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어느 도시 역 앞 길가에
설렁탕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식당 문 앞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헌혈증 한 장으로 설렁탕 한 그릇을 드실 수 있습니다]
식당 주인은 카운터 옆에 헌혈증을 모아두는 통까지 마련해 두었고
그 투명한 통 속에는 이미 꽤 많은 헌혈증이 쌓여 있었대요.
손님들이 궁금해서 물었대요.
"흐흠....5천 원짜리 설렁탕이 공짜라...."
"헌혈증은 모아 어디다 쓰시게요?"
"네.....백혈병을 앓는 아이들을 도우려구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빤한 상술일거라며 쑥덕 거리기도 했지만
설렁탕 집 주인의 진심을 알고 나서 부터는 태도가 달라 졌습니다.
"가만있자. 어디 한 장 있을텐데..아, 여기 있어요"
지갑을 뒤져 헌혈증을 내는 손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헌혈증을 서른 장이나 놓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스무 명씩 한꺼번에 몰려오는 단체 손님도 생겼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을 잡고 와서 설렁탕을 맛있게 먹고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황홀한 설렁탕은 내 생전 처음 먹어보네 그려."
"저두요 할아버지."
설렁탕집 주인은 한 장 한 장 헌혈증서가 모일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황홀한 설렁탕과 바꾼 헌혈증을 모아들고 동사무소를 찿습니다.
"아, 또 오셨네요. 이번에도 많이 모아 오셨네요."
헌혈증을 받아드는 동사무소 직원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로 모아진 헌혈증은 열 한 살 금비 를 살리고....
일곱살 태연이도 살렸습니다.
이번에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다섯 살 지훈이를 살릴 사랑의 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설렁탕집 주인은 헌혈증을 모아 도움을 준 아이나
그 가족을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 들이 부담을 가질까 싶어서입니다.
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태연이가 그런 경우입니다.
태연이네 가족도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와서 먹고 갑니다.
혹 설렁탕값을 받지 않을까 봐 신경을 쓰여서 입니다.
설렁탕 한 그릇의 황홀한 식탁.
거기에 담긴 사랑은 오늘도 그렇게 말없이
이사람들 사이를 돌고 또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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