좋겠다. 나는 청바지 사는 데도 일주일을 졸랐는데······.

그것도 앞으로 6개월은 아무 옷도 사지 않기로 엄마랑 약속까

지 했는 걸."

 

 드디어 오늘 아침 밥을 먹다가 윤희는 청바지 이야기를 꺼

냈습니다.

 

 "엄마, 내가 전에 말했던 청바지 사줘."

 

 "너 정신이 있니. 어떻게 한 학기 등록금보다 더 비싼 청바

지를 사달라고 하니."

 

 "우리반 애들 다 입고 다녀. 그 청바지 안 입으면 애들이 무

시한단 말야."

 

 "뱁새가 황새를 어떻게 따라 가겠니."

 

 "무조건 사줘. 우리 집 가난한 거 티내고 싶지 않아. 난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난 거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잠자코 아침을 드시던 아버지가 입을 여셨습니다.

 

 "그만해, 여보."

 

 아버지는 옷을 차려 입으시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셨

습니다.

 

 "청바지 사 입어라."

 

 아버지는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을 윤희에

게 내미셨습니다.

 

 "여보, 그건 당신 자전거 바꾼다고 1년 동안 모은 거잖아요."

 

 "됐어. 자전거야 뭐 나중에······."

 

 아버지는 나가셨고, 윤희도 얼른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신애을 만났습니다.

 

 "신애야, 오늘 수업 끝나고 청바지 사러 가자. 내가 떡뽁이

도 사줄께."

 

 "그래 좋아."

 

 버스가 오자 둘은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가 한 정류장 지났

을 때 저쪽 편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몇 년째 쓰고 계

신 낡은 모자에 빛바랜 점퍼가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온 세

상의 짐을 다 짊어지신 듯 힘겹게 낡은 자전거 페달을 밟고 계

셨습니다. 안간힘을 쓰며 오르막길을 오르시는 아버지의 모습

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버스가 아버지를 앞질러 갈 무렵 낡

은 자전거에서 나는 삐걱대는 소리가 버스 안에까지 들렸습니

다. 이제는 자전거 수리점에서도 더 이상 못 고치겠다고 두 손

을 든 바로 그 자전거였습니다.

 

 자전거 바꿀 돈을 딸의 청바지 값으로 내민 아버지는 또 얼

마나 오래 저 자전거를 타야 할지 모릅니다.

 

 윤희는 그날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아버지 모습이 떠나질 않

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신애

가 윤희의 옆자리로 왔습니다.

 

 "윤희야, 가자. 청바지 사러."

 

 "아니, 안 갈래."

 

 "왜?"

 

 "내일 모레 아버지 생신이야. 청바지 살 돈으로 아버지 선물

살래."

 

 윤희의 머릿속에는 기어가 달린 새 자전거를  보고 깜짝 놀

라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려졌습니다.

 

 

 출처 : 한 달이 행복한 책 (유 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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